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내 남친-12화 (12/85)

12화

♥햇살반♥(20)

차니비니맘

다들 맛저 하셨어요? 담임선생님 부탁말씀이 있어서 전달해드려요~ 다음주 프리마켓이 있는데 참여가 저조해서 이번주 금욜까지 물품 많이 보내달라 하시네요(신나)

강시원

네 알겠습니다~

유나맘

네~~~~~~~

성우승우맘

보내긴 했는데 더 보낼게 있나 찾아볼게여~~

차니비니맘

아! 그리고 둘째 주 쯤 숲활동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숲선생님 모시고 야외활동을 하는데 활동장소가 7세 아이들을 다 수용하기엔 공간이 협소하여 어머님들의 의견 여쭙니다. 우선 선생님들께서는 근린공원 생각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괜찮은 장소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hi

근린공원 좋아요! 그런데 엄마들도 가는 건가요?

유나맘

아이들만 가는 거 아닌가요?

정원

아무래도 차량 가는거니 엄마들도 같이 가면 안전하지 않을까요^^

강 시원

맞벌이면 ㅠㅠ

차니비니맘

부모님 동행가능 여부는 선생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답변 받으면 공유해 드릴게요.

성우승우맘

네^^

정원

고생많으십니다 ㅠㅠ

학부모 생활을 하며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유치원이라는 곳은 굉장히 많은 행사가 있다는 것과 그 행사에 대부분 부모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가기에는 뭣하고 가자니 쪽팔린 아이들의 행사. 대체 한 달 조금 넘는 동안 몇 번을 불려 다닌 건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쟤 애인이지 부모가 아니라고. 아이의 놀라운 성장에 감동한 척 억지 박수 치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아,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대답하지 않아도 꼭 가야 하는 행사면 알아서 연락 올 테니 조용히 있어야지.

휴대폰을 덮어두고 농땡이나 피우려는데 손안에서 진동이 부르르 울렸다.

주리맘

시훈아빠. 바쁘세요??

주리맘은 햇살반 부모님 중 한 명이었다. 하필 전혀 바쁘지 않을 때 개인 톡이 오다니. 무심결에 눌렀다가 1이 사라져 버려 답장을 안 할 수도 없어 마지못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더 친절하게 말해 주고 싶어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딱딱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뭐, 상관없겠지.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주리맘

우리 애들 숲체험이요~ 혹시 시훈아빠도 가시나 해서요!

글쎄요. 일이 있어서 필참 아니면 시훈이 혼자 보내려고 하는데.

주리맘

아, 그러시구나~ ㅎㅎ

난 시훈아빠 간다고 하면 도시락이라도 싸줄까 했지요.

애 챙기랴 도시락 챙기랴 바쁠 것 같아서

아 ㅎㅎ 전 괜찮습니다.

주리맘

아! 혹시 챙겨주는 사람이 벌써 있으신건 아니시죠?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주리맘의 급발진에 당황해 버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주리맘

괜찮다고 하시길래~ 혹시나 해서요 ㅎㅎ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결국 이걸 물어보고 싶었던 거였군, 이미 실례는 다 해 놓고선 모른 척하는 게 어이없어서 답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리맘

그런데요. 시훈아빠.

시훈이 엄마 없으면 외롭다고 하지 않아요?

아니, 딴건 아니고… 그냥 그래 보여서.

이제는 무례하다,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기도 지치는 게 나와 시훈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학부모들은 돌아가면서 한 번씩 연애에 관련된 고나리질을 해댔다. 이번에는 주리맘 순서인 모양이다.

나에 대한 수많은 질문 중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게 나의 애인 유무에 대한 질문이었다. 있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권시훈의 신상을 털어버릴 것 같고, 없다고 하자니 윤진 씨는 왜 연애를 하지 않는지,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지 따위와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서 끝에는 누군가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오지랖이나 은근슬쩍 자기 어필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해서 피곤했다.

글쎄요. 그런 말은 없던데. 그리고 전 당장 새로운 사람은 만날 생각이 없어서요.

주리맘

와. 정말요?? 왜요??

시훈이 하나만으로도 벅찹니다.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사실이었다. 권시훈은 애인으로서도, 자식(?)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성격이니까.

주리맘

그러시구나^^ 그래도 아까워요. 한창 연애하고 사람 만날 때인데

시훈이도 많이 컸는데 가볍게라도 만나보시는 건 어때요?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정말 생각 없습니다.^^

주리맘

에이, 그래도 막상 만나보면 다를걸요?

전 시훈이가 최우선이라서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네요.ㅎㅎ

주리맘

와아…

진짜 시훈아빠, 부성애가.

우리 신랑이 시훈아빠만큼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ㅠㅠ

더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주머니에 휴대폰을 쑤셔 넣고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차라리 권시훈이 얼른 커서 초등학교에라도 가게 되면 나을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지긋지긋한 톡 지옥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 * *

오형석 연구원과 미팅이 있어, 일찍 연구소를 나섰다.

시훈과 동행해야 하는 일정이라 일부러 유치원 정규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원을 찾았다. 하원 시간 맞췄다가 또 저번처럼 팬미팅을 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와. 오늘 왜 이렇게 더워. 진짜 미쳤네.”

아직 초여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달이었지만, 오늘따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웠다.

쪄 죽겠는데 누구한테 들킬까 긴 후드를 뒤집어쓰고 범죄자처럼 담벼락에 바짝 붙어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유치원으로 향하는 내 처지가 비참하다. 진짜.

끼이익.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유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 게, 아마 시훈이네 반이 나와 있는 듯했다. 잘됐다. 얼른 데리고 나가야지. 나는 눈으로 빠르게 시훈을 찾았다.

“이야아아아아악!!”

“이쪽으로 패쓰하라구!!”

“우와!! 시훈이 엄청 빠르다!”

공놀이하는 아이들 틈에서 유난히 긴 다리를 자랑하는 시훈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좀 져주지. 애랑 아빠뻘이라고 가소로워할 때는 언제고 너무 승부에 진심인 거 아니니.

“시훈아!”

“어? 윤진… 아 아빠아~”

너, 너! 진짜 말실수할 뻔했다. 놀라 등 뒤에 식은땀이 삐질 났다. 다행히 다들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아무도 눈치 못 챈 듯했다. 사실 이 난장판에서 눈치채는 게 더 대단한 것 같긴 하다.

시훈은 공을 향해 질주하던 발을 돌려 나에게 도도도 뛰어와 내 품에 뛰어들어 안겨 왔다. 옅은 땀 냄새와 아기 체향. 얇은 티셔츠 밖으로 시훈의 작은 흉통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더운데 천천히 걸어오지. 왜 뛰어왔어.”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숨을 고르라고 살살 등을 토닥여 주니 품 안에서 색색 숨을 고르다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별을 박아 놓은 듯 반짝거리는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너는 참.”

어쩐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어버렸다.

“자기야말로 오늘 더운데 왜 이런 걸 입고 왔어. 안 더워?”

“누가 볼까 봐….”

“누가 봐? 자기 나 몰래 빚이라도 졌어?”

“…아니거든.”

“그럼 됐구.”

시훈은 머리끝까지 둘러쓴 내 후드를 벗겨 목 뒤로 넘겨주었다.

“얼굴 보이니까 예쁘네에.”

올망졸망 단풍 같은 작은 손이 땀이 흥건한 내 이마를 닦아 주었다.

“아. 됐어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이렇게라도 한번 만져 보는 거지. 가만 좀 있어 봐.”

야… 귀염 뽀짝한 얼굴로 윙크까지 하면 반칙이지.

“어? 시후니 아빠예여??”

“와! 엄청 이뿌게 생겨따아.”

어느새 시훈과 같은 반 아이들이 나와 시훈 주변에 몰려와 있었다. 갑작스레 주목을 받아 어색해진 나는 슬쩍 몸을 일으키며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어. 얘들아 안녕? 응. 내가 시훈… 어… 아빠란다. 하하하.”

그런데 시훈은 갑자기 내 앞으로 아이들이 몰려오자, 경계하는 듯 내 앞을 막아섰다.

웃기네. 자기도 내 허리 정도밖에 안 오는 꼬맹이면서 누가 누굴 막으려고 들어. 역시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아저씨 남자 맞아요? 엄청 예뻐요. 겅주가타여, 겅쥬.”

그럼 남자지. 여자겠니. 그리고 너희가 뭘 모르나 본데 남자여도 겅쥬인지 뭔지 할 수 있거든.

“하하. 네. 아저씨는 남자가 맞아요… 참. 별걸 다 물어보는구나.”

그 이후,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나에게 갖은 질문을 쏟아 냈다.

“아저씨. 아저씨. 시훈이 엄마는 어디 있어요?”

“응? 그, 글쎄.”

“엥? 아빠가 엄마 어딨는지도 몰라여?”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거짓마아알!”

내가 시훈이 어머님이 지금 어디에 계신 줄 어떻게 아니.

대답하기 곤란해 하하하허허허 웃고만 있으니 덩치가 거의 시훈만 한 남자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시훈이 엄마 없댔어! 아빠랑 둘이 산댔어!”

“뭐어어어어??”

미치겠네. 이제 온 동네에 소문나도 할 말 없겠는걸. 7세에게 꽤 충격적인 사실이었는지, 아이들은 방청객이라도 된 양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시훈을 돌아보니 영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삼촌. 삼촌은 여자친구 있어요?”

“…어?”

“여자친구요! 여친! 연애하냐구요!”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해. 여친은 없지만 남친은 있다. 그게 너희들의 친구인 시훈이란다! 라고 말해버릴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하자니 내 앞에서 도끼눈을 부라리고 있는 시훈이 무서워 그럴 수 없었다.

선생님을 곁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려야 시훈을 데리고 나가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는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시훈이 아빠!”

“으, 응?”

제발! 선생님. 나타나 주세요. 속으로 열심히 빌고 있는데, 여태 아무 말 없이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휘감은 여자아이가 얼굴을 붉히며(왜?) 나에게 말을 붙여왔다.

가만, 저 아이 이름이 뭐였더라. 단톡방 프로필 사진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어… 그런데 너 이름이 뭐니?”

“떠아에요! 강떠아!”

아… 강서아 어린이구나.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참 귀여운 아이였다.

“우리 엄마가요. 시훈이 아빠 만나면 하고 싶은 말 있다 했는데.”

“그래?”

“아저씨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해써여! 오면 맛있는 거 해 준대여!”

맞다. 이 집도 이혼했다고 했었지. 학부모 단톡방 피셜로는 둘 중 누군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바람이 났다나 뭐 어쨌다나 그랬었던 것 같은데 대충 보고 말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 그렇구나. 서아야. 엄마가 시훈이랑 아저씨 초대하고 싶다고 했어요?”

“녜! 저는 시훈이랑 엄마 아빠 놀이하면서 놀구… 엄마랑 아저씨랑 놀고!”

하하… 엄마 아빠 놀이. 우리 시훈이가 그걸 너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뭐, 상상은 자유니까 뭐라 하지 않으마.

“그런데 서아야. 아저씨는 서아 엄마랑 만난 적이 없어서 친하지 않은데.”

“만나서 친해지면 되죠!”

“…그냥 시훈이랑은 유치원에서 놀면 안 될까?”

“시러여!”

“아, 사실 아저씨가 일이 좀 바빠서….”

“밤 아주아주 늦어도 괜찮다구 해써요! 오히려 좋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러케 만나다 보믄 정도 들고, 친해진다고….”

서아야… 지금 시훈이 좀 불타오를 것 같은데 이제 제발 좀 그만하면 안 되겠니.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눈으로 내 앞에 선 시훈의 동그란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케 막 하다 보면 아빠도 생기고 동생도 생길 수 있대요!”

서아 어머님… 애한테 뭔 말을 한 겁니까. 난 당신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머님은 벌써 나랑 식장에 들어가는 상상이라도 하셨나요.

여기 유치원은 애나 어른이나 왜 이리 극단적이야. 이래서야 무서워서 얼굴은 들고 다닐 수 있겠어? 당신들은 나오는 대로 말하면 그만이라지만 나는 아니라고. 뒷감당할 일이 태산이란 말이야!

“야! 미쳐써? 누가 누구랑 머를 해??”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뒤통수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권시훈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몰라.

서아야. 네가 모르는 게 있어. 햇살반 권시훈 어린이는 질투가 엄청 심하단다.

한번 꽂히면 그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고.

설령 그게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애기라도.

“누가 누구랑 뭐를 어째? 박윤진 내 거야! 내 거라고!”

“왜… 왜 그래, 시훈아.”

“캭. 미쳤나! 얌전히 있으니까 진짜 애새끼로 보는 거야 뭐야! 너희 엄마 데려와아아앗! 가만 안 둘 거야!”

“시, 시훈아… 왜 화를 내고 그래. 혹시 서아랑 놀기 싫어?”

“어! 그래 실타! 시러! 진짜 실타! 글고 너희 엄마도 시러! 아니 왜 엄연히 임자 있는 몸을 눈독 들이는 거야? 어?!!”

그래. 오래 참았지. 허허.

시훈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애 앞이라고 쌍욕은 안 하는 거 보니 마지막 이성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제 눈앞에서 학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이 나에게 친근하게 말 걸고 살갑게 구는 걸 보고도 참아야 했으니, 질투와 소유욕의 화신인 권시훈 씨 몸에 사리 나올만하지. 인정하는 바이다.

“내 거야. 내 꺼! 윤진이 내 꺼라고오오오옷!! 건드리지 말라고오오!”

서아는 권시훈의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에 놀라 울먹이기 시작했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셨다.

그리고….

벌건 대낮에 유치원 한복판에서 정신 줄을 놓고 폭주하는 권시훈 어린이의 아버지이자, 애인 박윤진은 지금 딱 죽고만 싶었다.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유치원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서아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고 친구를 괴롭힌 죄로 시훈은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다.

그 이후, 혹시 둘의 사이가 틀어졌을까 걱정되어 시훈에게 물어보니, 엄마 아빠 놀이 10번 해 주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금세 풀려서 다시 권시훈을 졸졸 쫓아다녔다고 한다.

결국 나만 또 쪽팔려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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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내 남친

한가린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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