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이게… 마녀? (1)
* * *
별장 앞에는 화단과 울타리 말고도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하나 늘어났습니다.
바로 빨랫감을 말리기 위한 거치대였어요.
탈리안도 알고 질도 알듯이, 탈리안 때문에 옷이 흠뻑 젖어버렸거든요.
여벌의 옷이 없는 질에게 있어 나쁜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보다 키가 큰 탈리안의 옷이 맞을 리도 없으며, 탈리안이 옷을 빌려줄 정도로 심성이 좋은가는 또 다른 일이거든요.
뭐 그래요, 탈리안의 심성이 좋다고 칩시다.
그러면 저기 화로 앞에 젖은 속옷 차림으로 앉아있는 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니 너무해요..."
"…이거라도 걸치세요."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미안했나 봅니다.
자신의 키보다 큰 타월을 가져와 질에게 걸쳐줍니다.
탈리안은 지금껏 모든 걸 마법으로 해결해왔을 거에요.
자신의 더러움도 냄새도 귀찮은 일들도 전부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 한정된 이야기일 거에요, 타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할 겁니다.
수도 외곽에 살고 있다지만 깊고 깊은 산골짜기 속에 혼자서 생활하는 그녀예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질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게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따뜻한 마실 거라도 마실래요?"
"네, 네!"
아무래도 이 조용한 시간이 어색했나 봐요.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는 탈리안의 노력이 가상해 보이지 않나요.
물론, 이건 쓸데없는 노력입니다.
집에 들인 건 탈리안 자신이니까요.
어쩌면 이 모두가 질과 친해지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일부러 뭣도 모르는 마녀인 것처럼 물을 끼얹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러 추위에 떨게 만들어 따뜻한 음료를 주는 병 주고 약 주는 행세를 하는 걸 수도 있는 거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탈리안만이 알겠지만요.
마침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마실 것을 들고 오네요.
"이 곳에선 제가 마시던 마실 것을 재현해내는 게 불가능하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본 시제품이에요."
그녀가 질에게 건네준 것은 풀잎을 우려낸듯한 색깔의 투명한 음료수였습니다.
중간에 잎줄기 같으면서도 얇은 무언가가 세로로 서 있는 게 신기해 보이네요.
질은 처음 보는 음료수를 마시는 것에 약간 뜸을 들입니다.
경계심을 가진다…. 라는 것보다는 처음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요.
언뜻 보기에는 차의 종류 중에서 하나같지만, 그 모습은 자신이 살아오며 한 번도 본적 없는 것이거든요.
"몸에 좋지 않은 건 안 넣었으니 걱정 말고 마시세요."
"읏, 네.."
"그리고 마시면서 생각해보세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으풉! 큽, 케헥!"
탈리안이 이상한 말이라도 했는지 음료수를 마시다가 기침을 합니다.
모습을 보니 사레들린 거네요.
"이거, 콜록! 너무.. 쓴데요.."
"아까도 말했지만, 몸에 안 좋은 건 넣지 않았어요. 오히려 몸에 좋을 거에요."
탈리안의 단호해 보이고 강단 있어 보이는 태도는 질의 불평불만을 잠재워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의 탈리안에게 그 누가 말대답을 할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상당히 용기 있는 사람일 거에요.
"저, 잡일이라도 할 테니깐.. 여기서 살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말을 꺼내기 전까지 질은 상당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으로는 이 외에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을 거예요.
자신이 안전하며, 굶을 일 없고,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
탈리안이 사는 이 집밖에 더 있을까요.
받아들여 줄지 아닐지는 탈리안의 선택에 달렸습니다만, 이미 탈리안은 질에게 따라오라고 했었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주기는 할 겁니다.
대가로 뭘 요구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당신이 배가 고프다면 먹을 건 알아서 구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밥이라는걸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이라서."
"그럴 수가…."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에 고개를 떨구는 질의 모습을 보더니 탈리안은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약간은 삐죽 튀어나온 입이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상황이 썩 불편한가 봅니다.
이래서 사람은, 아니 정정합시다.
정확히는 마녀는 선택을 잘해야만 해요.
"하아…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앞으로 같이 식사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대신 식재료는 구해다 줄 테니 요리는 당신이 하세요. 알겠나요?"
"네, 네! 물론이에요! 감사합니다. 언니!!"
기쁜 표정으로 미소짓는 질을 보니 이제야 침착해지는 기분이 드는 듯한 탈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탈리안은 한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었어요, 질을 이곳에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자립의 때가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질이 자립이 가능할까요.
책도 많이 읽었고, 철도 일찍 들었으며,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거지는 거의 성인에 준하는 성숙함을 보여줍니다.
아직까진 애늙은이스럽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그 훗날을 생각한다면 질은 교육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야 나쁜 쪽으로 물들지도 않았지만, 질은 한창 여러 가지를 흡수할 나이입니다.
새하얀 백지와 비슷한 상태라는 거죠.
뭐 지내다 보면 탈리안도 어느 순간 눈치챌 겁니다.
이별은 느릿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고, 그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요.
이거 나중을 생각하면 탈리안이 마녀가 아니라 보모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네요.
"질, 따라오세요. 당신이 지낼 방을 보여줄 테니까요."
"조금만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아직 추운데.."
"…5분 만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고 있던 소파에 착석하며 책을 펼치는 탈리안.
이 모습만 본다면 어떻게 그녀가 날개 달린 그림자를 단번에 처치했다는걸 믿을 수 있을까요.
조금은 귀찮아하는 걸 뺀다면 마음이 이렇게나 착하고 이쁜데 말입니다.
"근데 언니가 읽는 책은 뭐에요?"
질은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책을 읽는 탈리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누가 책벌레 아니랄까 봐 탈리안이 읽는 책까지 탐내네요.
그래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디자인의 표지를 하고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요.
탈리안이 들고 있는 책의 표지에는 동물의 뿔처럼 보이는 것이 두 개 달려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것만 본다면 흡사 양의 것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뼈 같은 것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탈리안은 질의 질문에 책을 질에게 건네줘 봅니다.
"궁금하면 읽어봐도 좋아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일어나서 직접 책을 가져다주는 탈리안의 호의를 받아들여 책을 펼쳐보지만, 그 안에 적힌 글자들은 문자라고 보기도 힘든 모양의 그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질이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어요.
"...뭐가 적혀있는 거예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적혀있어요, 신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그림 같은 글자도 적혀있고, 진짜 그림도 실려있으니 신문 같은 거라고 불리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은 없습니다.
조금 이상한 뿔이 두 개 달려있고, 책처럼 만들어진 신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질은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게 더 이상은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탈리안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곤 자신도 일어서서 탈리안의 손을 꼬옥 잡았어요.
탈리안은 가끔 질의 나이에 맞는 행동이 튀어나올 때마다 이제야 어린애 답네라는 생각을 하곤 할 겁니다.
동생이 사라졌다 싶더니, 부모가 죽고, 마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고선 한번, 딱 한 번 울고 그 뒤로는 조용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10살의 꼬마아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나사 빠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슬슬 방으로 올라가죠."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는 건 상당히 껄끄러울 겁니다.
하루종일 울어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 보인 어린애 같은 모습에 탈리안은 질의 손을 잡은 손에 약간의 힘을 주었습니다.
아프지 않도록, 적당한 힘을 주어, 마치 위로하듯이.
그에 대답하듯 질 역시 살짝 힘을 넣었습니다.
둘이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는걸 보고 있으니 언니와 동생이 걸어가는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두 사람은 어떤 방의 문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벽돌과 나무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는 별장과는 이미지가 한참은 동떨어진 문 앞에서요.
테두리에는 금테가 장식되어 반짝거리고, 문패에는 질의 이름인 지르니트 페어차일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문패는 무언가의 고급스러운 재질로 이루어져 광이 납니다.
문패 주변에는 화려한 그림과 장식으로… 이쯤 해도 질에게는 충분히 부담감을 안겨주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이 문의 존재는 현실감과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 언니 이건 이상한..."
"이 방이 앞으로 질이 지낼 곳이에요."
깔끔하게 질의 말을 끊어버리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여는 탈리안이었습니다.
마녀답다, 라기에는 아직 마녀스러운 모습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요.
지금은 그것보다 방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질에게 제일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진짜, 진심으로 처음 겪어보는 화려함일 거에요.
처음 보인 것은 창문.
창문은 비쳐 보이는 커튼과 암막 커튼 두 겹이 설치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고를 수 있는 편의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침대.
질 혼자서는 꽉 찰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크기의 침대, 베개는 부드러우면서도 손으로 눌러보면 움푹 들어갔다가 떼었을 때 다시 원상 복귀되는 탄력까지.
이불은 폭신함과 아늑함 두 가지를 다 잡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벚꽃색을 기본 바탕으로 흰색의 프릴이 달려있어 귀여운 이미지까지 챙겼죠.
한 눈으로 봐도 비싸 보이는 책상이나, 책상과 세트인 의자, 넓게 깔린 카펫, 옷장이나 서랍 등등… 이 모든 게 질 혼자서 누리기에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것들이었습니다..
"저 이런 데서는 못 지내요 언니..."
"부족한가요?"
아무래도 탈리안은 서민의 삶을 모르는 듯 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런 방을 준비할 리가 없으니까요.
아니, 과연 준비한 걸까요?
마녀라면 이런 방 하나 만들어내는 것쯤은 별일도 아닐 겁니다.
"부족, 부족할 리가요!! 오히려 너무 분에 넘치는 것들이라서..."
한번 발끈했다가도 바로 소심한 태도를 보이며 사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질입니다만, 탈리안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것만 봐도 질이 얼마나 탈리안의 기분을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리안은 그런 질의 손을 잡고 이끌어선 침대로 가 앉혔습니다.
설교라도 시작하는 걸까요.
"앞으로 이곳에 지내며 하게 될 잡일에 대해 제가 지불한 대가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옷장에 입을만한 옷들을 넣어뒀어요."
"저기 그러니까, 탈리안 언니..?"
막무가내로 대가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마녀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면 서민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는 교육이 필요하겠네요.
탈리안은 손가락을 튕겨 반대편 손바닥 위에 차임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위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종이 울리는 간단한 방식의 물건을 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한 가지 더, 제게 볼일이 생기면 이 벨을 한번 누르세요. 그 뒤에는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요."
"언니..."
힘을 뺀 채로 탈리안을 불러보지만, 그 말에는 감사나 감탄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말을 끊고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용건이 끝났는지 마음대로 방을 나가려고 합니다.
"어, 언니 진짜 잠시만요..!"
"화장실은 1층 복도 끝에 있고, 도서관은 2층 계단 옆에 있어요. 됐죠?"
"그게 아니라...!"
아니긴, 질도 참 솔직하지 못합니다.
이럴 땐 애늙은이 같은 모습도 딱히 좋을 것이 못됩니다.
마녀의 호의라는 건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놔야 하거든요.
혹여나 마음이 변해버려 주려 했던 것을 다시 앗아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이래서 말이고 생각이고 잘해야 된다는 겁니다.
보세요, 탈리안의 손짓 한 번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그 화려했던 방이 서민이 살만한 방으로 바뀌어버렸잖아요.
"이 정도면 되는 건가요?"
"네, 아까보다는 정말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예요!"
자신이 기껏 만들어준 방이 부담된다기에 기분이 상한듯한 표정으로 바꾸어주었더니, 질이 귀여운 웃음으로 보답해주었습니다.
이건 탈리안이라고 해도 버티지 못할 귀여움인 거 같습니다.
"언니 고마워요, 전부 다!"
"…편히 쉬세요, 저는 내려가서 마저 책을 읽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아까 그 종으로 부르면 됩니다."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