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29화 (29/189)

〈 29화 〉 이기는 편 우리 편

* * *

마법과 힘의 격돌, 제르반과 이름 모를 여학생의 전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와 같았어요.

제르반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은 성가시게도 여학생이 다가오려 할 때마다 지면을 폭파했죠.

그럴 때마다 여학생은 자신의 가냘픈 몸에서 나오기 힘든 순발력과 힘으로 마법을 피해 점점 거리를 좁혀왔어요.

‘쿵, 쾅!’ 거리는 전투의 소리에 질은 호기심을 못 이겨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다는 말 취소하라고!”

“응, 절벽 가슴~ 그래도 그 작은 크기 때문에 무게가 덜 나가서 그런가? 피하기는 잘 피하네.”

“이, 이이! 이익!! 이 멸치 대가리 같이 생긴 녀석이…!!”

제르반의 도발은 끝없이 이어졌어요.

시작부터 살짝 자극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변했죠.

하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거리를 좁혀오는 여학생에 맞춰 도발을 할 때, 같이 거리를 벌렸거든요.

여학생은 도발 때문인지 그 사실을 모르고 덤벼들기만 하고 있었어요.

“응, 납작 가슴~ 빨라봤자 접근도 못 하고 있죠?”

“야아아!!!”

“가슴으로 가야 할 영양분이 목청으로 다 갔나 보네, 그렇지?”

“으극, 그극…!!”

계속되는 도발에 여학생은 이를 갈다가도 달려들기를 그만두고 제자리에 멈춰 섰어요.

그리곤 전투 중에 할 행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는 행동을 했죠.

“후우… 야, 넌 진짜 이 미궁에서 몸 한군데는 망가져서 나갈 줄 알아.”

“이성의 그릇이 작은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멍청하긴, 내가 정말 네 도발에 넘어간 것 같아? 넘어간 ‘척’을 한 거야! 네가 얼마나 강한지 보기 위해서.”

삿대질하며 자신감 넘치게 말해오는 여학생의 말에서는 허세나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태도의 전환에 있어서 약간의 시간이 소요될 뿐이지, 제르반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도발에 넘어간 척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 제대로 싸워보시겠다는 건가?”

“그러려고 생각했는데, 너…! 저 뒤의 여자애는 뭐야? 인질이야?”

“…하?”

여학생은 질을 가리키며 불신의 눈초리로 제르반에게 질문했어요.

인질이라는 걸 보니 상당한 오해를 사고 있네요.

“너 머리 좀 이상하냐? 내가 저런 꼬마를 인질로 삼아서 뭐 하는데?”

“위험하면 저 여자애를 방패로 쓰고 도망갈 수도 있겠지, 이거 더 나쁜 놈이네?”

“무슨 개소리야, 그게!”

이번엔 제르반이 역으로 화를 내며 강한 부정을 해왔어요.

이미 가설의 영역을 넘어, 여자아이를 납치해 인질로 쓰다가, 자신이 위험할 것 같으면 방패로 쓰는 쓰레기로 확정지어서 말하고 있으니 억울할 만합니다.

“하긴 나한테 성희롱 발언으로 도발해대던 네 성격을 보면 알만해, 진작에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넌.”

“입 좀 다물어!”

“우왓! 열 받으면 몸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야?”

제르반이 여학생 쪽으로 핑거 스냅을 하자마자 찰나의 빛과 바람이 일어 공간을 찢어놓았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여유로운 스탭으로 공격을 회피하는 여학생이었어요.

물론 제르반의 감정이 조금은 격해져 공격에 영향이 갔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는 여학생이 제르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자아! 그럼 이 범죄자를 어떻게 벌해주실까!”

“저 꼬맹이도 교복 입은 거 보면 모르겠냐! 네 뇌는 가슴만큼 작은가 보지!?”

“‘네’가 아니라 벨루아 알마 님이라고 해, 이 성희롱범!!”

한차례 브레이크 타임이 지나간 뒤에도 서로의 독설은 끊이질 않았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가 질의 시선을 빼앗았죠.

언제 발동되어, 어디서 효과가 나타날지 예측이 불가능한 제르반의 마법은 미궁의 벽이나 바닥을 좋을 대로 부수기 시작했어요.

폭발하거나 찢어버리는 듯한 제르반의 공격은 애꿎은 미궁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그만큼 알마가 잘 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어요.

보통 육체의 힘에 의존하다 보면 체력이 고갈되는 때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죠.

정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가며 제르반과의 거리를 줄여갔어요.

“쳇, 허세는 아니라 이거냐!”

“이제 좀 위험을 느끼셨나 봐?! 어린아이를 방패로 쓰는 악질적인 인질범!”

“이건 어떻…! 크윽! 뭐야?!”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고 준비하려는 제르반은 말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크게 뒤로 물러났어요.

이는 거리를 좁혀오던 알마도 같은 반응이었죠.

“다 잡은 거였는데 갑자기 벽이 왜 터져?!”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절…! 넌 또 뭐야?!”

벽이 폭발한 영향으로 미궁의 복도에는 먼지가 가득 차 시야가 흐려져 있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도 질은 폭발 범위 밖에 있었기에 무사했지만, 제르반과 알마는 연기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서로 소리치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으니… 누군가에게 공격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제르반도 알마도 마법 학원이라는 명문에 입학하는 수재라고 하지만 미숙했던 거에요.

견줄 자가 없었다는 것은 아마 곱게 자란 만큼 집안에서 제르반의 상대로 실력에 걸맞은 상대만 골라준 것일 수도 있구요.

“어떤 놈이 장난질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르반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아니었어요.

품으로 파고들어 오는 날카로운 무언가를 피해 바로 마법으로 한 치 앞을 터트리면서 반격에 나섰죠.

그로 인해 복도에 쌓인 먼지는 한순간에 흩어지며 기습을 걸어온 주인공의 모습이 보였어요.

“뭐야…? 이번에도 어린애야?”

“누가 어린애라는 거야, 40년도 안 살아본 것 같이 생긴 녀석이.”

폭발의 영향으로 휘날리는 피보다도 진한 색깔의 머리카락, 작은 키, 무미건조해 보이는 표정, 반쯤 감긴 눈….

질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면, 기습의 주인공은 입학식에서 만나 점심시간까지 함께한 아스티엘 라피아가 확실할 거예요.

질의 시선을 느낀 건지 라피아도 한번 바라봐주고는 다시 제르반과 대치했는데, 이에 질은 발을 앞으로 내딛다가 다시 거두기를 두세 번 반복했죠.

반가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방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것일 거예요.

“뭐야, 이번엔 수인인가?”

“뱀파이어라면 수인이 아니라 아인이지, 지식이 부족하구나! 꼬마야!”

“누가 꼬마라는 거야, 키도 작은 게!”

“성질머리하고는!”

라피아는 제르반의 공격을 가뿐히 피한 뒤, 빠르게 이동해 그의 뒤를 잡았어요.

질과 비슷한 몸집이라면 알마보다 더 작을 테니 거기서 비롯된 기동성은 엄청날 겁니다.

질이야 성장 도중의 몸이지만… 라피아는 혹시 모르죠, 저게 다 성장한 몸일지.

어려 보이기는 해도 탄탄한 몸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키만 작지, 비율은 상당히 좋거든요.

“나는 뒷전인가? 그럼 이틈에 여자애부터 구해주도록 할… 으아?! 뭐 하는 거야!!”

“동작 그만, 저 뒤쪽에 있는 여자애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건들면 둘 다 가만 안 둘 거야.”

라피아는 제르반을 신경 쓰면서도 빨간색의 비수를 알마의 발 앞에 날려 멈춰 세웠어요.

‘팍!’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꽂힌 비수는 곧 흐물거리더니 흘러내리면서 완전히 녹아버렸어요.

“아니, 글쎄 난 저 꼬맹이를 납치한 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이 납작 가슴!!”

이건… 총체적 난국이네요, 질이 나선다고 해도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곤란한 상황이에요.

제르반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알마와 라피아를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당장에 알마에게도 한번 붙잡힐 뻔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질이 알마의 편에 붙기에는 일단은 자신을 구해줬던 제르반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겠죠.

마지막으로 남은 거라면 라피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인데, 라피아의 실력을 모르니 질로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불안할 겁니다.

“이, 이기는 편 우리 편...! 아무나 이겨주세요...”

결국, 질은 이 상황을 포기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어차피 이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도 크롬웰이 죽이는 건 금지하겠다 했으니, 이기는 사람을 편들겠다 이거죠.

복잡한 건 생각하기 싫다, 이런 거겠죠.

“푸훗, 걱정 말라고 지르니트! 이 언니가 다 때려 눕혀줄 테니까!”

그런데 라피아는 그 혼잣말을 들었나 봅니다.

그리곤 자신 있게 소리치고서 제일 먼저 가까이에 있던 제르반의 곁으로 이동해 팔을 잡아 관절의 반대로 꺾어버렸어요.

그대로 꺾인 팔을 강하게 쥐고는 이번에는 바닥에 쓰러트렸죠.

“크아악!! 이, 망하…! 으극!?”

“자, 이제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꼬맹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제르반은 신경 쓰지도 않고, 라피아는 자신의 손목을 손톱으로 상처를 내 일부러 피를 흘려 그의 몸에 흩뿌렸어요.

그러자 피가 단단하게 굳어 아무리 몸부림쳐도 제르반의 힘으로는 그 구속을 뿌리치지 못했죠.

“뭐, 뭐야… 보이지도 않았는데?!”

제르반의 빠르고 기습적인 마법 공격에도 반응하고 회피하던 알마였지만, 라피아가 움직이는 순간은 포착하지 못했나 봅니다.

정말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제르반이 쓰러져있던 거에요.

그것도 엄청난 피를 뒤집어쓴 채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죠.

“자, 그럼… 다음은 넌데, 어때 계속해볼래?”

“아? 아니? 사양할게…요. 저는 저기 성희롱범한테 볼 일이 있었거든요.”

라피아는 제압한 제르반을 뒤로하며 손목을 한 손으로 쓱 훑으면서 말했어요.

손이 훑고 간 자리는 언제 그런 상처가 있었냐는 듯이 말끔해졌죠.

이 일련의 행동을 본 알마는 라피아를 상대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빠르게 항복선언을 했어요.

심지어 말도 공손하게 존댓말로 바꿔 대답했다는 것도 굴복 포인트 중 하나겠네요.

하긴 자신이 상대하던 사람을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상대와 싸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걸요.

“자, 질! 이리와 가자!”

“네, 네!”

제르반이 악에 받쳐 라피아를 향해 소리치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질을 부르는 걸 보니 완전히 관심이 사라졌네요.

그런데 질이 라피아에게 오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제르반이 있는 곳에 갔어요.

“저, 알렉세이 님.. 이거 돌려드릴게요...”

“하? 무슨…! 야, 야! 너 이리 안 와!? 이 건방진 꼬맹이가아!!”

구해졌을 때에 받은 마정석을 제르반의 얼굴 옆에 내려놓고는 뒤도 보지 않고 라피아에게 달려가는 질이었어요.

질에게 있어서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자존심이 상당한 제르반에게 있어서는 꽤 상처받을 일이었겠네요.

“뭐야뭐야, 마정석? 푸흡… 크흐흐! 너 뭐야? 저런 어린애한테 걱정받은거야? 우와~ 꼴불견이네!”

“지르니트으으!! 이 망할꼬맹이이!!!”

“애한테 왜 소리를 질러? 맞을래? 아니, 맞자! 후후, 후후후후!”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알마를 보고서 더 크게 부르짖는 제르반이었어요.

그에 상관없이 제르반의 곁에 앉아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이듯이 말하고 때릴 준비를 하는 알마였죠.

“닥츠윽!? 아, 머리 때리지 말라고! 아, 너는 진짜! 내가 여기서 풀려나기만 하면!!”

“으응? 안 들리는 거얼~ 어디 더 떠들어봐!”

“악?! 그만, 아! 아프다고! 야!! 아니, 윽!? 뼈 맞았, 아! 크악?!”

손바닥으로 머릴 때리거나,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거나, 뺨을 때린다거나, 손을 구두의 굽으로 짓밟는다거나.

혹은 볼을 꼬집고 한계까지 늘린다거나 하는 알마의 가학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어요.

강도는 제각각이었지만 끝없이 행해지는 그 폭력에 제르반은 좀처럼 굴하지 않았습니다.

질과 라피아는 이미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제르반과 알마의 좋은 시간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