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끝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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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는 시점을 기점으로 모든 테스트가 끝나 결과를 모아 집계 중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시길 바라며, 그동안 이 학원의 이사장님이 여러분께 할 말씀이 있다고 하시니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자인 크롬웰이 결과 발표에 앞서 훈화를 말하려는 듯합니다.
다만 이곳에는 무대가 없기에 어디서 나타날지 의문인 부분이기는 했어요.
덕분에 이곳에 모인 입학생 전부가 대강당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크롬웰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대강당의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슬라이드 형식으로 열리더니, 하늘을 다 뒤덮을 정도로 큰 크롬웰이 나타났습니다.
이전에 질이 봤던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몸 전체가 반투명해서 몸 뒤편에 있는 구름이 하나하나 다 보인다는 것이었어요.
“못 살아 정말…. 저건 아버지 취미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저걸로 종종 날 놀라게 하곤 하셨으니까. 애도 아닌데 현자라는 사람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질에게 설명해주는 라피아에요.
말하는 걸 보니 평소에 꽤 자주 당했던 모양인데, 일개 하프 뱀파이어가 현자를 이겨낼 방법이 없는 거야 당연하니 어쩔 수 없었겠죠.
“...저것도 마법이에요?”
“정말 기초적인 환상을 만들어내는 마법이지, 간단하고 보여주기식으로 쓰기에도 좋고… 그래서 날 놀리는 데에 쓰는 건가? 아, 시작하려나 보다.”
라피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선 크롬웰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있었어요.
그리곤 아래쪽을 쭉 둘러보면서 모두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죠.
환상이라고 했으니 실제로 입학생들을 내려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퍼포먼스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대강당이 완전히 고요해졌을 때가 되고 나서야 크롬웰은 시선을 앞으로 향했어요.
『흠! 입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에서 현자로 불리우면서 이 아스티엘 마법 학원을 만들어낸 사람 중 하나인 레이지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오늘 긴 테스트를 하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질은 크롬웰이 하는 말을 듣고서 전형적인 훈화와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까진 그 생각대로 정말 전형적이었구요.
『하지만 여러분, 테스트는 이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언니, 저게 무슨 말이에요?”
“어…. 글쎄? 나도 처음 듣는 말인데.”
모두가 처음 듣는 말에 대강당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이 무엇을 머릿속에 어떤 것들을 담아두었는지, 계획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찾아오신 분들 모두가 그러했으니…. 마지막 테스트는 저희 학원에서 관리 중인 미궁에서 치러질 예정입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 대강당의 모두가 당황하고 동요하는 것을 본다면 테스트가 끝이 아니라는 것은 입학생들이 어렵게 구했던 정보에는 들어있지 않은 듯했어요.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입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 하나 터져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 누구 하나 학원의 욕을 하거나 현자를 욕보이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당황한 채로 패닉에 빠져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과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그깟 테스트는 식은 죽 먹기라며 우습게 보기도 했어요.
또 누군가는 예상했다는 듯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현자의 말을 듣고 있었죠.
『그 미궁의 끝에는 1만 명분의 증표를 생성할 수 있는 마도구가 놓여 있으니, 증표를 가져오시면 그때 여러분은 저희 학원의 진정한 학생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대강당에 모인 입학생들은 이 마법 학원에 들어오기 위해서 정말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겁니다.
육체적, 정신적 수련과 더불어, 마법에 대한 이해와 학습 같은 기초적인 것부터 입학 시 필요한 돈도 있었겠죠.
물론, 전부가 그랬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대부분이 그랬을 거예요.
여기에 더해 마법 학원에 재적 중인 학생들로부터 학원에 관한 정보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얻어냈을 거예요.
그야 이 아스티엘 마법 학원이라는 곳은 전 세계에서 입학생들이 몰려드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예상외의 일이 한두 개쯤은 일어날 것이다.’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전부가 그러고 있었을 거라고는 못하겠지만요.
『테스트에서 나타낸 성적, 미궁에서 보인 성적을 통해 수석과 차석을 총 10명 가려낼 것이며…. 수석과 차석에게는 차후 많은 혜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미궁에 들어간 시점부터 경쟁의 시작이나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엄금할 것입니다.』
“언니, 아까는 수석과 차석은 이미 정해져 있다면서요?”
“다 쇼야,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증표를 가져오라는 건 입학생의 실력을 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괜히 경쟁자를 죽이지 말라는 말을 했겠어? 그리고 넌 아버지한테 직접 들었다며.”
“아아..?”
기껏 열심히 설명해준 라피아였지만… 질의 반응을 보아하니 못 알아들었네요.
하여튼 이대로라면 질에게 있어서 나쁜 소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네요.
그동안 공부만 줄창 하느라 아직 제대로 된 마법 하나 못 쓰지 않던가요?
그렇다고 뛰어난 신체와 운동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말이죠.
『미궁의 끝에 도달하고 귀환하는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으니, 부디 열심히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시작.』
크롬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강당의 바닥에는 언제 그려졌는지 모를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어요.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법이 분명하겠네요.
이때만큼 대강당이 시끌벅적했던 때는 없었을 거예요.
“앗?! 어, 언니?!”
“걱정하지 마, 살생 엄금이라잖아? 죽기야 하겠니. 정 걱정된다면 제일 먼저 너부터 찾아줄 테니 안심하고 있어.”
“그런 게 아니잖...!”
그렇지만 질의 말이 이어질 리가 없죠, 눈 한번 감았다 뜨고 난 뒤엔 처음 보는 주변 환경만 보였거든요.
단단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돌벽과 돌바닥… 심지어 녹색의 덩굴까지 얽혀있으니 그 세월의 시간이 가늠이 안 되었죠.
게다가 복도가 꽤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도 쾌적할 정도로 넓었지만, 문제라면 이 넓은 복도를 채울만한 사람들이 주위에 한 명도 없었다는 거예요.
학원 측에서 의도적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한 것이 확실하겠죠.
“아, 으으...”
다만 이게 질에게 있어서는 좋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탈리안, 라피아와 멀리 떨어져서 혼자 남게 된 상황에 겁을 먹은 모습이에요.
하다못해 경쟁자라고 해도 입학생 몇 명과 같이 떨어졌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없으니 그날을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겠죠.
마을의 모든 사람이 사라졌던 그 날 말이에요.
지금과 그때의 상황이 상당히 비슷하니까 떠올리기 싫어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그려지고 있을 거예요.
그날, 단 한순간 만에 뒤에 있던 모두가 사라지고 움푹 팬 지면만이 질을 반겨줬었죠.
지금도 주변의 모두가 미궁에 전이되었다지만, 모두의 모습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만큼은 그날과 똑같아요.
그러니 질이 겁먹고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것은 불가항력인 거에요.
“히익..?!”
나쁜 일은 하나가 찾아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하나 계속 찾아오기 마련이죠.
질이 전이된 이 미궁은 분위기가 음산하기로서는 따라올 장소가 없었어요.
적어도 질이 알고 있는 장소 중에서는 말이죠.
그러니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나, 천장에서 먼지나 돌가루가 떨어져 나는 소리에 흠칫거리며 벽에 다가가 등을 기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복도도 보통 긴 게 아니거든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서… 정말 육안으로도 복도 끝이 어두운 그림자에 삼켜져 가는 게 보일 수준이었어요.
겁먹는 정도가 심한 사람에게는 복도 끝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을 정도로요.
“언니.. 언니..!”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내려는 것인지 언니를 부르며 천천히 벽을 한 손으로 짚어 무작정 걷기 시작한 질이었어요.
언니라는 게 탈리안을 부르는 것인지 라피아를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탈리안이라면 일단은 교사로 학원에 들어온 것이라 도움을 주지 못할 텐데요.
수석과 차석을 미리 정해두는 비리가 있는 학원인 건 맞지만, 언젠가 탈리안이 말했듯이 이 학원에 질을 입학시킨 이유는 질이 혼자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었으면 했던 이유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지금의 탈리안이라면 도움을 주지 않을 거예요.
정말,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 전에 누군가의 도움이 찾아온다면 라피아의 손길이거나, 얼굴도 몰랐던 입학생 A밖에 없겠네요.
겁에 질려있는 질의 모습을 보자면 금방이라도 포기하고 무너져버릴 듯합니다.
“그르륵….”
“에..?”
적의가 가득 차, 가래가 끓는 소리에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질은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누가 봐도 일부러 풀어둔 것 같은 머리 두 개 달린 사나운 들개가 천천히 경계하며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머리가 두 개라는 점만 뺀다면 한낱 들개에 불과한데 그 몸은 상당한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이빨과 발톱은 또 뾰족하고 날카로워 끝에 닿기만 해도 베이거나 찔려 피가 날 것 같은 모양을 했죠.
이런 괴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관리 중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미궁이라는 미지의 공간인 걸 상당히 어필하고 있네요.
그래봤자 다른 입학생들에게는 손쉬운 상대였겠죠.
하지만 상대할 수단이 없는 질에게는 벅찬 상대가 아닐까요?
체격적으로야 당연한 이야기이고, 힘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페널티로서 평소의 침착한 상태도 아닌 겁먹은 상태라면 더욱더 그렇겠죠.
빠른 상황 판단을 통해 질이 선택한 행동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뒤를 돌아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었어요.
극심한 공포에서 기인한 행동이었지만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마하니 대항 수단이 있어서, 저 들개와 싸워 이긴다고 해도 상처투성이뿐인 승리일 것이 분명하니까요.
울면서 도망치는 것을 보니… 이 테스트가 질에게는 조금 자비가 없는 게 아닐까 걱정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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