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37화 (37/189)

〈 37화 〉 불편한 동거 (1)

* * *

탈리안이 시멜리를 제압하고 생포에 성공한 다음 날, 탈리안의 집.

탈리안, 지르니트, 시멜리, 라피아 4명이 테이블을 중심에 두고 빙 둘러앉아 있습니다.

크롬웰의 명령은 분명히 생포였고,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시멜리가 이곳에 있는 걸까요.

어둡고 꿉꿉하며, 칙칙한 지하의 감옥에나 있을법한 인물이 말이에요.

“언니, 설명은 언제 해주실 거예요?”

“음, 흠! 미안해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있어서 저도 모르게….”

성장한 모습 그대로인 질은 대화가 시작되지 않았던 게 답답했나 봅니다.

질의 이런 반응에 탈리안은 멋쩍게 헛기침을 몇 번 했어요.

솔직히 스스로도 미안하긴 할 거예요, 자는 사람을 깨웠으니 말이죠.

탈리안이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3시였거든요.

“이쪽은… 시멜리 리니아, 복잡한 문제가 끼어있어서 당분간 저희 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

“복잡한 문제가 뭔데요?”

“정치, 범죄, 권력 같은… 머리 아파질 만한 모든 문제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언니한테 그렇게 딱 달라붙어 있는 거예요?”

“제가 가진 힘에 반했다나 봐요, 이해는 가지 않지만….”

질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탈리안을 탓하는 투로 말을 이어갔어요.

게다가 질이 묘하게 화내는 분위기를 낸다고 또 거기에 어울려주는 탈리안입니다.

미안하니까 그런 거겠죠, 잠도 깨웠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데려왔으니까요.

하지만 질의 기분이 나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어요.

둘은 대화를 잘 이어나가는 데에 반해, 라피아와 시멜리는 서로 견제만 하며 말없이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습니다.

“…이봐, 그 녀석 네가 말했다던 안 좋은 사건의 범인이지?’

“언니는 그럼! 지금 범죄자를 집에 들인 거예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절대로 나쁜 짓을 못 하도록 복종의 맹세라는 계약을 걸어뒀으니까요…!”

라피아가 한 말에 질이 놀라 되물어봤지만, 탈리안은 계약을 걸어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자신의 집에 범죄자가 들어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하면 그 누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범죄자와 같이 산다,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어요.

“잠, 잠시만요! 생각해보니 억울한데, 애초에 여긴 저희 집이라고요! 왜 제가 이런 혼나는 듯한…!”

“…언니.”

“혼나는 듯한…! 그런… 미안, 해요.”

정말이지, 질에게만 약한 모습을 보일 때면 이게 평소에 알고 있던 탈리안이 맞는지 의심부터 됩니다.

이런 모습의 탈리안은 라피아에게도 시멜리에게도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크롬웰과 거래를 했으니 최대한 맞춰주는 수밖에는….”

“거래…. 거래까지는 듣지 않을게요. 언니도 언니만의 사정이 있을 거고,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복잡하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 팔에 번데기처럼 붙어있는 그 범죄자와 같이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떨어지라고 해도, 힘으로 떼어놓아도 계속 달라붙어서 어쩔 수가…. 질?”

불가항력이라는 말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천천히 탈리안의 근처로 걸어왔어요.

자신을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않던 질은 강제적으로 시멜리를 떼어놓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아버렸죠.

그리고는 시멜리가 하던 것처럼 이번엔 질이 탈리안의 팔을 자신의 품속에 끌고 와 안아버렸어요.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이 꼬맹이가!”

“시끄러워요! 굴러들어온 범죄자 주제에…!!”

“…질? 이게 무슨….”

“마녀라 불리는 주제에 눈치는 더럽게 없네.”

실로 그러했어요.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과도 같은 사람에게 생전 처음 보는 범죄자가 달라붙어 기분 좋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질이 질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렇지만 탈리안 본인은 질이 이렇게 강한 태도로 나온 적이 없기에 아무것도 못 하고 상황을 살피기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러는 게 오히려 질의 질투심을 더 부추기는 꼴이 될 것 같네요.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리고 중요한 할 말은 아직 남아있잖아?”

“맞아요, 현자 크롬웰… 당신의 양아버지께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수석과 차석이 소감을 말하는 것은 없던 일로 한다고 했어요. 이례적으로 그 과정에서 미궁의 가호를 부여하는 행사도 물 건너갔다고 했고….”

“역시 그렇구나, 뭐 어차피 나는 강하니까 가호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지르니트에게 필요할 텐데. 너한테 붙어있는 거 보면 그다지 관심도 없어 보이네.”

스스로 강하다고 주장하는 건 쪽팔리지 않을까요?

물론 단신으로 둥지를 박살 내고, 입학생들을 구해냈으며, 증표까지 가는 데에 지름길을 사용해 시간을 줄인 것.

실력을 증명할만한 증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조금 부족하기에 무작정 ‘강하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탈리안이나 질이 라피아의 능력이나 싸움방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건 둘째 치더라도 질은…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어 보이네요.

당장은 시멜리와 신경전을 펼치느라, 탈리안의 팔을 안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 보여요.

“그, 그렇네요. 몸도 자랐으면서 오늘따라 질이 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건지….”

“너는 귀가 없고, 눈이 없어? 진짜 어떻게 되먹은 눈치야?”

“조금 거슬리는 말이네요. 그런데 왜 당신은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아있는 거예요?”

“흥, 곤란하니까 집주인 행세를 하겠다 이거지? 지르니트가 혼자 잠드는 건 싫다고 부탁해서 같이 자 준 거야. 네가 말 안 해도 곧 가려고 했어.”

말을 마치고는 성급히 일어서서 문 앞에 선 라피아에요.

뭔가 잊어버린 걸까요?

“…야, 문 열어줘.”

“…풉,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마법학원의 동쪽 기숙사.”

하긴 라피아는 문을 건널 능력도 없을뿐더러, 열쇠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탈리안이 꼴좋다는 듯이 비웃은 걸 보고 한마디 하려다가도 참는 걸 보니 판단력 하난 좋네요.

질이 열어줄 수도 있지만, 탈리안에게 미움을 사서 좋을 일은 없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질, 잠깐 팔 좀 놔주세요.”

“앗, 알겠어요….”

질은 한참을 시멜리와 기 싸움을 하던 중 탈리안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손을 놓고 정자세로 앉았어요.

자신이 하고 있던 행동의 의미를 모르고 감성에 몸을 맡겼다가, 이성을 건드려지자 정신을 차린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죠.

그러니까… 시멜리와 탈리안을 두고 싸우던 그 모습은 질의 숨겨진 욕망과도 같은 것이겠네요.

가족이니까 다른 사람이 붙어있는 꼴은 절대로 보지 못하겠다는, 그럴 바엔 감성에 의지하고서라도 옆자리를 지켜내겠다는 욕망이요.

“지르니트, 난 이만 가볼 테니까. 범죄자와 같이 지내는 건 유감이지만 탈리안이 나보다 강한 건 사실이니 알아서 해주겠지. 나중에 보자.”

“그, 네! 안녕히 가세요!”

신기한 건 그거네요.

시멜리가 몇 번이고 자신을 범죄자라 칭하는걸 들었을 텐데 한 번도 발끈하지 않았다는 점.

50명 이상을 죽인 살인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인내심이에요.

“구경꾼 한 명도 사라졌겠다, 선생님과 드디어 단둘이서… 우훗, 후후후!”

“저도 있거든요?! 아까부터 선생님, 선생님 노래만 부르고! 도대체 언니랑 무슨 관계인 거에요?!”

대충 상황이 다시 이렇게 될 것은 뻔할 뻔 자였어요.

육체적인 성장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이뤄냈지만, 성장한 육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인 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멜리의 같잖은 도발에 질은 또다시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선생님이랑 나? 히힛!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까지 밀착해선… 내 안쪽을 뒤죽박죽 헤집어놓으신 분이 선생님이시지…. 그때는 정말 황홀했다고! 아하핫!”

“네, 네에?! 언니!! 이게 진짜예요?!”

“아, 하아아…. 그,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저를 부르는 건가요? 질….”

“그, 그렇고 그런 짓을… 어떻게!!”

“그런 거 아니에요! 그저 시멜리…! 아니, 저 하프가 삼킨 마암석의 힘을 흡수한 것뿐이라고요!”

“시멜리?! 저 범죄자를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침착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중요한 내용을 코앞에서 들어놓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결과만이 나오게 되어버리죠.

“아아~ 선생님도 참, 왜 부끄러워하실까? 저번처럼 격렬하게 덮쳐오셔도 되는데… 헤헤헤.”

“언니!!”

“아, 아아! 몰라, 좋을 대로 알아들으세요! 저는 진짜 질이 생각하는 것들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선생님~ 버리고 가지 마세요!”

“따라오지 마세요!!”

그렇다면 남은 결과는 당연히 탈리안의 분노만이 있을 뿐.

시멜리는 완전히 자기만의 페이스대로 탈리안이 화를 내든 말든, 질이 질투를 하든 말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따라가지만….

최근에는 상냥하고 잘 대해주던 탈리안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것에 어색해진 질은….

“…언니.”

일어서서 탈리안을 붙잡지도 못하고, 앉아서 고개만 숙일 뿐이었어요.

그제서야 자신이 감성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어요.

자신에게 짜증을 내던 탈리안을 본 것은 처음 만났을 때,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말고는 없었어요.

그런 탈리안이 이번에는 질의 실수를 보고서 짜증을 내고 큰소리를 냈죠.

꽤 큰 충격이었을 거에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탈리안이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 큰소리를 냈다는 것에만 중점을 뒀는지… 그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직 어리니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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