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자질 (1)
* * *
급작스럽지만 질이 공부를 시작한 뒤로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평온한 일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날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에요.
마법의 독학 건으로 인해 입장 차이가 생겼던 질과 탈리안의 서먹했던 사이도 일주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에 희석되어 괜찮아졌습니다.
덕분에 실리아가 질의 공부를 돕는다고 해도 탈리안의 별다른 간섭이 끼어들 일은 없었어요.
뭐 저번처럼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지만, 그 문제는 넘어갑시다.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도서관에서 책을 펼쳐놓은 채로 끙끙 앓고 있는 질의 모습, 분명 지식은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을 텐데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겠죠, 마나를 느껴보기는커녕 마나의 ‘ㅁ’자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요.
마나의 감지란, 몸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마나와 몸 밖의 자연 그대로의 마나가 공명하여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보이는 광경은 비슷할지라도 마나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죠.
타인이 마법을 써서 공명하는 마나를 목격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저 본다는 행위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마나를 느낀다’라는 것은 몸속의 마나를 활성화해 자연의 마나와 아귀를 맞춰 공명 시켜야 가능한 일인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책을 읽고, 책에 적힌 대로 따라 해봤자, 마법에 대한 감각을 겪어본 적이 없는 질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실리아 언니... 저는 재능이 없는 걸까요?”
“실리아는 질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설령 재능이 없더라도 마나의 각… 아아, 탈리안 알았다구요! 진짜 잔소리는….”
무언가의 도움을 주려 했는지는 몰라도 탈리안이 개입한 것을 보면 질에게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리아가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할 인물이 아닌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만, 탈리안이 보기로는 실리아의 도움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거겠죠.
이런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는 실리아의 모습은 이제 익숙한지, 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저 책을 읽습니다.
하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아, 대신에 질! 실리아가 좋은 걸 떠올렸어요. 잠깐 기다리고 있을래요?”
질을 도와주는 마음씨는 참 보기 좋습니다만, 실리아는 자신이 할 일은 다 하고서 돕고 있는 걸까요?
넬리아의 억울함이 담긴 마음의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오는 듯한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너무나도 빨리 자리를 뜬 탓에 질을 대답도 못 하고 사라져가는 실리아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직도 혼자서 책을 읽는 질이 기다린 시간은 최소 30분 이상.
기다리는 동안 실리아를 제외한 다른 분신들이 짬이 날 때마다, 질의 상태를 확인하러 5분에서 10분씩 곁에 있다 돌아갔어요.
실리아에게 일을 떠넘겨 맡은 넬리아부터 첫날에 만났던 달리아와 조용히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와 보았던 필리아, 마법에 관한 책 한 권을 전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밀리아까지.
이로써 얼굴도장을 다 찍기는 했네요.
물론 일주일간 아예 만나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질이 찾아갔던 것이니까요.
그녀들 자신도 질에게 찾아온 것을 보아 서로 꽤 친밀해졌나 봅니다.
모든 분신들과 만나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질의 어깨에 올려지는 얇고 잡티 하나 없는 아름다운 손이 얹어졌습니다.
“질, 실리아 다녀왔어요! 오늘따라 문을 안 열고 있는 매직 아틀리에가 얼마나 많았는지… 정말 곤란했다니까요?”
갑자기 얹어진 손에 놀란 질이 돌아보자 그곳에는 실리아가 한 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어요.
모양을 봐서는 뭔가 사 온 것 같은데, 종이 가방의 입이 봉해져 있어 무슨 물건인지 보이지 않았죠.
“뭘 사러 갔다 오신 거에요?”
“…후후, 궁금하신가요? 궁금하시죠? 과연 실리아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까지 구해온 물건은 뭘까요?”
뜬금없이 퀴즈를 내서 맞춰보라는 실리아입니다만, 이미 힌트는 나와 있습니다.
매직 아틀리에.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이름 따라서 마법 공예품을 파는 가게입니다.
하지만 보통 마법 공예품을 사 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법의 'ㅁ'자도 구경해보지 못했던 질이 뭘 사 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질을 보고 실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 가방의 입구를 뜯어 내용물을 꺼내놨습니다.
"정답은, 손을 올려놓은 사람이 마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마도구랍니다! 이름하여 마나 등급 판독기!"
이 마도구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작명 센스 하나는 처참하네요.
물론 마도구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훌륭합니다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마나 등급 판독기를 왜 가져왔는지가 더 중요하겠네요.
일주일간 질의 공부에 진척이 없는 게 설마하니, 마나가 없어서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무리 마녀라도 타인이 얼마만큼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가는 알 수가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이거 조금 이상하게 생겼네요…."
이 마도구를 보고 질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매끈하고 투명한 유리구슬이 중앙에 위치해, 그 주변으로 내부가 비쳐보이는 막대에 눈금이 새겨져 있었거든요.
손을 올려놓는 곳이라고는 큼지막한 유리구슬 외에는 없어 보이니 이상하다고 말 할 만했네요.
"그런데 이건 왜 사 오신 거에요?"
"일단 이 위에 손을 올려보실래요?"
실리아는 유리 구슬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실리아의 말에 따라 질이 손을 얹자마자, 유리구슬이 작은 빛을 내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네, 작은 빛이 발한 뒤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언니?"
"이, 이상하네요… 이럴 리가 없는데? 실리아가 한번 해볼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마도구를 채가서 손을 얹어보는 실리아.
하지만 이번에는 질이 손을 올렸을 때와 달리 유리구슬은 본 적 없는 눈 부신 빛을 발하며, 눈금이 달린 투명한 막대의 왼편에서 보라색의 물이 차올랐습니다.
그 물은 점점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차오르기 시작해 막대의 8/10을 채워버렸어요.
분신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상당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마도구는 정상인 거 같은데… 잠시만요, 질."
이번에는 다시 손을 떼고 질의 손을 잡아 유리구슬에 자신의 손을 함께 얹었습니다.
아까와는 다른 빛이 잠깐 발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꺼져버리는 유리구슬의 빛.
이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도구가 불량일 리는… 실리아가 물건을 잘못 볼 리가 없는데요…."
"저, 언니? 이건 도대체…."
"아, 네… 질? 탈리안이 부르는 데 가볼까요? 지금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고 하네요."
그 말에 질은 상당히 기뻐했어요.
자신이 혼자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한 날로부터 7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기까지, 탈리안은 아무런 간섭도 해오지 않았었어요.
막지는 않았다지만,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방치해놨죠.
그런데 정작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히니 그 벽을 넘기 위한, 또는 벽을 허물고 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움을 주겠다고 부르는 거 아니겠어요.
이러나저러나 질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는 걸 방금 말로 증명해준 거나 마찬가지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리고 탈리안의 비밀의 방에 도착한 질. 무사히 질을 데려다준 실리아는 다시 일하러 돌아갔습니다.
방금까지는 질이 책을 찾기 위해서 비밀의 방을 나가 있었기에, 그 틈을 타서 탈리안이 비밀의 방에서 자고 있었죠.
자면서도 분신들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질의 마나에 관한 일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실리아가 사 온 마도구는 가져오셨나요?"
"여기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질이 한 손으로 건네는 건 예의가 없기도 하고, 마도구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기에 질의 한 손으로 잡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두 손으로 건네주는 거겠지만, 어린아이의 몸으로 공손해 보이려는 모습을 보이려 하니 상상 이상의 장면을 뽑아내네요.
마치 상장을 받아와 기뻐하는 아이를 보는 듯합니다.
상장만 아닐 뿐이지, 질의 표정은 탈리안의 말을 기대하고 있는 기쁜 표정이거든요.
자신을 어떻게 도와줄지 궁금해하는 기대감에 찬 표정이요.
"…딱히 마도구에는 문제가 없네요. 질, 다시 손을 올려볼래요?"
"이렇게요?"
"네, 그대로 가만히."
그 상태로 질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는 탈리안입니다.
실리아와 같은 행동을 하지만, 동시에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곧바로 손을 떼었어요.
유리구슬에서 빛이 발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잠깐 빛이 나려다 말긴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였죠.
탈리안이 고민하고 입을 열지 않는 모습에 질의 기대감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질에게 있는데, 이걸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저한테 있는 문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에 마른 침을 삼키고, 탈리안의 말을 기다리는 질.
그리고 탈리안이 꺼낸 말은 예상 외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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