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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34화 (34/189)

〈 34화 〉 급성장 (5)

* * *

연약한 몬스터의 모체는 라피아의 멋진 활약에 쓰러졌어요.

흑기사도 라피아가 모체를 쓰러트리는 동안 입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몰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하느라 바빴죠.

연약하다고는 해도 수적으로 엄청나게 불리했으니까요.

마나를 모을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달려든다면 일일이 공격해서 쓰러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라피아와 흑기사가 싸우면 싸울수록 질은 지쳐가기만 했어요.

흑기사가 입학생들을 열심히 지키면 그만큼 소환의 유지에 들어가는 마나량의 소비가 극심해졌거든요.

일방적으로 흑기사가 마나를 빨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질이 흑기사에게 건네주는 마나량을 조절하면 입학생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함부로 건들 수도 없는 일이었죠.

둥지에 있는 몬스터의 수만 해도 족히 3~400은 넘는데 모체에서 쉼 없이 5마리에서 10마리가 일정 간격을 두고 태어났거든요.

전투가 끝난 뒤의 질은 마나가 거의 다 빨려 흑기사의 소환을 유지만 하는데도 허덕이고 있는 상태였어요.

대충 둥지를 정리한 라피아가 질의 곁에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그럴 리가 없죠.

“괜찮아요... 저, 다른 사람보다.. 마나가 수십 배는 많다고 했으니까...”

마나는 신체에 반드시 필요한 물과 같은 것으로,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물이 부족하면 탈수 증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마나가 부족하면 비슷한 증상이 찾아옵니다.

한동안 몸이 자기 멋대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와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몸의 기능 대부분이 느려지고 피로감을 느끼게 되죠.

그게 소환마법을 쓰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소환의 유지에 마나가 소비될 테니 더 심할 테고요.

그렇지만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진 질이 잠깐뿐인 격한 전투로 거의 모든 양을 소비했다는 게 믿겨지나요?

그만큼 흑기사가 실력 좋은 소환수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괜찮기는…. 천천히 호흡하고, 마나를 의식한 채로 끌어오는 양을 조절해. 마나가 적당히 모였다 싶으면 마나를 끌어오는 건 멈추고.”

“네...”

“흑기사 데려와서 자리를 지키라고 할 테니까 쉬고 있어, 난 저 녀석들과 말 좀 나누다 올 테니까.”

“네에...”

생각하고 대답할 기력도 없는지, 질은 말끝을 흐리며 벽에 기대앉았어요.

질은 라피아의 말대로 천천히 숨을 내쉬며 휴식하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어요.

고개를 푹 숙여 무릎에 얼굴을 파묻다가도 누군가의 인기척이 나서 다시 고개를 들어보면 흑기사가 옆에 와있었죠.

비록 말도 못 하고 질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거리감은 이전에 비해서 확실하게 줄어들어 있었어요.

“..고마워요, 저 대신이라도 언니랑 같이 싸워줘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감사 인사를 전한 질의 머리에, 흑기사의 손이 ‘툭!’하고 올라갔어요.

의미 모를 일에 질이 뭐하냐며 물어봐도 흑기사는 묵묵히 손으로 질의 머리를 토닥거리다가 다시 손을 거뒀죠.

“..이름, 지금 지어줄까요?”

“…! … …!”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말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화를 내는 흑기사였어요.

분명히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질은 이해가 가지 않았죠.

“이름을 받는 게 싫은 거예요? 같이 싸워준 건 이름을 지어준다고 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요?”

이에 흑기사는 더 날뛰며 질에게 화를 내다가도 주변의 돌을 주워 벽에 스크래치를 내며 뭔가 적기 시작했어요.

“...?”

문제는, 흑기사가 벽에 적는 언어는 질이 처음 보는 언어라 벽에 적는다고 해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이해하지 못한 질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흑기사는 돌을 그대로 지면에 떨어트리고는 말없이 경계만 설 뿐이었어요.

삐졌다기보다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이해시키려는 것을 반쯤 포기한 것 같아요.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름은 나중에 꼭 지어드릴게요. 멋진 걸 생각해뒀거든요!”

“소꿉놀이는 끝났으려나, 지르니트.”

“아, 언..니? 지금 보니까 키가 꽤 커지셨네요...”

질은 다시 돌아온 라피아를 보고 적응이 안 되는지, 몸 구석구석을 핥아보는 중이에요.

능력 덕분인지 라피아가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신기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건 실례가 아닐까요.

“아… 아직 남의 시선에는 안 익숙해서, 그렇게 보면 조금 부끄러운데.”

“네? 그렇지만.. 엄청 아름다워지셨는데요?”

“칭찬 고마워…. 으으…! 어쨌든! 쟤네가 전리품을 나눠주겠다는데, 가볼래? 너만 괜찮다면 자기들도 우리랑 함께하고 싶다는데.”

어딘가 2% 부족한 칭찬을 듣고 얼굴을 붉힌 라피아는 몸을 돌려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질을 뒤로하고 먼저 둥지로 가버렸죠.

짧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지친 질에게 손 정도는 내밀어 줄 것으로 알았는데요.

의외인 건 라피아가 해야 했을 행동을 흑기사가 했다는 것이었어요.

“고, 고마워요...”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뀐 흑기사의 태도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만 했어요.

다행이라면 둥지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겠죠.

곧 입학생들의 앞에 선 질은 라피아의 뒤로 조금이나마 몸을 숨겼어요.

위기 상황에 도와준 사람이면서 왜 굳이 라피아의 뒤로 가서 숨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4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그런 걸까요.

“실화냐…. 이런 꼬마한테 구해졌다니….”

“구해준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니,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동료 한명이랑 소환수 하나로 우리가 고전하던 상황을….”

“냅둬, 신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우리라고 몬스터가 그렇게 많을 줄 알았겠냐? 오히려 소환수 하나가 우리를 보호하면서 싸운 게 대단한 거지.”

“생긴 거에 비하면 비정상적으로 잘 싸우던 소환수긴 했어, 주인이 궁금했는데….”

라피아에 대해서는 이미 실컷 떠들었었는지 질에게로만 향하는 입학생들의 관심이에요.

왜 숨었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죄송해요, 너무 저희만 떠들었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괘, 괜찮아요...”

입학생 중 한 명이 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자마자 나머지 3명 역시 그를 따라 해 허리를 숙였어요.

당연히 질은 이만큼의 감사 인사를 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쑥스러운 듯하여 말끝을 흐려버렸죠.

“이럴 땐 그냥 그러시구나 하고 받는 거야.”

“그런 거예요..?”

“물론이죠. 그리고 이건 저 모체에서 뽑아낸 마나의 결정체인데, 필요하시다면 받아주세요. 소환수가 좋아하는 걸로 알아요.”

“앗, 네.. 고맙습니..?! 그걸 왜 뺏어가는 거예요! 어차피 줄 거긴 했지만..!”

흑기사는 질이 받기도 전에 마나의 결정체를 입학생의 손에서 채갔어요.

그리고는 투구의 입 부분만 따로 분리해 떼 입속으로 재빨리 삼킨 뒤 다시 투구를 조립했죠.

입속에서 까드득,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아무리 그래도 돌과 다를 것 없는 게 마나의 결정체인데, 저렇게 씹고 있는 것을 보니 소환수는 소환수라는 것 같네요.

저게 올바른 섭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저희랑 같이 가실 거예요?”

“구해주셨으니까 실력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부탁하는 거예요. 어떻게든 입학하고 싶으니까.”

“저는 라피아 언니만 괜찮다면… 괜찮은 거죠?”

“나야, 뭐…. 이 녀석들이 나쁜 마음만 안 먹는다면 상관없어. 솔직히 빨리 증표나 찾고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 저거, 원래 저렇게 컸던가?”

라피아는 몬스터의 모체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처음에 봤을 때보다는 확연히 커진 모체는 작은 몬스터들이 그러는 것처럼, 곧 한계까지 부풀다 터질 것 같았죠.

작은 몬스터들이 터지면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모체 역시 같은 현상을 보일 겁니다.

하지만 라피아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어요.

그야 이 넓고 높은 방에서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크기가 커졌다면, 이미 상황은 늦었다는 뜻이거든요.

작은 몬스터야 터지면 팡! 하고 식물이었던 것들이 여기저기 튀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모체는 달랐어요.

당장에 집 한 채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부푼 몬스터 안의 가스가 터지며 뿜어져 나온다면, 모체의 살점이 날아오는 속도는 장난이 아닐 거에요.

게다가 그 안의 가스가 아직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도 모르니까요.

입학생들도 그렇고, 라피아도 그렇고… 모체를 쓰러트렸다고 너무 안일하게 있었네요.

“젠장, 젠장! 지르니트 이리 와!!”

“언니?!”

질을 있는 힘껏 끌어당겨 자신의 품 안으로 데려온 직후, 라피아의 등 뒤에서는 모체가 폭발했어요.

폭발로 인한 엄청난 굉음, 철퍼덕거리며 살점이 이곳저곳 부딪히는 소리, 질이 안겨있는 라피아에게도 커다란 살점이 하나 날아와 부딪혔어요.

이게 정말 식물형 몬스터의 살점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큰 충격이 전달되었죠.

이는 질에게도 전부 느껴질 정도였어요.

“어, 언니!? 괜찮아요..?”

“크읏!!”

다행히도 머리가 아닌 등에 부딪혔는지 몇 번 기침을 하고 마는 라피아이지만 뒤이어 살점 다음으로 가스가 뿜어져 나왔어요.

“숨, 참아…! 당장 이 둥지를 나갈 거니까! 너희도 얼른…!”

다급한 명령에 흡! 하며 숨을 참고 손까지 코와 입으로 가져가는 질이에요.

흑기사는 따로 숨을 참을 필요가 없는지 라피아의 뒤를 따라 달려오기만 할 뿐, 남은 건 입학생들인데….

뭐, 알아서 살아 돌아오겠죠.

둥지의 밖에 나온 라피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고 있던 질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어요.

“…뭐야 이건?”

“왜 그래요, 언니?”

“아니, 너…. 지르니트 맞아?”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긴 것도 그렇고, 말하는 걸 보면 지르니트 맞는데. …내가 달리다가 질을 놓쳤을 리는 없고. 아아아, 뒷수습이 불가능하네 이건….”

라피아는 질을 내려놓고는 입학생들의 상태도 확인했어요.

“왠지 시선의 높이가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느낌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질을 뒤로한 채로요.

라피아가 확인한 바로는 자신에게만은 큰 변화가 없다는 거였어요.

자신에게만이요.

입학생 중 하나는 처음 봤을 때보다 털의 윤기가 줄어들어 색이 빠져있었어요.

또 한 명은 피부가 거칠어져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듯한 몰골이었죠.

나머지 둘은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겠네요.

다행이 아니라면, 질에게 생긴 문제겠죠.

질은….

“언니!! 왜 흑기사가 작아진 거예요?!”

“바보야…. 네가 커진 거야….”

“...네? 네에에?!”

질은 한차례 크게 놀란 뒤에야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에 바빴어요.

완전히 어른이 된 건 아니지만, 묘령의 미소녀가 되었다고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죠.

탈리안보다 더 큰 키에, 안 그래도 발육이 좋던 몸은 그대로 굴곡이 져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그런 몸이 되었어요.

아무래도, 모체가 내뿜은 가스에 닿은 대상은 육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가스가 뿜어져 나오자마자 둥지에서 빠져나온 결과가 이렇다면, 그 둥지에 오래 머물렀다가는 순식간에 노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혹은 그대로 노쇠 해버려 모체의 흩어진 살점과 같이 그 자리에서 썩어 문드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이건…. 후, 골 아프네. 그 녀석한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탈리안 언니에게는 제가 설명할게요..! 라피아 언니한테 잘못을 따지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그것참 믿음직한 말이네, 지르니트랑 너희들! 문제없으면 빨리 증표나 찾고 돌아가자! 지름길을 알거든.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느긋하게 산책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지….”

이에 질과 입학생들은 라피아의 뒤를 따랐어요.

증표를 찾는 거야 인원수도 많아졌으니 적을 만나도 괜찮을 거라지만, 갑자기 성장해버린 질을 탈리안에게 보여줬을 때가 두려워지네요.

이 뒤로는 딱히 큰일이라곤 없었어요.

인원수가 충분한 만큼 경쟁자나 몬스터를 만나도 최대한 싸움을 피해 체력 소모를 줄였고, 지름길을 통해 이동했으니 만난 횟수도 적었을 테니까요.

라피아와 질이 증표를 얻을 때 마도구에 표시된 숫자는 10, 15였고, 입학생들이 받은 숫자는 6101에서 6104였죠.

선착순이라고 했던 크롬웰의 말을 생각하면 이 숫자가 단순히 빠르게 도착한 순서를 뜻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증표를 갖게 되자마자 대강당으로 전이 되어버려서 숫자에 대해 떠들 시간조차 없었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건 증표를 얻었다는 사실이었어요.

5,000명 안에 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그 궁금증을 없애주었으니까요.

대강당에는 적지 않은 입학생들이 모여있었어요.

전이된 장소도 제각각이라 입학생들과는 떨어졌지만, 라피아와 질은 가까운 자리에 있어 금방 만날 수 있었죠.

“고생했어, 남은 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해해주겠지? 분명….”

“라피아 언니한테 화를 낸다면 제가 막아설 테니까요!”

“그래, 부디 그래 주길 바랄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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