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9화 (9/189)

〈 9화 〉 메모리얼 스톤 (1)

* * *

도서관을 나서는 실리아와 질.

두 명은 손을 잡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수도는 수도이니까 그 넓은 공간에서 서로를 잃지 않으려면 꼭 잡아야만 하는게 맞죠.

하지만 왜 굳이 실리아가 같이 가는 것일까요.

이것에는 약간의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분신 모두가 일을 해야 하니 바쁜 것은 당연합니다.

달리아는 안내 겸 카운터 담당.

밀리아는 흩어진 도서의 정리와 필요한 도서의 구매 담당.

넬리아는 3층과 4층의 청소와 발코니 관리 담당.

실리아는 안내 겸 1층과 2층의 청소 담당.

도서관에 필요한 규칙과 보안을 담당하는 필리아까지.

다 제각각 하는 일들이 있어 바쁜 건 마찬가지이나, 비교적 한가롭고 질과 상성이 잘 맞는 실리아와 바깥에 나오게 된 겁니다.

그렇다고 다른 분신들이 질과 사이가 나쁘냐? …라고 물어본다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넬리아는 자신의 할 일만 하기에 질과 같이 있다 보면 정적만 유지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죠.

밀리아는 친절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핀트가 자꾸 어디선가 새어나갔습니다. 질문을 하면 질문이 돌아오고, 대답을 하면 5분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왔죠.

필리아는 어느 나라의 선도부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신 여기에 약간의 엄격함을 끼얹은 듯한.

결국, 오늘 하루 도서관 모든 층의 청소는 넬리아가 맡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실리아는 오랜만에 휴가를 얻게 되었네요.

그것도 외모로 귀여움의 끝을 달리는 질과 함께이니 좋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질, 먹고 싶은 게 있나요?"

하지만 질은 약간 실리아와의 관계가 서먹해진 듯한 낌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제 탈리안이 자리를 비운 척을 했던 사이에, 실리아에게 본심을 털어놓다가 들켜버렸으니까요.

탈리안과 실리아가 작정하고 그랬는지는 질로서는 알 수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니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거기다 실리아는 질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전에 탈리안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었잖아요?

다만 입을 다물고 있어서야, 뭐가 먹고 싶다고 대답하질 못하니 좋은 선택은 아니네요.

"…질, 실리아가 뭔가 잘못했나요?"

"그런 거 아니에요..."

실리아가 걸음을 멈추고 마주 보며 물어보면, 그제야 대답하는 질이었습니다.

마지못해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실리아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되어서.

애초에 탈리안에게 본심을 말해버리면 안 가르쳐 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굳이 탈리안에게 말하지 않고 숨겨왔던 거겠죠, 하루 이틀이지만.

"왜.. 탈리안 언니가 마법을 안 가르쳐주는지 모르겠어요."

"실리아도 그렇고, 탈리안도 그렇고… 전부 질이 걱정되어서 그래요."

이번에도 말을 하는 도중 질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뺨을 어루만지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실리아입니다.

"그치만, 그치만.. 아버지랑 어머니가..."

"질…."

부모를 부르는 호칭마저 10살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질의 눈에 눈물이 점점 고여가는 것을 본 실리아는 살며시 안아주었어요.

그 상태에서도 질을 달래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습니다.

하지만 사심을 채우기 위해 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오직 질만을 달래주려는 의미가 담긴, 위로의 행동이었어요.

실리아의 행동에서는 모든 생각과 감정이 포함되어 겉으로 드러납니다.

어쩌면 이것이 질이 실리아에게 더 일찍 기분을 푼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리아의 품속에서 소리 없이 우느라 끅끅대던 질은 몇 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가슴팍에서 떼었습니다.

"진정되었나요, 질?"

"...달콤한 게 먹고 싶어요."

실리아는 질이 질문에 다른 답을 내었는데도 불구하고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물 자국을 지워주었습니다.

"그럼 맛있는 가게를 찾기 위해 한번 돌아다녀 볼까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질.

도서관을 막 나섰을 때와 같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로 친자매를 보는 느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질은 남동생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저 한치의 다름없는 파란 머리카락이 자매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외모마저 한쪽은 비정상적으로 아름답고, 한쪽은 비정상적으로 귀여우니 말 다 했죠.

같은 부모에게서 나고 자란 자매라 해도 믿을 겁니다.

"질, 저것 봐요. 수도의 광장은 꽤 아름답지 않나요?"

실리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질이 서 있는 곳보다 아래에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계단을 타고 3층 높이를 내려가야 도착하는 그 광장에는 큰 분수와 함께, 주변에 작은 수로, 탈리안의 집 앞에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화려한 화단.

기본이 되는 하얀색의 벽돌에 투명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는 배경, 그 사이의 공백을 메꾸는 형형색색의 화단은 아름답다 부를 만했습니다.

광장의 넓이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광활했기 때문에 바글바글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여백이 남아돌았습니다.

광장의 가에는 노점이 늘어서 있어 여러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죠.

시간이 아직 낮이라 햇빛이 그 광장을 빛내는 모습은, 질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분명히 질의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질?"

"앗..! 아, 네.. 저 광장에 내려가 보고 싶어요!"

"대신 손 꽉 잡고 있어야 해요, 질. 저기선 정말 미아가 되기 쉬우니까요."

"네!"

넓고 긴 계단을 타고 광장에 내려간 둘은 먼저 분수를 구경하고, 분수대의 턱에 앉아 햇빛을 받다가, 노점 주변을 돌아다녀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모든 노점을 다 돌아본 끝에 질이 고른 것은 가장 대중적인 과일 중 하나, 탈리안의 몸에 밴 냄새의 주인공.

핏츠 열매를 건조시켜 향신료를 첨가해 젤리로 만든 과자였습니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요? 밥으로 먹기엔 군것질밖에 안될 것 같은데…."

"이게 좋아요!"

작은 봉투치고는 가득 담긴 핏츠 젤리는 양이 상당히 많아 보였습니다.

이유는.. 별거 없어요.

질이 귀엽다고 노점의 주인이 가득 담아준 것일 뿐이죠.

그 뒤에는 질이 식사 아닌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늘이 지는 벤치에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할 뿐인 시간이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높은 하늘,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렇다고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야외에서 뭔가 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에요.

간단한 식사를 하기에도 말입니다.

탈리안과 마찬가지로 실리아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어 그저 질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좋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어라, 벌써 다 먹었나요?"

역시 끄덕이기만 하는 질.

실리아가 좀 편한 게 아닌가 봅니다.

보통이라면 매번 대답했을 질일 텐데, 조금 같이 다니고 몇 번 달래주었다고 넘어가는 걸 보면 애는 애네요.

"그럼 두 가지 선택지가 있으니 골라보세요, 질. 하나는 이대로 도서관에 돌아가 질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조금 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곳 지리를 익히는 것. 어떤 게 좋은가요?"

마음 같아서는 바로 도서관에 돌아가 하루라도 빨리 마법에 관해 공부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질은 저어기 산속 마을 페리시니에서 자라온 시골 촌뜨기예요.

당장에 광장만 해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다른 곳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뭐.. 헤브니아나 페리시니나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나무집과 숙소, 작은 상점만이 전부였던 시골보다는 볼 게 더 많지 않겠어요?

"조금 더 돌아다녀 볼래요."

"좋아요, 가볼까요?"

이 둘이 돌아온 것은 도서관이 폐관할 시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모험가 길드와 상점가, 주택가부터 해서.. 용병 대기소나 각종 편의시설이 즐비한 거리까지.

마지막에는 왕궁의 진입로나 거대한 항구까지 보게 되었죠.

이 모든 곳을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실리아는 마녀 탈리안의 분신이니까요.

어디로든 통하는 문이 있다면 문제없는 일이겠죠.

도서관에 돌아온 질은 상당히 만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첫날부터 제대로 된 공부는 시작도 못 했지만, 즐거우면 된 거 아닐까요?

"질, 즐거웠나요?"

"네!"

마치 놀이동산에라도 다녀온 아이 같네요.

아이는 맞지만, 놀이동산은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실리아도 질이 즐거워해서 기뻐요."

실리아의 실체가 마나를 동력으로 하는 그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정말 친언니처럼 따르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옆에 착하고 달라붙어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 말이에요.

공부야 내일부터 열심히 하겠죠.

애늙은이 같은 질인데, 설마 공부 하나 제대로 못 하겠어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겁니다.

하지만 탈리안만큼은 어딘가 불편한 것 같습니다.

피곤해 보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온 것 같은데요.

도서관에서 자는 것이 탈리안의 일과였을 텐데 말이죠.

"왔군요, 질. 실리아는 그만 쉬어도 됩니다."

탈리안이 건네는 말에 저번과 같이 사라지는 실리아였습니다.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간단한 손 인사를 하고 갔어요.

"오늘은 바로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돌아갈 거에요. 하지만 돌아갈 장소는 집 뒤뜰이에요. 그곳에 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 건데요?"

탈리안은 궁금하다는 질의 질문에도 입을 다문 채 손을 잡아, 가자는 말을 돌려서 표현했어요.

그리고 도서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어디든 이동이 가능한 문.

문틀에서는 보랏빛, 파란빛이 섞여 미미하게 감도는 마나가 감돌고 있습니다.

그 너머는 원래 있어야 할 수도의 거리가 없고, 수풀과 울타리가 있는 탈리안의 집 뒤뜰의 광경이 보였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까지와는 보지 못하던 각각 모양이 다른 돌이 세 가지 있다는 것이겠네요.

돌의 형태는 우리가 흔히 발에 차이는 그런 둥글고 모난 것이 아닌, 조각해놓은 듯이 반듯하고 매끄러운 선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탈리안은 질이 돌을 보자마자 그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눈치챘어요.

이미 어림짐작으로 질도 그 돌이 어떤 물건인지 알 겁니다.

조금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질은 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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