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24화 (24/189)

〈 24화 〉 입학 준비 (3)

* * *

“질, 미리 말해두지만 아스티엘 마법 학원은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국가...? 학원이라면서요, 언니.”

입학식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며 마법의 식을 외워두고 있던 질은 탈리안의 상식을 벗어난 말에 당황했어요.

학원을 국가라고 생각하라니, 농담도 적당히 쳐야죠.

“거짓말이나 장난치는 게 아니에요. 아스티엘 마법 학원, 그곳은 황궁에서 6명의 가주 중 하나인 현자 크롬웰과 협력해 만든 하나의 독립된 국가에요.”

“황궁? 현자?”

“아, 지금은 황궁이나 현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국가라고 칭하는 만큼 학원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거죠. 발을 디디는 곳 전부가 학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니까요.”

“그런데 왜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정확히 중요한 곳을 단번에 짚어내는 질이에요.

탈리안은 지금이나 미래에 관련된 일 중에서, 쓸데없는 말은 전혀 일절 하지 않아요.

그 말인즉, 이번에는 마법 학원에 볼일이 있다는 것이겠죠.

“입학한다고 결정했으니, 미리 구경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돼서요. 그 열쇠도 아직 써본 적 없을 것 같으니…. 열쇠의 사용법에 대한 연습의 목적도 더해서.”

“아.. 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가는 거예요?”

“그러려고 꺼낸 말이었으니까요. 가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탈리안과 질이 어딘가를 가려고 하면 손을 깍지 껴서 잡는 것은 일상의 작은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란히 서서 문을 건너는 모습 역시 빠지면 안 될 한 폭의 그림이 된 느낌이에요.

둘이 경계를 넘어 도착한 곳은 일전에 탈리안이 친구를 찾기 위해 왔던,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넘쳐나는 장소였어요.

그렇지만 위치가 약간, 아주 약간 달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 언니, 장소를 착각하신 거 아니에요..?”

“제대로 왔는걸요, 질. 이곳이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이에요.”

“언니! 너무 앞으로 가시면 위험해요..!”

탈리안이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질은 나머지 한 손으로 탈리안을 잡아끌며 발걸음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탈리안이 멈추어 서자마자 거센 바람이 두 사람의 옷을 펄럭이게 했거든요.

이는 난간이라고는 질의 키만 한 쇠창살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것이 전부인 높게 솟은 첨탑의 발코니이기에 그렇습니다.

질이 겁먹는 이유는 이것 하나로 설명이 되는 장소였죠.

바로 앞에 새가 줄을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으니, 굳이 아래를 보지 않아도 높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질, 겁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원래라면 말없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얼마나 넓은지 보여줄 수가 없잖아요.”

“아, 안 보여주셔도 돼요!”

“하아…. 질, 이리 와서 안겨요.”

“네.. 헤엑?! 언니!? 언니!! 내려, 내려주세요!!”

설마하니 안기라고 말한 직후, 바로 공중으로 날아오를 줄은 몰랐을 겁니다.

다행히도 질이 겁이 많은 타입이면서도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뭐, 다행…이겠죠.

“질, 눈 떠요. 모처럼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데 그러고 있으면 못 보잖아요.”

“안, 안뜨, 안 떠요..! 무섭다구요!!”

“저를 못 믿어요?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니까, 얼른 눈 떠봐요. 그리고 제 옷 좀 놔주세요. 다 구겨지게 생겼어요.”

“흐으..! 정말 싫어요..!”

탈리안의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행동을 강제하는 모습을 보면 짓궂은 마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팔로 등과 엉덩이를 받쳐주고 있고, 혹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마법으로 붙잡아 준다지만 질이 경험하고 있는 공포심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그럼에도 탈리안은 높이 뜬 공중에서 내려가거나, 질을 놓아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이번에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질이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잘못을 빈다면 또 모르는 일이겠지만….

탈리안이 그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것도 못 하는 마녀는 아닐 겁니다.

“제게 향하는 질의 신뢰가 이렇게 얕았었다니…. 슬프네요.”

“언니 진짜 말을 왜 그렇게 해요! 지금 괴롭히는 건 언니면서! 괴롭힘당하는 건 저라구요!”

“음, 흠! 흠! …진짜 한 번만 믿어봐요.”

양심에 찔리기는 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한 번만 믿어달라는 탈리안이었어요.

“딱, 딱 한 번만요, 질.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으으... 진짜 한 번만이에요...! 다음에 또 이러면 정말 화낼 거라구요!!”

거의 울기 직전의 질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실눈을 뜨던 질은 순식간에 눈동자가 엄청나게 커졌어요.

새하얀 구름은 바로 발아래에 위치해 있었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방금까지 있던 첨탑이 까만점처럼 작아져 있었어요.

머리 위로는 질의 머리카락 색보다 더 진하고 파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져 있었죠.

육안으로 보이는 수평선은 약간 휘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질이 떠 있는 공중의 높이를 가늠하지 못하게 했어요.

“별로 안 무섭죠?”

“무, 무섭거든요?!”

“어쨌든, 우리가 있던 탑은 저 아래에요. 그리고 탑으로부터 이어진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섬이 보이나요? 저 섬 전체가 아스티엘 마법 학원이에요.”

“도대체 얼마나 높이 올라온 거예요..?”

“후훗, 마녀에게는 간단한 일이죠. 그리고 저 섬 하나가 황궁이 있는 수도 다리아스와 같은 면적의 크기를 하고 있어요. 상당히 크죠?”

탈리안은 간단히 한 귀로 흘린 것 같았지만, 질이 잔소리를 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 세계를 지도로 만들어 펼쳐놨다고 말해도 될 만큼 모든 것이 질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아마 여기서부터 떨어진다고 해도 지면에 도달하기까지 최소 10분 이상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풍경 하나는 질의 기대치에 부응하기에는 충분했다고 할 수 있었어요.

섬의 무지막지한 크기에 그를 둘러싼 성벽의 길이에도 놀라고,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어요.

탈리안이 말한 넓은 세계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한걸음은 내디딘 것 같네요.

“마음에 들었나요? 반강제적으로 보여준 것이긴 하지만…. ”

“그걸 모를 언니가 아니지만! 알고 있다면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주세요!”

“그 전에 저기, 보이나요?”

탈리안이 몸을 돌려 손으로 가리킨 곳은 바다 한 가운데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다른 점이 존재했어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센스라고는 볼 수 없는 괴상한 모습의 이상한 건축물이 바다 위에 세워진 것에 더해, 그 건축물의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바다에 빠지는 것도 가능해 보였어요.

하지만 그 구멍 아래로는 바다가 아닌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만이 보이고 있었어요.

게다가 어두운 빛을 뿜어내며 간혹 구멍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하는 듯이 일정 크기로 줄었다 커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질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챘어요.

“저거, 재앙..이에요?”

“맞아요, 지진이 일어났었다고 했었죠? 저 재앙이 생겨나며 대륙이 찢겨나갔기 때문이에요. 질이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 원인도 저것에 있어요. …전부 저 재앙 때문이라고는 못하겠지만요.”

“저 재앙은 어떻게 없앨 수 있는 거예요?”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있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할 거예요.”

“그럼, 저와 같은 사람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걸 지켜봐야만 해요?”

“…유감스럽지만, 지금 당장은 저로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지금 당장은’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탈리안은 재앙을 해결할 수단을 가지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질을 재앙으로부터 구해낸 탈리안이 저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을 거예요, 분명히 여러 방면으로 없앨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생각했겠죠.

그런데도 아직까지 재앙이 건재하다는 것은 마녀의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언니, 저는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킬 거에요.”

“좋은 생각이네요.”

“저와 같이 재앙에 소중한 걸 뺏긴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할 거예요.”

“…네, 슬슬 내려가죠.”

질의 마음속에서 어떤 결심이 선 듯해요.

시작은 탈리안의 사소한 장난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질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행동이 되어버렸네요.

어쩌면 탈리안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그녀는 속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모를 마녀이니까요.

하늘 높이에서 사소한 대화를 나눈 뒤, 지면에 내려온 두 명은 이번에는 학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워낙 넓은 땅덩어리이고, 그 넓이가 수도와 같다고 할 정도이니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에 마법 도구를 파는 아틀리에, 도대체 학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거대한 교실 건물.

학원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질 헬스장이나, 여러 편의시설, 높게 치솟은 방어용 마탑과 마나 배리어 생성기, 현장 실습을 대신할 인공적인 미궁과 몬스터들.

날이 다 저물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둘의 산책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둘의 자의로 끝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끝이 났어요.

산책 도중 현자라고 불렸던 크롬웰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호오, 마녀 탈리안이 아니신가. 웬일로 이 늙은이의 제안을 받아주나 했더니…. 그런 작은 보물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크롬웰, 입학서도 봤으면서 이제 와서 뻔뻔하게.”

백발이 된 머리카락에 기다란 수염을 늘어지게 길렀으면서도 주름이 많지 않아, 늙었다는 인상은 없는 노인.

게다가 키 역시 18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 허리마저 꼿꼿이 세웠으니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늙어서 그런지 의심이 좀 많아져서 말이네, 사람을 따라하기라도 하려는겐가? 이치를 벗어난 존재이면서.”

“질의 앞에서 더 떠들면 제안이고 뭐고 없을 줄 알…! …없을 줄 아세요.”

“푸흐흐….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어떠한 심경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이 늙은이는 자네의 선택을 환영하는 입장이니….”

척 보면 척이에요, 질은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쁜 것을 보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요.

뭐…. 탈리안이 만나는 사람 중에서 사이가 좋아 보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워 보이긴 할 것 같네요.

“그래서, 무슨 일로 그런 늙은 몸을 이끌고 저를 찾아온 거죠.”

“정말 몰라서 묻는겐가? 우리 학원의 하늘에 침공 대비용으로 특수 배리어가 설치되어있다고 저번에 설명해주었잖나. 그걸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단숨에 너덜너덜한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렸으면서… 자네야말로 뻔뻔하기 그지없군그래.”

“아?! 그! 그건!”

“학원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이사장으로서, 현자로서 당연한 일인 것을….”

크롬웰의 말에 당황하며 질의 눈치를 살피는 탈리안이에요.

질의 시선이 따가운지 곧바로 시선을 돌려 크롬웰을 당장이라도 구워버릴 듯이 노려보지만, 이건 명백하게 탈리안의 실수니까요.

“설마 잊어버렸다고는 하지 않겠지?”

“하!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제가 그걸 모를 정도로 수준 낮은 마법사로 보이나요!?”

아니, 당황한 탈리안의 모습을 보면 잊어버린 게 확실할 겁니다.

강하게 자신은 그럴 수준 낮은 마법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음…. 꼬마 아가씨? 아가씨가 보기엔 어떤가?”

그러던 중, 갑자기 불똥이 질에게 튀었어요.

“어, 언니가 그럴 분은 아니지 않을까요..?”

“허, 이것 참…. 어떻게 이런 아가씨를 구워삶아 먹은 건지 신기할 따름이군. 겉모습은 내가 얼마 전 입양한 딸과 비슷해 보이는데 말이야.”

“신경 끄세요! 얼른 가요, 질! 더 이상 어울려줄 이유가 없어요!”

“네? 네, 네에..!”

탈리안의 모습은 마치 기 싸움에서 밀린 고양이와도 같았습니다.

싸움에서 졌지만, 그동안 쌓아 올린 이미지가 있기에 억지로 망가진 모습을 숨기려는 고양이 말이에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도도하게 걸어가려는 그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흐트러진 탈리안의 모습이었어요.

크롬웰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기만 하다가, 질을 불러세웠습니다.

“아가씨 이름이 지르니트 페어차일드였던가? 무슨 이유로 마녀와 그렇게 두터운 신뢰 관계를 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친밀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네. 이 늙은이의 말은 새겨듣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아가씨가 크게 상처를 입을 테니.”

“질! 어서 오세요!”

“네에!”

탈리안의 호령에 잽싸게 옆으로 튀어가는 질이었어요.

“각인까지 물려준 것을 보니 어지간히 아끼는 모양이지만…. 마녀도 저 아이도 참 힘든 길을 걸어가려 하는구만. …귀여운 내 딸이나 보러 갈까.”

집으로 돌아가는 탈리안과 질의 뒷모습을 보는 크롬웰은 둘의 귀에 들리지 않을 크기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나이가 늙다 보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자주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기 마련이죠, 오지랖도 그렇구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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