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급성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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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금 보니 인간 친구였군! 이리 어린 친구를 괴롭히려니 약간 죄책감이 들지만 5천 명의 탈락자에 들기는 싫거든, 원망해도 좋다고.”
바로 한 걸음 앞까지 다가온 징크스는 질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손을 뻗어 질을 꽉 쥐었어요.
마치 장난감을 쥐듯이 감싸 쥐었지만, 그 손에 들어가는 힘은 절대로 장난감을 잡는 힘은 아니었죠.
처음에는 솜털을 잡는 것처럼 약했지만, 점점 강해지는 힘에 고통에 찬 앓는 소리를 흘리기만 했어요.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 탈리안이 건네준 펜던트도 ‘콰직!’하는 소리를 내며 맥없이 부스러져버렸어요.
완전히 파편이 되어 펜던트 줄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죠.
그 와중에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누군가 구해주길 바라며 그 대상으로 라피아와 탈리안을 불러보았지만, 한 명은 그로기 상태에 한 명은 방관 중이니 올 리가 없겠죠.
힘껏 버티던 질은 얼마 안 가 징크스의 압도적인 힘에 기절해버렸어요.
“그만, 해…!”
“오? 뭐야, 친구 회복력이 대단한데?”
그런데 벽에 처박혀있어야 할 라피아는 어느샌가 지면에 두 발로 서 있었어요.
그 주먹 한 방에 온몸의 뼈에 금이 가고 부러졌다고 해도 믿었을 텐데 말이에요.
“질부터 내려놔…!”
“하핫, 내가 악당이라도 된 기분인데! 모든 입학생이 다 이러고 있을 텐데.”
“내려놓으라고…!”
절뚝거리며 질을 내려놓으라 말하는 라피아의 꼴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점점 라피아의 자세가 바르게 고쳐지고 있었어요.
정작 징크스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요.
“말했잖아, 친구. 이 입학식은 경쟁자들이 널리고 널렸다니까? 너도 알 거 아니냐.”
“하아… 내가, 내가 이렇게 세게… 맞아본 적이 너무 오랜만, 이거든….”
라피아의 회복력은 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속도였어요.
부러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팔은 독립된 자아라도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알아서 자리를 찾아갔죠.
‘뚜두둑, 우둑’하는 그로테스크한 소리에 맞춰 금이 가고 조각났던 뼈가 맞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친구, 비정상적인 회복력이군.”
당연하게도 징크스는 이를 좋지 못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어요.
“하아아… 나를 못 움직이게 할 거였으면 숨통을 끊어놨었어야지, 웬만한 공격은 이렇게 회복해버리니까.”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어쩔 수… 이건 또 뭐야? 가루? 빛? 아니… 윽?!”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징크스의 왼팔, 그러니까 질을 잡고 있는 손에 그 손을 감싸는 흑색의 마나가 생겨있었어요.
질을 다 감싸고도 남아 마나의 구체는 점점 커져 징크스의 상체만 해졌죠.
짧은 신음만 낸 후, 징크스는 바로 구체에서 벗어났지만 있어야 할 왼손이 없었어요.
찢겼다기에는 너무나 깔끔한 절단면을 가지고 있어서, 피가 흘러넘쳐 거의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표정만 찡그릴 뿐이고 가만히 공중에 떠 있는 마나의 구체를 보고 있기만 했어요.
징크스는 자신의 팔을 간단히 잘라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공격에 라피아가 한 건 아닌지 한번 흘깃 쳐다봤어요.
그렇지만 라피아 역시 징크스와 같은 반응을 보여 당황한 채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죠.
“네가 한 것 같지는 않으니, 다른 입학생의 짓이겠군.”
“대단한데? 손을 잃고서 끽소리도 않는 건 아무나 못 할 텐데.”
“아픈 것에는 익숙하니 말이지!”
방금까지 싸웠던 사이인 것 치고는 꽤 친하다는 듯이 대화하는 둘이에요.
당장 앞에 자신들보다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겁도 없네요.
“등장하셨군, 뭐 하는 녀석이지?”
“입 다물어.”
곧 마나가 걷히고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질을 공주님 안기로 안고 있는 탈리안이었어요.
그렇지만 저번에 아비를 만났을 때보다 더욱더 차가운 얼굴이 되어있었죠.
이전에 비할 데 없이 분노에 차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태였어요.
무엇보다 탈리안의 마나가 미궁의 복도를 가득 채워 모든 것을 다 불태울 듯이 이글거리고 있었으니, 이는 마나에 대해 모르는 신인 모험가라고 해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질.”
기절한 질의 상태를 확인해보다가도 정면의 징크스를 노려보고는 라피아에게 눈치를 줬어요.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뻐끔거리던 라피아는 어느샌가 조용해져 몇 걸음 물러나서 등을 돌렸죠.
이는 탈리안이 화난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거란 의지를 표현하는 행동이기도 했어요.
“당신이 크롬웰의 양녀란 걸 알게 되었을 땐 약간 기대했지만, 봐줄 만한 실력은 없는 것 같네요.”
“…아직 모든 힘을 쓴 게 아니니까 멋대로 떠들어. 그리고 네가 비정상인 거야… 질도 알고 있어?”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그때는….”
“미련하기는.”
더는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지 라피아는 탈리안을 탓하며 자리를 피했어요.
징크스와 탈리안만이 이곳에 남게 되었죠.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어요.
“당신, 교사인가? 정신이 나갔군! 학생들의 입학 테스트에 간섭해오는…! 크악!!”
답답했던지 징크스가 힘겹게 입을 뗐지만, 그 행동의 결과는 왼팔 하나가 부풀다가 터지는 것이었어요.
터져버린 왼팔은 뼈조차 남지 않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와 미궁을 적셨어요.
살 조각은 이리저리 튀어 탈리안의 눈앞까지 날아왔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바닥에 떨어졌죠.
“누가 마음대로 입을 열라고 했나요. …카샤트.”
“하핫, 하…. 너! 마…아악!!”
“버릇이 나쁘고 교육이 필요한 염소네요, 다음은 꼬리.”
“어째서 너 같은게에엑!!”
이번에는 분신을 하나만 불러내어 징크스의 뿔을 부러트리게 했는데, 평소의 감정이 풍부한 분신이 아니라 말 한마디 없는 인형에 가까운 존재였어요.
무자비한 분신은 행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서 꼬리를 잡아 통째로 잡아 뜯어내기도 했어요.
뜯어낸 뒤에도 계속 발악하는 꼬리를 들고 있기는 싫었는지, 분신은 바로 미궁 구석으로 꼬리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림자에 불과한 분신에게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분신이 그저 징크스 한 명만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어요.
“저도 당신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지만 이건 저를 건드리지 않는 이 세계의 주민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에요.”
“헛소리…. 너, 는….”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으라 했을 텐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크으…! 우워어억!!!”
분신의 힘에 지면에 얼굴을 처박히는 징크스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짜내어선, 분신을 제치고 탈리안에게 달려들었어요.
한쪽 팔이 없어 균형을 잡기 어려웠는지, 아예 오른팔을 땅에 짚은 채로 마치 짐승이 달리는 듯한 형태가 되어버렸지만요.
하지만 탈리안은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여전히 빛이 없는 눈으로 징크스를 내려다봤죠.
그야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는데 소리 지르며 덮쳐온다 한들 놀라기나 할까요.
“당신은 추하기 짝이 없네요.”
“…후, 후흐.”
마지막에는 살이 찢기는 소리를 내며 탈리안의 마나로 이루어진 길고 거대한 창 여러 개가 징크스의 몸을 꿰뚫어, 바닥에 엎어진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했어요.
그리고 단 하나의 창이 아직 공중에서 탈리안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죠.
탈리안이 천천히 마지막 남은 창을 징크스의 목 위에서 떨어트렸어요.
징크스의 머리와 몸을 분리하기 직전이 되었을 때에, 창은 손톱만큼의 사이를 띄워놓고 멈춰버렸습니다.
“…질? 정신이 들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탈리안의 소매를 놓지 않겠다는 듯이 붙잡는 질의 모습.
질이 깨어났으니 징크스에게로 향하던 분노가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죠.
“내려주세요, 언니...”
“질, 아무리 제가 치료를 해줬다지만 조금 더 괜찮아질 때까지 안겨있는 게….”
“괜찮... 아요, 그리고.. 죽이지 마세요..”
“하지만 질, 저는 당신을 다치게 한 저 염소에게 그럴 권한이 있어요! 크롬웰에게서도…!”
질은 탈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어요.
뭐가 되었든 살생은 나쁘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상대는 기절한 뒤에도 자신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크롬웰이 말했던 살인 금지를 떠올린 것일까요?
징크스를 죽이는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 탈리안이라 상관 없을 법도 한데, 그럼에도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면 탈리안을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질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들어주는 탈리안이었어요.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해서…. 그럼 죽이진 않고, 하나만 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탈리안은 미궁의 벽에 질을 앉혀놓고는 쓰러져있는 징크스의 앞으로 갔어요.
그리곤 무릎을 꿇어 그의 귀에 가까이 가 무언가를 속삭였죠.
말을 마친 탈리안은 주머니에서 작은 마정석을 꺼내 마법을 발동시키고는 질에게로 돌아왔어요.
질의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징크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어요.
“저 염소는 대강당으로 되돌려 보내 적당히 치료받게 하고, 학원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놨어요. 질, 계속해서 미궁의 끝까지 갈 수 있겠어요?”
“괜찮아요, 많이 나아졌어요.. 언니가 치료해준 덕분에..”
“…알겠어요,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저번에 알려준 마법이라도 써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도, 힘을 휘두르는 것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요.”
탈리안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는 고민하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도망치기만 했던 걸까요.
“그리고 이리 나오세요, 라피아. 다 끝났으니 다시 질을 부탁드릴게요.”
“선생님께서 명령하시면 시험의 룰이고 뭐고 따라야지 별수 있겠어, 아버지와 거래도 한 것 같으니 문제 될 것도 없을 테고….”
고개만 돌려 부른 곳에서는 라피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숨어있던 곳에서 나왔어요.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 모습은 징크스에게서 받은 공격을 모두 회복한 것처럼 보였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지켜주길 바랄게요.”
“염소다리한테도 말했지만, 오랜만의 싸움이라 방심했던 것뿐이야. 내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시겠죠. 펜던트가 부서져서 질이 공격받으면 이제는 제가 알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제발 부탁드릴게요.”
“기억해둘게.”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난 뒤, 탈리안은 바닥에 떨어진 펜던트의 파편을 손에 주워 담았어요.
작은 주머니에 파편을 전부 챙기고 나선 다시 질에게 다가와 천천히 안아주었어요.
등을 쓸어내리는 그 손길에 질은 눈을 감고 가만히 안겨있었죠.
“질, 다치지 말고 돌아와요. 저는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라고 했지 다치거나 목숨을 가볍게 여기라고 한 게 아니에요….”
“네... 노력해볼게요.”
완벽하진 않더라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건지, 탈리안은 질의 이마에 한번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떨어졌어요.
평소답지 않게 표현이 풍부해진 탈리안의 모습에 질은 놀라 눈이 동그래지기까지 했어요.
곧바로 얼굴이 달아오른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탈리안에게는 다 보였기에 의미 없는 행동이었죠.
“저는 이만 가볼 테니 열심히 해보세요, 질.”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마친 탈리안은 손을 흔들며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어요.
아직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들지 못하면서도 라피아가 다가오는 건 눈치챘는지 아예 몸을 돌려버렸어요.
“키스도 아니고 고작 뽀뽀로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말해도 언니는 몰라요...”
“아 그러셔, 날 피하는 거 보니까 이제 몸은 괜찮지? 얼른 일어나. 가자.”
라피아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 탈리안이 치료 하나는 제대로 해준 것 같네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탈리안이 그들보다 못할 리는 없으니 말이에요.
오히려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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