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쓸만한 애완견
* * *
해가 밝고 난 뒤, 질의 방.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복으로 갈아입는 질이 있어요.
탈리안의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으로서 혜택을 받는 질은 원래라면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었죠.
새삼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가족이어서 받는 혜택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지경이에요.
집도 마련해주죠, 방도 따로 만들어주죠, 옷장에는 딱 맞는 옷을 준비해두죠.
보통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입학 가능한 마법 학원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입학시켜주죠.
이뿐인가요? 마법을 쓰는 사람의 일생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각인을 물려주기도 하죠.
질이 탈리안이 낳은 아이였다면 이런 금수저 스타트를 또 찾아보기 힘들 정도예요.
그렇다고 지금의 질에게 이만한 대우가 과분하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리본도 잘 어울리고, 구겨진 곳도 없고! 아직도 조~금 어색하지만 잘 어울려!”
뒷머리에 크기가 꽤 되는 리본을 묶은 질은 거울 앞에서 몇 번 빙글 돌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어요.
슬슬 적응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어딘가 불편한지, 몸을 비틀어 등을 살펴보는 동안 한쪽 발꿈치가 살짝 들렸죠.
모든 준비를 마친듯한 질은 방문을 활짝 열고 나가 소리쳤어요.
“언니! 저 준비 다 했어요!!”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질.”
“그래도 오늘은 중요한 날인걸요! 언니도 말했잖아요? 오늘부터 마법 학원에서 여러 가지 의뢰를 내주기 시작할 거라구요!”
그래서 질이 이렇게 들떴던 거군요.
미궁에서처럼 경쟁자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파티를 짜거나 솔로로 의뢰를 수행할 수 있게 된 날이라면 질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가 없죠.
실력을 올릴 기회가 제 발로 걸어온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뭐 파티나 솔로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질은 파티로 행동하겠죠.
“그래봤자 처음에는 그렇게 대단한 의뢰를 주는 건 아니니까 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질, 이거 받으세요.”
“펜던트…? 아! 전에 주신 건 부서졌으니까 주는 거예요?”
탈리안이 건넨 건 전에 부서진 펜던트와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을 가진 물건이었어요.
다만 이제… 펜던트의 보석에 깊이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달랐겠네요.
“네, 추가로 여러 가지 기능을 더 넣어놨어요. 그리고 시멜리? 이리 오세요.”
“선생님이 부르신다면 어디든 가야죠.”
부르자 바로 달려오는 시멜리를 보니 한 마리의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작 그런 좋은 이미지에 반해 속은 빈 강정처럼 시멜리에게 있어서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요.
“질, 펜던트를 목에 걸고 시멜리에게 아무 명령이나 해보세요.”
“네? 명령…? 갑자기요?”
강아지라 했었는데 우연인가요? 명령해보라니 당황하는 질이에요.
저 반응이 정상이긴 할 겁니다.
갑자기 범죄자를 앞으로 불러오더니 그 범죄자에게 명령을 하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괜찮으니 해보세요.”
“어… 그, 그럼…. 아, 앉아!”
그렇지만 상황의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질에게 탈리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보라고 말했어요.
뭐 탈리안의 말이니 나쁜 일은 없을 것이고, 질도 당장 생각나는 대로 펜던트를 낀 뒤 급하게 명령을 했겠죠.
하지만 그게 ‘앉아!’라는 정말 개 취급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명령이라니요.
범죄자라지만 점점 시멜리의 취급이 안쓰러워지네요.
“에? 우왓?! 뭐야? 선생님 이건 무슨!?”
그런데 신기하게도, 질의 명령대로… 아니 생각한 대로 시멜리는 바닥에 개처럼 주저앉았어요.
양다리를 벌려, 양손을 바닥에 짚은 정말 개와 같은 자세로요.
언뜻 보기에는 개구리가 앉은 자세와 비슷해 보였지만… 그것보다는 시멜리가 따를 리가 없는 명령에 따랐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시멜리, 일어나서 질을 공격해보세요.”
“언니?!”
“…선생님? 괜찮은 거예요?”
탈리안의 입에서 질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죠.
질도 놀라고, 바닥에 앉아버린 시멜리도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어요.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물어본 걸 보면 틀림없었죠.
“네, 괜찮으니 해보세요.”
“언니 왜 그러세요!!”
질의 당황 섞인 큰소리에도 탈리안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상할 만큼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며 질을 안심시키려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질이 안심될 리가 없었죠.
심지어 도망치려 하는 질의 어깨를 꽉 잡아 붙잡은 탈리안이었으니, 더 무서웠을 거예요.
“하항~ 이 꽉 물어라, 이 요망한 꼬맹이!! 하아…! 아!? 아각?! 으극!!”
그리고 놀라움의 연속으로, 기분 좋게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일어서서 팔을 빙빙 돌려 때릴 준비를 하던 시멜리는 주먹을 질에게 향하려던 순간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허덕였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흉한 꼴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였죠.
탈리안을 제외한 모두가 이 상황을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있었어요.
“이, 이게 대체…. 괘, 괜찮은 거예요…?”
오죽하면 시멜리를 그렇게 싫어하던 질이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겠어요?
“질, 펜던트를 의식한 채로 시멜리를 떠올려보세요.”
“그건 또 무슨…! 싫어요…!”
“괜찮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시멜리는 계속해서 고통을 느껴야만 할 거예요.”
“읏…! 알았어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거의 자포자기 한 상태의 질은 탈리안의 말에 따랐어요.
그러자마자 바닥에서 뒹굴던 시멜리는 점점 진정이 되어, 온몸을 땀에 적신 채로 가쁜 숨만 쉬고 있었죠.
“설명해주세요, 언니… 이게 무슨 일인지.”
“이번에 추가된 기능으로는 시멜리가 질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질이 원하기 전까지는 시멜리에게 고통을 주는 게 첫 번째로 추가되어 있어요. 두 번째로는 질이 명령을 내린다면 그에 반드시 따르게 되는 기능이 추가된 거죠. 이는 질이 마법 학원에서 의뢰를 수행할 때 파티로 시멜리를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에 넣은 기능이에요.”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 보여줄 것까지는…!”
“시멜리가 싫어하면 어쩌냐구요? 정말 그럴까요? 저 꼴을 본다면 그 생각이 조금 바뀔 텐데요.”
탈리안의 말에 쓰러져있는 시멜리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질이었어요.
뒷걸음질까지 친 걸 보면 상식 외의 행동에 놀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으힛, 흐히히….”
눈물, 콧물, 침까지 다 흘려가면서 뜨거운 숨을 흘리는 시멜리… 손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고 있었어요.
마치 자신이 느꼈던 고통의 여운을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죠.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땀범벅으로 시멜리의 옷과 바닥이 젖긴 했어요.
하지만 바닥은 특히나 많은 물이 고여 흥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특히 시멜리의 하반신 쪽으로 갈수록 그 물의 양은 일부러 물을 흘려놓은 듯한 양을 하고 있었어요.
이를 보고 탈리안은 작게 ‘천박하기는….’이라며 중얼거렸지만, 질은 듣지 못한 것 같았어요.
“어쨌든, 질. 시멜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이대로 의뢰를 받고 같이 다녀오세요.”
“앗… 네, 알았, 어요….”
한참을 자신의 페이스로 돌아가지 못하는 질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젖혔어요.
그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의 건너편으로 넘어갔죠.
시멜리를 데려가지도, 탈리안과 함께 걷지도 않고 말이에요.
“안 일어나고 뭐 하는 거죠, 시멜리.”
“선생님… 즐길 시간도 안 주시고 너무하시네요.”
“2층에 올라오기 전에 내가 한 번 더 친절하게 말해줬을 텐데, 너한테 자유란 없다고.”
“알아요, 알고말고요~ 일어나야죠. 읏, 흐으….”
그제야 시멜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비틀거리며 질을 뒤따라갔어요.
저러면 냄새가 진동을 할 텐데요.
어떤 냄새가 진동을 하던지 곤란한 것은 시멜리일 뿐이니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죠.
질이야 힘껏 모른 척하면서 시멜리와 일행이 아닌 척을 하면 되니까요.
뭐… 의뢰를 신청하면서 파티를 등록할 때에는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네요.
“질, 왜 그렇게 토라져 있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언니.”
“아닌 게 아니잖아요.”
“정말 아니에요, 괜찮아요.”
따라 나온 탈리안이 질의 상태가 이상해 보여 말을 걸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의 대답뿐.
이 뒤로도 질리도록 물어봤지만, 탈리안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죠.
그렇다고 질이 탈리안을 대하는 태도에서 화가 났다거나 그런 느낌은 나지 않았으니, 결국 탈리안이 택한 것은 방치였어요.
탈리안 자신도 할 일이 있어 끝까지 따라가지는 못하니까요.
안내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서로 헤어지기로 했죠.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의뢰를 받으러 왔어요!”
결과적으로 틀린 선택은 아니었어요.
의뢰 안내소에 도착해 접수원과 대화하는 질이 이렇게 밝은데 삐졌거나 토라졌다니 말이 안 되죠.
그저 탈리안의 기우, 기분 탓이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사람도 많고, 꽤 크네요! 우리 집보다 큰 거 같아요!”
“의뢰를 받는 건 완전히 처음이시구나? 여긴 전 세계의 의뢰가 모여드는 곳이니까요, 의뢰를 받으려면 일단 학생증을 제시해주시겠어요? 입학식 때 받았던걸 말하는 거예요.”
거의 성 하나를 통째로 쓴다고 해도 믿을 것처럼 넓고 큰 의뢰 안내소였어요.
성이라고 또 벽이나 바닥이 돌로만 이루어진 투박한 장소는 아니었어요.
따지자면 아주 세련된 고급 레스토랑과도 같은 번쩍번쩍함이 이 의뢰 안내소에 넘쳐났죠.
질은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다가도 자신과 시멜리의 학생증을 제시했어요.
“지르니트 페어차일드, 시멜리 리니아 두 명인가요? 마침 지르니트 양에게 의뢰를 발행한 분이 계신데 확인해보시겠어요?”
“저한테요? 꼭 해야만 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받지 않으셔도 다른 분이 대신 하게 되니까 굳이 하실 필요는 없어요. 대신! 이런 의뢰 수행자가 지정된 특별 의뢰 같은 건, 수행을 완수하고 나면 얻는 실적 포인트가 1.3배로 올라가니까 실력에만 맞는다면 하는 게 좋겠죠?”
질은 자신에게 의뢰를 발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게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어요.
안내원이 말하기를 ‘의뢰를 발행한 사람이 자신의 신상정보는 비밀로 해달라고했거든요.’라고 말해서였죠.
하지만 그렇다고 의뢰 발행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끝에 얻게 되는 실적 포인트가 1.3배가 된다고 하니 쉽게 넘어가기엔 유혹이 꽤 컸었죠.
결국, 받을수밖에 없었어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적은 포인트라고 해도 꾸준히 모으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엄청나게 쌓이겠죠.
“어디 보자…. 동쪽의 실베타 해안과 근접한 삼림에서 서식 중인 식물계 몬스터의 포자를 채집해오는 의뢰네요. 의뢰 난이도는 S, A, B, C, D, E, F, G 순으로 당연히 S급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데요! 이 의뢰는 E급이에요.”
흑기사를 생각한다면 질에게 있어서 쉬운 난이도가 아닐까 걱정될 수준이에요.
그래도 특별 의뢰인만큼 뭔가 있겠죠.
보통 이런 흐름으로 쉬운 의뢰라고 무시하다가 큰 사건·사고를 마주하게 되니까요.
“그럼 그걸로 할게요, 근데 파티도 짜야 한다던데….”
“여기 명단이 있으니 보고 골라보실래요? 최소 한 명에서 최대 3명까지 고르실 수 있으세요.”
“와, 진짜… 진짜 많다…. 어? 이 사람이랑 이 사람으로 할래요!”
“아스티엘 라피아 씨와 제리 펠 아크티스 씨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이 사람들은 대부분 실적이나 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명단에 올라온 사람들이라, 난이도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의뢰를 수행하려고 하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그야 익숙한 사람으로 파티를 짜는 게 당연하겠죠.
그래도 명단에는 자세한 정보가 엄청 많이 적혀있었는데, 다 읽고 고른 걸까요?
라피아는 확실한 실력을 갖췄다지만, 나머지 한 사람의 정보는 아직도 읽고 있는걸 보면 너무 대충 고른 게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의뢰를 수행하는 건 질이니까요, 알아서 잘하겠죠.
일단은 흑기사도 있고, 애완견으로 시멜리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질과 친한 라피아도 참가하게 될 테니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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