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마나의 각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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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도서관이 폐관할 시간이 되기까지, 질은 탈리안이 있는 비밀의 방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탈리안을 처음 보았기 때문일까요.
어떤 이유에서든 질에게 있어 지금의 탈리안은 무서운 공포의 대상과도 같을 거예요.
그녀가 뿜어내는 마나 주변에 있을 때마다, 두려움과 섬뜩함의 비슷한 감각을 느끼는 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문제라면 이 사실을 탈리안도 그렇고, 그녀의 분신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실리아는 비밀의 방에 아비를 안내한 뒤에 도서관의 일이 바빠 그대로 사라져서, 질을 신경 써주질 못했거든요.
그렇기에 질이 문 건너편에서 이야기를 엿듣을 수 있던 거겠죠.
왜 질이 이야기를 엿듣을 생각을 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어쨌든, 평소처럼 도서관의 문을 닫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질은 도서관의 현관에 오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도서관의 이곳저곳을 탈리안의 분신들이 찾아 돌아다녔지만, 도서관 그 어느 곳에서도 질은 발견되지 않았죠.
이에 탈리안과 분신들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을 거예요.
말도 없이 사라진 질이 어디에 있을지 말이에요.
만약 도서관 바깥으로 나갔다면 제아무리 탈리안이라고 해도, 이 넓은 수도에서 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달리아, 실리아는 동쪽 시가를… 넬리아와 필리아는 남쪽 시가, 밀리아는 상업지구를 찾아보도록 해요. 저는… 공중에서 질의 마나를 추적해볼 테니까요."
탈리안의 지시에 일제히 흩어지는 모습.
사람들에게 다섯 쌍둥이로 알려져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흩어져서 다닌다면 몇 명으로 다니든 의심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의심받는다고 해도 잘 해결하겠지만요.
분신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 탈리안은 도서관의 제일 높은 기둥으로 올라서서 수도를 내려다봤습니다.
저녁 시간인데도 정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개중에는 노숙자도 상당수 섞여 있었어요.
수도인데도 노숙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질의 마을이 재앙으로 인해 전멸당했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이름 모를 다른 작은 마을도 같은 상황일게 당연한 거예요.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든 것도 이상한 건 아니죠.
문제라면, 정말 사소하겠지만, 문제라면… 이로 인해 치안이 조금 나빠졌다는 거예요.
특히 사람이 붐비는 곳이나, 뒷골목 같은 인적이 드문 곳은 더 그렇겠죠.
그러니 질에게 있어서 이 수도라는 장소는 탈리안이나 분신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꽤 위험한 곳입니다.
이런 시기라면 노숙자뿐만 아니라 노예상도 활개를 치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더욱 탈리안은 더 초조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사람은 초조하면 머리 회전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탈리안은 그런 경우치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편은 아니었지만, 작은 실수가 몇 가지 있을 뿐이었죠.
질의 마나를 추적하기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말이에요….
그 과정 중에서 하늘에 정말 커다란, 하늘을 뒤덮을만한 크기의 마법진을 그려냈다는 실수를 했을 뿐이에요.
처음에는 탈리안의 손바닥보다 작았던 마법진이 점차 커지더니 일순간에 수도 전역을 뒤덮을 만큼 커져 버렸죠.
뭐, 마녀가 하는 작은 실수라면 이정도야 작은 실수의 축에 속하는 것일 겁니다.
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하늘을 쳐다본 건 탈리안에게 있어서 고려할 요소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어디, 어디에요…."
마법진에서는 가늘고 기다란 마나 회로가 탈리안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뻗어져 나와 지면에 박혔습니다.
이게 질의 마나를 추적하는 용도의 물건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지 탈리안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기기 시작했어요.
탈리안이 질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지금껏 많은 이들의 죽음을 봐왔기 때문에 더 이상 주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오랜 기간을 살아온 탈리안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그동안 함께 한 정이 들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이전에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바라봤기 때문에?
뭐가 되었든 보는 이마저 불쌍히 여길 만큼 불안해하는 모습이에요.
"밀리아…? 찾았다고요?"
놀랍네요.
마법보다 육체로 뛰어다니며 찾은 게 더 빨랐다는 점이 말이에요.
뭐가 됐든 질을 찾았다는 희소식에 탈리안은 왼편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마법을 사용해 날아갔어요.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거예요.
탈리안이 밀리아와 질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질은 밀리아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어요.
마치 닿는 것조차 거부하겠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수고했어요, 밀리아."
"…네."
"그리고 질…."
급히 밀리아를 그림자 속으로 돌려보내고선 질에게 뭔가 말하려다 마는 탈리안이었어요.
혼내려고 했던 걸까요, 아니면 걱정했다고 말하려고 했던 걸까요.
말을 거둔 탈리안은 그저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해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섰어요.
질이 자신이 다가오는 모습에 겁을 먹는 모습을 보고서 그 자리에 멈춘 거였어요.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어, 손바닥이 보이도록 한 손을 내밀었죠.
"...언니는 누구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탈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설마하니 질이 탈리안을 몰라보고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던 분신을 보고 실리아인 것을 눈치챘었으니까요.
혹은 탈리안이 질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를 잘못 본 것도 아니겠죠, 마녀인데.
"…저는, 누구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언니가 그 날개 달린 그림자들하고 똑같은 분위기의 마나를 가진 거예요?"
"…."
재앙을 직접 겪어보고, 이제는 마나와 친숙해진 질로서는 그 둘에게서 상당히 흡사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것도 이해가 갈 만하죠.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수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마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게다가 탈리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대로면 상황이 나빠지기만 할 텐데요.
"질, 제 이야기를 들었었잖아요. 그래도 제가 무서운가요?"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무섭지 않다고는 하지만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에 탈리안은 대답을 재촉했어요.
답답해서 그런 건 아닐 거에요, 질을 어르는 것에 가까웠죠.
조심히 손을 뻗어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뺨에 가져다 대어 천천히 어루만졌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경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가늘게 떠 탈리안의 손을 바라보며 고민했죠.
이에 탈리안은 완전히 무릎으로 서는 자세를 취해, 뺨을 만지던 손을 거둬가 아예 질을 품에 안아버렸습니다.
질은 일순간 당황하는 낌새를 보였지만… 그렇다고 또 거부하지는 않았어요.
“…질, 제가 당신에게 무언가 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였나요? 처음에야 조금 까칠해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그런가요?”
“그건, 아니에요... 아니지만, ...미안해요. 언니가 너무, 제가 모르는 다른 사람처럼 보여서 도서관을 뛰쳐나왔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는지, 질은 바로 사과를 했어요.
뒷말을 들어보면 사실 나머지를 듣지 않아도 뻔한 말이기는 합니다.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는 건 결국 자기가 알던 탈리안과 달라 보였기 때문에 무서웠다는 거겠죠.
한껏 품은 적의에 더해 그 그림자들과 같은 분위기를 뿜었었다니 충분히 그럴 만해요.
탈리안도 이 사실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지라, 질을 발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은 것일 겁니다.
“미안해요, 질. 다음부터는 절대로 화내지 않을게요. 그래도 저와 같이 있는 게 무섭다거나 꺼려진다면…. 그때는 저와 떨어져서 지낼 수 있는 집을 준비해줄게요.”
“아, 아니에요! 저는 언니가 싫다거나 무서운 게 아니라..! 그게..!”
“…그래요, 그럼 용서해줄래요?”
“저는 언니한테 화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언니가 잘못한 것도 없어요... 잘못이라면 오히려 제가 멋대로 도서관을 빠져나와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라는 거에요.
"괜찮아요, 제가 질을 신경 쓰지 못했던 탓이니까… 다만, 다음부터는 조금만 덜 걱정하게 해주세요."
"...네."
"…이제 같이 돌아가도 될까요?"
두 팔로 껴안고 있던 질을 풀어주고 얼굴을 마주 보며 상냥하게 말을 걸자, 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직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는 건 못하는 듯하지만, 탈리안은 굳이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고선 질의 옆에 서서 손을 잡아 천천히 걷기 시작해 집으로 돌아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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