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급성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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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연달아 입학생들을 만나게 된 일의 뒤에는 특별히 시끄러울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나 부딪히는 소리, 기계적인 소리 등 여러 소음이 들려왔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죠.
다른 입학생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소리인 것이 분명하니까요.
조금 듣기 안 좋게 말하자면, 라피아 역시 질이라는 짐 덩어리를 곁에 두고 싸우는 건 조금 힘들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라피아는 일부러 조금 둘러가게 되더라도 소리가 나는 장소를 피하는 루트만 골라 가고 있는 거예요.
질이 아직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은 모르기에 이런 선택을 했을 거예요.
그렇다고 질에게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물어본 뒤, 전투에 참여시키기에는 탈리안의 말이 마음에 걸렸을 겁니다.
‘질을 부탁해요.’라는 한마디.
‘펜던트가 부서져 공격당해도 알 수 없게 되었다’라는 말.
탈리안에게서 특이한 무언가를 느낀 라피아로서는 이 부탁을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방심했다고는 하나 자신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버린 징크스를 접근조차 못 하게 한 탈리안의 실력도 보았으니 말 다 했죠.
물론 교사로서, 마녀로서 탈리안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징크스를 대할 때의 그 화난 모습… 만약 질이 무사하지 못하다면 자신에게 그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있을 거예요.
“몬스터라면… 괜찮을 거 같은데….”
“네?”
“너 마법 쓸 줄 알지? 몬스터라면 상대할 수 있지 않아?”
“아.. 네, 언니가 조금만이라도 도와준다면..”
희망적인 대답이 나온 것에 만족했는지, 라피아는 걸음을 멈춰서서 또다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냈어요.
그리곤 흐르는 피를 모아 검을 하나 만들어 냈는데, 도신의 날이 종이보다도 더 얇았어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던 질을 발견한 라피아는 상처를 쓱 훑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면을 바라봤죠.
“..안 아파요?”
“아프지, 그래도 이런 능력이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힘이랑 맷집만 좋은 박쥐일 뿐이니까.”
“대단하네요, 언니는..”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니 이번은 도와줄게. 운 좋게 앞에 멍청한 몬스터가 있으니 뭐라도 해봐. 위험하다 싶으면 지켜줄 테니까.”
라피아가 질을 위해 도와주려는 건 좋아요, 몬스터에게서 지켜준다는 것도 좋구요.
하지만 라피아가 말 중 설명이 틀린 말이 질을 불편하게 했죠.
‘멍청한’ 몬스터, 전혀 멍청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도라지처럼 생긴 몬스터, 머리에는 줄기가 달린 이파리 세 가닥이 나 있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이 몬스터, 분명 식물계 몬스터 같아 보이는데 머리에 굵은 핏줄이 튀어나와 딱 보기에도 두뇌 좀 쓸 것 같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옵니다.
식물계 몬스터인 건 분명한데, 팔과 다리도 나 있고요.
크기는 조금 작지만, 굉장히… 사람과 닮아있어요.
종합적으로 질의 미움을 받기엔 충분해 보이는 몬스터에요.
“저 몬스터의 관심은 내가 끌어줄 테니까,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공격을 하든지, 열심히 싸우는 나를 위해 방어에 특화된 마법을 써보든지 알아서 해줘. 너 하는 거에 맞춰줄게.”
“앗, 언니 잠..! 아..”
질의 부름을 듣지 못한 건지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가 몬스터를 발로 걷어차 버렸어요.
그런데, 몬스터가 나가떨어지고 난 뒤로… 일어나질 않습니다.
기껏 피까지 뽑아 검까지 만들었는데 돌발적인 상황에 라피아는 심히 당황했어요.
‘어? 응…?’같은 소리만 내며 몬스터를 관찰하기만 했죠.
쓰러져서 색색거리며 가쁜 숨을 쉬는 몬스터는 당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곤란해하는 라피아의 옆에 질이 천천히 걸어올 때까지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죠.
이 세상에 다양한 몬스터가 있겠지만, 외형에 비해 너무 약한 경우도 있는가 봅니다.
“..언니.”
“어, 어? 어….”
“이런 연약한 아이를 상대로 마법을 쓰는 건 조금 불쌍한 거 같아요..”
“어어? 으음, 음…. 나도 때려놓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녀석은 처음이네….”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검으로 툭툭 건드려보는 라피아지만, 이름 모를 불쌍한 몬스터는 건드려질 때마다 이상한 신음만 낼 뿐이었어요.
아무리 몬스터에 생긴 것도 괴상망측하다지만,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질로서는 동정심이 들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몬스터에게로 향하는 질의 손길을 라피아가 간신히 막긴 했으니 다행이지만요.
“질,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맨손으로 만지는 건 미친 짓이야.”
“앗, 아.. 네..”
“뭐라 하는 건 아니야, 지성이 없는 몬스터는 결국 몬스터일 뿐이니까.”
라피아의 말을 듣고도 질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마법을 시험 삼아 써볼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떤 마법이든 안 써볼 거야?”
“쓰, 쓸거에요! 쓸건데... 휴우..”
쓸데없이 한숨을 내뱉는 질이에요, 그렇게 마법을 쓰는데 꺼려지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요?
탈리안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질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데에 있어서 망설임이 있다는 것일 텐데요.
도대체 어떤 마법을 배웠길래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아, 몰라 진짜! 얍!”
홧김에 손을 뻗으면서 앙증맞은 기합 소리를 내는 질이었어요.
이어서 손등에 새겨진 마나의 각인이 빛나며 허공에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했죠.
질이 그려내는 마법진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완만한 곡선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마법진 중 하나였어요.
완전히 동그란 마법진이 완성된 뒤에는 정 중앙에서부터 자그마한 팔이 튀어나왔어요.
“깜짝이야… 뭐야?! 팔? 갑옷? 뭔데?”
“소, 소환하는 거예요.. 탈리안 언니가 계약을 도와준 소환수가 있어서..”
“평범한 정령…은 아닌 거 같네, 분위기부터가 남달라서 그런가.”
“저, 저도 이런 칙칙한 소환수는 싫, 앗..!”
어느샌가 마법진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질의 소환수.
새까만 바탕에 보라색의 테두리로 장식이 된 갑옷을 둘러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한 손에는 검과, 한 손에는 방패를 든 흑기사.
“…엄청난 기세로 널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은데, 지르니트.”
“으으.. 미, 미안하다구요!!”
흑기사의 따가운 시선에 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과를 했어요.
“그런데 조금 작은 거 아니야…? 키가, 1M도 안 되는 것 같은…. 아팟?! 갑자기 난 왜 때리는데?!”
멋지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소환한 흑기사에 결점이 단 한 가지가 있었다면, 키가 크고 듬직한 흑기사가 아니라 질보다 작은 키를 가진 꼬꼬마 기사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 봐야 손바닥 한 뼘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요.
이런 흑기사가 질을 노려보는 것은 소환되어 나오자마자 자신을 칙칙하다고 했기 때문, 라피아를 때린 것은 키가 작다고 놀렸기 때문이겠죠.
키는 작으면서 자존심은 누구 못지않게 강하고 크네요.
“…그래서? 왜 이 녀석을 소환하기 싫어했던 건데?”
“그건.. 제 힘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명령만 내려서 이 소환수에게 제가 할 일을 떠넘기는 듯한 기분이라서..”
“탈리안은 네가 망설인다고 하던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구나?”
질이 말하는 것은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겁이 많은 거야 둘째 치더라도,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할 거에요.
그런데 소환 마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탈리안도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는 거겠죠.
계약도 도와줄 정도였다면 소환수의 질적인 면을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이구요.
어차피 나중에 시간이 흐른다면 질이 알아서 새로운 마법들을 익히게 될 것을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당장에 도움이 될만한 마법으로는 정령과의 계약이 최선이다…라고 말이죠.
차분히 생각해보면 정령을 앞에 세워 질을 지키게 하는 것이 백번 옳은 선택이기는 합니다.
아무리 마법을 잘 쓰더라도 방어적인 측면에서 부족하다면 한 번의 실수로 큰일이 나기도 하니까요.
“어쩔 수 없는걸요, 온전히 제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제가 배운 건 정령을 소환하는 마법이었으니까요...”
“다시 한번 제대로 생각해봐, 이 꼬마 기… 아프다고! 발로 차는 거 그만해!”
“그러면 안 돼요! 왜 자꾸 언니를 때리는 거예요!”
질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마다 라피아를 발로 차는 흑기사를 혼냈어요.
한 손을 허리에 대고, 한 손은 검지를 세워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모습으로 말이죠.
키 차이가 크게 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작은… 동생을 혼내는 듯한 장면이네요.
정작 질이 하는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면, 흑기사가 질을 소환사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하는 행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뭐 질이 아직 미숙한 거야 사실이고, 이 모습이라면 몇 번이고 소환을 했음에도 결과는 항상 지금과 같았다고 예상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그래서… 흑기사를 혼내는 것도 좋고떠드는 것도 좋은데 말이에요.
몬스터를 공격하는 것은 언제일까요?
지금은 기운을 차렸는지 살금살금 일어나서 도망갈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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