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36화 (36/189)

〈 36화 〉 살벌한 입학생 (2)

* * *

“여긴… 발데르 선생님? 전이 장소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이럴 리가, 이상하네요…. 분명 제대로 좌표를 지정하고 썼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좌표로 전이되어 영문도 모르는 채로 두리번거리는 둘을 보고도 탈리안은 별 감흥이 없었어요.

은밀하게, 보이지 않게, 소리도 내지 않고 발데르의 각인에 마나의 실을 연결해 식에 영향을 주는 일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요?

이런 탈리안의 기행을 알아채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고, 당황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마법의 극에 달했다고도 전해지는 현자 크롬웰이라면 이에 반응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뭔가 방해가 있는 것 같네요, 미궁 전체에.”

그렇다면 이렇게 뻔뻔한 거짓말을 면전에서 대놓고 하더라도 눈치챌 사람이 없다는 거죠.

타인의 각인에 접근해 마법식을 수정해놓고 보란 듯이… 양심에 털이 수북하겠네요.

“하필이면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건가….”

하지만 이런 거짓말이, 이들에게는 먹혀듭니다.

미궁은 아직까지 해명된 게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까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야만 하는 곳이 미궁이라는 곳이에요.

“그리고… 근처에 쥐새끼도 숨어있고요.”

“쥐새끼요? 으… 쥐는 싫은데!”

“그, 그 쥐새끼가 아니에요…. 리니아 가문의 장녀를 말하는 겁니다.”

탈리안의 친절한 설명에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한 크리스티나와는 별개로 발데르는 바로 자신의 몸만 한 대검을 뽑아 들었어요.

이에 크리스티나도 급히 등에 차고 있던 랜스 두 자루를 손에 들었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건지 입학생들과는 달리 전투에 임할 때의 자세도 바로 잡히네요.

“두 분은 육체파인가요? 그럼 전위는 맡기도록 할게요. 상대는 어리다고는 해도 4시간이라는 단시간에 최소 50명의 입학생을 죽인 녀석이니 조심하세요.”

“알고는 있었지만, 말로 들어보니까 많이도 죽였네요.”

“최소 50명이라는 소리는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충분히 주의해주세요.”

말이야 가볍고 밝게 하는 크리스티나지만 그 자세에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어요.

굳이 탈리안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분위기를 잡는다는 것도 중요하긴 하니까요.

“야아, 빈틈이 없네요? 저는 시멜리 리니아라고 불러주세요, 선생님들… 흐흐, 이히힛!”

모습도 보이지 않고, 발소리도 나지 않아, 모두가 기습을 해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당황했다는 게 말로만 그럴 뿐, ‘이것 봐라? 왜 이렇게 당당하지’라는 수준이었죠.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골목길의 코너에서부터 점점 모습을 드러내, 마치 광학미채가 벗겨지듯이 나타나는 시멜리였어요.

“학생, 배짱 좋은데?”

“칭찬인가요? 어차피 신나게 두들겨 패고 끝에는 죽일 거면서… 으힛, 으히히히!!”

“말은 정상인처럼 하면서 웃는 소리만 들어보면 단단히 정신 나간 년이네요.”

“으응? 키가 그렇게 작은데 선생님인 거예요? 귀여워라… 쿠흣! 우후흐흐….”

“푸흡…! 아, 죄, 죄송해요, 탈리안 선생님!”

발데르가 시작한 신경전을 깨는 크리스티나의 웃음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렸어요.

당연히 탈리안의 기분이 좋을 리도 없고 대강당도 아니기에 마음껏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어요.

들러리가 두 명이나 더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죠.

“…당신, 상당히 건방지네요.”

“뭐야? 뭐야 선생님! 이 익숙한 마나의 냄새…. 선생님 설마… 으큿!?”

“다물어요. 그 이상 떠들면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분명 전위를 발데르와 크리스티나에게 맡기겠다고 해놓고서 제일 먼저 튀어 나갔네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시멜리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박고 처박아버렸죠.

탈리안이 이런 탈 인간적인 힘을 낼 때마다 당하는 쪽이 안쓰러워질 정도예요.

과장 좀 보태서 죽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요.

“하아아, 끝내주네요… 선생님? 이히히킥! 크우우…. 이게 마기… 우븝!?”

“이빨을 다 부러뜨려줄까요? 인간도, 짐승도, 아인도 아닌 잡종 주제에 입이 너무 가볍네요.”

“으읍! 읍! 프흡! …!!”

시멜리의 말이 이어지지 않게 손으로 입을 막아 천천히, 점점 세게 조이는 탈리안이에요.

이에 고개를 흔들어 벗어나려다가 안 되니 고통 섞인 소리만 흘리고 있네요.

조금만 더 하다가는 어금니부터 해서 앞니까지 다 부러지게 생겼어요.

뿌득, 뿌드득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거든요.

시멜리는 더 강한 발버둥으로 양손으로 탈리안의 손을 떼어내려 해보기도 했지만, 전혀 무리였어요.

“저, 저기 탈리안 선생님? 조금 과격하신 게 아니실까요…?”

“살인범이에요, 이 정도는 약과 아닌가요?”

돌아보며 대답한 탈리안의 눈에선 빛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탈리안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시멜리는 손을 주머니로 옮겨 뭔가를 쥐고는 강하게 마나를 흘려 넣었습니다.

“이건…!”

직후, 폭발하듯 휘몰아치는 마나에 놀란 탈리안은 시멜리에게서 떨어져 선생님들의 앞까지 물러설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곤 곧바로 마나가 시멜리를 감싸 고치처럼 변하더니 완전히 단단하게 굳어버렸죠.

“저거, 마암석이죠?”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저 검붉은 색깔…. 본 적이 있는데….”

“본 적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거 분명 마암석에 담긴 힘을 흡수하는 거라구요!”

크리스티나의 말대로, 고치를 찢고 나온 시멜리의 몸은 방금 보았던 마나처럼 검붉게 물들었어요.

이는 탁한 피를 한 바가지 뒤집어쓴 괴물로 보이기에 충분했죠.

생김새도 약간 변해 관자놀이 양쪽에서 뿔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아났으며, 발가락은 합쳐져 3개로 줄어들고 검게 물들었어요.

“이렇게 된 이상 생포는 무리 아닙니까?”

“여러분은 그저 이곳에서 본 걸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으면 되는 거예요. 죽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무기까지 꺼내 들게 해서 죄송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제가 다 마무리 지을 테니까요.”

걱정 말라지만 선생님들 두 분 모두가 마암석에 대해 크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마암석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경계심을 가져도 좋은 게 아닐까요.

겁도 없이 시멜리의 앞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걸 보면 탈리안답다, 고는 할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저렇게까지 자신 있어 한다면 시멜리를 무력화시킬 방법이라는 게 궁금해지긴 하네요.

“마암석을 흡수한 제 앞에 오다니, 선생님 배짱 좋은데요? 헤흣! 으후흐….”

“그깟 돌조각을 흡수한 게 얼마나 대단한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거죠. 흡수하기 전에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면서.”

“아아, 아아아! 아프긴 했어요, 몸은 그렇게나… 작은데!”

기습적으로 마나로 이루어진 탄을 손가락 끝에서 발사해낸 시멜리였으나, 탄이 탈리안에게 명중하는 일은 없었어요.

탈리안의 눈 바로 앞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졌거든요.

“뭐야, 뭐야? 무슨 재주를 부린 건데요, 선생님!”

자신의 공격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몇 번이고 같은 공격을 반복했어요.

미궁의 복도가 울려, 공기가 진동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날아가는 마나탄이었지만… 역시나 하나같이 가루가 될 뿐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인지 입을 떼지 못하고, 심지어 자세마저 흩뜨렸어요.

악에 받친 건지,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멜리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탈리안에게 마나탄을 날려댔어요.

“왜, 왜 사라지는 건데!! 큿, 프흐흐!”

“이 상황에서도 웃는다니 대단하네요.”

더는 마나탄으로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이번에는 날개를 펼쳐 탈리안에게 스스로 돌격했어요.

하지만 이마저도, 탈리안이 시멜리의 목을 움켜잡는 것으로 저지당했죠.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할 속도로 날아오다가 잡혔기 때문인지, 시멜리는 캑캑거리며 숨을 쉬려고 발버둥 치기만 했어요.

그런 시멜리의 귀 옆까지 얼굴을 가까이 댄 탈리아는 아주 작게, 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둘만 알게 될 내용을 속삭였어요.

그러면서 시멜리의 하복부에 손을 가져다 대어선 누가 봐도 수상할 마법식을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핫, 하하하! 케흑…! 아아, 탈리안… 선생님은 가지고 싶을 정도로, 콜록! 매력적이네요…. 내가 찾던, 근, …원.”

시멜리는 말을 다 이어가지도 못하며 산소 부족으로 기절해버렸어요.

그렇다고 탈리안이 마법식을 그려내는 행동은 멈추질 않았고, 목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그대로였어요.

“탈리안 선생님 끝난 거 아닙니까? 이제 목은 놓고 있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이에요. 제일 중요한 게 남아있거든요.”

마법식을 다 그려낸 뒤엔 마지막으로 손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그대로 시멜리의 명치를 세게 찔러 관통해버렸어요.

이에 놀란 선생님들은 말리려고 했지만, 탈리안이 괜찮다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저지당했죠.

자세히 살펴보니 물리적으로 관통한 것도 아닌 것 같아 선생님들도 다물고 지켜보기로 했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게, 탈리안의 오른팔이 팔꿈치까지 시멜리의 몸 안으로 들어갔는데 반대편으로 나오기는커녕 손톱 끝부분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찾았다.”

탈리안은 꽂아 넣은 팔을 휘적거리더니 이내 뭔가 붙잡은 것 같았어요.

다음으로 한 일은 뻔하게도 붙잡은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었죠.

시멜리의 몸 밖으로 손이 빠져나오면서 변형되었던 신체 일부는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위로 높게 치솟았던 뿔은 점점 작아져, 검게 물든 발은 원래의 피부색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뿔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발가락의 개수가 늘어나는 일은 없었어요.

어떤 동물의 것에서 시작한 것인지 모를 날개도 그대로였고요.

그럼에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을 짓누르는 듯한 어둡고 탁한 마나는 전부 사라져버려, 탈리안의 손 위에 들려져 있었어요.

그리고 탈리안은 그 마나를 자신의 각인으로 흡수해버렸습니다.

“…끝났어요, 이 되다만 하프는 제가 데려갈 테니 먼저 돌아가셔도 돼요.”

“선생님, 정말 괜찮….”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탈리안 선생님.”

굳이 다친 곳은 없는데도 탈리안을 걱정하는 크리스티나의 말이었지만, 발데르에 의해 그 말은 완성되지 못했어요.

탈리안이 굳이 돌아보지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일이 있었다 싶었겠죠.

그러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에서 발데르가 뭔가 눈치를 챈 듯 바로 마정석을 사용해 미궁에서 빠져나갔어요.

미궁을 빠져나온 크리스티나는 발데르에게 따지기 시작했어요.

탈리안이 스스로 괜찮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마암석의 마나를 흡수한 입학생과 같이 두는 게 맞냐면서 말이에요.

“크리스티나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탈리안 선생…. 탈리안이라 불리는 그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존재에요.”

“발데르 씨, 사람에게 ‘그건’이라니…!”

“근 몇 개월간!! 마암석이 유통되기 시작한 뒤, 그 힘을 흡수하고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을 본 적 있으십니까? 이사장님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존재를 선생으로 뒀는지 저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크롬웰은 탈리안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봅니다.

발데르의 반응을 본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당장에 탈리안의 정체가 이 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숨기는게 올바릅니다.

“그래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저는 저 정체모를 존재가 잠깐이라도 흑심을 가진다면 바로 그 앞을 막아설겁니다.”

“아무리 마암석이 위험하다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같지는 않았는데….”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저건 재앙과 같이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에요. 마군주 하나를 패주 시킨 제가 장담하죠. 혹은 마군주 그 자체일수도 있으니 크리스티나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며 자리를 떠나는 발데르를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하지 못한 크리스티나였어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쉽게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요.

다만, 크리스티나는 그런 발데르의 말을 듣고서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발데르가 떠나간 자리만 바라봤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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