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이게… 마녀? (2)
* * *
탈리안에게 쉬고 있으라고 전해 들은 질이었지만, 넓은 방 안에서 가구를 구경하는 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서민의 방처럼 바뀌었다곤 하지만 탈리안의 '서민'이라는 기준은 질의 기준보다 약간은 높았었거든요.
질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탈리안을 더 이상 귀찮게 하는 것은 얹혀사는 식객, 또는 짐 덩이로서의 주제를 넘은 행동이라 생각했을 거에요.
방을 준비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며, 식자재도 원래는 질이 구하기로 했는데 탈리안이 대신 구해주기로 했죠.
그런데 거기다 대고 방이 너무 사치스러워서 못 지낼 것 같으니 바꿔달라 했는데, 몇 번이고 분에 넘쳐서 다시 해달라고하면… 왠지 이쯤 하면 알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구경 중이었다는 거에요.
이곳의 어떤 것이든 질이 가졌던 것들보다 좋은 것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입니다.
탈리안의 앞에서 우는 게 얼마나 창피했을까요, 보통의 어린애였다면 남의 신경 따위 무시한 채 펑펑 울기만 했을 겁니다.
일부러 눈물을 훔쳤던 것이겠죠.
가족들을 위한, 자신을 위한 눈물이라지만 누군가의 앞에서 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창피한 행동입니다.
게다가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몇 번이고 말하지만, 질은 탈리안의 기분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 있으니까요.
어찌 됐든 질의 입장에서 탈리안은 재앙이라도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고, 자신이 사는 집에 같이 살게 해준 착한 마녀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나쁘게 말하자면 탈리안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이 집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감사하면서도 불편한 동거입니다.
앞으로 탈리안에게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질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하루종일 울어서 그런 걸까요, 다 울고 난 뒤의 질이 침대 위로 올라가 속옷 차림으로 잠을 청합니다.
꼬마아이 치고는 꽤 오래 버텼다 싶습니다.
대단한 거라고요.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것을 보면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져야 할 감정일 겁니다.
똑, 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겼습니다… 라고 해봤자 이 집에 자신을 제외하면 탈리안밖에 없지만요.
질은 침대에서 나와 문을 열기 전에 탈리안이 건네주었던 타월을 챙겨 몸에 둘렀습니다.
보통 이런 부분은 어른도 잊어버린 채로 문을 열어주기 마련인데, 상당히 아이답지 못합니다.
"왜 아직도 그걸 걸치고 있는 건가요, 옷장에 새로운 옷을 넣어뒀을 텐데."
질의 모습을 본 탈리안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왔지만 질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탈리안이 언젠가 옷장 안에 옷이 있다고, 갈아입으라고 말한 적이 있었나요.
방에 옷장이 있다고 해서 그 안에 옷이 있을 거란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아니 보통은 들어있는 게 맞겠죠.
하지만 이 방은 질의 방이 아니었을뿐더러 탈리안이 준비해준 처음 보는 방입니다.
가구를 둘러봤다고는 하지만 당장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도 없을 테니 손대는 것도 조심스러워 바라보기만 했을 거에요.
게다가 한순간에 짠, 하고 나타났다가 손짓 한 번으로 모든 가구와 벽지, 바닥재가 바뀌는 마법의 방이라는 말이에요.
이런 방의 옷장에 옷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몰랐어요,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해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결국은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마녀의 실수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못해 탈리안이 직접 옷장 앞으로 가선 대충 골라 침대 위로 던져주는 모습입니다.
질의 키를 감안했을 때,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검은색의 원피스와 흰색의 깔끔해 보이는 새로운 속옷.
원피스에는 허리 부분에 띠와 함께 리본이 달려있어 꽤나 귀여워 보이는 옷이었습니다.
그리 추운 계절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유성이 무늬로 들어간 케이프와 얇은 가디건까지,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다 챙겨줍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시 질의 방까지 찾아온 걸까요.
"입고 내려오세요, 알려드릴 것이 있으니까요."
"아, 네! 금방 갈게요!"
먼저 나간 탈리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싫었는지, 질은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속옷을 벗어 던져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챙겨준 옷을 입기는 했습니다만, 딱 한 가지는 다시 옷장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디건까지 입기에는 약간 더울 것 같았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질이 마주한 것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바닷가에서나 볼 법한 작은 소라고동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소라고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탈리안을 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탈리안이 멋대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질, 저는 온종일 이 집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침 9부터 오후 4시까지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도서관, 말인가요?"
"하지만 그 도서관은 걸어서 오기에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어요, 수도 안에 있으니까…."
하지만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탈리안의 말을 듣고도 질은 이게 저 소라고동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오히려 수도에 관심이 돌아갈 참이었어요.
그동안 책을 읽어오며 길러진 질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기에 충분한 돌려 말하는 설명이에요.
그래도 탈리안이니까 의미 없는 설명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집에 없을 때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휘어진 소라고동을 입과 귀에 닿도록 하고 말을 걸면 제가 대답할 거에요."
"방에 있는 벨은요?"
"그건 제가 이 집과 집 주변에 있을 때에만 효과가 있는 물건이에요, 거리가 상당히 짧거든요."
"네에..."
"잘 이용해주세요, 기본적으로 이 집은 다른 사람 눈에 띌 일이 없겠지만… 저 혼자라면 모를까 당신이 혼자 있으면 불안하니까요."
결국은 질을 혼자 두기에 걱정돼서 돌봐주기 위해 준비한 물건이라는 걸 돌려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살던 마녀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좀 있는 거 같네요.
말수가 적고 대하는 것도 서툴러서 뭘 해야 될지 몰라 쩔쩔매는 듯한, 마녀보다는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된 수줍음이 많은 평범한 10대 소녀네요.
질의 입장에서 볼 땐 친구가 아니라 보호자의 느낌이 강하겠지만요.
"그리고 내려온 김에 당신의 요리 실력을 보고 싶어요."
"그건 괜찮지만, 재료가..."
"재료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정도로 준비해뒀습니다, 따라오세요."
주방에서 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넓은 식탁에 탑처럼 쌓여있는 식재료의 향연, 싱크대에는 깨끗함을 넘어서 결벽증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광이 나는 조리기구들이었어요.
질은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둘러봤어요.
이런 광경 역시 처음일 테니까요.
질의 입장에서 여기로 온 뒤로 처음이 아닌 경험은 없을 겁니다.
모든 게 다 새롭고 놀랍고, 또 감탄스럽겠죠.
"저... 어떤 요리를 드시고 싶으신가요?"
조심스럽게 식재료들을 둘러보다가 한 바퀴 돌아 탈리안에게 질문합니다.
그런데 기껏 질문해준 질의 성의와는 별개로, 탈리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왜냐면 한참 동안을 얼굴을 약간 찌푸린 채로 생각에 잠겼거든요.
그런데도 탈리안이 전혀 못생기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모르겠네요, 지금껏 먹은 거라곤 당신에게 내어준 씁쓸한 맛의 음료수밖에…."
"그, 그러면 안된다구요! 사람은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면!"
잠깐 발끈하는 질의 모습에 탈리안의 눈동자가 고양이가 당황했을 때처럼 커졌어요.
울보에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질이 이렇게 크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질의 말에는 어느 정도 탈리안이 이해는 하고 있을 겁니다.
밥이란 것은 몸의 에너지의 근원과도 같습니다.
비단 쌀이나 보리, 콩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이 되는 거의 모든 음식을 말하는 겁니다.
밥을 먹지 않는다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 사람의 기분이 항상 다운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죠.
탈리안은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이건 본인이 원해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닐 거에요.
마녀라는 존재들은 밥을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지만, 그게 과연 건강이나 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당장에 탈리안의 슬렌더 체형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나이는 모르지만… 밥을 잘 챙겨 먹었다면 10대 후반의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마르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가슴의 크기… 아니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합시다.
어쨌든 밥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질에게 잔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알았어요, 그럼 간단하게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은데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를 먹는 방법 자체는 상당히 간단합니다.
그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서, 입안에 넣으면 그만이거든요.
하지만 오므라이스를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귀찮고 까다롭기 그지없죠.
요리의 방법만 해도 최소 2가지가 있습니다.
겉면만 익혀 안쪽은 스크램블해서 약간 덜 익힌 상태의 계란을 밥 위에 얹어 칼로 반을 갈라준다거나.
완전히 지단을 만들어 밥을 감싸 소스를 뿌린 다거나 하는 방법 말입니다.
마녀로서는 필요 없을 지식이긴 합니다만, 질에게는 가끔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릴 계기가 되겠네요.
다만 이 추억에 질에게는 오므라이스를 한다는 귀찮음을 약간 얹은.
"이, 일단 해볼게요..."
그래도 미지의 위험에서 구해준 생명의 은인, 가족을 잃은 질에게 있을 곳을 만들어준 구원자, 서툴지만 보살펴주기도 하는 보모와도 같은 사람의 부탁입니다.
나름대로 분주히 움직이면서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아직은 성장 중이라서 키가 작기 때문에 의자에 의지한 횟수가 좀 있지만 말입니다.
탈리안은 책을 읽는 척 하면서도 흘깃흘깃 훔쳐봤습니다.
어린아이를 불 앞에 놓은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마음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 이상하게 능숙해 보이는 그 모습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거든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뭔가 볶아지는 소리, 계란 익는 소리와 기름 냄새.
오랜만의 음식 냄새를 맡아서인지 탈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습니다.
이 장면을 질이 보질 못했다는 게 너무 아깝네요.
얼마 안 가, 질의 요리는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질이 오므라이스를 식탁 위에 놓기 위해 그릇을 들고 뒤를 돌아봤을 때에, 식탁에 쌓여있던 식재료들이 전부 사라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질은 각 자리 앞에 오므라이스를 놓고선 탈리안을 지긋이 쳐다봤습니다.
일종의 사인과도 같은 행동이었을 텐데, 탈리안이 알 리가 없죠.
결국 질은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습니다.
"그.. 다 됐는데, 맛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언니.."
"먹어보면 알겠죠, 저도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는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맛을 봅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탈리안의 반응을 살펴보는 질이지만, 아직까지 한마디도 없이 천천히 맛을 음미하기만 하네요.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접시에 담겨있는 오므라이스를 보자면 '맛없게 보인다'라고 단정 지을 요리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외관에서는 플러스 점수를 받고 들어가도 괜찮을 정도거든요.
계란은 잘 익혀져서 윤기가 흐르며, 밥을 완전히 감싸고 있습니다.
두께 역시 이 정도면 식감도 괜찮다 말할 정도로 폭신폭신 해 보이고요.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밥은 햄과 당근, 양파가 들어가 같이 볶아졌으며 향 역시 참기름이 들어가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외관, 냄새에서 합격이라면 맛 역시 괜찮지 않을까요.
"…흠, 흠! 괜찮네요."
"정말요?! 다행이다!"
"정말로 맛있, 었어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네..."
맛있다고 말하고선 급히 자리를 뜨는 탈리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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