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위압감 넘치는 형의 말에도 강지석은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우서가 왜 형 거야?”
강지석의 목소리가 꽤 낮게 깔려 울린다. 지건 형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그랬지만, 점차 분위기가 괴로울 정도로 답답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잠깐…, 내가 형 거…….’
형이 말한 ‘내 거’라는 게 나를 말하는 게 맞나? 강지석이 착각하는 건 아닐까?
힐끗 시선을 돌려 형을 바라보았지만, 딱히 그 말에 대한 반박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픽 웃는 얼굴로 강지석을 노려보기만 할 뿐.
‘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거나 생각하고 있다니.’
나 스스로가 웃겨서 어이가 없다. 형이 ‘내 거’라고 소유욕을 드러낸 부분에서 심장이 펄떡일 정도로 설레버리다니.
입을 다물고 있는 형이 답답했는지, 강지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먼저 말을 뱉었다.
“우서가 불편해할 만한 말은 하지 마.”
별로 불편하다기보다는 얼굴이 좀 화끈거릴 뿐이었지만 일일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거로 따지자면 험악한 분위기를 보이는 강지석이 더 불편하다 할 수 있었다.
강지석을 말없이 마주하던 형의 입가에 작은 웃음기가 번졌다. 그러더니 강지석의 귓가에 뭔가를 작게 속삭인다. 그러면서 힐끗 나를 보는데, 얼결에 시선이 마주치자 괜히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뭐라고 말을 속삭여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강지석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그가 손을 뻗어 형의 셔츠를 구겨 멱살을 틀어쥔다.
“이……!”
당장이라도 큰소리를 낼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강지석이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그대로 두면 형 얼굴을 한 대 칠 것 같아서 얼른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급히 강지석을 말리며 다른 손으로는 멱살 쥔 그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다행히 더 고집부리지 않고 손을 풀어준다.
“흡, 콜록….”
멱살을 어찌나 세게 틀어쥐었는지, 셔츠만 구겨진 게 아니라 형이 짧게 밭은기침을 토하기까지 했다. 형이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저리 반응하는지 몰라도, 이 상황에선 폭력적으로 군 강지석의 잘못이 명백하다.
형의 찌푸려진 미간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그를 보호하듯 몸으로 가린 채 강지석을 노려보았다.
“미쳤어, 너? 갑자기 왜 멱살을 잡고 그래?”
“우서야….”
입을 열던 강지석이 뒷말을 채 잇지 못한 채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내가 몸으로 숨긴 지건 형의 얼굴을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강지석의 두 주먹이 부들거리며 떨린다. 그 주먹이 혹여나 날 밀어내고 지건 형에게 쏘아질까 봐 겁이 나, 그를 막아선 몸을 절대 치우려 들지 않았다.
형을 노려보고 있던 강지석의 눈이 이번엔 날 바라보았다. 명백히 다른 분위기의 우울한 강아지 같은 눈빛이 날 응시한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눈꺼풀이 내려와 눈의 방향을 바꾼다.
“…머리 좀 식히고 올게.”
강지석은 그 말을 남긴 채 문으로 향했다. 바로 나갈 것처럼 성큼 걸었다가 잠시 멈춰 서서는 미련이 남은 듯한 눈으로 슬쩍 날 돌아본다. 그때까지도 형을 보호하듯 서 있는 날 보며 멈칫하다가 이내 문을 소리 내어 닫으며 나가버렸다.
강지석의 이상한 행동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얼른 몸을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아까의 짧은 기침이 마음에 걸려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단추를 두 개쯤 풀어둔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자신의 목과 쇄골 쪽을 쓰다듬고 있던 형이 애써 웃어 보인다.
“생각보다 지석이가 힘이 세네.”
“학교에서도 웬만큼 무거운 건 쟤 혼자 다 들 수 있을 정도예요. 어디 좀 봐요, 형.”
목 언저리를 쓰다듬는 형의 손을 직접 치워내자, 구겨진 셔츠에 쓸려 약간 붉게 달아오른 살결이 보인다. 속으로 강지석을 타박하며 붉은 부분을 꾹 눌러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도 형의 쓸린 부분의 통증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 미간이 아프게 움직인다.
“세게 쓸린 것 같은데, 아프진 않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팠는데…….”
형의 손이 목 언저리를 쓰다듬는 내 손을 붙잡아 입을 맞췄다. 그것 한 번만으로도 내 방에 가득하던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남은 거라고는 파스텔 느낌의 몽글몽글한 간지러움뿐이다. 형의 입술이 닿은 지점부터 시작해 전신이 기분 좋게 오싹거린다.
“지금은 기분 좋게 간지럽네.”
강지석을 대할 때와 달리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 있던 눈꼬리가 내려가, 보기 좋은 호선을 만들어 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형의 얼굴 근육이 굳는다.
“이건?”
내 손을 붙잡고 있던 형이 그걸 들어 엄지 쪽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형이 바라보는 엄지 부분이 아까 내가 손톱을 잘근거리며 물어뜯었던 그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못된 일을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흠칫하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손아귀 힘이 워낙 강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하여튼 형제가 왜 이리 다들 힘이 좋은 건지.
“물어뜯은 흔적 같은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형이 더 아픈 표정을 짓는다. 목 언저리의 쓸린 자국에 가슴 졸이던 나와 똑같은 얼굴이라, 차마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작정 잡아뗄 수가 없었다.
“버릇이에요. 그냥… 오래된 몹쓸 버릇.”
회피하듯 눈을 굴리며 엄지를 구부렸다. 볼품없이 살집이 뜯겨 나간 손끝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구부리는 과정에서 다친 부분을 검지에 꾹 눌러버리는 바람에 찌릿한 통증이 퍼졌다. 그 순간의 움찔거림을 귀신같이 눈치챈 형이 내 손을 끌어 침대에 앉히고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방을 나섰다. 달려갔다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금세 돌아온 형의 손에는 아크릴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구급약 상자가 들려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내 앞에 의자를 갖고 와 앉은 형이 상자에서 작은 연고와 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 줘 봐.”
“이 정도는 놔둬도 금방 나아요.”
조금 찢어진 정도로 뭘 거창하게 밴드까지 붙여두나 싶어서 손을 치우려 했지만, 형은 도리어 나에게 손바닥을 보이도록 손을 내밀었다.
“손.”
짧은 말과 단호한 눈빛에 차마 묵묵히 있을 수 없었던 터라, 결국 형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살포시 올려놓고 말았다. 그제야 형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진다.
연고 바른 면봉으로 내 엄지 끝을 살살 문지르듯 약을 발라주던 형이 한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요즘에는 손끝 다 멀쩡하기에 버릇도 사라진 줄 알았는데.”
형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어 형을 바라보았다. 내 손에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느라 차분히 내리깔고 있던 형의 기다란 속눈썹이 팔락거리는 게 보인다.
“제 버릇…,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상처 난 손끝이 품은 것보다 더한 열기가 얼굴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멀쩡한 한 손으로 얼굴을 한차례 쓸며 시선을 돌렸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등학생 때는 싫어도 엄마와 같이 살다 보니 그간의 스트레스에 못 이겨 손톱을 깨물다가 살도 함께 상처 내기 일쑤였다. 어찌나 자주 그랬던지, 손톱은 따로 깎지 않아도 언제나 짧았고 그 아래에 있는 손끝 살점은 작은 굳은살이 생길 정도였다. 형에게 과외를 받는 날에는 전날부터 최대한 버릇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곤 했는데, 그래도 역시나 알아채 버렸었나 보다.
‘이때까지 기억하고 있었을 줄은…….’
묘하게 기분이 좋다. 형이 내 사소한 버릇까지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게.
“다 됐어.”
그 말을 하며 형이 눈을 들자마자 짜 맞춘 것처럼 시선이 부딪혔다. 형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가 눈이 마주쳐버린 것처럼 보일까 봐, 괜히 부끄러워서 내 손으로 눈을 내렸다. 손끝을 덮듯이 붙여진 밴드의 느낌이 이질적이긴 해도 이게 형의 애정이 건드린 자리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진짜 미쳤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풋풋한 사춘기 감성? 뭐 그런 걸까.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속 소년처럼 형의 작은 것에도 속이 간질거린다. 아무래도 낮에 형과의 예전 일을 곱씹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는가 보다.
구급상자를 닫아서 바닥에 내려놓은 형이 내 다친 손을 그러쥐며 밴드 위를 살살 문질렀다. 약간의 찌릿함과 온기가 기분 좋게 퍼져 간다.
“이런 버릇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던데, 무슨 일 있었어?”
형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숨결마저 닿을 거리라서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자니, 형의 맑은 눈동자가 내 시선을 붙잡고서 놓질 않는다.
“그냥… 조금 신경 쓸 일이 있어서요.”
엄마와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기엔, 아무래도 이 걱정 많은 형에게 짐만 지워주는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형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형의 커다란 손이 내 얼굴을 보드랍게 쓰다듬는다.
“나도 같이 신경 쓰면 안 될까?”
볼을 쓰다듬던 형의 엄지가 내 입술을 문지르다가 천천히 그 안으로 살짝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내 숨이 형의 손끝에 막혀서는 입안에 뜨겁게 머문다.
“하다못해 내 손끝을 갉아먹어도 되니까. 응?”
형이 다정하고 나긋하게 속삭였다.
새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형이 동물이었다면 분명 그냥 여우가 아니라 꼬리 아홉 개쯤 붕붕 흔들어대는 구미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