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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6화 (6/189)

〈 6화 〉 견학 (1)

* * *

질이 눈을 떴을 때에는 창밖이 어두워 별빛이 보일 시간이었습니다.

먼 거리를 걸었었고, 감정이 요동치며, 눈물을 쏟아내기에 바빴던 하루였어요.

그런데도 푹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일어난 데에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눈만 간신히 뜬 채로 고개를 돌려 옆에서 엎드린 채 잠들어버린 탈리안을 관찰하듯 봅니다.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합니다.

그러곤 양손을 이불 속에서 꺼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려버렸어요.

자세를 웅크리고선 부들부들 거리면서, 가끔 움찔거리고, 입술을 힘껏 깨물기도 합니다.

"으응… 질?"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질이었어요.

적당히 무슨 일인지 파악한 탈리안은 그대로 말없이 토닥여주었습니다.

잠이 깨서 불편한 기색은 보이지도 않고 오직 달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어찌 됐든 그동안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강한 척을 해왔다는 게 들통난 셈입니다.

소리죽여 우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탈리안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질을 상체만 일으켜 안아주었습니다.

"미안해요, 지금은 이런 것밖에 해드릴 수가 없네요."

억지로 일으켜 세워져 품에 안겼지만, 저항하는 일 없이 오히려 더 그 품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아까보다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소리를 죽인 채로 더 격하게 슬퍼합니다.

한참을 울었어요.

긴 시간을 울었죠.

등을 쓰다듬어주는 탈리안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점점 진정되던 질은 울음을 멈췄지만, 탈리안의 품 안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핏츠 열매 냄새가 나요..."

"아… 너무 맡진 말아 주세요, 부끄러우니까…."

핏츠 열매는 약간 단단하면서도 과즙이 풍부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과일입니다.

색깔마저 분홍색에 냄새와 맛까지 달콤하니 상당히 대중적이죠.

탈리안에게서 그 냄새가 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달달한 냄새가 난다는 건 나쁜 게 아닐 텐데요.

남이 냄새를 맡는다는 것에서 저항감이 드는 걸까요.

"언니는 좋은 냄새가 나요."

"질?! 놀리지 마세요!"

"진짜인데..."

질의 진실하면서도 위축되는 모습에 탈리안은 한숨을 한번 쉬고서 질을 침대에 눕혀놓았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다시 자라는 뜻이겠죠.

"아직 1시니까 더 자도 돼요."

"네에..."

자라고 눕혀놓으면서도 탈리안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좀처럼 식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저항감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수치심과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게 하거든요.

어린아이가 멋모르고 한 행동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여파는 굉장했습니다.

질이 다시 빠르게 잠들었다는 것만이 탈리안에게는 다행인 점이겠네요.

탈리안은 방을 나선 뒤, 집에 작게 마련되어 있는 도서관에 향했어요.

작게 마련되었다고는 했지만, 이는 탈리안의 집에 비해 작다는 의미입니다.

탈리안의 집은 저택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크기를 자랑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귀족의 별장과도 같은 곳이에요.

어쨌든, 탈리안은 길게 늘어선 책장을 지나 구석진 곳에 자리한 책장.

그중에서도 책 한 권이 들어갈 만한 자리에 자신이 들고 다니던 불길해 보이는 책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러자 책장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며 뒤편에 공간 하나가 나타났어요.

1인용의 소파와 침대, 약간 기다란 책상과 의자가 벽쪽에 자리 잡고, 한쪽 벽면에는 화로가 만들어져 있었죠.

네, 탈리안의 방이었습니다.

어지간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이런 곳에 비밀의 방을 만들어둘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탈리안은 책상으로 다가가 그 위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 들었어요.

평소에 들고 다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길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책을.

그리곤 손가락을 튕겨 들고 있던 책을 공중에 띄워놓은 채로 소파에 앉아 읽기 시작했어요.

마법봉, 나무 스틱, 지팡이 같은 마녀의 대표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은 없지만 행동 하나하나는 전형적인 마녀와도 같아 보입니다.

그나저나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했는데 잠은 자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5분, 10분, 30분, 1시간….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하고, 결국 탈리안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고요한 새벽 시간, 풀벌레 소리만이 들려오는 산속에서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한 거예요.

화장실도 가지 않고, 군것질도 하지 않았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하지 않았어요.

변화가 있었다면 앉은 자세를 약간씩 바꿔, 아름다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다리를 옮긴 것뿐이었습니다.

저 평균보다 작은 키에, 저 정도의 각선미라니 퍽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생각되지만, 그 주체가 탈리안이라 그런지 상당히 어울립니다.

원래부터 제 것인 마냥 말이죠.

그러던 중, 집 어딘가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눈치채곤 책을 책상의 서랍에 다시 넣어두고는 방을 나왔습니다.

방을 나오자마자 다시 생겨나는 책장에서 익숙한 책을 꺼내 들고는 도서관에서 빠져나왔죠.

질이 일어난 걸 눈치챈 겁니다.

그렇다고 굳이 탈리안이 찾아갈 필요가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만.

뭔가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질,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언니."

질의 허락에 그제야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안에는 어젯밤과 같은 차림새의 귀여운 질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별 반응이 없는 탈리안이었지만,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반응이 없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귀여움과 조각 같은 외모로 무장한 질을 보고 그 누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탈리안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질, 어제도 말했듯이… 오늘은 제가 도서관에 출근하는 날이에요.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침에… 질이 저보다 일찍 일어나면, 그때는 같이 식사하는 것으로 하죠. 오늘은 약간 시간이 부족해서 같이 식사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지금 가시는 거예요?"

지금부터 가냐는 질의 질문에 '당…'까지 입을 뗀 탈리안이었습니다.

왜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냐면 질의 불안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봐서 그런 것이겠죠.

다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것일 겁니다.

이에 탈리안이 고민하다가 힘들게 입을 뗐습니다.

"…그럼, 도서관에 같이 가실래요?"

"정말요?!"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질."

"얼른 준비할게요, 언니!"

기뻐하며 바로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선 1층으로 내려가는 질이었습니다.

그 뒷모습에 무심한 눈길을 주다가도 이내 탈리안 자신도 방을 나서 정문 앞에 서서 질을 기다리기로 했나 봅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열심히 꽃단장을 마친.. 그래 봐야 최대한 열심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을 뿐인 질이 탈리안에게 다가왔습니다.

"준비는 다 끝난 건가요?"

대답 없이 수차례 끄덕이기만 하는 질.

그에 답하듯 탈리안이 현관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그곳에는 풀밭과 숲이 아닌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오래된 종이와 나무의 냄새가 진동하는, 수많은 책들이 진열된 도서관이었습니다.

탈리안은 자신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작은' 도서관이라 칭했었지만, 질의 눈에는…. 정정하죠.

모든 사람의 눈에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도서관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층만 해도 4층까지 있으며, 몇 층까지 있는지 세어 볼 것도 없이 넓이만 해도 탈리안이 살던 집보다 상당히 컸습니다.

얼핏 보면 국립도서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듯했죠.

이는 질에게 있어서 희소식이었습니다.

도서관의 크기를 보아 질의 걸음걸이로는 둘러보는 것조차 하루 이틀 만에 끝날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그 말인즉슨, 도서관이라는 핑계를 대고 며칠이고 탈리안의 옆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지금도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기분이 좋다거나 그런 감정은 중요치 않아 제쳐두고, 어떻게 하면 탈리안의 곁에 얼마나 더 오래 있을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겁니다.

"어지럽히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돌아다녀도 됩니다, 질."

"언니는요?"

"문 열 준비를 해야죠… 카샤트."

탈리안의 마지막 말이 끝나면, 앞에서 이형의 그림자가 우글거리다가 곧 형체와 색을 갖춰가며 점점 커지더니 탈리안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에 말했던 분신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항상 하는 일과 중 하나이니까, 오늘도 평소처럼 만들어 낸 분신일 겁니다.

하지만 질이 그림자에게 겁먹고 탈리안의 뒤에 달려가 숨을 줄은 몰랐을 거예요.

'무신경'하다, 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하겠어요? 마녀라고 해도 실수로 한두 가지쯤은 잊어버리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질… 저것 역시 저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어느 정도 자아도 가지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런 태도를 보여주면 상처받을 것 같은데."

"저, 그림자..도 언니라구요?"

"네, 이리 오세…."

"처음 뵙겠습니다, 질. 잘 부탁해요."

탈리안이 분신을 만들 때에 자신을 구성하는 성분 중에서도 예의를 때려 부어 만든 듯한 모양입니다.

원판과는 다르게 눈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어느 정도 무릎을 꿇어오면서 악수까지 청하는 걸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분신을 바라보는 탈리안의 모습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찌푸린 표정만 아니었다면 좋았겠는데요.

"자주 이렇게 제 말을 무시하고 행동하기는 하지만 본성은 착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

"그리고 이곳 사람들에게는 다섯 쌍둥이로 알려져 있으니 알아두세요. 구분은… 오른쪽 어깨에 달린 완장의 색깔로 하면 될 거예요."

"다섯.. 쌍둥이?"

"도서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요. 빨간색 완장이 달리아, 노란색 완장이 밀리아, 초록색 완장이 넬리아, 파란색 완장이 실리아, 보라색 완장이 필리아… 어차피 다 못 외울 테니 만날 때마다 물어보고 다니는 게 편할 거예요."

리아가 들어가는 돌림자를 사용하는군요, 많기도 하지.

하지만 이런 엄청난 크기의 도서관을 5명도 부족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수도에 위치한 이런 크기의 도서관이라면 바쁜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파리만 날린다면 도서관을 운영할 자금마저도 나오지 않을 테니, 진작에 망했을 겁니다.

오히려 바쁘기만을 빌어야겠죠, 바쁠 겁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멀쩡히 유지되고 있는 거겠죠.

"그럼 탈리아 언니는요?"

"저는, 자러… 가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요!"

"달리아 언니, 도서관 구경 좀 시켜주세요."

"그럴까요?"

"질?! 달리아 당신마저!!"

분신 역시 평소에 쌓인 게 많았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원판이 되는 존재, 자신을 만들어낸 존재를 이렇게까지 무시하거나 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뭐가 됐든, 질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도서관이라 작은 소리로 대화할 수밖에 없지만, 끊이질 않는 이야깃거리를 보면 달리아와 질은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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