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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리-71화 (71/99)

71화

잠이 덜 깬 게 분명한 형은 내 두 손목을 붙잡아 베개 옆에 눌러버리고는 키스라도 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 건데 왜 가리고 그래.”

형의 발언을 타고 넘어온 숨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물건 취급당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형이 어제뿐 아니라 오늘도 내뱉은 ‘내 거’라는 발언은 이상하게 속이 간질거린다. 형의 감정을 몰랐다면 단순히 놀리는 거라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겠지만, 그게 가슴 속에 담아둔 집착과 소유욕의 표현이라는 걸 알기에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다.

나를 코앞에서 바라보던 형의 얼굴이 천천히 움직였다. 분위기상 그대로 입술을 눌러 키스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형의 얼굴은 내 시야에서 옆으로 움직여 내려갔다.

“…읏?!”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손등보다 더한 통증이 느껴져 짧은 신음을 냈다. 목 언저리에서 퍼진 아릿한 통증은 머릿속을 몇 번이나 두들기듯 기묘한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아파요, 형…!”

“미안.”

의외로 순순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 형이 꽉 깨물었던 자리를 혀끝으로 간지럽히듯 쓸었다. 쓰라림을 동반한 간지러움이 전신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형의 분위기가 바뀐 걸 알아챘다. 목소리도 눈을 뜬 직후와 달리 탁한 소리가 거의 남지 않았다.

“형, 잠 다 깬 거죠?”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잇자국을 쓸던 형이 작게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조금 투덜거리고 말았다.

“아침부터 무슨 이런 장난을 치고 그래요. 아프잖아요.”

“많이 아팠어?”

잇자국 위에 짧게 입을 맞춘 형이 아까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부드러워진 얼굴을 들어 날 내려다본다. 이제야 좀 평소에 보던 형 같다.

형이 몸을 비켜주며 상체를 일으켜 앉을 수 있도록 손을 끌어주었다. 앉은 채 형이 물어버린 자리를 손으로 꾹 누르자, 화끈거리는 쓰라림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손을 떼고서 물린 자리가 형에게 잘 보이도록 셔츠를 조금 내려 보였다.

“피 나는 거 아니에요?”

“자국이 남긴 했지만 조절해서 물었어.”

“그 말은 물 때도 정신 멀쩡했는데 잠이 덜 깬 저기압인척했다는 거죠?”

“가끔은 네 머리가 좀 나빠도 좋았겠다 싶어.”

“뭐예요?”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장난스레 형의 가슴팍을 손등으로 툭 건드렸다.

“앞으로 형이 자고 있을 땐 몰래 도망가야겠어요. 이러다간 강지석 말대로 진짜 잡아 먹히겠네.”

“지석이가 뭐라고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켜는데, 뒤에서 끌어안은 형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하필 기댄 곳이 형에게 물린 자리가 있는 곳 근처라, 약간 뜨거운 숨이 닿아 찌릿거리는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아침에는 형 저기압이니까 잘못 깨우면 잡아먹힌다고요.”

“맞아. 순간 잡아먹을 뻔했잖아.”

이렇게 바짝 붙어서 웃음기 섞은 목소리로 웃으니, 형의 목울대가 퍼뜨린 진동이 어깨를 타고 물린 자리를 감싼다. 오싹한 자극이 저 깊은 곳을 또다시 간지럽힌다. 정말 형에게 잡아 먹힐 뻔했다는 것을 알려주듯.

“앞으로는 안 깨울 거예요. 형 자고 있으면 몰래 나가야지.”

말하자마자 허리를 감은 팔에 강한 힘이 깃든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매일 이렇게 껴안고 있을 건데.”

“형, 항복, 항복. 저 허리 부러져요.”

허리에 가해지는 압박감이 너무 세서 팔을 툭툭 두드리니 그제야 풀려나 자유로워진다. 하여튼 형도 강지석 못지않게 힘이 세다니까.

“몰래 나갈까 봐 걱정되니까 매일 일찍 일어나야겠어.”

“여태껏 계속 그래왔으면서……. 그리고 뭘 걱정씩이나 해요, 어차피 일어나서 하는 거라고는 밥 차리는 것밖에 없는데.”

“뭘 모르는구나.”

뒷머리가 사락, 기분 좋게 건드려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시야 안에 없으면 불안해. 당연한 거 아냐?”

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어깨가 흠칫한다.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쓰지.

새삼 형의 당당함이 감탄스러우면서도 그 말이 이해가 갔다. 나 역시 강지석이 갑자기 눈에 띄지 않는다거나 날 두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처럼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굴면 묘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무심한 척 대꾸했다.

“어차피 제가 움직여봐야 형네 영역 안에서잖아요. 불안할 거 없어요.”

자는 거든 식사를 차리는 거든, 전부 형이 집주인으로 있는 이곳 한복판에서 하는 거니 형네 영역이라는 말도 맞는 소리다.

갑자기 조용해진 형을 등지며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

예기치 못한 눈과 마주쳐버렸다.

팔짱을 낀 채 맞은편 방 문가에 기대어 서 있던 강지석이 미간을 찌푸린다. 뭐라고 한소리 할 것처럼 썩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입을 열기는커녕 꾹 다물고 있다.

‘맞은편이 강지석 방이었지, 참.’

그가 왜 지금과 같은 이른 시간에 버젓이 눈을 뜬 채 지켜 서 있는지 몰라도, 난감한 상황인 건 확실했다. 이제 막 일어난 모양새로 형의 방에서 걸어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뭐라고 둘러대면 좋지. 아무리 형과 사이가 좋다고 해도 같은 방에서 자고 나오는 건 확실히 의아해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링 때문에 싫어도 같이 자야 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허둥거릴 생각은 없다. 애초에 한 번쯤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으니, 그저 침착하면 될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태연한 척 강지석의 팔을 두드렸다.

“웬일이야? 일찍 일어났네.”

“…잠을 좀 설쳐서.”

확실히 강지석의 낯빛이 그리 좋지 않다. 그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고 하기엔 좀 피곤한 기색이다.

강지석의 이마로 얼른 손을 뻗었다.

“또 감기 걸린 거 아니야?”

강지석의 앞머리 속으로 들어간 손바닥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약간 따뜻한가 싶긴 했지만 감기라고 하기엔 열이 그리 높지 않았다.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조심해. 스트레스 쌓이면 금방 감기 걸리곤 하잖아.”

“응, 그럴게.”

고분고분 대답하는 걸 보고 나서야 손을 뗐다. 그러다 그 손목을 덥석 붙잡힌다.

“근데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어?”

강지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다른 손으로 내 셔츠의 목 라인을 살짝 당긴다.

“잡아 먹힌다고 했잖아, 내가.”

금세 거칠어진 목소리가 타박하듯 씹어 뱉어진다. 그제야 강지석의 시선이 내 목 언저리에 닿아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 자리에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을 거라는 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만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탓에 이번만은 나도 당황하며 손으로 그 자리를 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모르겠다. 형이 그냥 잠결을 핑계로 장난 좀 친 게 다인데.

“이건 그냥… 형이 장난을 좀 쳐서…….”

“하….”

강지석이 짧게 헛웃음을 치며 내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문가에 다가선 지건 형이 다소 삐딱한 자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는 것이, 오늘따라 유독 얄밉다.

“장난이라고…….”

강지석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형에게 달려들 것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강지석의 모습에 덜컥 겁부터 났다. 어제처럼 또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본능처럼 몸으로 형을 가려 섰다.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강지석의 손을 이번엔 내가 더 꽉 붙잡았다. 혹시라도 날 밀치고 형에게 주먹을 휘두르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우려와 달리 강지석은 험한 행동을 하지도, 격한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무서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을 뿐.

짧은 한숨을 내쉰 강지석이 내 손을 떨쳐내며 몸을 돌렸다.

“아침은 거를게. 속이 좀 안 좋아서.”

“아…, 응.”

강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아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제야 삭막하던 공기가 단번에 나아진다.

머릿속에 강지석의 말이 메아리치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걱정이 한가득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걸까.

여태껏 식사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설마 밥 한 숟가락도 못 먹을 만큼 심각한 거 아냐?

어제 술 냄새도 안 나던 거 봐서는 숙취일 리가 없는데, 그럼 체했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민하는데, 형의 손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지석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원래 속 별로라고 아침도 안 먹는 애였어.”

“그래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서…….”

강지석이 들어간 방문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움직이질 못하니, 형이 기어코 욕실을 향해 끌었다.

“이따가 다시 물어보자. 밥 차려 놓으면 냄새 맡고 나올지도 모르지.”

“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한 번 시작된 걱정은 그리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 그러고 보니…….’

욕실로 향하다 문득 든 생각에 어깨너머로 강지석의 방문을 한 차례 더 돌아보았다.

‘내가 왜 형 방에서 나오는지 안 물어보네?’

강지석에게서 가장 먼저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질문이었는데, 그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담담히 바라보기만 했다. 불길한 오싹함이 등골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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