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이……!”
“뭐 하는 거야?!”
험악한 분위기를 내며 한 대 칠 것처럼 주먹을 올리던 강지석의 팔이 우서에게 덥석 붙잡혔다. 당황한 얼굴로 멱살 잡은 손까지 떼어낸 우서가 하도 걱정스럽게 보기에, 조금 엄살을 부려보았다.
“흡, 콜록….”
짧은 기침을 토하자 우서의 눈이 더욱 걱정으로 물들었다. 어쩔 줄 모르고 입만 벙긋거리다가 그 몸으로 날 보호하듯 등지고 서기까지 한다.
“미쳤어, 너? 갑자기 왜 멱살을 잡고 그래?”
“우서야….”
강지석이 우서를 억울한 듯 바라보다가 날 노려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녀석은 우서가 비켜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날 지키는 몸은 도저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강지석의 살벌한 눈빛을 태연히 받아주다가 우서의 동그란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지금은 약한 척을 해야 할 타이밍이니 애써 참아냈다.
날 지켜주는 우서라니, 설레게.
강지석에게 멱살을 잡힐 때보다도 이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이 순간이 더 답답하게 다가온다. 쓰다듬으며 안아주다가 키스하면 딱 좋겠는데.
“…머리 좀 식히고 올게.”
강지석은 우서의 단호한 모습을 보며 금세 시무룩해진 얼굴로 방을 나섰다. 녀석이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우서가 그제야 날 돌아본다.
“괜찮아요?”
걱정이라는 것에 형태가 있다면 지금쯤 우서의 눈에서 작은 유리구슬 같은 게 방울방울 떨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짓궂게도 한 번 제대로 울려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물론 내 앞에서만.
“생각보다 지석이가 힘이 세네.”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멱살을 잡힐 때 쓸렸던 목과 쇄골 근처를 매만졌다. 그걸 본 우서의 눈가가 더욱 일그러진다.
“학교에서도 웬만큼 무거운 건 쟤 혼자 다 들 수 있을 정도예요. 어디 좀 봐요, 형.”
우서의 눈만큼이나 걱정스러운 손길이 조심스레 내 살결을 꾹 눌러 쓰다듬는다. 난 사실 우서가 만져준다는 것만 느껴질 뿐, 전혀 아프지도 않은데 그가 대신 아픈 표정을 짓는다.
“세게 쓸린 것 같은데, 아프진 않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팠는데…….”
우서의 손을 붙잡아 짧게 입을 맞춰주었다. 그제야 우서의 어둑하고 무겁던 감정이 옅게 희석되는 게 보였다.
“지금은 기분 좋게 간지럽네.”
느끼한 짓이긴 해도 우서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풀어주기엔 이만한 것도 없다.
우서는 그가 만든 틀 안에 있는 타인의 애정에 확실히 약했다. 그가 만든 틀 안에 들어가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한 번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건네주는 애정에 조용히 일희일비한다. 힘들고 지쳤을 때 따뜻하게 안아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금세 부끄러운 듯 눈을 돌리며 지금처럼 말랑해지는 것도 특징이다.
예상한 반응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거듭할 때쯤, 내가 잡은 손의 엄지 부분에 작은 핏방울이 맺혀있다는 걸 알았다. 생채기에 불과한 상처라서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연히 얼굴이 굳었다.
“이건?”
손톱의 불규칙하게 갈린 흔적과 그 아래 살점의 뜯긴 흔적으로 보아 실수로 다친 건 아니었다.
“물어뜯은 흔적 같은데.”
내가 멱살 잡혔던 건 아무렇지도 않았으면서 우서의 작은 상처를 보자마자 어딘가에 작은 유리 조각이라도 박힌 것처럼 거슬리는 기분이 들었다.
“버릇이에요. 그냥… 오래된 몹쓸 버릇.”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상처를 만든 게 우서 본인이라는 것이다. 다른 놈이 그랬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만두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의 손에 생채기가 생겼는데 어떻게 태평할 수 있을까.
우서에게는 엄지손톱 아래의 살점이 약간 뜯어진 것에 불과하겠지만, 내게는 열 손가락 모두가 갈가리 찢긴 기분이었다. 우서가 저 작은 상처를 스스로 내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려 미간이 일그러졌다.
우서를 침대에 앉혀놓고서 급히 밖으로 나와 구급상자를 찾았다. 나나 강지석도 그렇고 여동생 지연이도 딱히 다쳐본 적이 없어서 방치 수준이었던지라 보관한 곳을 잊었을 법도 한데, 웬일인지 헤매지 않고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우서의 다친 손에 약을 발라주었다. 상처 부분에 약이 닿자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요즘에는 손끝 다 멀쩡하기에 버릇도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내 말에 멈칫하던 우서가 조금 놀란 듯 묻는다.
“제 버릇…,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과외를 해줄 때 간혹 손톱과 그 아래쪽 살점이 뭔가에 씹힌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걸 의식하는 것처럼 수시로 상처 난 손을 감추기에 모르는 척해줬는데, 설마하니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버릇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조금 신경 쓸 일이 있어서요.”
머뭇거리는 우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엄지로 그의 입술을 문질렀다.
“나도 같이 신경 쓰면 안 될까? 하다못해 내 손끝을 갉아먹어도 되니까. 응?”
입술 사이에 엄지를 살짝 밀어 넣으며 정말 갉아먹어도 된다는 것처럼 나긋하게 속삭여주니, 역시나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람이 손톱을 물어뜯고 그 아래에 있는 살점까지 피가 나도록 깨무는 데에는 보통 비슷한 이유가 있다.
초조함, 답답함, 혼란스러움.
우서 역시 그런 감정을 느꼈기에 버릇이 다시 나온 걸 테지만, 단순한 문제처럼 보이진 않았다. 강지석과 나, 링과 커넥터 때문에도 그런 감정을 가득 느꼈을 텐데 어째서 이제야 그 버릇이 나왔던 건가.
‘엄마라는 사람 때문인가.’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고자 말을 더 얹었다.
“너무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난 네가 어디든 상처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서는 결국 밀어내길 포기한 듯이 눈을 살포시 내리깔았다.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셔서요.”
내리깐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석이가 잘 둘러대 줘서 엄마도 더는 강요하지 않을 것 같고요.”
이번엔 우서의 얼굴에 점차 그늘이 졌다. 뭘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건지, 입술을 몇 번이나 오물거리다가 애써 괜찮은 척 말을 잇는다.
“형도 자야 할 텐데, 아무리 그래도 서로 떨어져 있을 순 없잖아요.”
이때 든 생각은, 우서도 아직 어린애라는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겁내고 일단 밀어낼 생각부터 하는 조심스러운 어린애.
‘내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으면서 왜 외면하려 드는 건지.’
아무리 말해도 순수히 받아들이려 하질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는 일말의 바리케이드라도 없으면 일이 잘못될까 불안한 사람처럼 뭐든 한발 물러나서 상황을 보려 한다. 좋게 말하면 혹시라도 기대했다가 상처받을까 봐 신중해지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상대의 감정을 습관적으로 의심하는 거다. 아마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뒤섞여 있는 바람에 쉽게 짐작 가능한 상대방의 진심마저 장막을 씌워버리는 거겠지.
“잠 때문에 걱정한 거라고 생각해?”
잠 따위,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보낸다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데.
“그거야…….”
우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찬 눈을 했다.
답답하다. 답답해.
하지만 이게 신우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점마저 좋아진다. 고민하고 난감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가 사랑스럽다.
우서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가끔은 네가 내 생각을 금방금방 읽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네게 품은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걸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다 읽어주면 좋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야 좀 확실히 알 것 같다.
이대로 가면 우서가 날 받아들인다고 해도 가슴 한구석에 계속 나와의 거리를 유지할 벽을 만들 것 같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우서가 나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그가 만들어둔 얇고 단단한 벽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링 역시 완전해질 수 없겠지.
머릿속으로 아까의 강지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서가 가진 링, 내가 해제해 줄 거야.”
‘차라리 잘 됐어.’
링의 해제에 관한 결정권은 이미 우서가 갖고 있다. 강지석이든 커넥터든, 놈들이 뭐라 하든 간에 그걸 결정할 수 있는 건 우서뿐이다. 그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들어줄 거고, 링의 해제 역시 응해줄 생각이었다. 서로의 기억을 잊었을 때를 대비한 자료도 잘 모아두고 있으니, 링의 해제를 무조건적으로 겁낼 건 아니었다.
우서에게 쉬다가 내 방으로 오라는 말을 남긴 채 그의 방을 나섰다. 그러고선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 휴대폰을 들었다.
한도진에게 다시금 전화를 걸며 피식 웃었다.
“우서가 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짓 환경을 만들어서 흔들고 있는 게 언제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강지석은 오늘 참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을.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자, 우서가 날 완전히 받아들이게 만들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무슨 일이세요? 또 뭔가 도와드려야 할 게 있나요?
“시간 끌어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요.”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까지 깜빡이는 기나긴 야경을 바라보았다.
“내일 당장 강지석하고 약속 잡죠. 우서도 데려오라고 하고.”
수많은 야경 속, 유독 커다란 한 불빛만이 불안하게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