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눈을 마주치는 대신 내 링을 내려다보며 웃는 우서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서의 팔을 붙잡아 당겨 안고는 그대로 몸을 뒤집었다. 몸이 홱 돌아가 아래에 깔리게 된 우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하면서도 얌전히 내 얼굴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용서해.”
견디지 못하고 우서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그의 살결을 간질였다.
“용서하고 받아줘.”
얼굴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기듯 입술을 내리누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난 이미 예전부터 네 거였잖아.”
네가 날 바라보지 않는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이미 난 네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걸 끝내 감춰야 했던 네가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치 미래의 나처럼 보여서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그저 마음을 닫고 외면하기 급급했지만, 기회를 잡은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얼굴에 닿는 내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던 우서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 몰랐는걸요.”
스스로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을 잇는다.
“형이 예전부터 절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몰랐고 제 거라는 것도…….”
말을 잇던 우서가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문장을 완성하기 부끄러운 것처럼 입술만 오물거리고 있기에 그의 얼굴을 돌려 내 눈을 바라보게 했다.
“모르면 이제부터 알면 돼.”
시선이 맞닿자마자 견디지 못하고 우서의 입술을 삼켰다. 귀엽고 붉은 입술을 집어삼켜 비비다가 살살 핥아주니 내 아래에 깔린 우서의 몸이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조금 급하게 혀를 밀어 넣자, 날 기다린 것처럼 끝을 내미는 살덩이와 맞닿아 비벼진다.
결심을 굳힌 것처럼 우서의 혀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물러나려 들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도 조금이나마 내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것처럼 작은 혀를 얽기 위해 애를 쓴다.
“으음…, 형….”
신음 사이로 날 부르는 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다.
“더 불러줘. 하아…, 네 거 불러줘, 우서야.”
이럴 때 듣는 우서의 음성이 끊이지 않고 날 불러줬으면 좋겠다.
“형…, 음, 지건이 형…. 흡….”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서가 끊임없이 날 불러줬으면 하면서도 입술이든 혀든, 모든 걸 가만두고 싶지가 않았다. 우서의 것이라면 아무것도 밖으로 새어 나올 수 없도록 내 입술로 입을 막고서 안을 휘저어대기도 하고 그러다 애가 타면 아쉬운 듯 숨을 뱉고서 입술을 핥아 목소리를 감상했다. 착한 우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틈만 나면 날 불러주기 바쁘다.
“읍, 형…. 숨차요, 잠깐……. 으음, 형….”
“그럼 그만할까?”
아쉽게 속삭이니 우서의 달궈진 볼과 기다란 눈썹이 떨렸다. 그러다 자그마하게 중얼거린다.
“그만하자는 건 아니고… 조금 천천히…….”
우서의 가쁜 숨이 섞인 달뜬 목소리가 수줍게 내 귓가를 파고든다. 날 밀어내거나 고개를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얌전히 눈을 굴리는 우서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의 부탁과 달리 조급히 밀어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이성을 가라앉히며 숨을 고르듯 우서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입술의 촉감을 얌전히 느끼려는 것처럼 스르르 눈을 감는 눈꺼풀마저 귀엽게 느껴졌다.
“노력해 볼게. 사실 지금 여러 가지를 참는 중이라서.”
“여러 가지요?”
누워있는 우서에게 무게를 싣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뜨렸던 하체를 꾹 내리눌렀다. 의미를 모르고 가만히 눈만 깜빡거리던 우서는 곧 화들짝 놀라며 보이지 않을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 저기, 그…….”
키스의 탓인지 아니면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감각 때문인지, 우서는 귀까지 빨개진 채 당황하는 얼굴을 보였다. 작게 웃으며 그의 얼굴을 붙잡아 다시금 입을 맞췄다.
“전부 네 거니까 언제든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대꾸도 하지 못하는 우서에게 웃는 얼굴로 입을 맞추고 다시금 키스를 이어가자, 혼이 쏙 빠진 듯한 당황함이 조금이나마 희석되는 것 같았다.
“사랑해, 우서야.”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우서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던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우서의 눈이 잔잔하게 요동쳤다. 그러더니 두 팔을 뻗어, 내 목에 팔을 건다.
“저도…요….”
차마 나처럼 단어를 뱉기엔 아직 부끄러운지, 눈을 마주한 채 스스로 입술을 가져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서가 스스로 내게 맞닿아오고 속삭여주는 거면 족하다.
우서와 입술을 맞대고서 끊겼던 키스를 진하게 이어갔다.
삼키지 못한 신음을 흘리며 혀를 받아들이다가 슬쩍 내 입 안으로 들어오던 촉촉한 살이 날 흉내 내듯 안쪽을 서툴게 훑었다. 간지러우면서도 찌릿거리는 기분 좋은 감각에 맘대로 하게 내버려 뒀더니, 의아한 듯 묻는다.
“형, 근데…, 읍, 왜 피 맛이 나는 것 같죠…?”
잠을 참아내기 위해 입속을 좀 씹어뒀더니 그 자리에서 배어난 피 맛을 알아챈 모양이다.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아, 심플하게 얼버무리기로 했다.
“착각이야.”
“하지만 맛이……. 읍, 으응….”
* * *
원래대로라면 일주일간 휴가를 낸 만큼, 호텔에서 좀 더 쉬다가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우서는 호텔비가 너무 아깝다며 차라리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꺼냈다.
우리 집. 돌아가자.
그 말이 어찌나 기분 좋던지, 미리 며칠 분의 숙박비를 낸 상태였음에도 곧장 호텔을 나섰다. 만약 우서가 알았다면 환불이라든지 울며 겨자 먹기로 호텔에 남자고 했을 테지만, 모처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니 모르는 체 차에 올랐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으로 향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우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왼손 약지를 내려다보며 묘한 얼굴로 넋을 놓고 있었다.
우리의 링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원래의 링은 누군가 펜으로 선을 그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一)자의 붉은 줄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줄이 되어, 꽈배기 같기도 하고 사슬 같기도 한 얽은 형태가 되어 있었다. 우서는 그 링의 형태가 신기한 듯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신기해?”
피식 웃으며 묻자, 여전히 시선을 박은 채 대꾸한다.
“신기하죠. 링이 없어지는 상상은 해봤어도 이런 형태가 될 줄은 몰랐거든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누군가가 완전한 링의 형태를 그림으로 그려둔 걸 찾을 수 있다. 그랬기에 링이 완전해지면 어떤 모양이 되는지도 알고 있었으나, 실물을 이렇게 보는 건 당연히 처음이었다. 하물며 완성된 이유가 자신의 감정 변화 때문이라는 걸 아는 우서는 더더욱 신기할 수밖에.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멈춰 세울 때쯤, 우서가 작은 미소를 보였다.
“링이 완전해지니까 이상하게 안심이 돼요.”
솔직하게 입을 연 우서가 그제야 링에서 눈을 떼고 날 바라보았다.
“형이 정말 날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 같잖아요.”
우서의 안전띠를 풀어주며 그의 왼손을 붙잡아 들었다. 선명하게 얽혀 있는 두 줄이 마치 우리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아, 기분 좋게 벅차오른다.
“증거 ‘같은’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지.”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가슴 속 무언가가 기분 좋게 쿵쿵거렸다.
우서가 날 좋아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내 앞에 있었다. 고작 붉은 줄 두 개의 얽힘 형태일 뿐이지만, 내게는 세상의 그 어떤 값진 것보다 더 귀한 증거물이었다.
우서의 링 부분에 입술을 내려 살짝 빨아들였다. 입술을 뗐을 땐 링의 한가운데가 보기 좋게 붉어져 있었다.
“이 형태, 마음에 드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기지 않고 서로 얽혀있는 문양이 마치 우리를 영원히 엮어둘 것만 같다.
‘내가 평생 그렇게 만들 테지만.’
링이 완전해졌다고 해서 나태하게 안심해선 안 된다. 완전해진 링은 누군가의 마음이 변절하는 순간, 언제고 서로를 끊어내어 한 줄이 될 수 있다. 난 절대 그렇게 될 리 없으니, 우서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필수였다.
물론 우서에게 접근하는 놈들이나 위험 요소들은 그 몰래 가차 없이 처리해야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서가 돌연 결연한 눈을 한다.
“저도 제 마음을 확실히 알았으니까, 이제 우유부단하게 굴지 않을 거예요.”
무슨 말인가 싶어 가만히 듣고 있으니, 우서가 갑자기 내 얼굴을 붙잡아 짧게 입을 맞췄다. 그게 너무도 간지럽고 상냥해서 입술이 떨어지는 게 너무도 아쉬웠다.
“형이 절 싫어하지 않고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우서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그러니까 형도 무슨 일 생기면 저 몰래 다른 사람 이용하거나 나쁜 짓 하시면 안 돼요. 그러다 형이 위험해지시면 어떡해요.”
어린아이를 훈계하듯 따박따박 내뱉는 말이 이토록 귀여울 수가 없다. 자신이 날 싫어하게 되는 건 생각도 않고 그저 내 걱정만 하는 우서가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디지 못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우서를 끌어안았다.
“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그래야 네가 날 계속 좋아해 주지.”
“전 당연히 계속 좋아할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다 알게 됐으면서도 계속 좋아할 거라는 우서는 내게 더없는 충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완전해진 링의 효과인지 아니면 우서의 감정을 만끽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감각이 미치도록 달콤한 것만은 확실했다.
머릿속에서 이대로 우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씹어먹고 싶다는 욕망의 조각이 날뛰는 걸 참아내며 우서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붉은 잇자국 위로 링에 새겼던 나의 열꽃이 똑같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