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성깔 있는 구원자
* * *
미궁에는 질이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다니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질이 대단한 점은 자신보다 큰 개를 상대로 뛰는 속도에 한해서는 절대로 뒤처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쩌면 산골 마을에서 살던 경험이 이곳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되리란 보장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거예요.
벌써부터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모습에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곧 지쳐 쓰러질 것 같으니까요.
“어..! 저, 저기요! 도와주세요...!”
하지만 운이 좋았네요, 누군가를 발견한 것 같아요.
그 누군가가 질의 생각대로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야 하겠지만요.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에 뒤통수만 보여주고 있던 입학생 A는 고개를 돌려 질을 쳐다봤어요.
“…꼬마? 아니 드워프인가? 그런 것 치고는 살이 너무 없는데.”
“제발 도와주..! 히약?!”
입학생 A가 질의 뒤편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이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약간 질척거리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뒤편에 따라오던 들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확실한데, 덕분에 질도 바닥에 구르게 되었어요.
들개에 물리거나 짓밟혀, 몸 한군데 성한 곳 없이 죽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겠지만 꽤 아파 보입니다.
“야, 저런 잡것에 왜 쫓기고 있던 거야?”
입학생 A의 말에 질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구르게 된 아픔에 허덕이며 신음만 흘리고 있었어요.
그 안쓰러운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는 입학생 A의 모습을 보면 질이 바라던 이상의 성격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적어도 질이 숨을 고르고 바닥에 앉기까지 기다려주는 걸 보면 또 그렇게 성격이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아요.
“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드워프 꼬마.”
“무서워서...”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이 학원에 입학하게 된 거야? 입학서에서부터 걸러졌을 녀석 같은데…. 너도 그런 녀석이냐? 돈으로 매수하고 입학한 녀석?”
“아, 아니에요!”
비꼬는 말을 하는 입학생 A에게 질은 소리치며 그게 아니라며 부정했어요.
질보다 몸집이 큰 들개를 한 번에 처리한 그에게 소리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아, 그러셔? 자신을 보호해줄 용병까지 준비할 돈은 없었나 보지? 그럼 뭐, 앞으로는 알아서 잘 살아남으라고.”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까부터 귀 아프게 왜 소리를 질러, 너도 저 개처럼 되고 싶냐?”
입학생이 개를 가리키는 곳을 질이 확인해보았을 때, 그곳에는 그로테스크한 살점과 피의 웅덩이만이 있을 뿐이었어요.
굴러다니는 눈알과 심장, 위장, 꼬리와 피부… 원래는 개였었던 것의 일부들이 있었죠.
그걸 보고는 ‘흡!’하며 숨을 들이켜고 다시 남자를 쳐다봤어요.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 기다리는 것도 슬슬 지친다.”
“저, 저도 같이 데려가 줘요..”
“…제정신이야? 방금 널 죽인다고 위협한 상대에게 데려 가달라고? 구르면서 머리라도 다친 거면 치료 정도는 해주겠는데.”
입학생의 말은 틀린 게 없었어요, 약간 비꼬는 투기는 했지만 그만큼 질의 말이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는 거겠죠.
하지만 질의 눈은 흔들림 하나 없었으니 거짓이나 허세, 부정적인 것들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을 거예요.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한 결과로서 입학생의 옆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같이 데려가 줘요.. 짐은 되지 않을 테니까..”
“짐이 되지 않겠다고? 저딴 들개에게 쫓기다가 꼴좋게 넘어지면서 구른 녀석이?”
“그건, 그건..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서...”
입학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 보면 무서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게 창피하긴 했나 봅니다.
짐은 되지 않겠다는 걸 보면 뭔가 할 수 있었다고 말하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만 쳤으니까요.
분위기에 휩쓸려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기에는 질의 모습은 입학생이라기보다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어요.
“웃기는 녀석이네 이거, 이름이 뭐야?”
“...지르니트 페어차일드에요. 그리고 저, 드워프 아니고 사람이에요..”
“…알렉세이 제르반. 보면 알겠지만, 너와는 달리 온몸과 자태에서 귀티가 나지? 리니스의 동쪽 성벽을 담당하고, 막강한 군대를 자랑하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거든! 태생부터 뛰어나서 그런지 6살부터 마나와 마법식의 기초를 이해했지. 그 뒤로 10년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리니스에서 나와 견줄 자가 없어져서 이곳에 입학했다. 종은 너와 같은 사람일지라도 질의 격차가 차원이 다르다 이거야!”
“아, 네에...”
뜬금없이 자신의 출신과 자랑을 늘어놓는 제르반이에요.
당연하다는 듯이 자랑 도중에 질을 깎아내리는 말도 잊지 않았네요.
탈리안이 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무슨 참사가 일어났을지….
“…리액션 좀 잘하지? 이래 보여도 난 네 생명의 은인인데? 그런 감정 없는 눈빛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와, 와아~ 대단하세요오...”
“이 재미없는 애새끼…. 이거나 들어, 보호받으면 그에 대한 대가는 지급해야 할 거 아니야!”
제르반은 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질에게 던져주었어요.
얼떨결에 건네받은 질이 확인한 것은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듯한 물건이었죠.
투명한 보석 같은 돌멩이, 메모리얼 스톤과 상당히 흡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물건이에요.
“이게 뭐예요?”
“바보 같은 얼굴을 해서는… 마정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너 같은 게 진짜 어떻게 입학을 한 건지….”
“마정, 석..? 아! 책에서 읽은 적 있어요! 마나를 흘려 넣으면 마정석에 저장된 마법이 발동된다는 아이템 맞죠?!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헤헤..”
“여기서 주운 거니까 들고 있다가 위험할 때에 써. 난 지켜준다거나 그런 귀찮은 거 질색이니까.”
지켜주는 건 귀찮다면서 그렇다고 또 아예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네요.
뭐 눈앞에서 죽으면 곤란하니까…라고 말하는 타입의 사람인가요?
이거 보세요, 질도 마정석을 받은 뒤로 계속 헤실거리는 게 제르반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탈리안에게 한 소리 들을지도 몰라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물건은 함부로 받는 게 아닌 건 전 세계 공통이잖아요.
“뭘 기분 나쁘게 웃고 있어? 안 기다려줄 거니까 얼른 따라오기나 해.”
그렇지만 뭐… 정작 제르반의 언행이 날카롭고 건방지다는 점만 뺀다면 딱히 트집 잡을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저, 제르반 오빠.. 앞에...”
“누구 맘대로 오빠야, 오빠는?! 알렉세이 님이라고 해!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
트집 잡을 부분이 하나 생기기는 했네요, 친근하게 불렀다고 곧바로 소리치며 화내는 것.
그와는 별개로 단순 손짓 한 번에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마주 보고 있는 식물계 몬스터를 잘게 썰어버렸어요.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나니 성격이 이렇게 괴팍한 구석이 있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알, 알렉세이 님.. 마법을 쓴 거예요?”
지정해준 호칭대로 부르란다고 그대로 부르는 질도 만만치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그럼 네 눈엔 이게 마법이 아니라 다른 거로 보이냐.”
“그야, 마나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지르니트 이 꼬맹아, 말했잖아! 나는 6살에 마나와 마법식에 관한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고! 신의 축복을 받았다~ 이 말이다! 마나를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왜 안 보이게 한 건데요?”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라, 꼬맹이. 책만 읽는다고 전부가 아니야.”
제르반의 말에 한참이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질이었어요.
의외인 점은 제르반이 고민하는 질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것이었죠.
그래봤자 그 기다림은 5분도 못 가서 성미가 급한 제르반은 질에게서 등을 돌려 미궁 안으로 나아갔지만요.
결국, 고민을 그만두고 빠른 걸음으로 총총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는 질이었습니다.
“가, 같이 가요! 알렉세이 님!”
“네가 느린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니 저렇게 소리치면서도 걸음의 보폭을 줄일 거면 말이라도 이쁘게 하면 좋을 텐데요.
왜 굳이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투로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허세와 예민한 성격만 죽인다면 모두에게 인기 있을 만한 키와 외모를 가졌음에도 쓰질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질을 가만히 죽게 놔두지 않은 것만 봐도 사람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요.
“있잖아요, 알렉세이 님은 왜 이 학원에 들어온 거예요?”
“말했잖아, 나랑 견줄 자가 없어서 들어왔다고.”
말없이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지루했는지, 질은 제르반의 입학 동기를 물어봤어요.
많은 사람이 전이된 것 치고는 제르반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도 않았으니 지루하긴 할 거예요.
그리고 질은 평소에 탈리안과 그녀의 분신들과 함께 있다 보면 입이 쉴 때가 없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예를 들면… 알렉세이 님이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거잖아요?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는데.”
“앗, 으.. 그건, 그래요...”
약간 날이 서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침착하고 가라앉은 목소리에요.
그렇다고 화내는 건 아닌 것 같은,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 왜 말해줘야 하냐고 되묻는 말투였어요.
이런 경우라면 보통 자신의 과거나 콤플렉스에 관련된 이유가 있어서 알려주지 않는 것이겠죠.
“꼬맹이, 지금 당장 뒤에 있는 기둥에 숨어.”
“네? 네에..”
일정 간격을 두고 따라가던 질은 제르반의 말을 듣자마자 뒤로 돌아가 숨었어요.
이래서야 모르는 사람이 젤리라도 건네주면 바로 따라갈 것 같네요.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거예요, 특히 어린 아이는요.
이 세계는 어른과 어린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위험한 세계라구요.
“기둥 뒤에 숨어있는 놈, 미궁 밖으로 튕겨 나가기 싫으면 빨리 튀어나와.”
“…칫, 곱상하게 생겨먹어서 눈치만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미궁의 벽을 지탱하는 정면의 기둥 뒤에서, 누가 봐도 곱게 자란 티가 나는 여자아이가 걸어 나왔어요.
투덜거리면서도 걷는 자세에서 기품이 흘러넘치는 것은 제르반의 자만심 넘치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것이었죠.
“비겁하게 숨어서 방해할 생각만 가득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절벽 가슴.”
“머, 뭐?! 너, 이! 이익!! 내가 작고 싶어서 작은 줄 알아?!”
“내 알 바인가, 작은 네 잘못이지. 보아하니 그 덕에 인기도 별로 없겠지.”
“너, 너어!! 가만 안 둘 거야!!”
질에게만 그런 것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제르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건방지고 무례한 말을 찍찍 내뱉네요.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이, 여자아이는 곧바로 제르반에게 달려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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