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1), 어느 병실일기 (54/57)

#에필로그(1), 어느 병실일기

우리 층에, 몇 달 전부터 유난히 자주 입원하는 환자분 알아?

한 달 전 새로 들어온 윤 간호사는 선배의 말에 난감한 얼굴로 “아뇨…….” 하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많은데 누가 자주 입원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한단 말인가. 적어도 한 달차 신입에게 그런 주변머리를 발휘하기란 무리였다.

“잘 봐봐. 이번에 또 들어오셨거든.”

“…잘생기셨나 봐요? 선배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아아니. 음, 잘생기긴 했지만 그분보단 그분을 매일 찾아오는 다른 분들이 엄청나. 그래서 유명해.”

“아……. 그렇군요.”

아름다운 것을 유독 좋아하는 선배 간호사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그래 봤자 일반인들일 텐데 무엇이 그렇게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을 했던 윤 간호사였으나, 며칠 뒤 그 환자의 실체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무헌아! 휠체어는 내가 밀어준다니까! 무헌아!”

누군가 시끄럽게 흑흑 우는 소리를 내기에 고개를 돌렸더니, 몹시 멀쩡하게 잘생긴 금갈색 머리의 청년이 방금 스쳐 지나간 휠체어 뒤를 따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 잘생김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 윤 간호사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조금 듣고 말았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휠체어라 밀어 줄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그래도. 너무 무리한 나머지 다리에 중압이 가서 입원했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자제하지 않으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날 죽일 셈이냐.”

“흐윽. 그래도. 앗, 무헌아!”

밉지 않게 울상을 지으며 사라진 미남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윤 간호사는 한참 후에야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어머. 나 좀 봐.’

할 일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정신을 빼놓아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서둘러 가던 길을 다시 가는 동안에도 방금 전 보았던 미남의 얼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은 환자의 휠체어를 강제로 밀고 있는 두 남자를 보았다. 한 사람은 키가 2미터는 될 것처럼 컸고,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작았지만 각기 다른 야성적인 매력이 있어 저절로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무헌아. 그때 형이 널 도와주지 못한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당장 나가 벽돌을 열 장 정도 깨고 싶어지니까 제발 그냥 밀게 해 줘라. 응?”

“푸하하. 그래. 주열이 저 녀석은 한다면 정말 하니까 5분 정도만 참으라고.”

“선정우 넌 대체 왜 따라온 거냐? 내가 무헌이랑 만나는 거 방해하지 말고 좀 꺼져.”

“나도 아는 동생 병문안 정돈 올 수 있다고.”

서로 툭탁대는 두 미남을 바라보다 보니 또다시 저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 간호사는 문득 옆에서 말을 거는 동료 간호사 때문에 놀라 힉 하고 숨을 삼키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미남 비율이에요. 그렇죠?”

“……아, 네. 그렇네요.”

“몇 분이나 봤어요?”

윤 간호사에게 문안객들의 인상착의를 들은 동료 간호사는 묘한 미소와 함께 ‘아직 볼 사람이 몇 사람이나 남아 있으니 참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볼 미남이 더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싶었지만 다음 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흐음. 산책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요, 그래도 너무 다 혼자서만 하려 하는 건 재미가 없어요, 형. 가끔은 남의 품에 안긴 채 다니는 건 어떤가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데.”

“형, 저 미친놈 말은 무시하세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는 게 최고입니다.”

“그래, 운오 네가 역시 저 녀석보다 낫다.”

싸늘한 목소리가 휠체어 쪽에서 들려오자 꿈에 볼까 무서울 만큼 화려한 미인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 옆에서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이는 아직 20대 초반 정도로 어려 보이긴 해도 키가 매우 크고 단단한 인상을 지닌 미남이었다.

그들이 지나친 뒤에야 윤 간호사는 방금 본 이들 중 정신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이던 미인이 그 유명한 모델 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와, 세상에. 내가 칸을 다 보네. 실물이 더하다니.’

그가 이 병원에 거의 단골 수준으로 많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였다.

그 다음 날은 휠체어를 끌고 매일 나오던 환자의 병실이 조용했다. 오늘은 산책을 하지 않는 것인가 싶었는데, 저녁때쯤 누군가가 밀고 있는 휠체어에 앉아서 나오고 있는 그와 마주치고 말았다.

살짝 눈인사를 하며 휠체어가 지나가기 편하도록 벽에 붙은 윤 간호사는 휠체어를 밀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흘긋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의심해 몇 번을 비비고 말았다.

‘……연예인인가?’

어제 본 모델 칸이 악몽처럼 화려한 얼굴이라면 그 남자는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는 조각 같은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단정하면서도 남자다운 미모 위로 고요하게 뜬 눈동자가 어찌나 사연 있어 보이는 빛을 띠고 있었는지,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말을 걸 뻔했을 정도였다.

“…진제환. 너도 아직 몸이 별로 안 좋을 텐데 오지 말라니까.”

“괜찮다고 확인받았으니 문제없다.”

“그래도…….”

휠체어의 주인이 기운 없이 중얼거리자, 잠시 휠체어를 밀던 것을 멈춘 남자가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다가는 조용히 등을 구부려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 순간 들려온 소리는 분명 입술과 입술이 닿은 것임에 틀림없는 소리였다.

‘헉……. 내가 그만 또 예의 없는 짓을.’

윤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뒤돌아 도망쳤다. 그러나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잠이 들 때까지도 그들의 이유 없이 애틋하고 아련해 보였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둥실둥실 떠 있었기에 상당히 고생해야만 했다.

그 이후로도 그런 미남들이 거의 매일이 멀다 하고 그 병실의 환자를 찾아왔다. 윤 간호사는 한 달이 지나 그가 퇴원했을 때에 아쉬움마저 느끼고 말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완전한 회복을 하지 못한 탓에 퇴원할 때에도 휠체어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남자의 얼굴은 퇴원한다는 기쁨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밝고 즐거워 보였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본 윤 간호사는 문득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그의 창백한 낯빛에 떠오른 묘하게 그늘을 느끼게 하는 미소가 매우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혼자 두고 싶지 않게 생긴……. 아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윤 간호사는 어설프게 웃으며 환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돌아가세요, 강무헌 님.”

퇴원하는 환자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나 했던 생각처럼, 그녀는 오늘도 집에 돌아간 환자가 또 아파서 다시 찾아오는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좋은 친구들을 가진 그가 부디 행복하기를. 다시는 아프지 않기를.

여섯 달 사이 같은 병실에 세 번이나 입원했던 기록을 더는 갱신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으며 흔든 손 너머로 환자를 기다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그의 미남 친구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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