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불편한 동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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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안이 짜증을 내고 사라진 후, 시간이 꽤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마법 학원은 왜 안 갔냐면 탈리안이 말하기를 ‘마법 학원은 기본적으로 자율 출석이에요, 성적은 오로지 학원에서 자신이 고른 의뢰를 얼마나 높은 완성도로 완수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수업을 듣고 싶다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듣고 싶을 때 들으면 되고요.’라고 했었거든요.
그러니 성적에 지장이 갈 정도로 출석하지 않거나 의뢰를 해내지 않는 이상에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거였죠.
솔직하게 말해서 명문 학원에 입학해놓고 게으르게 생활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렇지만 질에게는 그 명문 학원이라는 게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가 봐요.
하긴, 당장에 탈리안이 짜증을 낸 뒤로 얼굴 한 번 안 비춰주는데 학원이 중요하겠어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인걸요.
이불을 끌어 올려 얼굴까지 다 덮어버린 뒤에 생각에 잠긴 그 모습, 평소라면 점심시간이라 도서관에 도시락을 싸가서 탈리안이나 분신들과 먹고 있을 시간인데….
어지간히 충격이 컸나 봐요.
탈리안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선생님이란 직급을 달고 있기에 마법 학원으로 출근한 지 오래였죠.
둘의 입장을 들어보면 둘 다 그럴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입장을 살펴보자는 것은 아니고,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어제저녁부터 오늘 새벽 사이, 시멜리의 처분을 결정하는 회의를 되돌아보기로 하죠.
… … …
“탈리안 선생님이 생포해오신 시멜리, 그녀는 리니아 가문의 장녀입니다. 동남부 세계 최고, 최대의 경제 국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나라를 통치하는 가문의 장녀라고요. 그런데 그녀를 처형하겠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녀는 최소 50명! 행방불명자의 수를 생각한다면 최대 80명을 죽인 악질 범죄자입니다!! 처형하는 것 외에 그녀의 죄를 깨끗이 할 방법이 있다고도?!”
“듣자 하니 시멜리는 뒷골목에서 유통되는 마암서의 힘을 흡수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금 저렇게 원래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당장은 그녀의 처분을 결정해야 하는데 마암석이 어떻고 형태가 어떻고 가 중요한 게!!”
“마암석이 왜 중요하지 않은가!! 마암석을 사용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죄목은 충분하다네!!”
“탈리안 선생님이 말하기로 어떠한 맹세를 시멜리의 몸에 걸쳐두었다는데, 제어할 수단이 생겼다고는 생각 못 하겠습니까?!”
“뭐가 어찌 되었든 그녀도 일단 우리 학원의 입학생이라는 걸 생각해주세요!”
“입학생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를 감싸겠다니 제정신인가!!”
회의장은 말 그대로 시끌벅적했어요.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고 점점 거세져, 불이 붙듯이 이곳저곳으로 번져나갔죠.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한사람이 소리를 치자 그게 메아리처럼 여기저기 울려 퍼져, 모든 사람이 큰소리를 내게 된 거예요.
회의장에 들어온 학원의 중요 관계자만 약 200명, 이 모두가 시멜리의 처분을 결정하기 위해 모여든 겁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보기 힘든 금테로 장식된 고급진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어요.
“조용!!!”
그리고 그 사람이 소리쳤을 때,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어요.
마치 그 누구도 그에게는 거역할 자신이 없다는 것처럼 꼬리를 말고, 모두가 자리에 앉았죠.
언제 치고받고 싸우며 말다툼을 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말이에요.
“리니아 가문에는 추후 제재를 가할 것이다. 리니아 가문의 장녀는 황궁에서 처분이 내려올 때까지 그녀를 무사히 생포해온 탈리안에게 맡기도록! 이 결정에 이의가 있다면 황궁으로 찾아오라! 이는 시멜리뿐만이 아닌, 이형의 존재 탈리안을 감시하기 위한 뜻이 담겼음을 알아라!”
남자의 말에 회의장의 모두가 술렁였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이 결정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어요.
단순히 황궁이라는 단어에만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문 것은 아니었어요.
이 남자의 곁에는 양옆으로 기사만 넷, 뒤로 여섯이 있는 데다가 남자의 몸마저도 상당한 근육질이었거든요.
“이의 있습니다. …레빈 나나델 경.”
“…무엇인가? 현자 크롬웰.”
“리니아 가문은 저희 레이지 가문과 황궁의 정적이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타격을 입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 결정에 반발할 리니아 가문의 사정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리니아 가문이 경제에 영향을 얼마나 끼치고 있는지 생각만 하더라도 충분히….”
“다릅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미지적인….”
“현자여! 비록 자네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가문의 주인일지라 하여도, 이 자리에 고결한 황제 루스 아발테인님의 대리로 출석한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그분의 뜻이시다. ”
“그것은….”
“그리고 조금 전 말하지 않았는가? 이의가 있다면 황궁으로 찾아오라고 했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입학생이 모여드는 마법 학원이라는 곳의 회의장이 이리 시장판과 같아서야 제대로 된 회의가 가능이나 하겠나.”
“…알겠습니다. 나중에 따로 황제님을 알현토록 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이번 일의 전말이었습니다.
크롬웰이 모든 것을 탈리안에게 전해주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시멜리에 관한 내용은 전부 알려주었을 겁니다.
그러니 탈리안이 그렇게 억울해했던 것은 그럴 수밖에 없던 일인 거에요.
질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지, 크롬웰로부터는 어딘가 내용이 빠진 부탁을 받았지, 그렇다고 거절하면 크롬웰과 했던 거래는 없던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사정을 모르는 질이야 탈리안이 야속했겠지만요.
결국, 질은 한참을 이불에서 나오지 않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난 뒤에야 방 밖으로 나왔어요.
“배고파….”
그런데, 질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상한 벽에 부딪혀버렸어요.
땅만 보고 걸었기 때문에 앞을 못 봐서 그랬겠지만 이상하죠? 문 앞에 벽이 있다니.
“앞을 보고 걸어야지 꼬맹이. 우후흐.”
“…힉?!”
“아, 야!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문 열어!! 히히힛, 하…!”
집 안에 쾅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문을 세게 닫은 질은 시멜리가 들어오려고 시도하자 아예 잠가버렸어요.
기괴하고, 이상하고, 별난 웃음소리에 질은 더 겁을 먹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어요.
“아아… 젠장, 할 말이 있다고! 선생님의 동생만 아니었다면 너 같은 거 진작에 팔다리를 분리했을 텐데 운 좋은 줄 알아!!”
“저, 저는 할 말 없어요!”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망할 꼬맹이가!! 아하하! 하하힉!? 끅…. 크흠!”
너무 웃다가 숨이 넘어갈 뻔한 시멜리였어요.
아무래도 탈리안이 돌아오기까지는 방에만 처박혀있을 것 같네요.
열쇠도 있는데 왜 쓸 생각을 못하는 건지, 겁에 잡아 먹혀버린 질은 평상시에 비하면 완전히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시멜리는 겁먹은 질을 보고서도 문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죠.
한번은 자는 거냐고 물어보고, 한번은 안 자는 거 안다며 말하고, 한번은 화장실도 안 가냐며 물어봤어요.
그게 더 질이 겁먹는 것에 도움을 주는 줄도 모르면서요.
“…핫, 선생님 아니세요!! 기다렸다고요~ 하아~”
누가 봐도 시멜리가 지금 말한 것은 함정이라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질은 시멜리가 탈리안과 같이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질은 문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죠.
“드디어 나오셨습니까?! 이 빌어먹을 꼬맹이! 히힛!!”
“역시 거짓말…! 앗?! 아프잖아요! 이거 놔요!!”
시멜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 질의 뒷덜미를 잡아 거칠게 밖으로 끌어냈어요.
그다음엔 바닥에 쓰러진 질의 양쪽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했죠.
“지금 보니까… 너도 선생님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보면서 왜 그런 거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 꺅꺅 시끄러워 죽겠네…. 그렇다고 선생님이 건 맹세 때문에 죽일 수도 없으니…. 히히히….”
죽인다는 말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몸을 떠는 질이에요.
시멜리가 가진 특유의 웃음기와 차분한 말투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거든요.
분위기에서조차 거짓 하나 없는 진심만이 담긴 말이라고 티가 났으니까요.
“꼬맹아, 언니가 이 집에서 좀 나가고 싶거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혹시 알고 있을까나~?”
“흐읏…! 모, 몰라요….”
탈리안과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기 때문인지, 시멜리는 질의 뺨을 혀로 핥으며 말했어요.
냄새가 난다고 해서 혀로 핥는 건 도대체 어떤 경우인지 모르겠지만, 이러다 탈리안에게 걸리면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될 텐데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점이 50명 이상을 학살한 범죄자로서는 어울리는 행동이기는 해요.
이해가 될 행동을 하면 범죄자가 아니죠, 범죄자의 사고방식 자체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릅니다.
“에이… 빼지 말고 알려주라~ 언니가 이렇케헥?! 으흑!!”
“분명히 타인을 상처입히는 행위를 못 하도록 맹세를 걸어뒀을 텐데요, 어떻게 질을 아래에 깔고 위에 올라탄 건지 궁금하네요.”
“어, 언니…!”
갑자기 뒷덜미를 잡혀 벽에 날려진 시멜리는 등을 부딪쳐 신음을 토했어요.
어느샌가 앞에 서 있는 탈리안을 보고선 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에 숨었죠.
“아하핫, 역시 선생님이야 화끈하시다니까! 아아~ 약간 샘이 나려하네… 헤헷.”
“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가요.”
“집에 혼자 남겨두고 나가셔서 외로웠다고요, 저는 선생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우흣! 흐흐흣!”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자 탈리안은 그대로 가만히 시멜리를 내려다봤어요.
“아아, 그 차가운 눈빛…! 어쩜 모든 행동이 다 아름다우실까요, 선생님은….”
시멜리는 일순간 그 모습에 움찔하며 겁을 먹어 몸서리를 치다가도, 일부러 몸을 떨며 팔로 자신의 몸을 안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했어요.
분위기를 깨는 행동에 짜게 식어버린 탈리안과 질은 시멜리를 무시하고 질의 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선생님?”
탈리안을 불러보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시멜리를 반겨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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