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입학식 (2)
* * *
차석의 자리에 올라 준비해두지도 않았던 소감을 말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질은 점심시간이 끝나 입학식에 다시 돌아왔는데도 진땀을 빼고 있었어요.
그래도 다른 이종족 옆에 있다는 이유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심시간 전후로 바뀐 건 없어 보입니다.
무슨 이유로든 간에 어쩔 줄 몰라서 고민만 실컷 하는 상태이니까요.
“뭐해?”
“으..! 읍?!”
“쉿…!”
그러던 도중 오른쪽 뒷좌석에서 누가 속삭이는 것에 놀라 소리칠뻔한 질의 입은 누군가의 손으로 틀어막혔어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질은 그제야 침착을 되찾았습니다.
“라피아 언니..?”
살그머니 웃음을 짓던 라피아는 자세를 바로 해 의자 등받이에 기댔어요.
“아무것도 없는 천장만 보면서 넋 놓고 있길래 장난 좀 쳐봤어,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저, 제가, 차석..이라고 하시더라구요.”
“흐응, 네가?”
“언니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죠?! 제가 차석이라니!”
“아니? 내가 수석인데 뭘, 네가 차석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자신이 수석이라는 라피아의 말에 질은 할 말을 잃었어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개를 떨궜죠.
“도대체 이 마법 학원은 수석, 차석을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거예요..?”
“요주의 인물? 지켜야 하거나 감시해야 하거나…. 딱 봐도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뽑는 거야.”
“네에..?”
질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만한 라피아가 아니었기에, 탱탱해 보이는 질의 볼을 잡아당겼죠.
“볼수록 완전히 찹쌀떡이네, 왜 이렇게 말랑거리지.”
“으에...? 갑다기 왜 꼬지버요...?”
“자, 설명 들어간다. 잘 새겨들어.”
“녜에...”
상상 이상으로 잘 늘어나는 볼의 탄력에 감탄하면서도 라피아는 설명을 시작했어요.
질의 볼은 라피아가 손을 놓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갔죠.
약간 힘을 줘서 집었었기에 발간빛이 돌게 되어 한쪽 볼만 화장을 한 것처럼 되어버렸네요.
“이 마법 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학원의 수석과 차석은 성적과 관계없이 특별한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표면적으로는 테스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은 사람을 올리는 자리이지만….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사정으로는 귀족이나 가주들 같은 사람들의 자식들이 올라가는 자리라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겠지.”
자신을 특별 취급한다는 것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는 질은 잠시 입을 다물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특별 취급을 받는 이유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첫 번째로 탈리안이 거두어준 아이라는 것, 이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특별함의 극을 달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두 번째로 질의 몸 안에 잠재되어있는 많은 양의 마나량, 탈리안마저 타인에 비해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틀림없이 이유로는 충분할 거예요.
세 번째로 탈리안의 각인을 물려받았다는 게 제일 중요한 이유로 작용할 거예요.
다만 이런 이유를 통틀어서 특별 취급을 받는다고는 해도 본인은 그다지 기쁜 것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왜 그런 취급을 하는 거예요?”
“그건 아버지나 저기 높으신 분들밖에 모르는 일이지, 나한테는 어떻든 좋은 일이라서. 아, 내 차례네 금방 갔다 올게.”
라피아는 자신의 차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의 뒤에 따라 섰어요.
질의 옆에서 떨어지자마자 라피아는 처음 봤을 때와 같이 말수가 적어지다 못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시선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여기저기 관찰하듯이 움직이듯 했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상당히 불편하긴 한 모양입니다.
라피아가, 아니 모든 사람이 받는 마지막 테스트는 약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는 테스트 대상자의 각인의 유무에 따라, 없다면 각인을 그 자리에서 바로 새겨주고 있다면 각인의 상태를 검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배치된 테스트인 만큼 최종 점수에 부가되는 영향도 크고, ‘마법’ 학원이니 마법에 소질이 없는 자라고 해도 책임지고 마법은 반드시 쓰게 가르침을 주는 곳이거든요.
소질이 없는 자는 아예 각인을 새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입학서의 단계부터 걸러지게 되니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게다가 각인 테스트 앞에 마법의 사용과 잠재된 마나량을 테스트하기에 기본적으로 마법에 소질이 있고 사용이 가능한 사람들만이 지원하곤 합니다.
학원의 인력들도 고급진 수준을 가진 사람들 뿐이라 각인을 새기는 과정 중에 죽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죠, 고통스럽긴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인지 질은 각인을 받는 사람들이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와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래서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라피아가 손을 어깨에 올려서 두 배로 놀랐던 것이구요.
“어이 꼬마, 네 차례 아니냐? 너 부르는 거 같은데?”
“앗, 아... 감사합니다!”
옆에서 찐득한 땀 냄새를 풍기는 드워프가 질에게 말을 걸어왔어요.
드워프의 키도 만만찮게 작은데 질보고 꼬마라니, 자기는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오만의 극치를 달리는 드워프네요.
하지만 질도 듣지 못한 호명 소리를 드워프가 들었다는 것은 조금 놀랍긴 합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저 뭘 하면 될까요?”
“각인이 있는 부위를 보여주시겠어요?”
질은 바로 손등을 보여줬어요.
테스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질의 손등을 보고선 이렇게 깔끔하고 아름답게 자리잡힌 각인은 처음이라며 놀라 했지만, 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질에게 다른 사람의 각인을 볼 기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보기 쉬운 자리에 각인이 새겨져 있어서 굳이 침대에 누울 필요는 없으니, 손등이 보이게 손을 들고 있어 줄래요?”
“이번 테스트는 별거 없네요..?”
“각인이 없는 사람이라면 할 게 있었을 거예요. 이미 각인을 새겼다면 그냥… 각인의 특징에 대한 거랑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식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는 게 전부라서요. 어쨌든? 꽃은 노란색에 모양은 잎이 겹쳐있고….”
설명을 끝낸 담당자는 혼잣말로 각인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 떠들며 종이에 여러 정보를 써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표정이 약간씩 구겨지다가, ‘이상하다, 왜 못 보는 거지?’라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결국엔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요.”
그리곤 자리를 떠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죠.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느껴서 그런지 갑자기 사라진 담당자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질이 혼자서 불안함에 떤 지 10분 정도 지나서야 사라졌던 담당자가 다시 돌아왔죠.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탈리안과 동반한 채로 질에 앞에 나타났습니다.
탈리안은 평소의 옷과는 달리 상당히 격식을 차린 옷을 입고 있었어요.
새하얀 셔츠에 검은색의 H스커트, 어깨에는 정장에 어울릴만한 외투를 걸치고 있어 평소의 탈리안과는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이미지의 변화가 있었죠.
게다가 머리카락마저 업스타일 포니테일로 땅에 끌리지 않게 깔끔하게 정돈했으니까요.
뭐, 이렇게 꾸민 것 치고는 작은 키가 조금 흠이지만 탈리안이 언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 적이나 있던가요.
기껏 신경을 써봐야 질의 마음에나 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탈리안 언니..?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학원에 있을 때는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해주세요, 질. 잠시 손등 좀 빌릴게요.”
탈리안은 한 손으로 질의 손을 받쳐, 한 손으로는 각인을 뒤덮었어요.
손을 맞잡은 그 잠깐의 순간에 탈리안의 마나가 질의 손을 감싸고 사라졌지만, 이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이걸로 됐습니다.식의 일부분만 볼 수 있게 풀어뒀지만,5분 뒤에 다시 못 보게 바뀔 테니 지금 봐두세요.”
“감사해요, 선생님!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질? 귀 좀….”
탈리안과 담당자가 대화를 마치더니 탈리안이 얼굴을 귀 바로 옆까지 대어 속삭이기 시작했어요.
“아, 네... 아니에요... 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요, 언…. 선생님.”
“할 말은 끝이에요. 나중에 봐요, 질. 배려해줘서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탈리안은 귓속말을 마친 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이야기이니 테스트 담당자의 귀에 들리지 않게 말한 것일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질과의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죠.
피가 이어진 진짜는 아니더라도 일단은 가족이라 말 할 자격과 관계는 가졌으니까, 그런 가족과의 비밀 대화를 남이 듣는 건 싫잖아요?
“자, 그럼 선생님도 가셨으니 각인을 마저 살펴볼게요. 이번에는 각인에 담긴 식을 볼 거예요. 식의 대략적인 정보라도 알아둬야, 나중에 각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조치가 가능하거든요.”
과연, 그래서 탈리안을 부르러 갔던 거네요.
일부분이니 뭐니 했던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는 탈리안이 그 누구도 질의 각인에 담긴 자신의 식을 보지 못하게 해둔 것이겠죠.
남에게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기 싫어했던 탈리안이라면 이해가 가는 행동입니다.
공개한 것도 일부에 잠시뿐이라고 했으니 정말 필요한 부분만 보여주겠다는 말일 거예요.
“엣, 어? 음? 으음~?”
“왜 그러세요?”
그런데 또다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담당자의 표정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니에요, 설마 이 정도로 어려운 식일 줄 생각도 못 했거든요…. 조금은 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볼 줄은…. 이사장님이 차석으로 추천한 이유가 있었네요.”
“에헤헤.. 저도 좀 어려운 식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선 딱히 방법이 없네요. 정보를 남겨두고 싶어도 알아볼 수가 없으니… 이걸로 테스트를 마칠 수밖에 없겠어요. 수고하셨어요….”
“앗, 네...”
담당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테스트를 마친다고 말하자,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질은 미안했는지 계속 눈치를 보며 테스트룸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로써 입학식에서 치러야 할 테스트를 모두 마쳤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을지 의문이네요.
체력검사 쪽에서는 [B]를 받았었다고 했으니, 차석의 기준을 만족하려면 다른 부분에서 전부 최소 [A]이상의 랭크를 받아야 했을 텐데 말이에요.
과연 잠재 마나량 측정, 기초 마법 사용, 마법식을 짜는 실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그동안의 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발만 담갔다 뺐다고는 해도, 탈리안 본인과도 다를 바 없는 분신들의 조언을 받아 가며 공부했었을 테니 어느 정도 배운 건 있었을 거라고 예상은 됩니다만….
솔직히 차석이라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확정된 마당에 점수를 신경을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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