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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3화 (13/189)

〈 13화 〉 자질 (3)

* * *

"아니 그러니까 지금 그게 말이 되냐고~!"

질의 마법 회로 이야기가 흐지부지된 지 며칠 지났을 때, 도서관에서는 한가지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손님 중 한 명이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 저번 주만 해도 있던 책이 누가 먼저 빌려 갔는지 없다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죠.

책을 하나 더 구비해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큰 도서관에 책을 하나만 가져다 놓는 게 말이 되냐, 도서관으로서의 태도가 안 되어있다.

이와 같은 말들을 뱉어내는 것이었죠.

우연히 타이밍이 맞물려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책을 빌려 간 것이었을 겁니다.

차라리 차분히 '내가 이런 책을 빌리고 싶으니 다음에는 준비해둬 주세요.'라고만 하면 서로가 좋을 텐데요.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요, 오히려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덕분에 달리아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힘껏 참아 작은 미소를 머금어 침착하게 말했어요.

"손님, 재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구요…. 다음부터는 책을 여러 권 더 구해놓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거야! 내가 그런 말을 들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이런 큰 도서관에 책이 몇 권이 되는 줄 알고 하나하나 다 체크하는게 가능할까요.

아무리 탈리안이 능력이 좋은 마녀라 할지라도 분신들 하나하나가 다른 성격과 행동을 가진 인격체인데, 실수 정도야 할 수 있는 일이죠.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그건 그거대로 이 세계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죄송하지만, 손님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주셔야… 도서관에 계신 다른 분들께 피해가 가는…!"

"저 사람들만 손님이야! 어! 내가 책을 못 빌린 건 중요하지 않다? 이거지? 지금!"

질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달리아가 걱정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어요.

진상 손님의 마지막 말에 달리아의 오른쪽 눈썹이 잠깐 들썩였지만, 그 누구도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어요.

문제는 오랜 시간 살아온 탈리아의 분신인 달리아가, 나이 지긋하게 먹은 아저씨나 할아버지도 아닌, 새파랗게 젊은 청년한테 저런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겁니다.

"손님, 계속 큰소리로 항의하시면… 저희 도서관에서 나가주셔야 합니다."

사실 이 일이 시작된 것은 30분도 더 되었거든요.

슬슬 달리아의 뚜껑이 열릴 시간이, 부글부글 끓던 화가 폭발할 시간이 되기는 했어요.

교묘하게 말만 바꿔 같은 말만 해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청년은 달리아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겁도 없이 잠들어 있는 사자….

마녀를 건드는 것이겠죠.

"하! 태도가 글러 먹었네! 이래가지고 도서관이 제대로 굴러가기나 하겠어! 내가…!"

"…손님."

"윽, 뭐… 뭐!"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요.

1초도 되지 않을 수준의 찰나의 순간.

탈리안이 질의 투정을 받아 주어 처음 별장으로 데려왔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마나와 정령이 검게 물들어버려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던 때를 말입니다.

그때와 같은 섬뜩한 기운이 탈리아의 주변에서 방출되어 진상 손님을 짓눌렀던 거에요.

이 역시 질만은 눈치챘지만, 도서관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강 건너 불구경의 자세를 유지합니다.

"손님 계속 이렇게 도서관의 업무에 지장을 주시고 다른 분들께 피해를 주시면 위병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 위병? 불러봐! 누구 편을 들어줄지 기대되네! 하루아침에 생겨난 도서관 편을 들어줄지, 선량한 시민의 편을 들어줄지!"

저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르겠네요.

그때 질이 다가와 달리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습니다.

"질? 지금 손님을 상대해야 하니까 나중에…."

"싸우지 말아요, 언니…."

"…흐읍, 후우."

반짝이는 눈빛으로 싸우지 말라며 부탁하는 질의 모습에 달리아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냈어요.

자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모습 하며, 자신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얼굴, 나머지 한 손은 있을 곳이 없어 주먹을 꼭 쥔 채로 가슴팍에 가져다 댄 자세.

달리아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이 상당한 용기를 내고 자신에게 다가온 것임을 알 수 있었어요.

불안하면서도 달리아가 화내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또는 달리아가 손님으로부터 화를 입게 될까 걱정되어서.

자신을 생각해서 다가와 싸우지 말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질이 얼마나 귀엽고, 장하고, 대견할까요.

"저는 싸우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질."

그렇기 때문인지, 달리아는 무릎을 꿇어 질을 살포시 안아주었어요.

다만 진상 손님은 이제 완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달리아를 보고서 화가 났나 봅니다.

이전에 비할 데 없이 힘껏 구겨진 얼굴을 하며 점점 다가오는데, 분명 좋은 의도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무슨 생각인지 달리아가 눈치채고 손을 편 채로 남자를 향해 뻗었지만….

남자는 달리아의 신체 중 아무 부위나 붙잡으려 했는지 똑같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습니다.

"손님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지만 닿지 않았어요.

무언가의 투명한 막에 막혀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에 놀란 남자는 팔을 다시 거둬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죠, 닿지 못한 게 아니었던 거에요.

팔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공중에 완전히 고정되어서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죠.

남자의 모습은 상당히 꼴불견이었습니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공중에 묶여 요지부동인 팔, 그것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발악하는 게 언뜻 보기에는 쥐덫에 걸린 쥐새끼 같기도 합니다.

어깨 위로만 움직이는 남자를 보고선, 한쪽 팔로 자신의 몸에 어울리지 않는 힘으로 질을 안아 올리는 달리아.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서관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쥐새끼한테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죠."

"하? 뭐라는 거야! 마법 좀 쓴다고 뭐라도 된 줄 알아!!"

정작 마법에 걸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건 남자 쪽인데, 이 사람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수도 외곽에서 머리 좀 식히다 오세요."

"어, 언니! 잠깐만요!"

"…질?"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다 보고 있는데…. 저랑 같이 밖으로 나가서 이분이랑 천천히 이야기해요…."

솔직하게 말해서 이목을 끌어도 너무 끌긴 했습니다.

이 사건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 방해라고 생각된 사람들은 진작에 도서관을 빠져나갔어요.

그게 아닌 사람들은 전부 주변에 몰려들어 달리아와 남자의 말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죠.

다른 분신들이 위험하니까 다가오지 말라며 충분히 막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막는 것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너무 열이 오른 나머지 주변을 살펴보는 것을 잊은 달리아는 그제서야 질의 말을 듣고 남자를 끌고 밖으로 나갔죠.

달리아와 질이 모습을 보인 것은 정확히 1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둘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사람의 관심이 둘에게 집중되었어요.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달리아가 질의 눈높이에 맞춰 바라보고는….

“질, 도서관에서 일해보지 않을래요?”

…라는 말을 하며 모두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 모두에는 질도 포함되어있었어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손님을 돌려보낸 것 같은 상황인데, 갑자기 질에게 도서관의 일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사건 해결의 중심에는 질의 영향이 컸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질이 어떤 행동을 했길래 진상 손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갔는지는 모릅니다.

나갈 때마저 달리아의 마법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가던 남자였거든요.

하지만 질의 이후 행동을 본 달리아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을 겁니다.

무엇을? 그거야 무작정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화를 내는 손님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겠죠.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의 일을 해보지 않겠냐라고 권했을 거예요.

“제가요...?”

“질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처음이니까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겠지만… 질도 나름 속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잖아요? 아무 대가도 없이 탈리안의 집에 얹혀사는 것에 대해서요.”

“그건....”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일해보는 건 어때요? 제가 볼 때, 질은 충분히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는 자질이 보여요. 그리고 그다지 바쁜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다른 분신들이나 탈리안이 이 상황에 개입하는 일은 없었어요.

이 상황을 보며 판단했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죠.

문제는 질의 대답인데… 질로서는 나쁜 제안은 아닙니다.

달리아의 말처럼 전부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했을 거예요.

하지만 질에게는 마법을 쓸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목표도 있으니까요.

일하면서 동시에 공부를 하는 건 어린 나이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괜찮아요. 탈리안도, 저희들도 본격적인 일을 시키지는 않을 거예요. 질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탈리안과 그 분신들이 모를 리가 없죠.

당연하다는 듯이 잡일만 해도 된다고 말하며 계속 꼬드기는 모습입니다.

약간 고민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질의 근육이 풀린 표정을 보니 거의 다 넘어온 것 같네요.

“...그럼, 할게요.”

“좋아요, 그럼 어떤 일이 있는지 소개시켜 줄 테니까 천천히 알아가도록 하죠.”

대충 상황이 정리된 것 같은 느낌에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이미 관심이 식어, 하던 일에 집중했습니다.

책을 다시 읽는다거나, 빌려 간다거나, 반납한다거나… 그런 일상적인 것들이 담긴 일들을 말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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