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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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변의 웬만한 필드는 다 헤집으며 사냥을 해온 나도 아직까지 못 가본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도시 서쪽에 위치한 동굴 던전이었다. 그곳은 혼자서 상대하기는 벅찬 곳이라 주로 파티를 맺어 많이 갔는데, 나는 사람들과 같이 사냥하는 것이 싫어 지금까지 가 보지 못했던 장소였다. 하지만 이왕 떠나는 마당에 한 번 들렀다가 떠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지금 광장 한쪽에서 파티를 모집하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괜찮아 보이는 파티를 찾고 있었다.

“오크의 숲에 가실 파티분들 모집합니다!”

“동쪽 필드에서 고블린 사냥하실 전사분들 모집해요!”

“딱 두 명 남았습니다, 성직자 환영!”

시끌벅적하게 외쳐대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중, 문득 내가 찾던 서쪽 동굴이란 소리가 들려왔다.

“서쪽의 황혼 동굴에 가실 파티원 모집합니다! 끝까지 갈 예정이라 레벨 30이상만 오세요!”

레벨 30이상이라……. 지금 내 레벨이 32이니 딱 되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니 힘차게 외치고 있던 장검을 찬 검사 한 명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파티에 참여하시려고요?”

그가 어두침침하게 후드를 눌러쓴 나에게 눌린 듯한 표정으로 물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서 있던 날렵한 인상의 단검을 찬 여자가 나섰다.

“레벨은 몇이나 되시죠?”

“32.”

짧게 끊은 대답에 그녀가 아미를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직업은?”

“마법사.”

내 말에 갑자기 파티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사래요.”

“마법사…….”

왜 그러는지 짐작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마법사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보기 힘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쓸 수 있으신데요?”

“3서클 마스터입니다.”

실은 4서클 마스터이지만 솔직하게 말할 경우 일이 귀찮아질 것 같아 일부러 한 서클 줄여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런 실력이라면야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카프.”

미스트는 캐릭터의 본명을 말하지 않아도 파티 사냥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장검을 찬 남자 검사 또한 내가 말한 이름이 가명인지 본명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저는 쿨트입니다. [ 파티에 들어오시겠습니까? ]”

눈앞에 안내창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락했다.

“[ 수락하겠습니다. ]”

띠링.

- 쿨트 님의 파티에 참여하셨습니다. 현재 파티장 : 1명 / 파티원 : 5명

파티에 참여되었다는 알림창과 함께 나는 뒤쪽에 모여 있는 파티원들 쪽에 가서 섰다. 그들이 계속 나를 흘끔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가볍게 신경을 꺼 버렸다. 그러고 나니 파티원은 나까지 합해서 다섯 명인데, 내 앞에는 세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자 검사 한 명, 아까 나에게 말을 했던 여자 한 명, 그리고 성직자복을 입은 다른 여자 한 명.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내 옆을 보자, 바로 옆의 벽 그늘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파티원이 되면 서로의 머리 위에 파티에 들어오면서 밝힌 이름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가 나머지 한 명의 파티원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유완]

유완이라는 이름이 머리 위에 떠 있는 그 남자는 나만큼이나 검은색과 인연이 많았는지 검은 갑옷에 검은 옷, 검은 칼을 차고 있었다. 유완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누구와의 대화도 거부하는 분위기라 나는 곧 관심을 끊었다. 그 후 남자 검사 한 명이 더 들어오고 나서 파티장인 쿨트의 지시에 따라 우리들은 서쪽 동굴로 향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요? 저는 파티장인 쿨트이고, 앞으로 기사가 목표인 검사입니다. 하하하.”

쿨트가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인지 밝은 태도로 말했다. 그 의도에 응해 주기 위해서인 듯 다른 이들도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마주 웃지 않았다. 유완이라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 알시나라고 하고요, 도적 클래스예요. 하지만 훔치기보단 최고의 트래져 헌터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아이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까 나에게 말을 걸었던 몸놀림이 날렵해 보이는 여자가 단검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저는 치료신의 사제인 로나라고 합니다. 다치시면 바로 저에게 오시는 것 잊지 마세요.”

로브 형태의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성직자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제복을 보자 나는 왠지 키온 형이 떠올라 시선을 돌렸다.

“애슐입니다. 전 앞으로 용병 쪽으로 나갈 생각이에요.”

나 다음에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남자가 쾌활하게 말하고 나자 남은 것은 나와 유완이란 놈 둘뿐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소개해 괜히 기억에 오래 남고 싶지 않아 재빨리 입을 열었다.

“카프. 마법사입니다.”

“…….”

“엥……. 그게 끝이에요? 너무 간단하네.”

무언가 더 바라는 듯한 말은 싸늘하게 외면했다. 그러고 나자 모두의 시선이 유완에게 쏠렸다. 그제야 유완이 어쩔 수 없다는 투가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검푸른 머리칼에 깊고 날카로운 푸른 눈과 콧날이 한 번에 눈에 들어오는 미남형 얼굴이었다. 누군가는 얼굴을 발그레 붉혔으나, 곁의 남자들은 전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나 또한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외모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잘생겼다고 치면 제일 만나기 싫은 새턴 한국 지부장 윤석호의 얼굴이 떠오르는군.

‘……얼른 잊어버리자.’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얼른 윤석호의 얼굴을 털어 버렸다.

“유완. 검사다.”

“…….”

나보다 더 간단한 소개를 들으며 피식 실소했다. 그러자 남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잠시 닿았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행들은 벙해져 있다가 곧 자기들끼리 사교의 장을 펴기 시작했다. 나와 유완이란 놈과 이야기해 보았자 더 이상의 대화 진전은 없을 것임을 알아차린 듯했다. 덕분에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나와 유완이 나란히 그들과 거리를 두고 걷게 되었으나 우리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하나도 없었다.

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지 않았지만 동굴이 있다는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점점 햇빛이 가려지고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음침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새조차도 울지 않았다.

“저쪽이 동굴의 입구입니다. 자연 동굴처럼 되어 있지만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죠. 아마 그 앞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몇몇 있을 겁니다.”

그 말대로 동굴 입구 앞에 다가가자 유저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장비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준비하죠. 곧 들어갑니다. 함정을 걸러낼 수 있으신 도적 알시나 님이 길을 판단하고 검사분들이 앞과 뒤에 서신 후, 사제와 마법사분을 보호하며 가면 되겠군요.”

기본적인 배치지만 이 인원에는 가장 적절하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시도하는 것을 보니 저 파티장 쿨트는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것 같았다. 곧 파티원들이 다들 무기를 꺼내고 준비되었다는 것을 보고 나서, 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들어서자마자 냉기가 훅 끼쳤다.

이 동굴은 지하 3층까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주로 언데드가 나오며 3층에서는 망령의 로드 스켈레톤이라는 보스 몬스터가 나오기 때문에 보통 사냥을 즐기기 위한 파티들은 2층까지만 다녀간다고 했다. 하지만 이 파티의 목적은 3층의 보스까지였으므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우……. 우우우…….”

“나왔다! 좀비들이에요!”

“그 정도야 뭐……. 흐압!”

안쪽에서 좀비들 네다섯 마리가 알 수 없는 음울한 소리와 함께 비틀비틀 나왔지만, 곧 맨 앞에 선 파티장 쿨트와 용병이 목표라는 검사 애슐의 칼질 몇 번에 뎅겅뎅겅 잘려 쓰러졌다. 좀비들은 웬만큼 토막을 치지 않으면 곧 다시 일어나고 칼에도 체액이 엉겨 붙는 귀찮은 몬스터였지만 사제인 로나의 축복을 받은 무기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다. 한 10여 마리 정도가 떼거리로 나오지 않는 이상 이 파티가 걸음을 지체하는 일은 없으리라 봐도 무방할 듯했다. 다들 제법 괜찮은 실력이었다.

나는 후방을 맡은 유완과 함께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갔다. 앞에서는 제법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지만 우리 둘은 여전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걸어왔다고 해도 나는 무시했겠지만, 태도로 보아서는 그쪽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았다. 그렇게 2층의 통로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서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꾸물꾸물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숫자가 좀 많았다.

“이번엔 떼거리인데요?”

“애슐 님, 가죠!”

“예!”

곧바로 앞쪽에서 검사들이 뛰어나갔고, 도적인 알시나는 뒤에서 단검을 던졌다.

“신이여, 용기 있는 전사들에게 자비로운 빛을 내리소서. 홀리 브레스!”

사제도 재빨리 그들에게 축복을 걸기 시작했다. 흰빛이 환하게 부서져 내렸고, 그 은은한 기운에 언데드들이 멈칫하는 사이 달려든 쿨트와 애슐이 칼을 휘둘렀다.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나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의아하게 돌아보자 유완의 얼굴이 보였다.

“……뒤에서도 오는군.”

그의 말대로 과연 뒤쪽에서도 뼈만 남은 스켈레톤들과 썩은 냄새를 풍기는 징그러운 좀비들이 꾸물꾸물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즉각 파이어 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1서클은 이미 시동어만으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 방 크게 날릴 테니 그 후엔 알아서 하십시오.”

빠르게 내뱉고 나서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주먹만 한 파이어 볼의 이미지를 사람 머리의 두 배 정도 크기로 바꾸었다.

“그오오오-- 우우우…….”

대략 저 한가운데쯤 날리면 될 것 같군.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빠르게 범위설정이 지나갔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앞으로 내뻗으며 공격의 신호를 알렸다.

“파이어 볼!”

쾅! 쾅!

“카아아……!”

연차적으로 두 개를 캐스팅해 내뿜자 뭉쳐 있던 몬스터들 사이로 명중한 파이어 볼들이 폭발하며 주변을 한꺼번에 희생양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미 내가 다루는 파이어 볼들이 단순한 1서클 마법의 위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유완은 그 광경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지만, 몬스터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곧바로 빠른 스피드로 쇄도해 들어갔다. 좋은 발놀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좀비 한 마리의 목을 날리고, 뒤에 있던 스켈레톤들의 뼈를 잘랐다. 특별한 스킬을 쓰지 않는데도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속도가 빨랐다. 동작 하나하나가 확실하며 위력적이었다. 그것이 전부 검술의 기초를 따른다는 점에 나는 주목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대각선 베기, 돌아서 내려치기, 올려치기, 끊어치기, 가끔가다 깨끗한 발차기. 종류별로 아주 기본의 정석 같은 공격들은 다 나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의 호흡을 읽고 빈틈을 파고드는 기술도 귀신같았다. 동시에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에는 반드시 한두 호흡만에 정리해 버렸다.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한다고 생각하며, 유완의 뒤로 기습을 시도하는 스켈레톤에게 작은 크기의 파이어 볼을 회전시켜 날려 보냈다. 맹렬히 회전하는 파이어 볼이 같은 크기의 일반 파이어 볼보다 배가 넘는 위력이란 것을 확인한 이후로 나는 웬만한 파이어 볼은 회전 파이어 볼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투쾅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날아가자, 유완도 앞에 있던 좀비들을 정리하고 뒤돌아섰다. 눈빛을 보아하니 뒤에서 달려들던 놈을 내가 처리해 준 것은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딱히 고맙다고 인사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나도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으므로 말없이 뒤돌아서자 앞쪽도 대충 정리를 마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은 네 명이나 되는 데다 검사가 두 명인데 이쪽보다 느리다니…….

내 느낌상 유완이란 놈은 아직 실력을 다 내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다른 이들과 비교해 엄청난 실력 차이가 엿보였다. 만만치 않은 놈 같다고 생각하며 힐끗 돌아보는데, 마찬가지로 이쪽을 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법이라…….”

“뭐라고 하셨습니까?”

“거기 두 분! 벌써 다 해치우셨어요?”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작게 물었지만 앞쪽에서 정리했다며 다시 빠져나가자는 고함이 들려왔고, 그가 먼저 아무렇지 않게 슥 고개를 돌렸다. 조금 미심쩍은 기분이었지만 나는 앞서 나가는 그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몬스터 떼거리를 만나고 나서 우리들은 3층으로 내려가는 엉성한 계단 앞에 설 수 있었다. 가끔가다 멀리서 보이던 유저들도 이 근처에는 한 명도 없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파티장 쿨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는 바로 내려가자마자 보스가 있을 테니 다들 다시 한 번 상태를 점검해 주세요.”

그 말에 나는 내 상태를 대충 살펴보았다. 마력은 아직도 대부분이 남아 있고, 체력도 OK. 머리에 눌러쓴 후드도 체액 하나 묻지 않은 채였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시 앞을 보자 다른 이들도 대충 다 점검했는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보스가 있는 3층을 앞에 두니 긴장한 기색이었다. 물론 이 파티가 순조롭게 2층을 휩쓸고 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곳이든 보스 한 마리가 다른 몬스터 수십 마리만큼 강하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이었다.

“다 점검하셨으면, 이제 방심은 금물입니다.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쿨트가 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무리 지어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옆에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유완이 서 있었다. 어둠의 끝에 다다르는 순간, 갑자기 앞서 나갔던 사람들 쪽에서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다급한 기분에 서둘러 뛰어나가자, 무언가 액체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상체가 녹아내린 사제 로나와 그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알시나가 보였다.

“이, 이럴 수가!”

성인용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런 장면도 보이는 것이겠지. 곧 죽어서 로그아웃된 그녀의 시체에서 빛이 새어 나오며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녀보다 더 먼저 나간 쿨트와 애슐은 어떻게 되었나 싶어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먼저 빠져나와서 벽 쪽에 붙어 있었는지 멀쩡하게 서 있었다. 한마디로 재빨리 나와서 벽에 붙은 그들은 무사하고, 그들을 뒤따라 입구로 막 모습을 드러낸 사제가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애슐이 놀란 듯 중얼거리자, 쿨트도 충격 받은 표정으로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이, 이상하네요. 여기에 있을 보스인 로드 스켈레톤은 이런 공격을 하는 놈이 아닙니다. 3미터가 넘는 키로 압도해서 상대를 공격하죠. 다른 업데이트 소식도 없었는데…….”

그때 알시나가 정신을 차렸는지 액체가 튀어 구멍이 난 자신의 옷을 가리켰다.

“이걸 보세요. 이건 산성이에요. ……마치, 저 위쪽에 있던 좀비들의 공격과 비슷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너무 강도가 세고…… 무엇보다 액체의 범위가…….”

그들이 가벼운 패닉에 빠져 쓸데없는 공방을 벌이는 사이, 나는 내 옆에 있던 유완이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쩐지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 뒤에서 행동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는 큰 걸음걸이에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유완에게 쏠렸다.

“계속 여기 있기보다는 일단 전진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가시죠. 그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자 알시나와 쿨트가 분위기에 찔끔하여 입을 다물고 앞서 나가는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공방을 벌여 봤자 어쨌든 사제는 죽었다. 파티원 전체를 보조해 주는 그녀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이상 이제부터는 남은 인원끼리의 전투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뒤따라가면서 제일 앞에 서서 등을 똑바로 펴고 걸어가는 유완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과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들 깜박 잊은 것 같지만, 이 파티에는 분명히 쿨트라는 파티장이 존재했고 여태까지 그가 우리들을 이끌어오고 있었다.

유완이라는 파티원은 지금까지는 전혀 파티에 협조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존재감조차 필요 이상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말을 최대한 아끼며 뒤에 물러서 있었는데 그랬던 상황이 아주 잠깐 동안에 단 한 마디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 상황이 과연 우연일까.

‘뭐,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는 조용히 유완의 뒤를 따랐다. 죽 이어진 길 너머에 있던 넓은 홀로 들어선 순간, 안쪽에서 이전의 그 액체가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우왁!”

맨 앞에 있던 유완은 예상이라도 한 듯 피했고, 그 뒤에 있던 나머지도 무사히 피하는 데 성공했다. 바닥에 떨어져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드는 그 액체는 마치 작은 웅덩이처럼 보일 만큼 컸다. 아까 사제가 맞자마자 상체 전체가 녹아 버린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액체를 물총처럼 쏘아서 공격하고 있는 거군요.”

애슐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아직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데…….”

그 순간, 유완이 나를 돌아보며 짧게 입을 열었다.

“마법사님, 마법 중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적을 탐사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능합니까?”

마법 탐사……! 일행들의 눈에 알 듯 말 듯하다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찾지 않는 이상 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적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대로 눈을 빛내는 나머지들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후드에 가려 보이지 않을 테니 하는 행동이었다. 유완이 말하는 마법이 무엇인지는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디텍트 매직이 그것이었다.

“예. 가능합니다. 바로 시전할 테니 주변에서 좀 비켜 주십시오.”

디텍트 매직은 3서클에 속해 있는 마법으로, 나도 물론 배웠지만 마력을 이용해 숨겨진 것을 찾는 능력이 전투 중에 쓸모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나는 주변으로 비켜선 파티원들의 모습을 훑어보고 앞으로 나섰다.

늘 해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 앞으로 오른손을 뻗어 원을 그리는 것이 시작이었다. 내 손끝을 따라 원의 궤적에서 빛이 흘러나오자 마법이 시전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인지 파티원들의 눈이 둥그렇게 뜨여 있었다. 그 유완 또한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처음 보는 이에게 이 광경은 더없이 신기해 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지.’

나는 속으로 웃고, 오른손을 완성된 원 안으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열쇠가 구멍에 끼워 맞춰진 것처럼 빛이 터져 나왔다. 손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텍트 매직의 이미지는 탐색. 나의 마력을 흩뿌려 감추어진 것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력이 무언가를 찾아내면 내 머릿속에 그 정보가 보이면서 드러나게 된다. 난 눈을 감고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부정한 틈새에 몸을 숨긴 것들이여, 나의 눈은 안개의 눈. 지금 당장 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라, 디텍트 매직!”

영창이 끝난 순간 엄청난 기류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발밑으로 원형의 빛나는 푸른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것이 거미줄처럼 빠르게 늘어나면서 바닥을 뒤덮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내 몸 위로 마력의 기류가 세차게 휘감아 돌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마법진이 뻗어 나간 공간의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

‘응?’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공간 바로 저편, 채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두 개의 거대한 존재감이 나타났다.

‘앞?!’

바로 앞이라니?!

내가 번쩍 눈을 뜨자 동시에 마법진 위로 드러난 앞쪽의 적들을 파티원들도 보았는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둘이에요!”

“이게 무슨 일이야! 둘이라니!”

“피해!”

엄청난 크기를 가진 두 마리의 적의 실루엣이 비추어졌고, 놈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공격을 날렸다. 맨 앞에서 디텍트 매직을 시전하고 있던 나는 순간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우를 범했다.

“으악! 피해요!”

뒤쪽에서 위험을 예고하듯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생경하게 들려왔다.

‘아…….’

눈앞으로… 아까 사제를 녹여 죽인 액체가 날아온다……!

나는 사라지는 마법진을 두고 입도 달싹하지 못했다. 너무 급하게 발견한 탓에 정신이 마구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겁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순간, 엄청난 고함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나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쾅하고 바닥으로 엎어지자마자 놀라서 멈추었던 숨이 되돌아왔다.

“헉…….”

“봤으면 얼른 취소하고 피해야지, 뭘 바보같이 서 있는 거야!”

내 몸을 안고 피한 것은 지금까지 전혀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검사 유완이었다. 그것에 내가 놀라기도 전에 그는 번개 같은 속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3미터가 넘는 두 마리 보스 몬스터의 주변에 숨죽이고 있던 작은 몬스터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나는 큰 두 마리의 형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생긴 것을 보니 하나는 거대 해골이고, 하나는 거대한 문드러진 시체였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은 [로드 스켈레톤]과 [거인족의 로드 구울]. 그것을 보았는지 뒤쪽에서 마찬가지로 헐떡대며 쿨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드 구울이라니! 저런 건 듣도 보도 못 했어요!”

“일단 몰려오는 것부터 처리합시다!”

나 또한 일어나서 바로 파이어 볼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

작은 것 열 개를 동시에 불러내자, 이렇게 급하게 많은 마력을 쓴 적은 없었기 때문인지 다리가 순간 비틀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한꺼번에 정신력을 소모하면서 열 개를 모두 회전시켜 날려 보냈다.

“그오오오-!”

곧바로 콰콰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몬스터의 비명 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각자의 몸은 각자가 지킬 수밖에 없는 난전으로 치달았다.

“파이어 볼!”

나는 쉴 새 없이 1서클을 난사하면서 처음으로 우검과 좌검을 꺼내 주변으로 달려드는 몬스터에게서 나를 방어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분산되어 고통스러웠지만 아직은 견딜 만했다. 조금 여유가 생겨 주변을 돌아보자, 도둑인 알시나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 뒤쪽에서 큰 비명 소리가 난다 싶더니 죽은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싸우고 있는 쿨트와 애슐도 큰 상처를 입고 있어 곧 죽을 것 같았다. 나도 완전히 피한 것은 아니라 옷 여기저기가 뚫려 있었고, 체액에 당한 상처와 스켈레톤들의 뼈에 당한 상처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매직 실드! 매직 실드! 매직 실드!”

주변의 몬스터가 잠시 정리된 틈을 타 재빨리 3서클의 매직 실드를 세 겹으로 감쌌다. 약하지만 어느 정도 방어는 가능할 터였다. 매직 실드를 주문이 필요 없는 수련치 80퍼센트 이상까지 수련해 두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파티에 들어오면서 3서클 마법사라고 속였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3서클을 주문과 함께 써야 하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때에 그런 얌전한 짓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파이어 월!”

쿠와아앙!

파이어 월로 반경 2미터 정도를 전부 둘러싸 버리자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틈새로 바깥을 보자 이제 몬스터는 거의 정리되어 가는 중인 듯했다. 앞에서 가장 무 썰듯이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사람은 유완이었다. 네다섯 마리가 그에게 달려들자, 그가 체액에 젖은 검을 세로로 세우더니 처음으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톰 스러스트!”

한 발을 주축으로 크게 한 바퀴 돌면서 푸르게 변한 검을 휘두른 순간 엄청난 기류의 폭풍과 함께 말려든 몬스터들이 전부 검기와 같은 것에 난자되어 쓰러져 버렸다. 그 귀를 찢을 듯한 소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위험한 기운을 느끼고 퍼뜩 앞을 보았다. 자신들이 보낸 새끼 몬스터들이 거의 당한 것을 보자 이제 보스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쿠웅,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놈들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본 나는 파이어 월을 취소하고 뒤로 물러났다. 유완도 재빨리 달려오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아남은 쿨트가 헐떡거리면서 뛰는 모습이 보였다. 내 마력은 이제 거의 절반 정도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미스트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보스가 둘이니 여기서 안 죽는 쪽이 더 대단할 것이었다.

하지만 유완은 여전히 냉철한 눈으로 놈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내가 앞서서 맡을 테니, 뒤에서 되도록 데미지가 큰 마법을 써!”

어느새 말이 짧아졌지만 전의 존댓말도 그리 정중한 어조는 아니었으므로 별 차이가 없었다. 상황이 급하니 긴 존댓말 쓰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데미지가 큰 마법이라면 물론 최근에 마스터한 4서클의 공격 마법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간이 필요해! 충분히 벌 수 있겠어?”

내가 소리치자, 그가 피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스켈레톤의 거대한 팔을 향해 당당히 서서 외쳤다.

“날 뭘로 보고!”

콰앙!

흙먼지가 폭발하면서 그 여파에 후드가 벗겨져 날아가 버렸다. 얼굴을 팔로 가렸다가 떼었을 때 내 눈에 비친 것은 엄청난 굵기의 스켈레톤의 팔뼈를 칼 한 자루로 막아내고 있는 유완이었다. 손잡이를 쥐지 않은 쪽 손으로 칼등을 받쳐 무게를 분산했음에도 완전히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 팔로 보아 위험한 상태는 아닌 듯 느껴져 다행이었다.

“음…….”

내가 신음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죽음을 기다리듯 가장 크게 찢어진 복부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쿨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건…… 오러…….”

오러?

그 말에 유완의 검을 바라보자 정말로 희미하지만 푸르게 칼날을 감싸고 있는 기운이 보였다. 오러, 즉 검기는 일정 수준 이상 수련한 검사들만이 쓸 수 있다는 고급 기술이었다.

“이럴 수가…….”

쿨트는 계속 놀라움과 망연함으로 흔들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 의아해졌다가 곧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라 이해가 되었다.

‘아. 후드가 벗겨졌지.’

게다가 폭발의 여파로 여기저기 부서진 돌조각에 스치고 먼지를 뒤집어쓴 데다 옷도 피에 젖었으니 전신이 심하게 더러울 게 뻔했다. 재빨리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유완이 로드 스켈레톤을 막고 있는 사이 그에게 팔을 휘둘러 산성 체액을 뿜는 로드 구울이 눈에 들어왔다. 유완 혼자서는 저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볼 것 없이 주문을 외쳤다.

“아이스 월!”

파이어 월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좀 더 단단한 아이스 월을 시전함과 동시에 거대한 얼음의 벽이 바닥을 뚫고 자라나 체액을 막아냈다.

치이이이…….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는지 벽이 거의 녹아들어갔지만, 그 정도라도 훌륭히 제 역할을 완수한 것이었다. 유완이 그 틈을 타 고함을 쳤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구해 줬더니 말도 많군.

“이걸로 아까의 빚은 없는 거다. 헤이스트!”

나는 그렇게 말하고 유완에게 헤이스트를 걸어 주었다. 이것으로 그는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놀림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거대한 적을 상대하려면 빠른 속도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한결 수월해지겠지.

그러고 나서 내가 다시 그린 서클은 오른손만이 아닌 왼손까지 둘 다 따로따로였다. 양손을 빛나는 서클 안으로 각각 집어넣자 곧 수식 세계가 완성되었다. 유완과 몬스터들의 몸까지 초록빛의 수식선상에 뒤덮이는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순간의 천둥, 영원처럼 긴 번개.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순간, 하나의 궤적이 되어 천공의 빛으로 올라가라!”

뜨거운 번개가 내리꽂힌 뒤 하나의 먹이에 만족하지 않은 채 전극에 이끌리듯 적에서 적으로 옮겨가다, 그대로 터져 버리는 대량 살상용 마법. 나는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응축했다. 단 한 번에 엄청난 데미지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폭발을 빨리 시켜야 했다.

곧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양손 사이를 잇는 번개의 불빛이 환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지직대는 소리가 두려울 만큼 컸지만 그 빛에 감싸인 내 손은 멀쩡했다. 점점 커져가는 빛이 양손을 메운 정도를 넘어 내 상체까지 늘어났을 때, 나는 이쯤이 한계임을 느끼고 앞쪽을 향해 외쳤다.

“피해!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의 빛줄기가 막 옆으로 날아가듯 피한 유완을 스쳐 쏜살같은 기세로 로드 스켈레톤에게 작렬했다. 귀가 멀듯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3미터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가 폭발하니 지하 전체가 다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부릅떴다. 이 마법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폭발하는 먼지 사이로 스켈레톤을 반쯤 부순 빛줄기가 이번에는 옆에 있던 로드 구울에게 날아가 작렬하는 것이 보였다.

“카아아아!”

로드 구울이 황급히 이쪽을 향해 체액을 마구 날렸으나, 그대로 당해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매직 실드!”

마력이 순식간에 압축되면서 투명한 방어막이 겹겹이 형성되었다. 그것에 부딪친 체액들이 힘을 잃는 순간 나는 하나의 마법을 더 외쳤다.

“아이스 월!”

아까도 실행했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겹으로 더 쳤다.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시야를 전부 가리다시피한 얼음의 벽 위로 매직 실드를 뚫은 산성 체액들이 사정없이 날아와 녹이기 시작했다. 유완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공격은 모두 이쪽으로 날아왔으니 알아서 잘 피했으리라 여기기로 했다. 그 정신없는 연기와 폭발음과 먼지와 비명 소리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3클래스의 아이스 스피어 주문을 외웠다.

“그 날카로운 얼음의 냉기로 내 앞의 적을 꿰뚫어라, 절대영도의 창! 아이스 스피어!”

체인 라이트닝이 강력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 두 놈을 한꺼번에 해치울 수는 없었다.

곧 눈앞에서 하얀 냉기의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오며 양손에 하나씩 날카로운 얼음의 창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창이라기보다 끝이 날카롭게 회오리치고 있는 긴 얼음기둥의 형태였다. 이것이 명중하면 그 부위부터 시작해 전신이 얼어붙는 데미지를 입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꽉 쥐고 거의 다 녹아 버린 아이스 월 바깥의 먼지가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아이스 스피어를 시전함으로써 내 마력은 이제 거의 다 닳아 버렸다. 다음 공격은 1클래스의 파이어 볼 정도나 할 수 있을까, 이제 그 이상은 무리였다. 게다가 중간중간 피를 흘리고 달아나고 해서인지 체력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기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지독하게 현실 같았다. 그리고 먼지가 거의 사그라지려던 순간, 갑자기 앞쪽 구석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튀어나갔다.

“섀도우 스텝!”

곧이어 희미한 실루엣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번득이는 검광과 몬스터들의 성난 고함이 들려왔다.

“크아아!”

유완이었다!

‘예상대로 잘 살아 있었군.’

몸부림치는 거대한 그림자를 바라보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먼지가 완전히 걷혔다. 푸른 섬광이 여기저기 뭉개진 로드 구울을 베어대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 로드 구울 옆에 있던 로드 스켈레톤의 절반쯤 부서져 무너진 뼈가 덜그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왼손에 든 아이스 스피어를 스켈레톤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두개골이 완전히 부서져 뒤로 날아가자 로드 스켈레톤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뼈가 와그르르 무너졌다.

뒤를 이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완전히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양 보이지 않던 유완도 기합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로드 구울의 심장을 꿰뚫었다. 칼날이 터져 나오는 푸른 피와 함께 앞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오른쪽의 아이스 스피어까지 로드 구울의 팔에 던져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콰콰쾅!

일단 던지기만 하면 날아가는 방향과 속도는 물리력이 아닌 시전자의 의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침착하게만 하면 명중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곧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로드 구울의 팔과 상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푸른 오러의 칼날이 뒤로 슥 하고 빠져나가자 몬스터가 쓰러지며 쿠우웅 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도 아직 꿈틀거리는 몸을 완전히 침묵시키기 위해서 유완이 칼을 치켜들어 로드 구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하아… 하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안 쓰러진 뼈의 잔해와 구울의 시체들이 천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흥건하던 푸른 체액과 피도 스며들듯 사라졌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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