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입학 준비 (1)
* * *
"이 열쇠를 받아두세요, 질."
저녁을 준비하던 중인 질은 옆에서 탈리안이 건네는 금빛 열쇠를 건네받았습니다.
열쇠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작은 사슬이 연결되어 목걸이처럼 쓸 수 있게 되어있었어요.
“무슨 열쇠에요?”
질문해오면서도 탈리안이 준 물건이라 그런지 바로 목에 걸어보는 질이었어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게 너무 눈에 띄는 열쇠 같기도 하네요.
"제 마법의 문을 질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에요. 머릿속에 가고 싶은 장소를 이미지만 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그런 열쇠라고 해둘게요. 당연히 가고 싶은 장소에 가본 적이 있어야 하지만요."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그야, 곧 마법 학원에 입학할 거잖아요? 저랑 떨어지기는 싫다면서요."
"그런..!"
“그러니까 주는 거예요. 보통은 그 학원에 입학하면 정해진 기숙사에서 지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제가 학원의 이사장과 친분이 있어서요.”
그러니까 결국은 떨어진다는 걱정하지 말고 학원에서 차분히 기초를 다지기 위해 공부하라는 말이네요.
하지만 질은 납득하지 못할 거에요.
뜬금없이 학원의 입학서를 멋대로 넣어놓고 무작정 다니기 시작하라는데, 갑작스러운 일도 이만한 게 없겠죠.
게다가 질은 탈리안의 말대로 서로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니 이 결정에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언니 그래도 어떻게….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완전히 떨어져 지내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질. 당장 당신에게 중요한 걸 생각하세요. 어떤 행동을 하면 당신에게 더 득이 될 지를요.”
“하지만 공부라면 언니한테 배우는 방법도..!”
맞아요, 탈리안이라면 그 누구보다 마법에 대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겠죠.
어딘가의 마법 학원에 있는 일개 마법 교사보다 훨씬 더 효율 좋고,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 겁니다.
하지만 탈리안의 생각은 달랐는지, 뒤에 이어질 질의 말을 끊어버렸어요.
“질, 언제까지고 제가 당신의 곁에 있을 수는 없어요.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당신의 부모님도 가족도 아니니까요. 저는 좋게 말하면 당신의 생명의 은인이면서 임시 보호자, 나쁘게 말하면 당신을 구해준 사람….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마녀인 거예요.”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언니...”
상당히 매정한 말이에요.
질을 자신과 친구를 섞어놓은 듯하다고 말한 탈리안은 어디로 간 건지 모를 정도예요.
탈리안에게 있어서 질은 특별한 존재인 건 틀림없을 건데…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말했을 수도 있겠네요.
“질, 당신이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내치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홀로서기의 연습을 해보라는 말이죠. 적어도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가뿐히 해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도록 해요, 입학은 일주일 뒤니까 시간은 아직 충분해요. 7일 뒤에도 싫다고 말한다면 강요하진 않을게요. 대신 복수를 향한 길은 더 멀어지겠지만요.”
“...네에.”
탈리안의 말에 기가 죽어 대답하는 질이었어요.
떨어져 지내는 것이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듣기 안 좋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생각을 해보았을 때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탈리안의 말처럼 차분히 생각해보면 ‘틀린 부분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 거에요.
어차피 탈리안의 아래에서 마법을 배우나, 마법 학원에서 공부하나 결과는 똑같이 복수로 향하는 길이니까요.
강요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싫다고 한다면 탈리안은 자신으로부터 마법을 가르쳐 줄 생각으로 가득할 겁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질의 기분이 많이 상해서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거겠죠.
그래도 저녁은 잊지 않고 만들어 대접하는 걸 보니 마냥 기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뭐, 단순히 탈리안과 저녁을 먹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리고 하나 더 말해두자면…. 질, 만약 당신이 학원에 입학한다고 결정한다면 저는 그곳의 교사로서 일하게 될 거예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놀라운 말은 입학서 만으로 끝이 아니었네요.
요리를 준비하다가도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탈리안을 바라보는 질이에요.
“질, 위험해요! 칼! 칼!”
“앗...!”
너무 빨리 뒤를 돌아본 싱크대에 어정쩡하게 올려놓은 칼을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천천히 기울던 칼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질이었지만, 탈리안이 겨우 마법으로 공중에서 멈춰 세웠어요.
칼은 천천히 다시 싱크대 위로 올라가 바르게 놓여졌죠.
이에 질이 놀라 키높이 의자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이 역시 탈리안의 도움으로 천천히 바닥에 내려오는 게 가능했어요.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나요?”
“죄, 죄송해요.. 그런데 교수라니.. 정말이에요?”
먼지가 묻지 않았는지 옷을 툭툭 털며 일어서는 질이에요.
“당신이 입학한다고 결정을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언니 도서관은 어떻게 해요..?”
“도서관은 평소대로 운영할 거예요, 분신들만 보내놓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탈리안이 교수로 일하게 된다면, 질이 서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으면 질도 별말 없이 마법 학원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텐데….
왜 이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말을 전하는 걸까요.
“그리고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옷장에 제복을 넣어놨으니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세요. 제복이 상당히 이쁘더라구요. 저번에 한 번 입어봤었지만….”
“언니도 입는 거예요?”
“저는 교사로서 가는 거니까 입을 리가 없죠, 질.”
“그렇구나...”
질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다 드러날 정도로 표정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교사가 교복을 입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니까 말이죠.
저번에 잠깐 입었던 것은 탈리안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 모습이 상당히 어울리긴 했다고 해도, 탈리안이 교복을 다시 입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겁니다.
“저녁은… 아직인가요?”
“얼마 안 남았어요! 어제는 기름진 요리였으니까 오늘은 깔끔한 걸 먹어보려고 래비체 샐러드를 준비했거든요.”
“래비체라면 과즙에 숙성해서 익힌 생선을 말하는 거죠? 거기에 샐러드라니….”
“생각한 것보다 맛있을 거예요! 정말로요!”
이름만 들어본다면 어느 나라의 괴상한 생선 파이가 생각나는 것만 같지만, 질이 생선을 그대로 가공하지도 않고 샐러드에 때려 부을 리는 없을 거예요.
생선 살을 작은 큐브 모양으로 잘라내어 새콤달콤한 과일과 야채를 섞은 요리가 보입니다.
재료로 들어간 생선이 꽤나 컸던 모양이에요.
“…으, 아무리 그래도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언니! 편식은 나쁜 거예요!”
“아, 알았어요…. 뭐어… 비주얼은 나쁘지 않네요.”
질이 식탁으로 가져온 그릇에 담긴 샐러드는 겉보기에는 괜찮았어요.
푸른 야채와 빨간 과일의 색 조합은 보통의 샐러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거예요.
큐브 모양의 생선도 색이 확 튀는 게 아니라서, 샐러드 소스에 버무려진 모습을 보면 먹을 만할 것 같기는 했어요.
데코를 위해 향을 내는 잎을 잘게 잘라 올려둔 것도 샐러드를 더 맛있게 보이도록 했죠.
정작 탈리안은 포크로 콕콕 찔러보기만 할 뿐 입에 가져가지는 않았지만요.
“언니!”
“아, 알았다니까요…?”
이 식사 시간에서만큼은 질이 탈리안보다 더 높은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결코, 냄새도 나쁘지 않은데 탈리안이 왜 겁을 먹고 샐러드를 먹으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새콤달콤한 향은 침샘을 자극하기에 적절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뚫어져라 쳐다보는 질의 시선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결국 입속으로 가져간 탈리안이었어요.
“으음…. 의외네요…. 이런 게 맛있다니….”
“제가 만든 요리가 ‘이런 거’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질, 놀리는 건 그만 해요.”
“놀린 거 아니에요! 그래도 맛있다니까 다행이에요, 언니.”
작은 사고와 탈리안의 반찬 투정이 이어지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어요.
샐러드 말고도 크림과 면을 사용한 메인 요리도 있었으니 배를 채우기에는 적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언니, 저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제복을 받아도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돈이라면 지불했으니까요. 입학하지 않더라도 워낙 이쁜 옷이라서 평소에 입고 다녀도 될 옷이에요.”
“언니가 이쁜 옷이라고 하니까 좀 기대되네요.”
“기대해도 좋아요. 정말로, 이쁜 옷이거든요.”
이미 입어본 경험자의 말은 믿을만한 가치가 있죠, 그것도 탈리안이라면 더더욱이요.
질도 아예 제복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닐 겁니다.
그야, 한창 옷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여자아이잖아요.
어쩌면 제복을 입어보고 학원에 입학해도 좋다고 생각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