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41화 (41/189)

〈 41화 〉 삐걱이는 파티 (1)

* * *

안내소의 중앙에 있는, 만남의 광장.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에 벽에는 값이 나가 보이는 그림들과 바닥은 매끈한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그런 곳에 4명이 모여있었어요.

질과 시멜리, 라피아와 제리… 이 4명이 만나서 의뢰에 관한 내용을 주고받는 중이었죠.

“그러니까… 시멜리라는 녀석은 경호가 가능한 시녀 정도로 보면 되는 거야? 근데 왜 저 녀석이 대답하는 게 아니라 네가 대답해?”

“그건, 약간 사정이 있어서…. 어쨌든 실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강할 거에요!”

아직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인지 자기 소개 중이었나 봐요.

시멜리를 소개하는데 시녀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복종의 맹세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미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일은 비공식적으로 처리된 듯하니까요.

그렇지 않은 이상에야 모든 사람과 초면인 제리는 시멜리가 뭐 하는 인물인지 물어볼 이유가 없을 겁니다.

“경호가 가능할 정도면 꽤나 쓸만하다는 거겠네, 너는 뭐 할 줄 아는 거 있어?”

“저는 소환마법을 쓸 수 있어요, 다른 마법은 한두 가지 정도 더 쓸 수 있는데….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흐응, 그럼 다음으로 빨간 머리인 너는?”

“어, 나? 나는 피를 이용해서 싸우는데, 아마 너희 셋이서 덤벼도 가볍게 이길걸?”

“…헤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네.”

책상에 턱을 괸 채로 한 명, 한 명 능력과 실력에 대해 묻던 제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의뢰서를 펼쳤어요.

“의뢰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내 능력을 말하자면, 용사의 성흔을 몸에 지녔다는 거지! 대단하지 않아?”

제리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질은 옆에 앉아있는 라피아에게 귓속말로 용사의 성흔이 무엇인지 물어봤어요.

라피아가 설명해주려는 순간에 제리가 책상을 손으로 한번 쳐, 말을 채갔지만요.

“용사의 성흔이란~ 용사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순간, 엄청난 힘을 부여해주는 물건이지!”

“그런데 왜 이런 쉬운 의뢰에….”

제리는 질의 질문에 정곡을 찔린 건지 자신 있던 모습을 잃어버렸어요.

그리곤 입을 계속 뻐끔거려 뭔가 말하려는 듯이 고민하는 것 같았죠.

“그, 그거야! 그거! 용사의 성흔을 갖게 되면 선행도 좀 쌓아야…!”

“그냥 힘은 있는데, 그 힘을 컨트롤하기 어려워서 온 거라고 말하지 그래? 어쩐지 폼을 많이 잡는다고 했더니 숨기려 했던 거구나?”

“시, 시, 시끄러워!!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아, 네네~ 그러시겠죠. 겉만 번지르르한 용사 후보생이었다 이거네.”

“이익…!”

라피아의 비꼬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제리는 이를 갈면서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어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겠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우리 아크티스 혈통은 옛날 옛적부터 용사를 많이 배출해왔다고!!”

“하, 그래서 뭐? 너는 후보생일 뿐이잖아?”

점점 격해지는 말다툼에 질은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어요.

이상하게도 라피아는 정도를 모르고 제리를 도발했죠.

“끄으윽…! 너 얼마나 잘 싸우는지 지켜보겠어!!”

“뭐야 누가 더 활약하는지 승부라도 하자고? 좋지, 말만 많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인걸? 다시 볼 것 같아, 멋지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쁜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기만 하는 건 아니었어요.

선의의 경쟁, 이라기에는 조금 격한 말다툼이 있었지만… 승부라고 받아들이자마자 라피아의 말에 돋친 가시는 조금이지만 사라진 듯했으니까요.

“판단은 네가 해!!”

“저, 저요?!”

질에게 있어서는 좋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갔네요.

단순히 친한 라피아의 편을 든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질의 성격상 이런 상황에서는 강단 있게 딱 누군가를 고를 수도 없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편파적인 심판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니까요.

“자! 가자고!!”

“아니, 잠깐…! 걸어서 가는 거예요?!”

“하? 뭐라는 거야! 걸어서 가는 게 아니면 어떻게 갈 건데? 얼른 와!”

“아, 으으! 시멜리 씨 얼른 가요!”

“네에, 네에~”

지금껏 한마디도 없던 시멜리가 이제야 한마디 했네요.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질을 보는 것도 아닌 걸 보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거 같네요.

적당히 반응해주고, 적당히 질의 명령에 따르다 보면 다시 탈리안을 보게 될 테니까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거죠.

속으로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 봐야 질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니까 된 거 아니겠어요?

하여튼 이런 작은 사건이 있고 난 뒤에야 질의 파티는 마법 학원의 생활동과 안전 에어리어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했어요.

점점 벽돌로 이루어진 도보가 희미해져 흙과 풀냄새가 진동하는 숲길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렇게 모험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서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저… 그래서 활약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 거에요?”

질이 말한 활약의 기준, 이걸 정하지 않으면 승부고 뭐고 다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죠.

어찌 됐든 라피아와 제리가 신경전을 펼치느라 기준 같은 건 정하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질이 이야기를 잘 꺼냈네요.

“죽인 몬스터는 5마리당 1점으로 취급하고, 처치 연출이 얼마나 화려한지에 따라 가산점 1~3점으로 하자고.”

“연출? 연출은 어떻게 따질 건데?”

“그건 지르니트에게 맡겨야지, 그렇지 지르니트?”

“앗, 네… 네! 그전에 일단 저도 흑기사부터 소환할게요.”

분명 질의 의뢰를 하기 위해서 모인 파티일 텐데, 본질이 변해버렸네요.

질도 이쯤 되니 거의 자포자기한 느낌으로 라피아와 제리의 뒤를 따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평소보다 질의 소환에 쓰이는 마법진이 예전에 본 것과 크기가 상당히 달라졌네요.

무슨 변화라도 있던 걸까요?

“응? 뭐야, 너도 꽤 하는 녀석이었어? 왜 이런 쉬운 의뢰를 하는 건데?”

제리가 소환된 직후의 흑기사를 보고 말했어요.

눈에 들어온 흑기사의 모습이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큰 모습이었거든요.

평범한 소녀가 이렇게 커다랗고 늠름한 흑기사를 소환해냈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였겠죠.

게다가 등에 달린 망토는 질의 각인에 새겨진 꽃과 똑같은 그림이 그려져 한층 더 멋들어지게 보였으니까요.

어딘가의 기사단에 속해있는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런 흑기사를 보고도 감탄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거예요.

“세르디어 페어차일드라고 해요, 저번 입학식에 이름을 지어줘서 성장한 제 소환수에요.”

“성도 붙여준 거야? 쓸데없는 정성까지 들였네, 근데 투구 때문에 얼굴이 안 보이냐.”

허리를 숙여 투구의 틈 사이로 흑기사의 얼굴을 확인해보려 한 제리지만, 큰 키와 그림자 때문에 안보이는지 아쉽다는 듯이 멀어졌어요.

“구태여 네가 내 얼굴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제리에게 까칠한 태도로 알 이유가 없다며 말하는 세르디어였죠.

성장해서 말까지 할 줄 알게 되었나 보네요.

그런데 분명 흑기사가 쓰는 언어는 질이 모르는 말이 아니었나요?

모두가 알아듣는 언어로 말하는 걸 보니 신기하네요.

소환수의 주제에 다재다능하다고나 할까요.

“와, 말하는 거 봐 건방지네.”

“네가 나보다 강하다면 사과하지.”

“와, 와아… 이 파티 애들 하나같이 다 성격이 장난이 아니네.”

라피아에 이어서 질의 소환수까지 좋지 못한 태도로 대해줘서 그런지, 한껏 열이 올라있던 제리가 이제야 기가 죽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의뢰를 포기하지 않거나 라피아의 옆에서 딱 붙어 걷는 걸 보면 승부를 포기한 건 아니겠지만요.

질은 흑기사에게 부탁해 어깨 갑주 위에 올려진 채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이름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어색하다는 평가를 내리는게 가능했는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요?

“다들 멈춰, 전방에 몬스터 둥지로 보이는 동굴 발견.”

라피아는 멈춰서서 자세를 낮추며 모두에게 명령하듯 말했어요.

이에 제리도 라피아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옆으로 다가와 앉아선 몬스터의 둥지를 관찰했죠.

동굴에서는 인간형 몬스터가 들락날락하고 있었어요.

초록색의 피부를 가진 수많은 개체가 거대한 개체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죠.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지능이 높아 보이는 모습에 모두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인 듯합니다.

“어떻게 할래? 무작정 치고 들어가면 저 수에 압도될 것 같은데.”

라피아가 뒤를 돌아보며 질과 흑기사, 시멜리에게 물어봤어요.

하지만 질도 그렇고 시멜리도 그렇고 라피아를 쳐다보는 눈이 그렇게 썩 좋지는 못했죠.

“라피아 언니, 죄송하지만 이미 뛰쳐나가신 분이 있는데요….”

“…하아, 뭐 이럴 줄 알았어.”

당연히 질의 말대로 먼저 뛰쳐나간 장본인은 제리 펠 아크티스였어요.

뛰쳐나가면서도 쓸데없이 ‘이 용사님이 화려하게 전부 몰살시켜주마!’라고 소리치며 이목을 끄는 것도 잊지 않았죠.

용사, 용사 좋죠.

하지만 몸이 좋다고 해서 생각 없이 살아도 된다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이것 보세요, 파티원들은 이제 전투태세로 들어가 내려오고 있는데… 제리는 벌써 포위되어서 싸우고 있잖아요?

물론 용사의 후보인 만큼 작은 개체들이 달려드는 족족 베어내긴 합니다만,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싸우는 모습이 용사라기보다는 몬스터 헌터와 비슷하네요.

“이 멍청이가!! 혼자 뛰어들면 어쩌자는 거야!!”

“뭐? 경쟁에서 밀린 사람이 잘못…?! 우와악!!”

“거참! 손 많이 가는 용사 후보생이네!!”

캉, 하는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어요.

제리가 개미 떼처럼 달려들던 작은 몬스터들 때문에 큰 몬스터를 신경 쓰지 못했던 탓이에요.

요컨대 공격당해 치명상을 입을뻔한 제리를 라피아가 공격을 대신 막아주며 구해준 거죠.

“너처럼 생각 없이 나가는 용사 후보생은 처음이라고!! 알아들어?!”

“하, 이 몸에게는 용사의 능력이 있어서 저런 공격쯤은…!”

“이런, 씨! 정신 차리라고 했잖아!!”

허점을 찔려 식은땀을 흘리면서 적당히 몬스터들의 공격을 흘리던 제리는 또다시 큰 몸집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허용할 뻔했어요.

당연히도 이번 역시 라피아에게 뒷덜미를 잡혀 뒤로 던져지는 것으로 구해졌어요.

제리의 한심함에 파티원 모두가 한숨을 내뱉었어요.

“크윽, 젠장! 잘난 척은…! 나도 네가 하는 만큼은 할 수 있, 어?!”

땅에 구르면서도 라피아에게 구해졌다는 사실이 분한 건지, 공격당할 뻔했다는 사실이 분한 건지 작게 궁시렁거리는 제리에요.

게다가 이번엔 나가떨어진 제리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흑기사가 달려와 잡아채 부러뜨렸어요.

놀라운 점은 여전히 질이 흑기사의 어깨 위에 있었다는 것이었죠.

질도 익숙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 탈리안이 회의를 엿듣던 시간에 마냥 놀기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라피아 언니가 저래 보여도 꽤 세거든요.”

말을 마치고는 화살을 잡아낸 흑기사에게 잘했다며 칭찬을 하는 질이에요.

약간 애 취급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 흑기사를 보니까 소환 계약을 다시 해서 새로운 소환수를 소환한 건가 싶기도 드네요.

“그래, 저 허접한 몬스터들한테 공격당할 뻔한 걸 보면 네 실력도 알만하니까… 히히힛.”

“이것들이, 사람을 단체로 무시하고 자빠졌어…!!”

시멜리까지 다가와서 자신을 헐뜯는 것에 열이 끝까지 차올랐는지 제리는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 뛰어들었어요.

라피아가 무쌍을 찍고 있는 중간에 뛰어들면 방해가 될 텐데요.

“용사 후보생이라고 별거 없다니까? 쿠후흐! 안 그래, 꼬맹이?”

“탈리안 언니가 헤어지기 전에 말하지 않았어요? 시멜리 씨가 저를 부를 때는 작은 주인님이라고 하라고 했잖아요? 제대로 불러야죠.”

“…건방진 꼬맹이.”

“하아, 전 아직도 시멜리 씨가 마음에 든 게 아니에요. 언니가 어쩔 수 없다니까 이해한거라구요. 그러니까… 앉아.”

“윽!? 이 꼬맹이가…!!”

“일어서, 앉아.”

“으읏, 너어!!!”

시멜리는 펜던트의 힘과 복종의 맹세 때문에 하기 싫어도 억지로 명령에 따라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해야만 했어요.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고 해서 질이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걸 보면, 평소의 착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그래도 질이 승부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 시멜리와 이렇게 떠들고 있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에요.

승부도 이미 제리가 라피아에게 구해진 것으로 끝난 것과 다름없었거든요.

라피아만 해도 저 많은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췄고, 실제로도 무쌍을 펼치는 중이니까요.

몬스터가 흘린 피를 끌어모아 가시를 만들어 내 쏘아낸다던가, 단순한 악력만으로 가볍게 몬스터의 머리를 뜯어내기도 하고, 덩치 큰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들어오는 공격은 죄다 피하면서, 급소만 정확하게 노려 연속으로 공격해내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죠.

“자, 제대로 불러보세요. 작은 주인님이라고.”

“으으, 으으윽!! 언젠간 그 기고만장한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겠어!!”

“아아~ 세르디어, 정말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르니트,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건 어디서 배워온 거지? 처음에 널 봤을 땐 겁많은 어린애였는데.”

“그야 어쩔 수 없잖아! 지금까지도 시멜리 씨가 탈리안 언니한테 달라붙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니까?! 아직도 얄미워 죽겠어!!”

“질투심에서 나온 행동이란 거군, 그렇다면 그쯤 해둬.”

이래서야 파티의 앞날이 막막하네요.

한 명은 용사 후보생이 저지른 사고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쁘고, 한 명은 고마운 줄 모르고 계속해서 사고를 치려고 하는데, 나머지 두 명도 멀리서 티격태격하며 의뢰를 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에요.

이렇게 맞지 않아서 의뢰를 제대로 처리할 수는 있을까 걱정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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