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이게… 마녀? (3)
* * *
언뜻 보면 차분해 보이지만 당장이라도 질과의 식사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는 듯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질은 탈리안이 돌아오기까지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하고 온기가 식을 때까지 자신의 요리 대신 눈칫밥만 먹고 있어야 했어요.
지금 상황만 본다면 질이 잘못을 해서 자리를 피한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거든요.
애써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맛있어요'라고는 했다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에 지쳤는지 질은 그릇을 살며시 옆으로 밀어놓고 식탁에 엎드렸습니다.
뭔가를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어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거겠죠.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앞뒤로 흔들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나 봅니다.
이번에는 상체를 다시 일으켜 턱을 괴고는 수저로 애꿎은 오므라이스를 괴롭힙니다.
그러다 목이 말랐는지 미리 따라놓은 물을 마시기도 하고, 차분히 식탁에 그려진 나뭇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질은 점점 늘어만 가는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했나 봅니다.
벌떡 일어나서는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집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야 밥은 모두와 함께 먹는 거잖아요.
탈리안을 찾을 생각인 겁니다.
질이 향한 곳은 역시 화장실이었어요.
당연하죠, 화장실에 간다고 했었으니까요.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지, 질? 왜 여기까지…."
"언니가 너무 안 오셔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걱정돼서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탈리안은 문을 슬며시 열고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얼굴을 보여줬지, 표정까지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았어요.
자신이 평소에 쓰고 다니던 케이프에 달린 모자를 코앞까지 눌러썼거든요.
"...언니?"
얼굴을 가리고 나타난 탈리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질의 모습입니다.
탈리안도 질의 반응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 몇 초, 아니 몇 분간을 그렇게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가 정적을 깨버린 건 질이었습니다.
"언니, 밥 식어요."
"그, 그래요… 가서 마저 먹도록 해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죠?"
"그럼요…."
걱정해주는 질을 보니 누가 보살핌을 받는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걸로 탈리안이 식탁에서 자리를 피할 때와는 나아진 표정을 보여주니 괜찮은 게 아닐까요.
질도 표정을 확인한 뒤에는 눈치 보는 것을 그만두고 탈리안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뒤를 따라다니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질의 마음속에서 탈리안의 이미지가 상당히 바뀐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보여줬던 긴장된 표정을 풀고 있을 리가 없거든요.
무슨 이유로 변화가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쁜 변화는 아닙니다.
"…질, 음식은 상당히 맛있었어요."
"네? 네에..."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은데, 혼자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다른 사람들과 잘 대화하기가 어렵네요."
"언니 도서관 사서라고 하셨잖아요, 사람들이랑 대화를 안 할 수가 없을 텐데..."
그 말에 당황하는 탈리안을 보니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황한 게 아니라면 질의 시선을 피하는 질의 눈동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왜 이렇게 갑자기 질에게 휘둘리게 됐는지, 마녀라는 칭호가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한두 번이니 마녀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는 있죠.
앞으로 조심하면 되는 일이고요.
그렇다 해도, 일단 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야지 않겠어요?
"그, 그게… 도서관 입구와 카운터에 분신을 만들어두고 저는 안쪽의 비밀의 방에서 잠을 자는 게 일상이라…서, 그 눈은 뭔가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제 보니 상당히 게으른 마녀네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외관으로 보이는 나이에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만, 분신을 세워놓고 잠을 잔다니 평소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혼자서 살고 있는 탈리안의 특성상 돈의 지출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은 마법을 이용해서 처리 할 수 있으니 운동을 할 이유도, 피로해질 일도 없죠.
그렇다고 탈리안이 식사를 하느냐면 질이 오기까지 마실 것밖에 먹지 않았다 했으니 농사의 가능성, 요리의 가능성도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직접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그녀만이 알겠죠.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잖아요, 알거든요!?"
"그런 거로 해요, 언니."
탈리안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질을 보고 분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도 한숨을 내쉬며 식탁 의자에 다시 앉았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자를 푹 눌러 쓴 그대로인 걸 보니, 질보다 예의가 부족해 보이네요.
어쨌든 탈리안은 다시 수저를 들고 오므라이스를 한 숟가락 퍼서 입에 가져다 넣고선 천천히 맛을 음미합니다.
자리를 뜨기 전의 행동과 다를게 없지만, 이번에는 전회와 다르게 적당히 씹고 나선 바로 삼켜버렸습니다.
'맛'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식사를 하기 위한 행동인 거죠.
식기는 했어도 맛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한번, 두 번, 세 번… 끝에는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낸 탈리안이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말을 마친 두 사람입니다.
질은 성장기이다 보니까, 밥을 먹는 속도가 빨랐거든요.
입이 작다고 탈리안보다 늦게 먹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올라가서 쉬세요. 질."
"네? 집안일은 저한테 맡기신다고 하셨잖아요?"
"옛날 일이 떠올라서… 제가 하고 싶어졌어요."
탈리안이 자리를 피한 건 과거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오므라이스와 관련된 일이겠지요.
아니면, 다른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행동 자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식탁만이라도 닦아놓을게요, 언니."
"…편하신대로 하시기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싱크대에 있던 행주를 빨아 식탁을 청소하기 시작하는 질입니다만, 애초에 이 둘이 식사를 하며 식탁을 크게 더럽히지는 않았습니다.
흘린 음식물도 없고, 물을 마시면서 물 한 방울조차 안 떨어드렸죠.
숟가락과 포크조차도 냅킨을 깔고 그 위에 두었기 쓰레기통에만 버리면 되는 간단한 일밖에 없었어요.
질은 왜 이렇게 식탁을 열심히 닦고 있는 걸까요?
그것도 살살 탈리안의 눈치를 보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눈치라 해도 경계심이나 공포가 담긴 눈치는 아닌 거 같습니다.
뽀득, 뽀득 소리를 내면서도 올곧은 시선은 탈리안의 등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죠? 설거지에 집중을 못 하겠는데요…."
"어?! 네? 아니! 그게.. 저.."
마녀는 마녀라고 시선을 느끼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며 주장해오는 것 같네요.
그보다는 놀란 나머지 식탁을 닦던 손을 멈추고 들썩여버린 질이 참 귀여워 보입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보고만 있었는데 눈치채는 게 이상한 거죠.
뒤통수가 약간 간지러울 수는 있더라도, 바로 쳐다보는 걸 알고서 왜 그러냐고 물어볼지 누가 알았겠어요.
이걸 조심성이 없다고 질을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서요.. 그, 그래도! 말하기 싫으시다면 안 말씀하셔도 돼요!"
아무래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했나 봅니다.
보통 이런 건 묻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입니다.
하지만 질은 탈리안의 기분을 배려하며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옛날이야기를 기대해도 되는 게 아닐까요.
"유감이지만, 질… 그건 우리가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말해줄게요. 지금은… 네, 지금은 저도 당신도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까요."
"준..비?"
"그런 게 있어요."
이런 대화의 흐름이라면 질은 원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겁니다.
그걸 알고 있는지, 질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하며 식탁을 다 닦아낸 행주를 빨아 널어놨어요.
그리곤 의자에 앉아, 설거지를 끝내기 위해 마저 그릇을 씻기 시작한 탈리안을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집안일을 하라고는 했지만.. 탈리안의 집은 기본적으로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청소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끔했다는 거에요.
아마 따로 관리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집안일을 하라고 한 것은 그저 질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할 일이 없어 심심한가요?"
"에.. 네에.."
"2층에 도서관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좋아할 것 같은데요."
"언니랑 같이 가보고 싶어서.. 안될까요?"
"그럼 다 끝나가니 기다려주세요."
질은 완전히 식탁에 엎드려선 설거지가 끝나기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나 봅니다.
가끔 그 짧은 다리를 흔들거려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말을 돌려서 몸으로 표현하지만, 탈리안은 묵묵히 설거지에 집중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거워진 눈이 감기려고 하는 것을 겨우 막고 있을 때에 탈리안이 질을 흔들어 깨웠어요.
"질, 졸리면 올라가서 자는 게 어떤가요."
"도서관은요..?"
"오늘 힘들었잖아요? 안 좋은 일도 겪었고… 요리시켜서 미안해요.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 으, 네에.."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는데 마지못해 자야 한다는 말에 수긍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탈리안의 배려는 틀리지 않았어요.
종일 침울해져 있어도 모자랄 판에 요리도 성공적으로 해내고, 탈리안의 육체와 정신 건강에 힘쓰기까지.
보통의 어린아이라면 해내지 못할 일들을 연속으로 해내는 중인 겁니다.
그것도 10살인데 말이에요.
결과, 탈리안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방으로 가게 되었죠.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뉘어져, 탈리안이 덮어주는 이불에 의해 쏟아지는 졸음에 패배했습니다.
잘 자라고 토닥여주기까지 하니 자지 않을 수가 없죠.
어찌 보면 정말로 탈리안의 서투른 행동은 전부 연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마법을 사용해 씻긴 것이나, 사치스러운 방을 준비해둔 것.
일부러 요리를 시킨 것이나, 집안일을 시킨 것.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연기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젖어 든 이야기는 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죠.
그마저도 연기에 불과할지.
아니면 정말 사악한 마녀라서 질을 살찌운 뒤에 먹어 치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녀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속을 알 수 없고, 사악하며,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뭐어.. 당장이야 잠든 질의 옆에서 마법으로 책을 띄워놓은 채로 읽으면서도, 토닥여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보면 단순한 변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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