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견학 (2)
* * *
탈리안은 이제부터 깊은 잠에 빠질 겁니다.
종일 책을 읽고, 밥도 먹지 않는 마녀입니다.
그 말인 즉, 지금 이 시간이 탈리안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겠죠.
도서관에 와서 비밀의 방에서 잠드는 것.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모르지는 않던 겁니다.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말할 수는 있는 마녀인 거에요.
이미 곤히 잠들어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장면을 바꿔 질이 있는 2층으로 가 봅시다.
"달리아 언니는.. 탈리안 언니보다 밝으신 것 같아요."
서로 손을 꼭 잡고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갑작스레 질문해오는 질입니다.
질문의 의도는 이해합니다.
탈리안과 같이 말수는 조금 적습니다...만.
물론 약간 차이를 보여 비교적 잘 떠들며, 다채로운 표정에서는 다른 사람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완전히 같은 얼굴로 항상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지을 때면 질로서는 어색하다 못해 낯설겠죠.
"저는 탈리안이 미미하게 남겨두는 감정의 하나를 떼어내서 그것을 재료로 해 만들어졌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탈리안이 평소에 무심해 보이면서도 친절하잖아요? 그녀도 사람이니까요. 수많은 감정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 감춰진 감정 중 하나로서 만들어진 것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달리아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완전하게 접대용으로 만들어진 분신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죠, 고객에게는 친절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래 보여도 지금껏 지내온 나날들의 기억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인격체라구요?"
"탈리안 언니는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죠? 힘든 일들…?! 아, 알았어… 탈리안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네요. 어쨌든 제가 대단하긴 해요!"
분신이긴 해도 한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와 만들어졌으니 자신이라 칭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타인으로 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탈리안은 자고있던 중이 아니었나요?
뭐 어찌 되었든, 질은 달리아의 대답에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은 듯 다시금 도서관을 돌아다녔습니다.
도서관에는 책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층마다 있는 화장실, 책상과 의자, 3층부터는 발코니도 만들어져 있어 바깥에서 책을 읽는 것도 가능했죠.
천장의 일부는 유리로 되어있어 햇빛이 새어 들어오기도 해 따뜻한 느낌을 주기도 했죠.
게다가 무려, 중요하니 한 번 더 무려!
이 도서관의 중앙에는 층계를 오갈 수 있는 마법의 문이 있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런 마법의 문이었어요.
맞아요, 탈리안이 질을 도서관으로 데려올 때 썼던 그 문을 이곳에도 만들어둔 겁니다.
"마녀는 다 이런 게 가능한 거에요?"
"제가 대단한 거죠! 다른 마법사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구요. 가능해도 고생 꽤나 할걸요?"
"그, 그렇구나..."
그래도 아직까진 달리아와는 같이 지내는 게 어려운가 봅니다.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6명, 전부 다른 성격, 어려울 만 하겠네요.
"아, 잠시만요. 누군가 왔나 봐요. 슬슬 사람이 올 시간이긴 했는데… 실리아! 잠깐 와보지 않을래요?"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모습을 누가 본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서로 연락할 방법이 있는 거겠죠.
조금 전에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며 탈리안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들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뛰어난 마녀이지 않습니까.
분신이라 할지라도, 마녀의 힘은 여전할 겁니다.
"실리아 왔어요, 달리아!"
파란색 완장을 찬 탈리안이 해맑은 얼굴로 달려와 질과 달리아의 눈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번엔 또 다른 접대용 성격의 분신이네요.
"기억에 있죠? 질이랑 같이 놀아주세요. 저는 다시 1층에 내려가서 사람들과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알았어요, 실리아 언니랑 도서관을 마저 구경할까요? 질?"
상당히 부담되는 그림입니다.
질도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네요.
똑같은 얼굴이 점점 늘어나서인 게 확실합니다.
자신이 알던 탈리안의 성격과 다른 것도 영향이 있겠죠.
그 무심하고,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없다시피 하는 탈리안의 감정에서 나왔다고는….
질은 몇 차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실리아의 손을 잡고서 달리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이따 봐요, 달리아 언니."
"후후, 귀엽네요."
"어머~ 귀여워라!"
동시에 말하는 달리아와 실비아의 모습에 한 번 움찔하는 질이었습니다.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특이한 감각에 오싹거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질이 심심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잡념이 깃들어 부정에 물들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야 뭐, 괜찮은 거 아니겠어?'라고 속으로 생각할 겁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래 봐야.. '농사 싫어, 가게 열기 귀찮아, 놀고 싶어, 경비 서기 지루하다, 모험가님 어디 가서 돌연사 하신 건 아니겠지?' 같은 일상적인 것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질은 다릅니다.
사라진 가족 생각이 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점을 보면 탈리안을 만난 게 최고의 행운이었을 겁니다.
저 손 잡고 있는 모습 좀 보세요.
절대로 놓지 않을 것처럼 꽈악 잡고 있지 않습니까.
"질! 실리아와는 다른 분신들도 만나보실래요?"
"에... 궁금하긴 한데요, 그것보다 저도 언니처럼 마법을 쓰고 싶어요."
"실리아처럼… 마법을 쓰고싶다구요?"
"그래야 나중에 위험한 일이 있을 때도 괜찮을 거 같아서..."
이건 또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도서관을 구경하다가 뜬금없이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끝없이 칙칙해지고 무거워질 테니까 넘어가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벌써부터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보니 장하네요.
반면에 실리아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흠, 흠!'거리며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질, 저랑 이야기 좀 하죠."
"어어, 실리아 언니..?"
"지금은 탈리안이에요, 따라오세요."
그렇게 질은 탈리안이 있는 비밀의 방까지 끌려갔습니다.
방에 도착한 질은 혼나는 아이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는 갈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었죠.
이는 탈리안이 언짢은 기분을 담은 시선으로 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법을 배운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속에 숨겨진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의도로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는가…. 를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화려하거나 강해 보여서.. 또는 편리해 보이니까를 대답으로 내놓을 겁니다.
당연히 탈리안은 이런 종류의 대답을 듣는다고 마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을 거예요.
마법이 어디 간단한 거던가요?
마법을 배우려면 제일 먼저 마나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마나를 느낄 수 있다면 다음으로 자신의 것으로 정제 해야 하죠.
정제한 뒤에는? 몸에 쌓아두기만 할 건가요?
사용할 마법의 식을 머릿속에 그려내야 합니다.
그다음엔 그려낸 식에 마나를 흘려보내 완성해 마법을 사용해야 하죠.
여기서도 식에 흘려보낼 마나의 양 조절이라던가, 어떤 식에 어떤 식을 끼워 넣어 힘 조절, 효과 조절을 하고...
하여튼 엄청나게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 걸 아는 탈리안은 그런 걸 모르는 질의 마법에 대한 학구열을 보고서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요.
어떤 의도가 담겨있든지, 말입니다.
"질, 정말 단순하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배우려는 건가요?"
"...언니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아요?"
"마법은… 당신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잠깐의 호기심을 통해서라면 더더욱."
말을 마친 탈리안은 소매를 걷어 손목 안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엔 파랗게 빛나는 책과 나비의 형태가 새겨진 문신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게 뭔지 아시겠나요?"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 질.
"마나의 각인이라는 거에요. 사람마다 문양은 다르겠지만, 이걸 몸에 새겨야만 마법을 쓸 수 있어요. 그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러워요. 질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말이에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래도.. 배우고 싶어요."
"각인을 새기는 것을 실패하면 영원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래도...“
질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고서도 탈리안은 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껏 구해준 아이가 고통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닐 거에요.
운이 나쁘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반대하는 게 당연하죠.
"그래도 배우고 싶어요... 가르쳐주세요.."
"…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살아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목숨을 버리는 것 같은 일을… 설마 당신 마을을 전멸시킨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는 질의 태도에 탈리안은 질렸다는 표정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차가운 표정은 탈리안에게서 처음 봤기에 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상태로, 서로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탈리안의 불편한 기색이 방 안에 머물렀고 질은 그에 짓눌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실리아가 들어와 잠시동안 눈치를 살피고선 질의 손을 붙잡고 나가자며 귀에 대고 속삭여 왔습니다.
대답을 하면 울어버릴 것 같았는지 고개만 끄덕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실리아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질이었습니다.
탈리안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방에 혼자 남게 되니 다시 침대에 눕고 이불을 얼굴 아래까지 끌어올렸어요.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탈리안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수차례 뒤척이며 이불을 흐트러뜨렸습니다.
양을 세기라도 하는 건지 작게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탈리안이 잠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질은 뭘 하고 있냐구요?
풀죽은 채로 실리아의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탈리안이 그렇게 화를 내도 다 질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을 거라며, 절대 질의 말이 기분 나쁜 건 아니었을 거라며 달래주는 실리아의 모습.
너무 열심인 것 같아서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탈리안이 질을 혼냈는데, 정작 질의 기분을 풀어주는 건 실리아니까요.
다만.. 도서관이 문을 닫고 나서도 탈리안은 분신 중 하나인 실리아를 없애지 않고, 집까지 데려와 질의 옆에 붙어있게 한 건 비밀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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