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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23화 (23/189)

〈 23화 〉 입학 준비 (2)

* * *

저녁상을 깔끔히 치운 뒤, 질은 탈리안과 함께 방으로 향했습니다.

식사 도중 들었던 제복을 같이 보기 위해서였어요.

방에 도착한 탈리안은 먼저 옷장을 열어 제복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놨어요.

흰색을 바탕으로 옷깃과 어깨에 빨간색의 날개 문양이 자수로 장식되어 있는 블레이저, 새하얀 플릿 스커트는 주름 사이로 블레이저와 같은 빨간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안쪽에 입어야 할 셔츠 역시 블레이저와 플릿 스커트에 어울리는 흰색이었죠.

“너무 튀는 옷 아니에요, 언니?”

“그래도 이쁘잖아요? 어차피 입는다고 해도 학원 내에서만 입을 옷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질은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학원에 입학하지 않을 테니까 입을 일이 없는 거 아닌가요?”

“그, 그건, 그렇지만….”

옷을 입어보기 위해 손을 뻗던 질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움찔!’하며, 마치 어딘가 고장이 난 장난감 인형처럼 갑자기 멈춰버렸죠.

이를 탈리안이 보지 못했을 리는 없었어요.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눈치가 좋으면서 이 중요한 장면을 놓칠 리가 없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질은 마법 학원에 가는 걸 싫어하잖아요. 그럼 굳이 입어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질?”

그럼에도, 탈리안은 굳이 질이 마법 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먹였어요.

심지어 먼저 제복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탈리안이었을 텐데,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라고 쳐도 괜히 제 발 저린 질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안가도... 안가도 입어볼 수는 있는 거잖아요!”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침대에 앉아서 벽 보고 있을 테니까 갈아입어 보세요.”

탈리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씨이..’ 거리며 옷을 주워들어 갈아입기 시작한 질이었어요.

“...있잖아요, 언니. 언니가 찾는 건 언니의 친구잖아요? 만약 찾았는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질은 탈리안이 틈이 날 때마다 찾으러 다니는 것이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저번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챘나 봅니다.

사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긴 하거든요.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야 하며, 있는 시간을 쪼개서 써가며 찾아내야 한단….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를 자신의 친구밖에 더 있겠어요.

똘똘한 질이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탈리안은 다소 놀란 모양이에요.

그래도 다시 침착을 되찾고 질문의 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면, 질이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나 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해해야죠. 힘이 부족했던 저의 탓이니까요. 그렇다고 친구의 복수를 한다고 해서 제 친구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언니는 언니를 다치게 한 사람들이 밉지 않아요?”

“그럴 리가요. 밉죠, 미워요. 정말 한순간도 밉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왜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 읏?!”

옷을 다 입고 난 질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탈리안의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탈리안은 질을 힘껏 품 안으로 끌어안았어요.

잠깐 놀란 탓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던 질이지만 이내 힘을 빼고 가만히 안겨있기로 했는지 잠잠해졌어요.

“잘 어울리네요, 질.”

“정말 어울려요?”

“네, 아주 잘 어울려요.”

탈리안은 한 손으로 질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서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에 질이 간지러운 듯 고개를 비틀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죠.

더 파고 들어갈 곳이 없다고 생각될 때쯤에, 탈리안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질과 함께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그리곤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질, 당신에게는 조금 무섭고 비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만약에 질이 이름 모를 몬스터, 혹은 남자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가정해보도록 해요. 근데 그 상대가 무척이나 강한 거예요. 제가 이기지 못할 수준의 강함을 가진, 그런 상대인 거죠. 질도 그 사실을 알고 죽었다는 전제하에, 제가 그 상대에게 복수하려고 한다면… 질은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언니 말대로 비겁한 이야기에요. 하지만 언니, 저는... 날개 달린 그림자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뭘 해야 되는 거예요?”

품에 안긴 채로 고개만 위로 올려 탈리안의 얼굴을 바라보는 질.

그렇지만 탈리안은 눈을 감고 있어 잠들어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있는 얼굴만 보여줬어요.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눈을 감은 상태의 탈리안을 본 질은 자연스레 시선이 감긴 눈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 질이라고 해도 탈리안의 긴 속눈썹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진심이 담긴 질문이었음에도 눈을 마주쳐주지 않아서인지, 질은 다시 고개를 내려 탈리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바라봐주지 않았기에 기분이 상해서 그런 것인지, 탈리안의 얼굴을 바라보다 부끄러워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평범한 다른 아이들처럼 살아가면 돼요. 즐겁게 뛰어놀면서 친구를 사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식을 배우고, 언젠가 만나게 될 운명의 사람과 사랑도 하면서,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처럼.”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살려서 마법 학원이라는 더 넓은 세계에 나가,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라는 말이에요. 복수 이외에도 질이 목표로 삼을만한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저만 하더라도 복수는 그만뒀잖아요.”

“그럼.. 언니 말대로 입학은 해볼게요...”

“잘 생각했어요. 착하네요.”

탈리안이 복수를 그만뒀다고 말해서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질은 입학‘은’ 해보겠다고 말했어요.

대화가 마무리에 접어들었는데도 탈리안은 눈을 뜨지 않고 질을 안고 있는 채로 가만히 있었어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질이 질릴 정도로 눈치를 봤지만, 역시 탈리안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 언니.. 오늘은 책 읽으러 안 가시는 거예요?”

“오늘은 왜인지 이렇게 있다가 잠들고 싶어서요, 불편했나요?”

“아니에요! 언니만 괜찮다면 같이 자도 상관없어요..”

같이 잠들고 싶다는 말에 수줍은 얼굴을 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질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는 누군가의 옆에서 자는 게 익숙할 나이대이기는 합니다.

조금 철이 일찍 들거나, 성숙하면 혼자 자는 시기가 더 빨리 찾아오기는 하지만 질은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이니까요.

탈리안은 곧바로 잠드는 듯했지만, 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잠이 들 때까지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어요.

그러면서도 탈리안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천천히 움직였죠.

질이 잠들게 된 것은 30분가량이 지난 뒤였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함께 질이 탈리안과 함께 도서관에 출근하려는 때였죠.

“언니? 안 가요?”

“질, 오늘은 저랑 같이 상점가로 나가도록 하죠.”

“도서관은요?”

“분신들이 대신 열어줄 거예요. 항상 그래왔으니 문제 될 것도 없잖아요?”

상점가를 간다는 말에 도서관을 걱정하지만, 지금 질에게 중요한 건 도서관보다 상점가에 무엇을 사기 위해서 탈리안의 여정에 질이 동행하냐는 것입니다.

탈리안이 자신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면 분신을 시키거나, 혼자 다녀오면 될 일입니다.

그렇다면 질의 물건을 사러 나간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데요.

“어떤 걸 사러 가는 건데요?”

“질의 입학 선물이라고 해두죠.”

“입학 선물..?”

“가방이랑, 옷이랑, 마법의 식을 짜는 데에 도움이 되어주는 보조 스틱 같은 것들을 사러 가는 거예요.”

과연, 입학은 해본다고 말한 질의 선물을 사러 가는 거였다면 둘이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사야 할 물건도 꽤 많아 보이니 도서관에 나가지 않는 것도 당연하네요.

입학 선물이니 하나하나 질의 마음에 드는지 물어봐야 할 테니까요.

서프라이즈랍시고 마음대로 선물을 골라서 사 갔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여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기운 빠지는 일은 또 없을 거예요.

서로 기분이 상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말이죠.

“입학 선물이라니까 좋기는 한데 그렇게 많이 사주셔도 되는 거예요? 돈 많이 들어갈 거 같은데...”

“나중에 질이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면, 그때 갚아주세요.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요. 그래도 질은 재능이 있으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 절대로 늦지 않을 거예요! 늦어도 3년 안에!”

“흐응? 지켜볼 거예요. 자, 가죠.”

탈리안은 현관문을 열어 다른 공간과 연결한 뒤, 질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방금까지 소리치며 호언장담을 하던 질은 탈리안의 손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어요.

3년이라니,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한 명의 어엿한 마법사가 되어보겠다는 말이 되는 건데요.

아무리 재능이 잠재되어있고, 똘똘한 질이라지만 어린아이의 건방짐이 담긴 나왔네요.

이후 집에 온 질이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탈리안이 사준 가방과 옷을 입고 혼자서 패션쇼를 해보았다는 것은 비밀이에요.

마음에 들었으면 기쁜 마음에 그럴 수도 있죠, 안 그런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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