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메모리얼 스톤 (2)
* * *
탈리안과 질이 도착한 뒤뜰, 그곳에는 질의 키만 한 돌이 하나, 그보다 약간 작은 돌이 또 하나, 제일 작은 돌이 마지막 하나.
세 가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일 큰 돌은 위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로 한가운데에 네모난 구멍이 나 있어 무언가를 둘만 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 구멍에는 수많은 각이 져 있는 투명하고 광이 나는 보석 알이 유리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마치 비석과 같습니다.
나머지 두 개의 돌도 생긴 모양만 다를 뿐, 큰 틀은 제일 큰 비석과 비슷했습니다.
안에 들어 있는 보석의 모양만 달랐다고 해도 되겠네요.
"무덤이었던가, 묘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죠? …만드는 데에 고생 좀 했으니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미리 설명해두자면, 탈리안에게는 질에게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으로 해줄 의리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해준 것만 해도 상당히 수고로운 일을 해준 거예요.
처음의 그 무리한 요구를 이제서야 받아들여 준 이유가 뭘까요.
"고마우면 입 다물고 있지 말고 감사 인사라도 하는 게 어떤가요, 질."
"...아, 감사합, 흑.. 우으..."
입을 떼자마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황급히 옷 소매로 닦아내는 질의 모습을 보고 탈리안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유리 케이스 위에 작게 명패를 적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넣어두세요."
이번에는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탈리안은 그저 가만히 손을 질의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다른 분신들이었다면 모를까, 원체 감정을 숨기고 사는 탈리안이라면 질을 위로하는 것으로는 이런 행동이 최선일 거예요.
"다 했다면… 다음으로는 중앙의 돌을 꺼내 쥐고서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거예요. 그 추억이 돌에 보관될 거에요."
그 말에 기도하듯이 손을 모아 사이에 돌을 쥐는 질.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어 회상에 잠기는 그 모습만 본다면 옷만 바꿔입어도 견습 수녀라 믿을 겁니다.
기도를 올리는 듯한 질을 보고 탈리안은 뒤에서 조용히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돌에 하나의 추억을 담는 게 끝나면, 환하게 빛나 몇 번 점멸하고는 원래와는 다르게 하얗게 변했어요.
그걸 본 질은 다른 돌에 다시 추억을 담기 시작했지만, 마지막의 제일 작은 돌 앞에 섰을 때에는 약간 망설이는 낌새를 보였어요.
"…질?"
"...동생은, 어디서 살아있지 않을까요..?"
"질…."
동생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도하기를 망설였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하죠, 부모의 죽음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동생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인해서.
하지만 그 난리 통에 동생이 살아남았으리라곤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여기서 잠깐 질의 동생의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질의 동생은 질보다 나이가 더 어리고, 질과는 달리 책을 많이 읽어 어른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질처럼 세상이 궁금해서 모험가와 많이 만나보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건 비밀이지만, 질의 동생은 생각보다 병약했어요.
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게 참 안타까울 뿐이에요.
병명 미상, 치료법 미상,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는 채로 날마다 죽음이 다가오는 공포에 떨어야만 하는 신세.
그렇기에 자신을 돌봐주며 위로해주는 가족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일찍 철이 들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과 질처럼 애늙은이 같은 지혜와 성숙함을 가졌다는 다른 것이거든요.
이런 질의 동생이 그 이형의 괴물들에게서 살아남았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인 걸 질도 알 거예요.
질에게는 좀 나쁘게 들릴 말이기도 하지만.. 착각은 자유라는 말도 있지 않나요? 헛된 희망을 품는 것도 자유이긴 합니다.
...다만, 탈리안의 생각은 약간 다른 것 같네요.
"질, 당신의 동생은…."
"...언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걸 당신도 알잖아요. 질, 안 그런가요?"
냉정한 것을 넘어서 매정한 탈리안의 말에 질은 고개를 돌려 동생의 비석을 바라봤어요.
정확하진 않더라도 질의 기분과 감정을 감히 예상해보자면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겁니다.
정말로 죽은 것일까,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것일까, 부모님도 죽었는데 너마저 없다면,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 항상 네 방의 침대에 누워있던 네가 그리워, 당장이라도 네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은데, 어딘가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을 것 같은데,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겠죠.
죽거나, 사라져 행방불명이 된 사람을 가족이나 지인으로 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읽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질, 곧 더 추워질 거예요. 얼른 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감기 걸릴 겁니다."
"...네."
감기 걸릴지도 모른다는 탈리안의 걱정 담긴 말을 듣고 난 뒤에야 돌을 쥐고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질입니다.
앞으로 몇 번이고 뒤뜰로 찾아와 기도를 하는 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되네요.
마법사가 아니라 수녀를 목표로 해도 되겠는데요.
어쨌든, 마지막 돌까지 새하얀 색으로 물들인 질은 일어서 탈리안의 품에 달려와 스스로 안겼습니다.
지금 당장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일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겠지만,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은 느낌에 탈리안은 질의 등을 토닥여주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기도 올린 모습을 봐서는, 탈리안의 피곤함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유일한 휴식 시간인 도서관에서의 낮잠 시간을 질의 가족을 위한 비석과 메모리얼 스톤을 만드는 데에 소비했으니까요.
아직도 탈리안이 왜, 무슨 이유로 질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정말, 정말로 의문입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질이 탈리안에게서 버림받지 않는 것이 다행일 뿐입니다.
“그런데 언니, 저 보석은...”
“메모리얼 스톤이라 불리는… 자신의 기억을 복사하고 보관하는 마도구에요. 보관해놓은 기억을 되새기고 싶으면 손에 쥐고 잠들기만 하면 되는 편리한 도구죠.”
“신기한 물건이네요.”
“당연하죠, 질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낸 물건이니까요.”
이건 또 뜻밖의 이야기네요.
그리고 몇 번을 되짚어봐도 질에게 이렇게 친절히 대하는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뭐, 굳이 궁금해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탈리안 스스로 질에게 그 이유를 말할 날이 올 겁니다.
다음날, 질은 도서관에서 마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책을 통해 찾아본 내용은 마나의 정의에 대한 것부터, 마나를 감지하고 느끼는 것, 마나와의 적합도를 높이는 것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면 기본 상식부터 건드는 게 올바른 일이기는 합니다.
질이 마나와 마법에 관련해서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는 둘째치고 말이죠.
"저, 실리아 언니... 머리 그만 쓰다듬어주세요."
"실리아는 질이 대견해서 그러는 거예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실리아만 없다면 질이 더 빨리 마나에 관련해 전문가급 지식을 갖추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공부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붙어있는 건 방해, 민폐밖에 되지 않을 텐데 말이죠.
지금은 질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헤븐즈 황국의 국민 중 한 명일 뿐이니까요.
"저 모르는 게 있는데, 마나를 감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책에서는 바람을 느끼듯 이라는데.. 너무 막연해서..."
"실리아와 탈리안은 질과 마나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서 도움이 안될 거에요, 미안해요."
"네에..."
가끔 한 번씩 물어본다고 해도 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들만 나오니 정말 방해만 하는 셈이네요.
마녀인 만큼 보통 사람과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닐 텐데요.
정말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탈리안이 알고 있는 마녀의 방식대로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닐까요?
뭐 마녀는 마녀만의 생각이 있겠죠, 이래저래 복잡한 방법이긴 한가 봅니다.
“…질? 마나는 그렇게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뾰로통한 얼굴을 해 볼을 부풀리는 질입니다.
실리아가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는 배울 수 없다고 잔소리를 하니까 삐진 것 같네요.
그 부풀린 볼을 콕콕 찌르거나, 말랑하다며 찰떡을 집어 올리듯 검지와 엄지로 잡는 걸 보면 상당히 부러워질 지경이에요.
…얼마나 부드러울지.
“...그마하셰여.”
“질이 너무 귀여워서 그래요.”
하지만 이런 실리아의 방해가 없었더라도 질의 공부에는 특별한 진척이 없었을 겁니다.
도서관 한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비교적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도서관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거든요.
질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많은 수의 사람에 눈길이 끌려 집중을 못 했어요.
여기에 더해 떠들면 안 된다는 도서관의 기본 중의 기본 규칙은 지켜지면서도, 작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말소리가 은근히 신경을 긁어놨기 때문에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했죠.
어쩌면 실리아는 질 스스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질의 문제가 아닌 자신을 문제의 원인으로 삼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실리아 언니, 조용한 장소가 필요해요.”
“그럼 다음부터는 탈리안이 자는 곳에서 공부해볼래요?”
“그래도 되는 거에요? 자는데 방해될 거 같은데...”
“질을 위해서라면 탈리안도 기꺼이 방을 내줄 거에요.”
실리아가 고의로 의도한 건 아니라지만, 항상 비밀의 방에서 휴식을 갖는 탈리안이 불쌍하네요.
이대로 방을 빼앗긴다면… 아니 물론, 방을 내어주는 건 탈리안이겠지만 모양새가 빼앗기는 것과 같아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하여튼 정말 오랜만에 탈리안이 도서관 운영 외의 일로 비밀의 방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네요.
질 덕분에 바깥 공기 좀 마시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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