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자질 (2)
* * *
“미리 물어보겠어요, 질. 대답이야 듣지 않아도 뻔하겠지만… 마법을 배우겠다는 그 의지, 끝까지 변하지 않을 수 있나요?”
탈리안에게 있어서 뭔가 좋지 않은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미리 질문을 던져 다짐을 받아내겠다는 듯한 말을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적어도 마나가 없다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진작에 탈리안이 말했을 거예요, 예를 들자면 이렇게….
‘질, 당신의 몸에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마법을 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질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들어보도록 해요.
“…언니는 왜 제가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걸 그렇게 반대하는 거예요?”
탈리안이 무슨 말을 하든, 이제는 마법을 배우는 것을 반대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해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서 반대한다면 누가 납득하겠어요.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면서 이해해주고 넘어가는 것은 웬만한 성인成人은 생각도 못 할 성인?人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 할 생각입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노력을 몰라주고 반대만 하는 거야!’라며 화를 내도 모자랄 상황이라는 거에요.
그야 일주일이라는 좀 되는 시간이 지나갔으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법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한다? 이건 질로서도 받아들이기 조금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탈리안의 걱정도,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을 쓰기 위해서라면 마나의 각인이라는 것을 새겨야 한다고 했었잖아요.
각인을 새기는 과정에서 심히 고통스럽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불안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자신이 구해준 아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누가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겠어요?
“…질, 지금은 그저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얼마나 힘들더라도 버텨낼 자신이 있어요! 꼭 복수할 거예요!”
가족을 잃은 아픔이 상당했나 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순식간에 지나간 탈리안의 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질이 보지 못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당신의 몸속에는 평범한 사람보다 수십 배는 많은 마나가 잠들어 있어요, 질. 마도구가 반응을 보이다가 사그라드는 건 이 마도구의 한계치가 질의 잠재능력보다 낮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보통이라면 마도구가 망가지거나 하지만, 이 마도구를 만든 사람은 실력이 꽤 좋은가 봐요.”
“그럼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몸속에서 마나가 순환하는 길, 편하게 마나 회로라고 칭하도록 하죠. 그 마나 회로가 막혀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녹이 슬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왜 질에게, 고작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골 촌뜨기에게 보통 사람의 수십 배나 되는 마나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복수를 갈망하는 질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일이 아닐 수가 없네요.
이걸로 복수에 한걸음 가까워졌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는 당신이 마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해요. 괜히 복수한다고 마법을 배웠다가… 복수도 못 하고 죽어버린다면 저는, 저는….”
아무리 질의 마법과 복수를 향한 의지가 강렬하다 하더라도, 평소답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이 여럿 섞인듯한 탈리안의 모습을 본다면 나오려던 말도 다시 목 아래로 삼키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어 복수에 침식되어가는 질이지만, 자신을 구해준 이가 자신의 복수를 원치 않는다면 잠깐이라도 망설여지는 게 당연할 거라구요.
그리고 저렇게 슬픈 얼굴을 보고 누가 강한 태도로 밀어붙이겠어요.
갑자기 슬픈 얼굴을 지으니 연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탈리안이 설마 질을 속이기 위해서 연기를 할 위인이 될까요?
…전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장담하긴 어렵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점점 눈이 촉촉해지는 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잖아요.
“그! 그런데요! 언니, 마을에 모험가들이 왔을 땐 재앙이 어떻다느니 했는데 수도는 멀쩡하네요!!”
“…그건 제가 다섯 쌍둥이로서 수도의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이 커요.”
어색하다는 말의 범주를 넘어선 분위기에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돌리는 질이었습니다만… 이로써 마법을 쓰게 되는 것에 대한 길이 다시 막혀버렸네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탈리안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은 질의 애늙은이다운 면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맞춰 바로 대처해버리는 센스를 가진 게 10살 꼬마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의 질문이 급조되었다거나 엉성해서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그런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재앙이 뿌리내렸다.’
하나의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파괴될 수준의 재앙을 직접 겪어본 질로서는 수도가 괜찮은 것에 대해서 의심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을 겁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금방 울 것 같던 기분을 회복한 탈리안이 계속 이야기해 주겠죠.
“질… 당신에게 마녀로 불리는 제가 정체를 숨기고, 다섯 쌍둥이라는 이상한 형태를 갖춰 도서관을 운영하는데도 수도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확실히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는 합니다.
이렇게 큰 도서관이 다섯 쌍둥이만으로 운영될 리가 없죠, 하지만 수도에서는 아무런 간섭조차 해오지 않았습니다.
무엇 보다 간과해서 안되는 점은 탈리안을 포함해, 그 분신들은 도서관의 개관 시간과 폐관 시간에도 출퇴근하며 마법의 문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다섯 쌍둥이가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재앙으로부터 건재한 수도가 이상한 점투성이인 탈리안에게 도서관을 맡겨,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 이상한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다는 겁니다.
이유라고 해봐야 뻔하지 않겠나요.
“재앙으로부터 수도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분신들이 힘을 썼죠, 그마저도 평범하게 실력이 뛰어난 모험가를 연기하면서요. 함락될 뻔한 수도를 지켜내는 데에 큰 공을 세운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럼 수도를 지켜내서 봐주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당신이 마녀라고 부르는 제가 신분을 증명해주는 모험가 카드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하지만 여기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거예요. 운 좋게 마법 실력이 뛰어난 다섯 쌍둥이가 수도를 구해줄 리가 없다는 걸 말이죠.”
출신 불명, 신분 불명, 실력을 숨기고 있는 잠재력 미지수의 다섯 쌍둥이.
이를 감안 했을 때에 탈리안을 섣불리 건들 수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비단 수도만 지키던 것은 아니었어요. 재앙이 일어난 뒤로부터 모험가 길드에서 카드를 발급받아 의뢰를 받아 분신을 여러 곳으로 보내 재앙으로부터 여러 곳을 지켜냈죠. 재앙은 세계 중심에서 천천히 퍼져나갔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힘쓰는 탈리안을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정체를 밝힐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수도, 아니 이 대륙의 모두가 정한 암묵적인 룰이었다는 겁니다.
“고정 수입을 위해서 약간 무리를 하긴 했지만… 도서관 하나 지을 공간 정도는 봐줬겠죠. 그러니까 지금도 모른 척해주는 것일 테니까요.”
“...네?”
“재앙 때문에 수도 한 가운데에 공터가 생겨서 그 자리에 이 도서관을 만든 거예요.”
“...언니.”
“지, 지켜줬으면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요! 제가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상당히 뻔뻔하고 오만한 대답이네요.
이건 어린 질이 봐도 탈리안이 잘못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탈리안의 성격을 봤을 때, 도서관도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냈을 것 같은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꽤 당황스러웠겠네요.
그래도 이로써 왜 수도가 재앙으로부터 멀쩡한지에 대한 답은 충분히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질의 얼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왜 수도랑 제가 살던 마을은 재앙이 다른 시간에 온 거에요?”
“그야 당신이 살던 마을은 대륙 북동쪽의 거의 끝에 존재하는 마을이니까요. 수도는 대륙이 찢겨나가며 생긴 바다에 열린 재앙의 문에 비교적 가까웠으니까… 다를 수밖에 없죠.”
“언니는 엄청 자세하게 알고 있네요. 모르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좀 똑똑하긴 하죠.”
재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에 질은 상당히 만족한 느낌입니다만, 원래의 주제였던 질의 마법 회로가 녹슬었다는 것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질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많으니까요.
아직 10살, 마법을 배우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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