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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다리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다녀왔겠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내가 병원에 가겠다고 전하자마자 진제환에게서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화상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 무헌. ]
“……뭐냐, 갑자기.”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받은 것이었는데 진제환은 심각한 얼굴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다.
[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으니 오늘은 반드시 택시를 타고 가도록 해라. 내가 함께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쪽에서 바로 이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아. ]
“너 설마….”
고작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득달같이 전화한 건 아니겠지.
설마 하는 마음으로 화면 너머 진제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니 아무래도 그 설마가 맞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 걱정스러운 눈빛을 담아 나를 보고 있는 진제환은 언제 봐도 낯이 뜨거웠지만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목욕 사건 때문인지 오늘은 그것이 두 배는 더 멋쩍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놈과 눈싸움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리자 진제환이 제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 오늘 날씨는 내내 영하라는 예보가 있었어. 버스를 기다리다가 또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 듣고 있는 건가? ]
생각해 보면 처음 봤을 때는 저 정도로 나를 챙기려 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아마도 답은 진제환 앞에서 유난히 아프거나 피 흘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던 나의 과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새삼스럽게 낯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고맙다.”
내 대답을 듣고 안심했는지 진제환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 …무슨 문제가 있으면 휴대폰으로 바로 연락해 줘. ]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속삭인 말까지도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는 대사라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나를 걱정해 주는 진제환의 마음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 뒤 전화 연락을 끊었다.
큰 화면이 점멸하면서 이제 좀 익숙해진 진제환의 작업실 모습들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
[ 응? 아침부터 한숨은 좋지 않아요! 미남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웃는 얼굴 근육 체조가 필요하죠! 같이 따라해 보시겠어요? ]
분명 아주 작은 한숨이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곧바로 하우스 컴퓨터가 반응하며 말을 걸었다. 그와 함께 눈앞에 휙휙 떠오르는 안면근육 체조 동영상들을 보며 놀라지 않는 나 자신이 이제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여러모로 굉장하다는 것을 저 컴퓨터를 보며 깨닫게 될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아니… 됐어. 이제 나갈 거니까.”
[ 앗. 그러시군요. 오늘 오전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하 10도. 바람은 없지만 추우니까 옷을 아주 두껍게 입고 나가셔야 해요. 방심하다가는 동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까요. ]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눈앞에 떠오른 동상 관련 기사들을 손으로 휘저어 치운 뒤 나는 진제환이 산더미처럼 사다 놓은 옷더미들이 있는 옷장으로 다가갔다.
‘여기서 가장 두툼한 건… 역시 저 파카인가.’
사람을 눈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파카를 끄집어내 입자 하우스 컴퓨터가 또다시 재잘대며 말을 걸었다.
[ 안 돼요, 안 돼. 외투만으론 안 되죠. 장갑과 목도리는 필수! 저쪽에 있으니 찾아보세요. ]
천장에서 켜진 핀 조명 하나가 옷더미 사이 구석 어딘가를 비추었다. 그곳을 보니 정말로 장갑과 곱게 개어 놓은 목도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집어 들려다 말고 문득 전에 병원에 갔었을 때 마주쳤던 운오를 떠올렸다.
‘아. 그때 운오가 빌려준 목도리를 이번에 돌려주러 가야겠군.’
운오가 준 회색 목도리를 종이 가방 안에 넣고 나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눈사람 같은 내 모습에서 애써 눈을 돌리려 노력하면서 집 밖으로 나섰다.
[ 잘 다녀오세요~! 돌아오실 때 맛있는 것도 사 오시구요! ]
컴퓨터의 애교 넘치는 인사가 문 너머로 사라짐과 동시에 숨 한 번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가 얼어붙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싸늘한 공기가 뺨과 귀를 공격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다리를 절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느릿느릿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후우. 바람이 없어서 오히려 더 추운 느낌인데.’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빠르게 굳는 것을 보니 끼지 않았다면 정말 동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제환의 하우스 컴퓨터가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성격이기는 해도 과연 컴퓨터는 컴퓨터인 모양이었다.
길 곳곳에 눈이 얼어서 생긴 빙판이 보였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이겠지만 나처럼 다리를 잘 못 쓰는 사람이나 노약자에게는 아주 위험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지팡이도 없으니 더욱 조심해야 했으므로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하는 데 평소의 두 배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다음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려 주는 홀로그램 전광판을 보니 방금 전 버스가 떠났는지 1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 날씨에 10분이라…….’
기다리지 못할 것은 없지만 드러난 얼굴이 심각하게 따가워지는 것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택시를 탔거나 아니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주머니 안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것이 내 휴대폰에서 난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나자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휴대폰을 산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그것의 존재에 익숙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 무헌아. 오늘은 뭐 하고 있어? 몸은 괜찮아? ]
휴대폰을 꺼내자 화면에서 흘러나온 빛을 통해 홀로그램 문자가 형성되었다. 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민후라는 것을 깨닫고 저절로 입꼬리가 슬그머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 진제환의 집 컴퓨터 쪽으로 갑자기 몸은 괜찮으냐는 말을 엄청난 오타와 함께 전송해 온 민후는, 이후 나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부터 하루에 한 번씩은 꾸준히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마음을 갑작스럽게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자를 통해 연락할 때의 민후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상냥하고 좋은 친구였기에 나로서는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었다.
[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맙다. 오늘은 병원. ]
짧게 답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내자 10초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 병원? 또 어디 아파? ]
[ 정기검진. ]
[ 혼자서? ]
[ 응. ]
그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었던 대화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떠올랐을 때 다시 이어졌다.
[ 그럼 나도 그쪽으로 갈까? 만날래? ]
“…….”
민후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조금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는 동안 나는 잠시 답 메시지 작성을 멈추고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오늘의 일정은 정기검진 후 운오를 만나거나, 혹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운연이의 병실에 들러 안부를 전하고 빌린 목도리를 돌려주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두 시간 이상 걸리지는 않을 짧을 일정이니 그때쯤 민후를 만나도 늦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적절한 오후의 만남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민후를 다시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어떤 얼굴을 하고 그 녀석과 마주하면 좋을까? 혹시 또 내 말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 녀석에게 슬픈 얼굴을 하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을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이 찾아들었다.
[ 바쁘면 거절해도 괜찮아. 그냥 잠깐 만나서 남는 시간에 밥이나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니까. ]
그때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또다시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기가 조금 서늘한 버스 안에는 나 외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역시 민후라고 해야 하나.’
민후는 늘 내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배려해 주는 말을 한다. 내가 왜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굳이 ‘바쁘면’ 거절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한 배려 중 하나였다.
이렇게 성격 좋고 괜찮은 녀석이 어째서 나 같은 사회 부적응자에 다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놈을 좋아한다고 말해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민후가 내게 해 주는 것처럼 잘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미안. 버스를 타느라. 괜찮으면 두 시간쯤 뒤에 만나자. ]
결국 나는 그렇게 답을 작성해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 좋아! 어느 병원이야? 네가 전에 입원했던 곳? ]
[ 응. ]
[ 알겠어. 도착할 때 다시 연락할게. ]
민후와의 연락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뭔가 아주 큰일을 치러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메시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후…….”
멀리 차창 밖으로 내가 곧 가야 할 거대한 병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은 몇백 번을 와도 역시 기분을 나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저조해지는 감정을 억누르며 손에 든 종이봉투를 꽉 붙잡았다.
“오늘은 안색이 좀 좋아 보이는구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형식적인 검사를 받고 신정석 의사가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현재의 내 기분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평가를 들었다. 내 표정이 묘하게 변한 것을 보았는지 신정석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뇨… 그다지.”
“그래. 그동안 운동량이나 식생활에 변화는 없었고?”
“없었습니다. …아. 감기에 걸려서 식사를 하루 정도 거른 적은 있었습니다만 금방 나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감기에 걸렸었다는 말을 했지만 신정석 의사의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유의미한 변화 요건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다행이구나. 일단 이번 결과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는 없어. 이쪽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회색인 부분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늘어났을 뿐이란다.”
그의 말대로 허공에 떠 있는 지난주와 이번 주 내 다리의 홀로그램 3D 사진은 각 색상의 분포가 비슷비슷해 보여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아주 조금씩이라도 그런 부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구나.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언제든 곧바로 나에게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대의 날씨와 습도, 상황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좀 더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괜찮겠니?”
“…네. 알겠습니다.”
과연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는 하지만 신정석 의사는 나를 장기간 보아 온 사람이고 답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도 최선을 다해 관심을 보내주고 있는 이다. 다리를 조금이라도 오래 쓰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나는 신정석 의사가 건네준 명함을 받고 진료실을 나왔다. 명함에는 늦은 시간에도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넣을 수 있는 긴급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메일이나 문자로 연락을 해도 괜찮다는 배려를 보여주었으나 나로서는 되도록이면 연락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더 바랄 뿐이었다.
평소라면 여기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겠지만 오늘은 한 군데 더 들를 곳이 있었다. 나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운오의 동생, 박운연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작은 소녀는 여전히 같은 병실에 그대로 머무르는 중이었다.
“아. 무헌… 오빠?”
“응. 안녕.”
노크하고 들어서자마자 내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리는 운연이가 기특해 피식 웃자 운연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전에 만났을 때 부탁했던 호칭 변경을 잊지 않아 준 것도 고마웠다.
“몸은 이제 다 나으셨나 봐요. 숨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요.”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귀가 그만큼 더 예민해진다는 말이 초능력 수준으로 상대방의 컨디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닐 텐데, 운연이는 정말 귀신같이 내 상태를 곧바로 알아챘다.
“맞아. 다 나았거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친절하게 대답해 주며 다가가자 운연이가 옆쪽에 놓여 있던 의자를 가리켰다.
“운오 오빠는 잠깐 물 사러 갔는데 곧 올 거예요. 그동안 앉아 계세요.”
원래는 운오가 없으면 목도리만 두고 갈 생각이었는데 운연이가 그렇게 말하니 왠지 그냥 돌아가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현재 시각을 확인해 보았다. 민후에게 말했던 두 시간까지 아직 3~40분이 남았으니 여유 시간은 충분할 듯했다.
“음… 고맙다.”
사양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 의자에 앉자 운연이가 씩 웃었다.
“오늘은 병원에 왜 오신 거예요? 들어오실 때 왠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던데.”
“…검사를 받을 게 좀 있어서. 여기 온 건 운오에게 돌려줄 물건이 있어서지만…….”
말을 하며 내 무릎 위에 곱게 놓여 있는 종이봉투를 내려다보자 운연이가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내 무릎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돌려줄 물건이요?”
“목도리를 좀… 어쩌다 보니 저번에 빌려서.”
전후 사정이 멋쩍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말끝이 자꾸 흐려졌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는 했다.
운오는 그때 진제환이 남긴 자국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진제환이 남긴 것이라는 건 당연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쩌다가 난 것인지는 알아보았으니 목을 감싸주는 배려를 보여준 것일 터다. 해가 지나서 어른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직 미성년자였던 운오가 어쩌다 그런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면 기분이 절로 이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빠가 목도리를요? 와아.”
아무것도 모를 운연이는 그저 밝게 웃으며 신기해했다.
“우리 오빠지만 오빠는 좀 절약 정신이 강한 편이라서 다른 사람한테 자기 물건을 빌려주는 일이 없는데 신기해요. 역시 오빠는 무헌 오빠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음…….”
순식간에 두 배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무어라 답해 주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운오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운연아. 누가 와 있었……. 형?”
양손에 큰 봉지를 들고 들어오던 운오가 나를 보자마자 찌푸렸던 미간 주름을 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와는 달리 얼굴에 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눈뿐이었다.
처음에는 감기라도 걸렸나 싶었었지만 이내 운오가 동영상에서 얼굴을 공개했었다는 것이 떠올라 모든 것을 납득했다.
“이거. 돌려주러 왔다.”
내 무릎 위에 놓아두었던 종이봉투를 살짝 가리켜 보이자 운오가 피식 웃으며 병실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간이 테이블 위에 제 짐을 올려두었다. 내용물을 보지 않고도 내가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오셨네요. 과일이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지금 사 온 건데요.”
운오가 사 온 큰 봉투 안에 든 것은 생수와 과일, 그리고 몇 가지 간식이었다. 나는 운오가 내민 바나나를 잠시 내려다보다 고마운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고맙다.”
“오빠, 나도 먹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 봐.”
운오가 마스크를 벗고 여동생을 위해 바나나 하나를 따서 껍질을 깠다.
오빠에게 과일을 달라고 조르는 운연이도, 조심스럽게 껍질을 까서 손에 쥐여 주는 운오도 모처럼 제 나이 또래의 사이좋은 어린 남매로 보여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두 녀석 다 평소에는 너무 어른스러우니까 말이지….’
“오빠도 같이 먹어.”
“난 괜찮아. 아침을 늦게 먹어서 아직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드니까.”
“그래도….”
그러나 너무 훈훈해도 문제는 문제였다. 서로에게 바나나를 권하느라 전혀 먹지 못하고 있는 두 남매를 지켜보고 있자니 거의 다 먹어가는 내 바나나가 민망해져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내 바나나를 다 먹은 뒤 수를 쓰기로 했다.
“운오. 이거 하나 더 까도 되겠지?”
“아… 네.”
바나나를 하나 더 따서 묻자 운오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사양하지 않고.”
“…흡.”
나는 그 바나나를 순식간에 까 버린 뒤 흰 알맹이를 운오의 입에 밀어넣었다.
“오빠?!”
“깠으니까 네가 먹어.”
운연이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나나 때문에 입이 막혀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우물대는 운오가 약간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잘못한 것이 없으니 당당히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결국 운오는 바나나 하나를 서둘러 다 먹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어 말을 했다.
“너무 과격한 것 아닙니까. 하마터면 기도에 박힐 뻔했어요.”
“이쪽이 가장 빨랐으니까.”
문제 해결에 말이다.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운오도 그 이상은 무어라 하지 않고 표정이 풀어졌다.
“형은 참… 항상 한결같으시네요.”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표정이 밝았으니 칭찬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나는 운연이까지 바나나를 다 먹은 뒤에 남매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운연이는 한 달 뒤 수술을 할 예정이라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검사를 받는 중이라고 했고, 운오는 일할 곳을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여태까지는 방과 후에 캡슐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낮에 일할 곳도 찾아야 하니까요. 사실 두 시간쯤 후에 면접을 보러 갈 예정이었습니다.”
“…내가 방해가 된 건 아니지?”
“아뇨. 가볍게 면접만 보고 올 거라 준비할 것도 없는데요 뭐. 형이 와 주셔서 운연이도 좋아 보이고.”
운오가 희미하게 웃었다.
“자주 와 주셔도 괜찮습니다.”
“…….”
말은 참 고마웠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는 놈의 앞에서 내가 병원을 정말 싫어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운오를 따라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무헌 오빠는 이 이후에 집으로 가실 예정이세요?”
나에게는 다행한 타이밍으로 운연이가 질문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샌가 민후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아니. 친구와 만나기로 했어.”
“그렇군요.”
운연이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언젠간 저도 밖에서 무헌 오빠를 한 번 만나고 싶어요. …목소리가 아니라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요.”
곁을 보니 운오가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나 제 오빠를 염려하던 운연이가 저렇게 직접적으로 ‘앞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는 것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남인 나도 육신이 멀쩡하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을 알기에 마음이 좋지 않은데 하물며 혈육인 운오는 어떨까. 아마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나는 운오의 등에 살짝 손을 올려 두드려 주며 조용히, 그러나 확신 있게 대답해 주었다.
“…응. 그렇게 될 거야.”
운오가 길게 숨을 내쉬며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말은 없어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무헌 오빠. 그러면 다음에 또 봐요!”
“그래. 건강하고.”
“오빠도요.”
몸이 불편한 이들끼리 뼈대 있는 농담을 섞어 작별 인사를 건넨 뒤 밖으로 나왔다. 한발 먼저 나가 있던 운오가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에 안 하던 말을 하네요. 혹시 신경 쓰일 만한 말이 있었어도 너무 담아두지 마셨으면 합니다.”
“괜찮아. 뭐… 여러 가지로 복잡할 테니까.”
큰 수술을 준비할 때의 기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그 끔찍한 기분.
운연이는 돈이 없어 하지 못했던 수술을 드디어 하게 되었으니 운오의 앞에서 그 불안감을 크게 티 내지 못했겠지만, 나를 보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슬쩍 본심이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떼를 쓴 것도 아니고 나중에 몸이 나으면 밖에서 만나고 싶다는 귀여운 소원일 뿐인데 신경 쓰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좀 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형, 아까 못 보던 휴대폰을 꺼내시던데 새로 사셨습니까?”
작게 한숨을 내쉰 운오가 분위기를 바꾸었다.
“뭐…. 그렇게 됐다.”
“잘됐네요. 제 연락처는 알고 계시죠.”
“음.”
전에 병원 옥상에서 운오와 루크레이신… 아니, 류진유를 만났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운오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아, 맞다. 네 동영상 잘 봤어. 멋있던걸.”
운연이가 있었을 때에는 하지 못했던 게임 속 이야기가 떠올라 한마디 하자 운오가 아, 하고 뭔가 깨달은 얼굴을 하며 제 점퍼 주머니를 뒤졌다. 뭘 꺼내나 했더니 병실에 들어올 때 끼고 있었던 큰 마스크였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 덕분에 이걸 껴야 한단 게 기억났네요.”
“알아보는 주변 사람이 그렇게 많냐.”
예전에 처음으로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 얼굴을 공개한 죄로 이후 직장에서 한동안 시달림을 당했다던 주열 형을 떠올리며 묻자 운오가 고개를 저었다.
“졸업도 했고 하니 사적으로 곤란할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비율이 꽤 크더군요.”
말인즉슨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알아보고 말을 걸거나 따라오는 일이 늘어 찝찝해졌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역시 내 동영상이 나올 때에는 절대 얼굴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결심에 또 결심을 거듭했다.
“그럼 난 이제 간다. 다음에 보자.”
“아. 잠시만요. 어차피 저도 면접을 가야 하니 병원 밖까지는 같이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운오답지 않은 말에 나는 새삼 놀랐다.
‘혹시 뭔가 따로 할 말이 더 있는 건가.’
어차피 1층 로비까지 몇 분 정도밖에 안 걸리니 그사이 많은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
고개를 끄덕인 뒤 나와 운오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몇 층 위에 있는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민후가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 곧 도착. 로비에서 보자! ]
타이밍이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도로 넣자 운오가 말을 걸어왔다.
“친구분 연락입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보니 문득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기억났다.
현실에서 만난 적은 없겠지만 운오는 미스트 속에서 나와 민후와 제법 오래 같이 다녔으니 이번 기회에 어쩌면 서로 인사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나면 좀 반가워하려나. 그래도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쓸데없는 말은 미리 첨언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나는 운오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운오는 잠시 휙휙 변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사귀는 사람 있습니까?”
“……뭐?”
굳이 같이 가자고 하기에 뭔가 할 말이 있나 보다 싶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었다.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운오가 태연한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저번에 키스마크도 그렇고, 뭔가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어요. 사귀는 사람 있는 것 맞죠.”
“없어.”
곧바로 단답으로 대답했지만 운오의 얼굴은 이미 뭔가를 확정 지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분도 사실 애인이 아닌가 생각하는 중이었는데요. 정말 아닙니까?”
이 자식이 경찰도 아니면서 사람을 추궁하려 들다니. 남의 애인 여부가 뭐 그리 궁금한가 싶었지만 나는 일단 성의 있게 답변해 주기로 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려가서 만나보는 건 어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정말입니까?”
운오가 씩 웃으며 반문했다.
“그렇게 말하면 저 사양 안 할 겁니다?”
“…안 해도 되니 꼭 확인해 봐.”
아마 너도 놀랄 사람일 테니까, 하는 말은 삼켰다.
그리고 운오는 정말로 1층에 내려온 이후 내 곁에 서서 함께 나의 약속 상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둘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내려와서인지 평소보다는 병원 안에 있는 것이 견딜 만했다.
“저기, 혹시 저번에… 절 도와주셨던 형 맞으시죠?”
접수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언제쯤 민후가 올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입원해 있었을 때 두어 번 마주쳤었던 소년이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름이… 아마 선빈이라고 했었던가?
“아. 역시 맞았네요. 무헌 형… 맞죠? 그때 두 번이나 도움을 받고도 제대로 인사를 못 해서 죄송했어요.”
‘저 녀석도 미스트를 하고 있다고 했었지.’
같은 게임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었던 소년을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되어 나도 매우 반가웠다.
“괜찮아. 몸이 나은 것 같아 다행이다.”
어색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하자 선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형은 퇴원하셨나 봐요?”
“응.”
“축하드려요. 아, 나도 얼른 퇴원해서 게임하고 싶다.”
창백한 얼굴이지만 표정만은 그 나이 또래의 평범한 소년다워서 어쩐지 조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게임이라면, 미스트?”
“네. 못 들어간 지 정말 오래됐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선빈의 얼굴은 꽤 쓸쓸해 보였다.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나는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고2 때 겪은 사고 이후 1년 가까이를 병원에서 지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었던 몸이다.
고통스러운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재활했던 것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또래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과 무력감이었다. 아마 저 녀석도 그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형은 아직 미스트 하고 계세요?”
“…응.”
“그러면 혹시…….”
“이선빈 씨. 이쪽으로 와 주세요!”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선빈이 멀리서 그를 부르는 사람 때문에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가봐야겠다. 죄송해요, 형!”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은 선빈이 이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멀어진 뒤 나는 한 발짝 뒤에서 말없이 서 있었던 운오를 돌아보았다. 운오는 처음 보는 묘한 얼굴로 선빈이 사라지는 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래?”
“…형. 방금 그 녀석, 혹시 미스트 유저입니까?”
“그건 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떨떠름하게 반문했지만 운오의 표정이 어쩐지 평소와 달리 심상치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사실대로 말해 주기로 했다.
“그냥, 입원해 있을 때 우연히 도와주게 되어서 두 번 봤어. 미스트를 한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같은 게 아니라 아마 확실할 겁니다.”
운오의 표정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 녀석은 분명 ‘혼류’예요.”
“…혼류? 그게 뭔데.”
낯선 이름에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해하자 운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모르십니까? 굉장히 유명한 유저인데요.”
아, 유저 이름인가.
“그런 쪽은 신경 쓰지 않아서.”
나는 내가 직접 만난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누가 유명한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내 퀘스트를 하기에도 바쁜데 굳이 알지도 못하는 남의 이름을 신경 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운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신경을 안 써도 모르기가 힘든 유저인데… 뭐, 하긴 형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새삼 놀랍긴 하지만요.”
“…욕하는 거냐? 그런 걸 잘 안다고 해서 스킬이 오를 것도 아닌데 상관없잖아.”
떨떠름하게 묻자 운오가 피식 웃었다.
“아, 네. 뭐, 형답네요.”
“…….”
나는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운오는 웃음을 거두고 마스크 한쪽을 슬쩍 벗어 입을 드러낸 뒤 혼류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혼류는 미스트 내에서 맨손으로 싸우는 격투형 유저 중 제일 유명한 유저입니다. 수많은 도전자들을 상대로 대결해서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대결할 때나 각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해치울 때마다 직접 찍어 올린 영상 때문에 더 유명한 유저라 저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굉장히 어리다고 들었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군요.”
격투형 유저라는 말을 들으니 전에 선빈이를 만나 미스트를 한다는 대화를 했을 때, 그가 분명 제 직업을 격투가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운오의 말대로 선빈은 그 혼류라는 유저일 가능성이 높았다.
‘신기하기는 하군.’
나는 선빈에게 전보다 더욱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왜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오래 입원해 있을 정도라면 분명 심상치 않은 몸 상태 때문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녀석이 미스트에서는 아주 유명한 격투가라니. 퇴원해서 게임을 하고 싶다던 말이 이렇게 안타깝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무헌아!”
그때, 드디어 기다리던 민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멀리서 뛰어오며 손을 흔드는 민후를 보며 선빈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기다렸지, 미안! 병원 앞에서 갑자기 차가 좀 막히는 바람에…….”
밝은 얼굴로 다가오던 민후가 내 옆에 서 있는 운오를 보았는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흘긋 돌아본 운오의 얼굴도 충격받은 기색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저 사람이 약속했다는 사람입니까?”
“응.”
운오는 정말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애인이나, 뭐 그런 사람인 줄로 지레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아마 현실에서는 처음 만날 두 녀석이 나란히 충격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웃음이 나와서 나는 겨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누른 채 두 사람 사이에 섰다.
“뭐, 이렇게 되었으니 서로 인사나 하고 가라. 이쪽은 정민후. 그리고 이쪽은 박운오다. 서로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게임 속에서는 머리색이나 눈색이 다르다지만 어차피 얼굴은 똑같다. 오랫동안 함께 여행도 한 사이이니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운오와 민후 중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쪽은 역시 나이가 더 많은 민후 쪽이었다.
“음.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설마 너도 어디가 아파서 여기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만…….”
어색하게 대꾸한 운오가 미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형이 만나기로 했다는 친구분이 당신일 줄은 몰라서요.”
“이 자식. 무헌이는 형이고 나는 당신이냐?”
뭐, 그 싸가지 없음이 너답긴 하다만…. 하고 중얼거린 민후가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민후를 보기 전까지 했었던 여러 가지 걱정이 그 얼굴을 본 순간 일시에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민후와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민후 또한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편안해 보여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이겠지만 역시 나는 친구로서의 민후가 좋았다.
“그런데 무헌아. 설마 오늘 저 녀석도 같이 점심 먹을 거야?”
“아. 아니. 운오는 오늘…….”
면접이 있다고 했으니 이제 곧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운오가 내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말을 끝까지 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는 지금 갈 예정이었습니다만, 일정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참입니다. 형, 저도 점심 함께 먹어도 됩니까?”
운오 녀석이 꽤 많이 변했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었지만, 이건 정말 예상외였다. 먼저 남과 함께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 운오라니….
나는 운오의 변화를 느끼며 묘하게 감동을 받았지만 민후는 반대로 미간을 푹 찡그리며 싫은 티를 냈다.
“뭐? 간만에 무헌이와 둘만 보는 건데 왜 끼어? 애들은 가라.”
“저 이제 성인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결정은 형이 하시는 거고요.”
운오 녀석은 내가 허락하면 민후가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둘이 먹으나 셋이 먹으나 똑같았기에 별 차이가 없었다.
“난 상관없긴 한데….”
“들으셨죠? 저도 끼겠습니다.”
“너 이 자식…. 현실에서는 지금 처음 보는 건데 이렇게 건방져도 되는 거냐? 넌 낯도 안 가려?”
냉큼 대답하는 운오를 보고 민후가 대단히 어이없어했으나 그래도 끝까지 꺼지라고는 하지 않았다. 역시 착한 민후답다고 생각하며 나는 남몰래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병원을 나서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점심시간을 좀 비껴난 시간이라서인지 가게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민후가 본격적으로 내게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간 메시지로도 소식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역시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음…. 무헌아. 집은 다 고쳤어?”
“아니. 아직 수리 중.”
물바다가 되었던 집을 다 고치려면 아직도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자 이번에는 운오가 끼어들었다.
“집을 고치다뇨.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습니까?”
그러고 보면 운오는 내가 정확히 왜 입원해 있었는지도 아직 모를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강도를 만나서 입원했다고 말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집이 망가졌다는 말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었으니…….
나는 무어라 말해 줄까 생각하다 그냥 간략히 사실을 알려 주기로 했다.
“이전에 입원했을 때 일이 좀 있어서… 집이 침수되었거든.”
“예? 어쩌다 그런….”
다시 떠올려서 좋을 만한 기억이 아니었으므로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민후도 말없이 웃고만 있는 것을 보면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다른 데서 살고 계신 겁니까? 가족분들은 어떻게….”
운오가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가족과 살고 있는 운오는 나도 그런 줄 안 것 같지만 나는 혼자 살던 몸이었다.
“혼자라서 그냥… 음. 친구 집에서 잠깐 있는 중이야.”
친구라고 말하기 전에 조금 망설였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은 바로 그 말을 한 뒤에 진제환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 무헌. 병원은 무사히 잘 간 건가? ]
“…음.”
식탁에 앉아 민후와 운오의 시선을 느끼며 전화를 받자니 참 기분이 이상했다.
[ 오늘 저녁은 집에서 함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
전화 너머로 새어 나온 목소리를 들었는지 순간적으로 민후의 눈이 조금 커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전화를 나가서 받을 것을 그랬다고 약간 후회하며 입을 열었다.
“집에 언제 들어갈지 모르겠다. 지금은 밖이라.”
[ 밖?…. ]
반문했던 진제환은 이내 무언가를 눈치챈 듯 아 하는 짧은 목소리를 흘렸다.
[ 누굴 만났나 보군. 알겠어. ]
“응.”
[ 감기가 나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바깥에 너무 오래 있지 말도록 해. ]
그 말을 끝으로 진제환은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민후와 운오의 묘한 시선을 받으며 무언의 추궁을 받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무헌아, 혹시 지금 살고 있다는 친구 집이…….”
눈치 빠른 민후는 이미 새어 나온 약간의 목소리만으로 전화 상대가 누구인지 전부 알아차린 기색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말하는 쪽이 낫겠지.
“응. 진제환.”
민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반응을 보니… 혹시 게임 쪽 사람입니까?”
민후만큼이나 눈치가 비상한 운오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완.”
이번에는 운오도 민후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침 주문한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대단한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먹자.”
나는 일단 밥부터 먹기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 민후와 운오도 수저를 들고 음식을 옮겨 담았다. 동그란 회전 탁자 위로 한참 동안 밥 먹는 소리만이 났다.
“무헌아.”
그리고 절반쯤 먹었을 때, 민후가 젓가락을 놓으며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임시로 잘 곳이 없는 거면 우리 집도 괜찮아.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집에 거의 안 들어오거든. 큰누나가 자취 중이라 비어 있는 방도 있어.”
“저희 집도 있어요, 형.”
운오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 넓고 좋은 곳은 아니지만 운연이 방은 아무도 안 쓰니까 형 한 명 정도야 얼마든지 오셔도 괜찮습니다.”
“…….”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두 녀석의 놀라운 호의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괜찮아. 걱정해 줘서 둘 다 고맙다.”
“아니, 내가 괜찮지 않거든.”
민후가 딱 잘라 대답했다.
“부담 갖지 마. 그 녀석 집이 편할 리가 없잖아.”
“별로 그렇진 않아…. 지금 머무는 곳도 어차피 진제환의 작업실 같은 곳이라서 거의 나 혼자 있으니까.”
사실을 말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답하자 민후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러면 오히려 더 불편한 것 아냐? 혼자서는 집안일을 하기도 어렵잖아.”
“아니, 그건 괜찮아. 그런 걸 챙기는 로봇이 있으니까.”
진제환의 작업실에 연결된 시끄러운 하우스 컴퓨터와 책 더미 사이에 처박혀 있다가 여차할 때는 밥도 옮기고 식탁 노릇도 해 주는 로봇을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민후가 입을 딱 벌렸다.
“로봇?”
“응.”
“…….”
회전 식탁은 또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결국 민후는 내가 그리 엄청난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네가 불편하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언제든 불편하면 꼭! 우리 집으로 와. 언제든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는 민후의 눈빛이 이것은 순수하게 친구로서의 걱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결국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우리의 대화 주제는 미스트로 넘어갔다. 나와 민후, 운오 셋이서 공통으로 할 수 있는 대화 주제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도 그것이었으니 별 불만은 없었다.
“나, 주열 형님 말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길드를 만들어 볼까 하고.”
이제 퀘스트가 하나 남았다는 민후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이전에 미스트 속에서 키온 형과 유완, 루크레이신과 함께 나누었던 논의를 떠올렸다.
시저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같은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할 테니 누군가 총대를 잡고 길드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당시 총대를 멜 만한 사람이 그 자리엔 없어서 키온 형이 나중에 민후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었다.
“그래…. 주열 형이 네게 연락했었구나.”
“응.”
“주열이란 분은 또 누구입니까?”
운오가 떨떠름하게 끼어들었다. 민후와 나만 있으면 현실의 이름으로 말하든 미스트 속의 이름으로 말하든 별 상관이 없었지만, 운오는 만나 본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키온 형님이야. 너도 알 텐데? 홀리 나이트 퀘스트 담당자인 그분. 처음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했었는데…… 말을 듣다 보니 시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길드를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고민 중이야.”
“아…….”
민후의 설명에 납득한 얼굴을 한 운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서로 다들 게임 밖에서도 자주 보시나 보네요.”
“부러워? 너도 끼워 줄까?”
“됐습니다.”
딱 잘라 거절한 운오였지만 나는 지금의 운오라면 다들 모였을 때 불러도 잘 나올 것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알아보니 길드를 만들 때 생각보다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 많아서 언제쯤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려면 되도록 빨리 하는 게 낫겠지.”
주열 형의 억지 때문에 맡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매우 담담한 민후의 얼굴을 보니 역시 이런 일은 이 녀석이 적격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힘들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응? 아냐. 괜찮아. 나도 다 생각해 보고 결정하려는 거니까 뭐.”
멋지게 싱긋 미소를 지은 민후가 나와 운오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들게 되면 나만 바쁘게 뛰진 않을 거야. 형님 발목도 같이 잡아야 하지 않겠어? 아무튼 기대해 줘.”
길드 준비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시계를 보고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며 운오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민후는 싫어하는 기색이 상당해 보이는 운오와 연락처를 교환한 뒤 산뜻한 얼굴로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조심해서 들어가, 무헌아.”
“…너도.”
너무 짧게 만났다 헤어져서 섭섭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민후의 웃는 얼굴에서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무헌아. 난 오늘 네가 건강한 걸 봐서 기뻤어. 그러니까 그런 표정은 안 해도 돼.”
안색을 살피는 내 모습에서 뭔가를 눈치챘는지 민후가 어깨를 두드리며 마음을 읽은 듯한 말을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멈춰 있었지만 결국 고맙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응. 고맙다.”
“뭘.”
민후는 정말 좋은 녀석이다.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멋진 친구이고, 본받을 만한 면이 많은 남자였다. 나는 추워서 조금 붉어진 민후의 얼굴을 보며 만약 이 녀석이 이전의 진제환처럼 몸으로 뭔가를 시험해 보자는 말을 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진제환도, 민후도 내게는 똑같이 소중한 녀석들이었는데, 뭔가가 달라져 버린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곧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손을 흔드는 민후를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유완과 나는 키잘키르스텀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페일 나이츠 길드원들과 몬스터들을 피해 북문을 빠져나가 키자르 산맥 인근까지 나가는 데 성공했다.
광장 근처에 페일 나이츠 길드원들이 거의 몰려 있다고 알려 준 아풀론과 휘아신스의 조언이 적중한 덕분이었다.
산맥이 시작되는 곳은 유난히도 빽빽이 우거진 숲 덕분에 대부분이 그늘로 덮여 있었다. 평소라면 사냥을 하러 가는 유저들이나 끝마치고 돌아온 유저들로 꽤 북적거렸을 법한 산맥 주변 들판들도 지금은 텅 비어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곳은 그보다 더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몬스터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곳에 유완과 단둘이 있으니 세상에 우리만 남은 것 같다는 착각조차 들 지경이었다.
“지도.”
나는 일단 지도창을 불러내 다음 퀘스트 장소가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 파악해 보았다.
‘위치상… 이 위로 계속 올라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군.’
다음 퀘스트 장소를 나타내는 붉은 점은 현재 위치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찍혀 있었다. 산 입구인 이곳에서는 짐승이나 몬스터가 보이지 않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현재 시저와 페일 나이츠가 점령한 도시 인근에다, 마물들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일 것이라 추측되는 곳이었다.
방심은 그 무엇보다도 금물이다.
“유완.”
“음.”
이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유완이 빠르게 뜻을 알아차리고는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렸다.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대기한다는 뜻이었다.
‘든든하군.’
나에게도 마 ‧ 라키안 마검술을 통해 쓸 수 있는 마력검이 있다지만 직업 자체가 검사인 유완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근력이 모자라다. 그러니 유완은 이제부터 내게 없는 힘과 스피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했다.
“디텍트 매직!”
간만에 사용하는 마법을 쓰자 시야가 훅 변화하며 약간 어두워졌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야 하니 처음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모든 가능성에 단단히 대비할 셈이었다.
“올라가자.”
나는 유완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갔음에도 주변은 맥이 빠질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낙엽을 밟는 소리와 숨 쉬는 소리뿐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몬스터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키잘키르스텀에는 마물이 많던데 여기는 오히려 몬스터가 하나도 없다니… 무슨 일이지?’
의아할 정도로 조용한 길을 한참 밟아 올라가고 있던 도중, 앞서 나가던 유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앞에 뭔가가 있다.”
“……저건….”
그것은 나무에 기대어 죽어 있는 몬스터의 시체였다. 미스트 시스템 특성상 죽은 몬스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공기 중에 흡수되듯이 사라지는데 시체가 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일이었다.
유완과 나는 거대한 짐승을 닮은 그 몬스터의 곁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뭐지?’
가까이서 본 몬스터 시체는 훨씬 더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유완도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미라 같은데.”
조용히 중얼거리자 유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엎드려 죽어 있음에도 뼈가 다 보일 정도로 깡마른 상태였다. 가죽만 남아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외적인 상처가 없는 것을 보면 누군가 죽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걸까?
‘퀘스트를 할 때 어떤 단서가 될지도 모르지….’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크다. 나는 몬스터 시체를 잘 기억해둔 뒤 몸을 돌렸다.
“일단 계속 가보자.”
몬스터 시체를 본 뒤로 유완과 나의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다.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체감상 한 시간 정도를 꼬박 걸었을 때, 유완이 또다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카프.”
“응. 내 눈에도 잘 보인다.”
우리의 앞에는 아까 전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몬스터 시체가 또다시 놓여 있었다. 분명 계속해서 경사를 따라 위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몬스터 시체를 내려다보다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파이어 볼.”
- 화르륵!!
내 손에서부터 흘러나온 불길이 이미징한 그대로 날아가 몬스터 시체를 태워 버렸다. 주변에는 옮겨붙지 않고 완벽하게 시체만을 태워 검은 재만 남긴 파이어 볼을 없앤 뒤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완은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묻지 않고 조용히 나와 함께 걸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시간 뒤, 힘겨운 산 타기를 계속하던 우리의 앞에 나타난 것은 새카맣게 탄 재가 쌓여 있는 나무 둥치였다.
“…….”
“…….”
유완과 나는 일제히 침묵을 지키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오가는 말은 없어도 유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런 이상한 퀘스트를 지금껏 계속 해왔으니까.
“아무래도 길이 반복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올라가려고 할 때만 이렇게 되는지, 아니면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인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겠어.”
그래서 우리는 이번엔 반대로 도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맨 처음에 우리가 있었던 산 아래 들판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내려갈 때는 괜찮은 걸 봐서 역시 올라갈 때만 길이 반복되고 있는 게 맞군.’
“다른 방향으로 가보자.”
나는 유완에게 제의를 한 뒤 디텍트 매직을 끄고 산 아래 들판을 따라 제법 오랜 시간을 걸었다. 그 후에 다시 한번 산을 올라 보니 몬스터 시체가 나타나지만 않았을 뿐, 이번에도 길이 반복되어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산맥 아래쪽을 빙 돌아가는 형태로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며 산을 올라 보았으나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번번이 반복되는 길뿐이었다. 게임 시간으로 꼬박 3일을 잠도 자지 않고 시도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산맥 전체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 건가? 그렇다면 디텍트 매직을 썼을 때 뭔가가 보였어야 하는데.’
몇 번째일지 모를 시도를 하며 생각에 잠긴 나에게, 그동안 묵묵히 따라와 주던 유완이 말을 걸었다.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부터 길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찾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음…….”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디서부터 길이 반복되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 부근에서 뭔가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유완과 함께 한 발짝 한 발짝을 신중하게 걸으면서 주변의 변화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도 결국 어느샌가 같은 부근을 돌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되어 반복이 시작되는 부분의 측정이 쉽지가 않았다.
‘뭔가…. 아주 긴 끈 같은 것을 늘어트리면서 다녀 보면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런 물건은 지금 없고.’
대신할 만한 마법이나 스킬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생각에 잠긴 채 이것저것 떠올려 보고 있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 유완이 입을 열었다.
“계속 이곳에서 머무는 것만이 답은 아니야. 다시 키잘키르스텀으로 돌아갔다가 오는 방법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
“다시 돌아갔다 오는 건 그쪽에 있을 마물이나 페일 나이츠 때문에 좀 귀찮으니까…….”
나는 대답을 하다 말고 말을 멈추었다.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게 뭐였지?
‘도시… 도시에 돌아갈 경우……그렇지! 그게 있었어.’
“유완. 고맙다.”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짓자 걱정스러워 보이던 유완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떠올랐다. 잘생긴 녀석이라 그런지 웃으니까 적응 안 될 정도로 빛이 나는군.
내가 떠올린 답은 간단했다. 현재 키잘키르스텀의 도시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안에서 플레이하는 유저 두 명을 알고 있었다.
장비와 잡화를 포함한 큰 규모의 상점을 갖고 있으며 수리까지 가능한 아풀론과 휘아신스라면 내가 원하는 긴 끈이나 실 같은 물건도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 구해 와서 반복되는 지점을 찾으면 돼.’
“돌아가자, 키잘키르스텀으로.”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3일이었지만 나는 초조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해 왔던 다른 퀘스트들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막막하게 느껴지더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돌아온 키잘키르스텀은 여전히 유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폐허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인비져빌리티를 쓴 뒤 마물에게서 기척을 지우는 스킬을 사용한 유완과 함께 도시로 들어가는 커다란 성문을 지나 중앙 광장을 피하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조용한 골목을 보니 새삼스레 이곳에 살고 있었을 NPC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들이 대부분 남쪽으로 피신했다고 하니 NPC들도 도망갔을 확률이 높겠지만……. 아풀론과 휘아신스처럼 도망가지 않은 소수도 분명 있을 텐데.’
상점도 전부 문이 닫혀 있고, 거리에는 바람에 휩쓸려 날아온 쓰레기들이 즐비하다. 이곳이 대륙 북쪽 최고의 대도시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가까운 쪽으로 오는군.”
나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던 유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벽 뒤로 몸을 감추었다.
나는 인비져빌리티를 쓰고 있었기에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잠시 후 내 귀로는 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골목 바깥 대로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인원수는 셋……. 복장을 보니 유저인가? 그러면 페일 나이츠 길드원들일 확률이 높겠군.’
쓸데없이 화려한 갑옷을 걸친 남자 세 명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잖아. 완전 재미없다고.”
“맞아. 길마는 요즘 접속도 잘 안 하고, 부길마도 얼굴을 안 내밀고. 아무도 없는 도시 점령하고 있어 봤자 무슨 재미야?”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젠 이쪽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어서 때려잡는 재미도 없어. 아, 주점 정도는 남겨둘걸.”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구.”
내용을 들어 보니 역시나 페일 나이츠 길드원들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길마가 요즘 접속을 잘 안 한다라…….
시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게임 속의 나에겐 좋은 일이지만, 현실의 나에게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좀 깊은 대화를 나눴었으니까…….
‘조만간 정승조네 집에 다시 가볼 생각이었으니 살펴봐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페일 나이츠 길드원들은 우리를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 멀어졌다. 나는 도로 모습을 드러낸 유완과 함께 조용히 아풀론과 휘아신스의 집으로 향했다.
“응? 두 분은 분명… 키자르 산맥으로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긴장한 얼굴로 문을 열어 준 휘아신스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나는 부디 지금부터 할 부탁이 거절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물건을 좀 살 수 있겠습니까?”
“물건이요? 무슨 물건을 찾으시는지……. 아니, 일단 들어와서 말씀해 주세요.”
유완과 나는 이전에 이 집에 왔을 때처럼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훌륭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지만 외부 상황 때문인지 썰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찾는 것은 아주 긴 끈입니다. 끈이 없다면 실도 괜찮습니다. 아무튼 비슷한 것만 있으면 됩니다.”
“끈이나 실이라…….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긴 걸 찾으시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필요한 길이를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휘아신스는 왜 그런 아이템이 필요하냐고 묻지 않았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대륙 최대 암시장으로 유명한 도시의 상인다운 면모였다.
“적어도 몇 킬로미터 정도는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으음……. 킬로미터 단위라……. 밑에 있을 아풀론과 조금 의논해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을 보니 희망이 생겨났다. 휘아신스가 지하실로 내려간 뒤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던 유완이 내 쪽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직접적인 방법이군. 아이템을 구할 수만 있다면 괜찮을 거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운데.”
물론 이 방법이 통한다면 말이지만…….
만약 내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을 구하게 되면, 나는 그것을 길이 시작되는 부분에 묶어 놓고 늘어트리면서 산을 올라갈 셈이었다. 그렇게 하면 분명 어느 부분에서 길이 반복되는지 알 수 있을 테니 거기서 또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을 터였다.
예를 들면 마법으로 그 주변을 전부 부숴 버린다든가…….
‘좀 과격하긴 하겠지만 대체로 잘 통하는 방법이었으니까 해 볼 만해.’
어떤 마법을 쓸지 생각하는 동안 지하실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아풀론이 휘아신스와 함께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는군요. 찾으시는 물건에 대해서는 휘아신스에게 들었습니다. 음… 아주 긴 끈을 찾으신다고요.”
아풀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빙긋 웃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뭔가 싶어 들여다보니 그것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야구공 정도 크기의 물컹물컹해 보이는 붉은 덩어리였다.
“그거라면 이 아이템이 딱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뭡니까.”
아무리 보아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반문하자 아풀론이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게니겔라룩스에게서 뽑아낸 타액을 정제해 만든 아이템입니다.”
게니겔라룩스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몬스터 이름인가?
“게니겔라룩스는 키잘키르스텀 근처에 있는 엘테르라는 도시의 동굴 던전에서만 나오는 몬스터입니다. 그리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입에서 뱉어내는 타액이 아주 끈적끈적해서 옷이나 피부에 묻으면 피해가 막심하지요. 사실 이것 자체만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아이템입니다만… 정제된 상태에서 실로 재가공을 하게 되면 옷이나 갑옷을 수리할 때 무척 유용한 재료가 됩니다. 점성과 접착력이 강하고 아주 잘 늘어나는 유연성도 갖췄거든요.”
휘아신스가 내 궁금증을 알아차린 것처럼 아풀론의 말에 설명을 보탰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그들이 어째서 이것을 가져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 설마 그 상태에서도 길게 늘일 수 있는 겁니까.”
“네. 실로 가공하기 전의 상태가 오히려 길게 늘이기에는 더 좋습니다. 방금 전에 살짝 시험해 보고 온 참입니다만, 원하시는 길이 정도로는 충분히 늘릴 수 있을 겁니다.”
아풀론은 그 말과 함께 제 손안에 든 붉은 공을 다른 쪽 손으로 끄트머리를 꼬집어 쭉 늘어트렸다. 그러자 정말로 말랑말랑한 실 같은 형태로 점액이 쭉 늘어나 고무줄처럼 달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풀론이 늘어난 점액을 손으로 감아 도로 공에 붙여 주물거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도로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고무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끈적해 보이는 질감이었다.
“그것으로 하겠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1실버면 됩니다.”
아풀론의 답은 흔쾌하고 간결했다.
“이 아이템은 제작이나 수리 스킬을 연마하는 유저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물건이라서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팔아본 것도 처음이네요. 하하핫.”
처음에는 너무 싼 값이 아닌가 싶어 멈칫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1실버를 꺼내 아이템과 교환했다.
손안에 들어온 붉은 공은 말캉말캉한 젤리처럼 탄력적인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그 감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님을 생각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너무 빨리 가시니 조금 섭섭한데요?”
“맞아요. 모처럼 오신 손님인데…….”
고작 세 번 본 것뿐인데 떠나가는 친구를 보는 것처럼 섭섭한 표정을 지은 아풀론과 휘아신스가 서로 손을 맞잡고 또다시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휘아신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를 향한 상냥함을 잃지 않는 너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이런 나… 이상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나의 작은 아기새……?”
“아풀론……! 나야말로 아무도 없는 도시에 숨어서도 성실함을 잃지 않는 당신의 모습에 매일 매시 매분 매초마다 반하곤 하는 걸 알고 있잖아……! 당신이 없으면 나는 결코 이 도시에서 살 수 없어…!”
“…….”
으음……. 위기에 빠진 도시에 둘만 남아 있는 상황 플레이는 아직도 계속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아이템을 구했으니 나야 고맙긴 하지만…….
“일어나자, 유완.”
나는 유완과 함께 가차 없이 일어나 문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언제 둘만의 세계에 빠졌었느냐는 듯 미소를 지은 아풀론과 휘아신스가 우리를 따라 문 앞으로 왔다.
“언제든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다면 아풀론&휘아신스를 찾아주세요.”
“없는 것 말고는 다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아풀론이 묘한 얼굴로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페일 나이츠와 몬스터들이 점령한 이 도시를 이렇게 쉽게 오가시는 걸 보면 손님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혹시 나중에 처치 곤란한 희귀 아이템이 생기시면 꼭 저희를 찾아 주시겠습니까? 값은 잘 쳐드릴 테니까요.”
희귀 아이템이란 것이 뭘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휘아신스가 나서서 말을 보탰다.
“손님들, 산맥으로 들어갔다가 혹시라도 큰 부상을 입으실 경우를 대비해 거점을 만들고 싶지는 않으세요? 저희 집에다 접속 포인트를 저장해 두셔도 괜찮은데…….”
접속 포인트란 휴식처나 집 같은 곳에 지정할 수 있는 것으로, 큰 부상을 입었을 때 그곳으로 돌아가면 다른 곳에서 쉬는 것보다 훨씬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게임 내에 일정한 거처를 만들지 않은 나는 여태 써 본 적이 없었기에 받아들일 만한 제의인지 생각해 보고 있는데, 유완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괜찮겠다는 뜻인 것 같군.
‘하긴, 여기에 얼마나 더 머물지도 알 수 없는 데다 이번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또 여기에 와야 할지도 모르니……. 여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사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용사들에게 거처를 내주는 선량하고 아름다운 조력자가 한 번 정도 되어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말을 잇던 휘아신스가 갑자기 유완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나는 왠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손님들은 잘생겼으니까, 서.비.스예요. 후훗.”
“휘아신스…!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건가? 그래? 저 손님이 엄청나게 잘생긴 건 맞지만! 그래도 너만은 나를 봐줄 줄 알았는데……!”
휘아신스에게 항의를 하면서도 유완이 잘생겼다는 것은 인정하는 아풀론을 보니 새삼 익숙해진 유완의 외모가 조금 달리 느껴지는 듯도 했다. 나는 이 난리 속에서도 침착한 얼굴로 내 옆에 서 있는 유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 아풀론과 휘아신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접속 포인트를 이곳으로 지정하고 가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아풀론도 싫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니 괜찮겠지.
나는 접속 포인트를 지정해 본 적이 없었기에 유완이 먼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유완도 내가 한 번도 이것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조용하지만 잘 들리도록 명령어를 중얼거렸다.
“접속 포인트 지정.”
“접속 포인트 지정.”
유완을 따라 말하자 발밑에서부터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솟아올라 몸을 한 번 휘감고는 눈앞에 반투명한 안내창이 떠올랐다.
- 띠링!
- 현재 서 있는 좌표에 해당하는 건물을 접속 포인트 1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지정시 휴식 및 회복 속도가 +30% 올라갑니다.
“지정한다.”
- 지정되었습니다.
“휘아신스,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해!”
“아풀론……. 알잖아. 나에겐 당신뿐이란 걸!”
접속 포인트 지정을 끝낸 뒤에도 아풀론과 휘아신스는 계속해서 둘만의 사랑싸움에 푹 빠져 있었다. 아무래도 인사를 나누고 갈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았기에 나는 유완과 함께 슬쩍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다시 인비져빌리티를 사용해 유완과 함께 키잘키르스텀을 빠져나가는 동안 손안에 쥔 붉은 공의 감촉에서 낯설고도 긴장되는 기분이 느껴졌다. 과연 이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어줄지, 아닐지는 곧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디 이게 돌파구가 되어야 할 텐데.’
최대한 속도를 높여 다시 도착한 키자르 산맥 부근은 여전히 불길하고 고요한 기운에 잠겨 있었다. 나는 붉은 공의 끄트머리를 쥐고 죽 잡아당겨 우리가 올라갈 길의 입구 부근에 서 있는 굵은 나무 둥치에 그것을 얽어서 묶었다.
묶은 뒤 몇 번 잡아당겨 보니 그리 쉽사리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올라가자.”
공을 쥐고 유완에게 눈짓을 하자 검을 쥔 유완이 앞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공에서 늘어난 끈적한 붉은 실을 길 위로 늘어트리며 천천히 뒤를 따라 걸었다. 붉은색이라 산속에서도 눈에 잘 띄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걸어 다녔을 좁은 길을 따라 나무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동안, 스산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겉보기에는 이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푸른 나무들이지만, 이곳은 역시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저 위에 있는 것들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니라는 뜻이겠지.’
“…저기, 실이 보인다.”
그때, 유완이 드디어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유완이 가리킨 앞쪽에 내가 늘어트리며 왔던 실이 있는 것을 보고 이 부근이 바로 우리가 찾던 그곳임을 깨달았다. 실을 늘어트리며 온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좋아.”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겉보기에는 여전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평범한 산기슭이었다. 하지만 저 위에 보이는 오르막길 끝에는 분명 내가 산 아래쪽에 붉은 실을 묶어 두었던 나무가 보였다.
‘그렇다는 건…….’
“너는 여기에 가만히 있어 줘.”
나는 유완에게 붉은 공을 넘겨준 뒤 손을 앞으로 뻗어 천천히 공중을 더듬으면서 몇 발짝을 걸어 보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이전에 결심했던 대로, 마법을 써서 뒤집어 보는 수밖에 없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공격 마법들은 화재를 일으켜 내가 원했던 범위 이상을 태워 버릴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좀 다른 것들을 써 볼 생각이었다.
“스톤 엣지.”
이미징을 끝내자마자 순식간에 눈앞에 초록색 선들이 그어지며 발밑이 울리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궁…….
간만에 써보는 땅 계열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주문이 실패하거나 내 이미징에서 벗어나는 사고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일단 높은 서클 마법들이나 슈페리어의 마법에 비하면 훨씬 조정이 쉽기도 하고, 슈페리어에게 배운 역향의 법칙을 기억하고 있는 한 두통이 생길 정도로 무리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위는 나와 유완을 제외한 상태에서 길이 반복되는 저 위쪽까지. 그렇다고 너무 넓은 범위를 뒤집을 생각은 없으니… 일단 직선으로 쭉 뒤집어 볼까.’
스톤 엣지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바위들을 끌어당겨 땅 위로 솟아오르게 만들 수 있었다.
이미징에 따라 순식간에 초록색 수식 세계가 빛나면서 땅 아래쪽에서 큰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끼고 있으려니 간만에 이것이 마법을 사용하는 참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쿠콰콰콰콰콰!
내 앞에서부터 흙먼지를 일으키며 솟아오른 바위들이 다리를 만드는 것처럼 일렬로 비죽비죽 머리를 내밀면서 나무들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소리가 좀 큰가 싶기는 했지만 주변에 다른 유저들이 없으니 괜찮을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이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기대한 바는 길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현상을 깨트리는 것이었지만, 일단 목표로 한 곳까지 전부 땅을 뒤집어 놓았는데도 풍경은 변화하지 않았다.
여전히 저 멀리 멀쩡히 존재하는 붉은 실을 보니 땅이나 주변을 뒤집는 것 정도로는 이 현상이 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흠…….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서 그런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손을 휘저어 바위들을 도로 땅속으로 묻히게 만들었다. 5서클의 스톤 엣지로도 안 깨지는 현상이라면 통할 만한 것은 슈페리어의 마법뿐인데, 슈페리어가 만든 마법 중에는 공격적이지 않은 마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현상이 마법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때, 얌전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완이 말을 걸었다. 나는 어떤 마법을 쓸지 고민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건 내 퀘스트와 관련된 현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는 말은 삼키고 대답했지만 유완이라면 아마 이면의 뜻도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유완은 잠시 내가 파헤쳐 놓은 길 앞쪽을 지긋이 바라보다, 문득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다.
“직접적으로 두들겨서 깨지지 않는다면, 아예 눈을 가리고 있는 장벽 자체를 들어내 없애 버리는 방법도 있어.”
직접적으로 두들겨 깨지지 않으면, 아예 장벽 자체를 없애라고……?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유완이 무표정한 얼굴로 좀 더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우리는 산 위로 올라가기 위해 길이 반복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빈틈을 찾고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실패했고, 직접적으로 공격해 일부를 깨트리려는 시도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상대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답이지. 하지만 네 생각대로 마법이 이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이 산맥 전체를 막아야 하는데 그건 엄청나게 힘이 들어가는 일일 테니까…… 그리 복잡한 프로세스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면 이 트랩을 만든 상대의 의도는 첫 번째, 적의 접근을 막을 것. 두 번째, 공격적인 방법으로 출입 통제를 깨트리려 할 경우에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 아마 그 정도겠지.”
유완의 말은 매우 논리적이었고, 내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장벽을 만든 상대 입장에서의 추론이라니… 마치 개발자라도 되는 것 같은 생각이 아닌가.
나는 잠시 멍하니 유완을 바라보다가 그 생각이 옳을 확률이 높겠다고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어느 한 구역 정도를 통제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 산맥 전체에서 남의 출입을 막을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할 것이다. 슈페리어라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 그렇다는 건, 지금 이건 눈속임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건가?’
확실히, 산맥 전체를 막는 것보다는 들어오려는 자들의 눈가림을 하는 쪽이 훨씬 쉽기는 하겠지.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가 싶어 고개를 들자 유완이 작게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어쩐지 지금껏 내가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한 마법의 이름을 불현듯 떠올렸다.
“……디스펠.”
다른 마법을 해제하는 그 마법을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외부가 아닌, 유완과 나 자신에게.
나는 그 즉시 머릿속으로 이미징을 떠올렸다. 얼마나 강력한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 마력과 이미징이 더 강력하다면 충분히 해제할 수 있을 것이다.
“유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일단 유완이 놀라지 않도록 먼저 말을 한 뒤 주문을 외쳤다.
“디스펠!”
“…….”
분명 마법은 발동되었다. 마력이 줄어들 때 특유의 아찔한 무력감과 함께 작은 바람이 한줄기 몸을 휩쓸고 지나갔으니 사용이 되기는 한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다지 뭔가 변한 것 같지가 않았다.
‘이것도 실패인가?’
“카프. 저쪽을 봐라.”
그때, 유완이 뒤쪽을 가리켜 보였다.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여전히 파헤쳐져 있는 길만 보일 뿐…… 아니, 잠깐.
‘끈이 사라졌잖아.’
분명 파헤쳐진 길 끝에 반복되는 길의 표시로 볼 수 있었던 붉은 끈이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유완의 손에 쥐여 있는 붉은 공을 보았다. 그 끝에서부터 뻗어 나온 붉은 실은 여전히 뒤쪽 아래로 죽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반복되는 길이 사라졌어.”
디스펠은 제 효력을 발휘한 것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매우 고무되었다.
“고맙다, 유완. 가자.”
흔쾌한 마음으로 유완의 등을 두드린 뒤 서둘러 올라가니, 드디어 지겹도록 반복했던 그 길이 아닌 뭔가 달라 보이는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숲길을 긴장되는 마음으로 오르고 있으려니, 한참 뒤 오르막길이 아닌 평지가 보이며 꽤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예전이라면 산맥에서 사냥을 하던 유저들의 중간 휴식처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별로 수상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군.’
머리 위 먼 곳에서 불길한 소리를 내며 수십 마리의 날개 달린 작은 몬스터들이 산 위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우리를 발견할까 봐 잠시 긴장했지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느라 빼앗겼던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겨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공터를 거의 빠져나갈 때쯤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디뎠던 발 앞쪽이 턱 하고 무언가에 걸리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혹시나 해 팔을 뻗어 보니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막에 가로막힌 것처럼 손바닥이 뭔가에 부딪혔다.
‘반복되는 길에 이어 이번엔 보이지 않는 벽인가…….’
“디스펠!”
눈앞의 장벽을 없애는 이미징을 하며 디스펠을 써 보았지만, 그리 쉽게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이어 볼을 써도, 마력검으로 베어 보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공격이 보이지 않는 막 앞에서 산산이 깨져 산화되기만 했다.
“유완. 너도 한번 해 봐.”
“……잠깐 물러나.”
나를 물러나게 한 유완이 검을 뽑아 새파란 검기를 덧씌운 뒤 앞을 향해 겨누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전부 유완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나더니, 휘두른 검이 그대로 투명한 벽에 부딪혔다 튕겨 나왔다.
- 퍼엉!!
나는 푸른 불꽃 같은 검기가 막에 부딪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음…….”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역시 슈페리어의 마법을 쓰는 길뿐인가.
“인페르노.”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허공에서 툭 하고 떨어진 붉은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불꽃은 유완을 피해 그 옆쪽을 향해 기어갔지만, 이내 투명한 벽에 부딪혀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하고 넓게 퍼지고 말았다.
‘…좀 더 힘을 내 봐, 인페르노.’
- 화르르르르!
내 마음에 응답하듯이 인페르노의 색깔이 더욱 검붉게 변하며 사납게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넘을 수는 없다는 사실만을 다시금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엄청난 높이로 치솟았음에도 결국 벽을 뚫지 못하고 사그라진 인페르노를 없애고 생각에 잠겼다.
‘6서클의 인페르노조차 실패하다니… 슈페리어의 마법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 벽이 또 다른 슈페리어와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이전에 퀘스트를 하며 만났던 또 하나의 슈페리어. 그의 힘 정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넓은 산맥에 이 정도로 강력한 벽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내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슨 수를 써서든 이것을 뚫고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무조건 힘으로 뚫는 건 일단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방법을 조금 바꿔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땅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스톤 엣지.”
혹시 아는가. 이 벽이 땅속 깊은 곳까지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하지만 순식간에 내 발 아래쪽을 파헤치며 나타난 바위들도 눈앞의 벽 너머까지는 뚫지 못했다. 아무리 깊은 곳을 파고들어 가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땅속 수십 미터를 파헤친 바위들을 도로 대충 묻어둔 뒤 다음 시도를 하기로 했다.
‘땅이 안 된다면… 다음은 하늘.’
“플라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외치자 곧바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나는 이미지를 조정해 가며 순식간에 유완이 손톱만큼 작아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간 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래도 안 되는군.’
하지만 여전히 손에 닿은 것은 딱딱하게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벽의 감촉뿐이었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 보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제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유완과 숲으로 이어진 산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벽 때문에 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어도 대충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느 방향인지를 파악할 수는 있으니 다행인가 싶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볼 수는 없었다.
‘역시 이곳은 소름 끼치도록 고요해.’
다른 산에서는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키자르 산맥은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느낌이 시시때때로 찾아들었다.
저 거대한 산맥은 안에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내 여덟 번째 퀘스트는 정확히 어떤 것이 될지 궁금했지만 아직은 그 시작에조차 다가갈 수 없으니…….
‘어?’
그때였다. 멀리서부터 새카만 무언가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땅 위의 길이 아닌 하늘길을 따라 마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방향은… 아마도 키잘키르스텀 쪽에서부터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몸을 낮춰서 어느 쪽으로 가는지 지켜볼까.’
나는 높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낮추어 내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마물들의 날갯짓 소리가 곤두세운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이전에 이 산맥에 처음 발을 들였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몬스터 시체 하나가 반복되는 길 어귀에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마도 앞의 길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어서 사람이든 몬스터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는 암시를 주기 위한 복선 같은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끝없이 반복되는 길을 깨트려도 그다음에 나타난 것은 그 누구도 넘어갈 수 없는 투명한 벽이다. 나조차 넘어갈 수 없었던 그 벽을 저 마물 떼들이 과연 넘어갈 수 있을까?
숨을 죽이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자 곧 펄럭대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곧 ‘벽’이 나타난다.
단체로 투명한 벽에 부딪혀 추락해 죽는 바보 같은 광경을 보게 될까, 아니면 내가 생각지 못한 제3의 결과가 나타날까.
눈이 빠지도록 노려보는 사이 드디어 맨 앞에서 날고 있던 한 마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 끼르르륵!
밑에서 보고 있는 내가 허망할 정도로 매끄럽게 ‘벽’이 위치해 있는 공간을 넘어간 마물이 이내 산꼭대기를 향해 훨훨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다른 마물 떼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마치 이곳에 벽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한 마리도 빠짐없이 하늘을 날아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곳을 향해 날아갔다. 10초도 되지 않아 끝나버린 그 광경을 모두 본 뒤 나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발을 붙이고 섰다.
내가 방금 본 것이 과연 현실이었을까. 환상이 아니고?
“유완. 너도 봤냐.”
“응.”
유완은 뭘 봤느냐고 묻지 않았다. 못 보기에는 너무 큰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넘어갔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쉽게.
“플라이!”
나는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방금 전 마물들이 있었던 바로 그곳까지 날아오르자 이전보다 훨씬 더 아래가 작고 아찔하게 보였다.
‘이쯤이었지.’
대충 위치를 가늠해 몸을 날려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쿵 하고 몸을 울리는 충격뿐이었다. 주먹으로 두들겨도, 검을 써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슨 짓을 해도 그곳을 넘어갈 수 없었다.
‘마물은 되고… 나는 안 된다고?’
나는 조용히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마물과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유완에게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보았던 몬스터는 죽어 있었는데… 모든 것들이 그 벽을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닌 걸까.”
“글쎄. 몬스터와 마물은 좀 다르니까, 그 차이일지도 모른다.”
“흠…….”
유완의 설명에 따르면 몬스터는 이 대륙에서 생겨난 생물이고, 마물은 어둠의 힘으로 가득한 이계에서 살고 있던 괴물이 어떤 이유로 인해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라고 한다.
일반 몬스터보다 마물들이 몇 배는 더 강하고 포악하다고도 했는데 그런 설정은 아무래도 좋으니 왜 마물들은 벽을 넘어가고 나는 넘어가지 못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벽을 넘어가기 위해 온갖 실험을 해 보았다.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전부 한 번씩 써 보았지만 공기를 움직이는 에어리얼 서번트조차 막히고 나니 모든 시도가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프.”
팔짱을 끼고 선 채 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유완이 말을 걸었다.
“슬슬 휴식을 위해 한 번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난 됐어. 휴식이 필요한 거면 너 혼자 가.”
“여기에 있어 봤자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윽, 이 자식……. 너무 직설적이라 아프지도 않을 정도군.
유완의 걱정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여러 가지 마법을 단시간에 마구 사용하느라 마력이 꽤 줄어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회복되긴 하지만 휴식 포인트에서의 회복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체험해 보고 싶었다.
유완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을 휘어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어.”
“…….”
음……. 거의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새삼스레 파괴력이 상당하군.
나는 조금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은 그 미소를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저 얼굴을 보고 나니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지금은 한시라도 모든 것을 지체할 수 없는 때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잘생긴 얼굴이란 정말 대단한 사기 스킬인 것 같았다.
“가자.”
우리는 다시 먼 길을 걸어 키잘키르스텀으로 돌아갔다. 중간에 키잘키르스텀 주변을 날아다니는 마물들에게 들킬 뻔했었지만 그래도 수월히 아풀론과 휘아신스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가느라 왕복에 꽤 시간이 걸렸었는데, 이제는 서로 말도 없이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마법과 스킬을 사용해 도시로 돌아오는 유완과 나를 보면 그래도 하나 정도는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는 듯해 다행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걸까.”
녹초가 되어 돌아온 아풀론과 휘아신스의 집에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유완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럴지도.”
“어디서부터 잘못 잡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 답답해.”
나름 심각하게 투덜거렸는데, 유완은 뭔가 웃기는 말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픽 웃었다. 보는 이의 기분이 매우 저조해질 만한 반응이었다.
“뭐야?”
“아니. 너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하냐니, 그건 또 뭔 말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자 유완이 웃음을 거두었다. 그래 봤자 아직도 눈가에 웃음기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무슨 뜻이냐, 그건.”
“말 그대로. 너는 퀘스트를 할 때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가?”
내가 그랬던가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로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도 힘들 때는 당연히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퀘스트 때문에 그간 얼마나 인내심을 길러 왔었던가. 그동안 헤쳐 온 수많은 퀘스트와 고생을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유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젠 알겠어.”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무슨 일이 있든 당황하는 법이 없어 보여서 전혀 힘든 것을 모르는 놈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아풀론과 휘아신스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 말은 그냥 삼키게 되었다.
“저기, 손님들. 요즘 미스트 커뮤니티는 보세요?”
“…….”
“설마 전혀 안 보시는 건 아니죠?”
휘아신스가 대답하지 않는 나를 향해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다른 유저들은 얼마나 자주 미스트 관련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필요할 때만 보는 편이라 한 달에 한두 번 보면 많은 편이었다. 전혀 안 보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젓자 휘아신스가 실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 일이 생긴 것 같더라구요. 어쩌면 이곳의 지겨운 판도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그런 일 말이에요.”
그렇군요, 하고 무작정 대답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말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그게 뭐냐고 묻기 전에 아풀론이 휘아신스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것 말이지? 자그레브에서 길드가 어쩌고 했던 그 글 말이야.”
“응, 맞아. 미스트를 하는 사람이야 쌔고 쌨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은 있잖아요? 아무래도 유명한 유저들의 움직임 하나가 분위기를 확 바꿀 수도 있다 보니 요즘은 그런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되네요. 손님들은 안 그러세요?”
그러니까… 유명한 유저 중 누군가가 키잘키르스텀을 점거한 페일 나이츠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담긴 글이라도 썼단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겨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로.”
“후후후. 과묵하시네요. 뭐 그런 것도 전 싫지 않지만요.”
“나는, 휘아신스?”
휘아신스가 나에게 관심을 좀 보인다 싶었는지 곧바로 조바심을 내며 끼어드는 아풀론을 향해 휘아신스가 환하게 웃었다.
“당신은 언제나 나의 전부인걸, 아풀론!”
“아아, 역시 너는 나를 말 한마디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작은 악마야……!”
“아풀론……!”
“휘아신스……!”
거기서 두 사람은 또다시 둘만의 세계에 빠진 뒤 무언가 급해 보이는 움직임으로 손을 잡고 위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나와 유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별로 흥미는 없지만… 그래도 이따가 게임을 종료하면 한 번 간만에 미스트베이 커뮤니티를 살펴봐야겠군.’
아풀론과 휘아신스는 둘 사이에 있었던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소소한 사건들을 떠벌릴 때가 많기는 했으나 그 외에 흘러가는 게임 속 소문이나 바깥 사정에 대해서도 제법 해박하게 잘 알았다.
상점을 운영 중인 유저는 바깥 사정에도 밝아야 한다는데, 덕분에 이번처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식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사소한 정보라도 한 번쯤 확인해 보아서 나쁠 것은 없다. 특히 퀘스트를 하러 가기 위한 길목에서부터 막혀 있는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슈페리어의 막대기 쪽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슈페리어가 있을 때에는 간혹 부르르 떨거나 빛을 뿌리거나 했던 그것은 아무런 빛도 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나는 저 안에 처박혀 있을 슈페리어가 과연 내가 처해 있는 이 상황을 알고는 있을지 궁금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봤어. 남은 건 슈페리어에게 힌트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정도야.’
이 방법은 웬만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었지만 지금 와서는 그것 외에 딱히 떠오르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앉아 있는 푹신한 소파 뒤에 머리를 기댔다.
아무래도 내일쯤은 슈페리어를 찾기 위해 정신세계로 가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미스트를 종료하자마자 오랜만에 미스트베이 월드 커뮤니티를 켰다.
진제환의 하우스 컴퓨터는 게임에서 나오자마자 또 게임 이야기만 보느냐며 잠시 잔소리를 했지만 일은 군말 없이 해 주었다.
아풀론과 휘아신스의 말대로 그사이 뭔가 커뮤니티를 들썩거리게 했던 건 사실인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사이트 여기저기에 큰 사이즈 폰트로 된 실시간 핵심 검색어 키워드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길드… 페일 나이츠…… 시저 이야기야 늘 시끄러웠으니 새삼스럽게 이걸 이야기하진 않았을 테고, 대체 뭐지?’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속 중이라고 떠 있는 통합 자유게시판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바로 많은 글들이 우수수 떠오르며 내 눈앞에 현재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 동영상에 나왔던 스가의 대사제란 유저…… ] [293]
[ 길드 하나 새로 만든다고 뭘 할 수 있겠어요? ] [831]
[ 전 거기 들어가려구요~ 뭐가 되든 되겠죠 ] [1025]
가장 빠른 속도로 댓글이 달리고 있다는 인기 글 몇 개들을 보니 감이 올 듯 말 듯했다. 나는 우선 맨 위에 있는 ‘동영상에 나왔던 스가의 대사제란 유저……’ 란 글을 클릭했다. 한눈에 보아도 키온 형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 동영상에 나왔던 스가의 대사제란 유저…… ]
개인적으로 그 유저를 옛날에 제가 몇번 본 적이 있어요.
친한 건 아니고 그냥 상점에서 물건 팔며 노가리 까다가요^^
그때 보기론 되게 착하신 분 같더라구요.
길가다 얻어맞던 NPC 구한다고 몇 번 싸우시는거 봤거든요.
제 생각에는 그런 사람이 페일 나이츠 척결을 걸고 길드에 들어간 거라면 뭐가 됐든 해내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언제까지 페일 나이츠 땜에 겜 플레이하는데 불편을 겪어야 하는지 아주 짜증났었구요 특히 저같은 상인 유저들은 누가 나서서 페일 나이츠랑 시저만 겜 접게 할 수 있다고 하면 후원금이라도 모아서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네요.^^
그니까 공식 동영상에 나온 유저라서 새턴이랑 관계있는 행보일지도 모른단 억측은 이제 좀 자제해 주셨음 좋겠어요.
미스트의 역사는 저희가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새턴에서도 늘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암튼 저는 그 유저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