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데이트라고 했을 때 당장 생각나는 건 고작해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든지 맛집 탐방 정도가 다였다. 다른 걸 좀 더 고민해본다 한들 놀이공원 정도가 다일까.
그런 단순한 나와 달리 형은 꽤 신기한 곳으로 향했다.
‘어색…한데…….’
전신 거울에 비친 날 보며 재차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반소매셔츠에 사선으로 흰 줄이 빼곡하게 들어간 남색 넥타이, 네이비 바지, 가슴팍에는 학교 교표 느낌이 물씬 나는 검은색 와펜.
분명 하나씩 골라서 조합한 것임에도 어떻게 이리도 똑같을 수가 있는지.
‘교표까지 똑같았으면 진짜 그 학교 교복인 줄 알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물론 그때 비하면 좀 더 어른스러운 얼굴이고 분위기도 더 차분해졌으니 교복이 어색할 만도 했지만.
“예쁘네.”
그새 다가와서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지건 형이 함께 거울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그러게요. 근데…….”
거울에 비친 형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형도 나처럼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른 고등학교를 나왔다더니 내가 입은 것과는 확실히 다른 차림이다. 교복을 입은 형은 처음 보기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잘 어울리시네요. 이게 형네 고등학교 교복이에요?”
“아니.”
묻자마자 튀어나오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며 형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가장 큰 교복 드레스카페라 조합만 잘하면 웬만한 학교의 교복은 다 나온다더니, 내 것만 제대로 맞추고 본인 것은 건성으로 했나 보다.
눈을 가늘게 뜨니, 형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귀찮아서 아무거나 섞어서 입었어. 난 네가 교복 입은 게 보고 싶어서 온 거지, 내가 입을 생각은 별로 없었는걸.”
“이런 게 보고 싶었어요?”
내 차림을 눈으로 훑으며 말하자, 허리에 자연스레 팔이 둘렸다. 형이 내 머리에 입을 맞춘 채 웅얼거린다.
“이런 거라니, 이 귀한걸.”
흠칫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페에는 우리 말고도 꽤 사람이 있었는데, 각자 옷을 고르고 있거나 교복 차림으로 테이블에서 대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던 찰나, 저 멀리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 둘이서 이쪽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두 남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곤거리며 힐끗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형을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저기, 형. 너무 가까운데…….”
“뭐 어때서. 어차피 데이트하라고 만들어 놓은 곳인데.”
“그래도…….”
요즘 시대에 남자끼리 연인이라는 것에 민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누군가 노골적으로 우릴 주시하고 있다는 것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연인…….’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순간적으로 우릴 연인 사이라 생각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형이 멀어진 만큼 내 허리를 당겨 품에 안아버리자 딱딱히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우릴 향한 여자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형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다 죽여버릴까…….”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다른 곳을 향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바라본다.
“신경 쓰이면 그냥 갈까?”
조금 전의 중얼거림과 달리 형의 축 처진 목소리가 속삭여 온다. 슬쩍 눈을 돌려 아까의 남자들이나 근처의 여자들 쪽을 보는데, 신기하게도 이쪽에 관심도 없는 것처럼 각자 즐겁게 대화하기 바쁘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애초에 연인들이 이색 데이트를 하기 좋다고 소문난 곳인 데다가 여기에 동성커플이 우리뿐인 것도 아니니 누가 신경 쓸 리가 없는데.
‘커플…….’
와, 나 좀 제정신 아니네.
형의 품에서 벗어나 거울을 보니 무슨 감기라도 걸린 사람처럼 얼굴에 붉은 기가 가득하다. 맨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형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모처럼 왔는데 즐겨야죠.”
카페의 우리 자리로 향하며 어깨너머로 형을 훑어보았다. 아무거나 섞어 입은 거라고 하기엔 옷맵시나 색 배합도 그렇고, 너무 그럴듯한 교복 느낌이다. 여길 들어올 때만 해도 형이 교복을 입으면 좀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정정한다.
얼굴이 잘생기면 뭘 입어도 멋있다. 이건 국룰이야.
어깨너머로 형을 훑어보다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형이 기다렸다는 듯 웃어준다.
“형은… 나한테만 웃는 게 헤픈 것 같아요.”
“당연하지.”
끌려오던 형이 금세 옆에 서서는 아예 내 손을 꽉 붙잡아준다.
“너 말고 누구한테 웃어주겠어, 내가.”
어떻게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렇게 사람을 간지럽게 만들지.
천으로 칸막이를 해둔 룸 형태의 우리 자리로 들어가, 넓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직도 저는……. 왜 여기 앉아요?”
당연히 맞은편에 앉을 거라 생각했던 형이 굳이 내 옆에 앉았다. 그도 모자라 테이블에 있던 음료를 끌어와 나와 나란히 둔다. 2인을 위한 소파라고는 하나, 이렇게 앉으니 가까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옆자리에 앉은 형이 대뜸 휴대폰을 꺼내 들며 웃는다.
“사진 찍어도 돼?”
“꼭… 찍어야 해요?”
“싫어?”
형의 눈꼬리가 또 처진다.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형의 눈가를 손끝으로 살짝 눌러준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내가 이런 거에 약한 거 다 알면서…….”
“알지.”
눈가에서 떨어지던 내 손을 붙잡은 형이 그 손끝에 입술을 비빈다. 이제야 형답게 눈꼬리가 올라가, 유혹하듯 휘어진다.
“아니까 이용하는 거야. 너 약해지라고.”
“……형은 진짜 여우에요.”
“칭찬이지?”
“아마도요.”
형은 여전히 내 손끝을 간질이며 웃었다. 저런 얼굴을 어떻게 이겨.
결국 형과 나는 사이 좋게 각자의 사진을 찍어댔다. 처음엔 그저 형이 찍으니까 나도 찍어둬야지, 언제 이런 걸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찍다가 나중엔 내가 더 신이 났던 것 같다. 어느새 내 휴대폰 속에도 형의 사진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한다.
나란히 앉아서 꽤 많이 찍어버린 형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 속의 붉은 링에 눈이 갔다.
교복을 입던 그때에는 보이지 않던 링.
의식하고 있는 지금은 교복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만약 링이 어릴 때도 볼 수 있는 거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 강지석을 향한 짝사랑 때문에 감정 누르기 급급하던 지난날이 더 혼란스러워졌으려나. 어쩌면 일찌감치 결론을 내려서 벌써 링을 해제했을 수도.
‘그도 아니라면 난 형과…….’
휴대폰 속에 자리 잡은 형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의 형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카메라를, 아니,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형이 내게 쏟는 애정이 느껴져서 심장이 요동친다.
교복의 효과인진 몰라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때라면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굴지 않고 뭔가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에 푹 빠져버린 그때, 갑자기 몸이 번쩍 들어 올려지더니 몸이 휙 돌아간다. 당황하며 손을 뻗자, 형의 단단한 어깨에 척 얹어진다.
순식간에 날 무릎 위에 올려 마주 본 형이 사진 속에서처럼 잔잔히 웃었다.
“무슨 생각해?”
“…….”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나도 웃어 보인다.
“잘 왔다는 생각요. 제가 언제 형이 교복 입은 걸 보겠어요.”
“좋아해 줘서 다행이네.”
형이 내 품에 얼굴을 묻으며 꽉 끌어안았다.
“좋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내 체취를 한껏 폐부에 담은 형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며 얼굴을 비빈다. 그게 간지럽기도 하고 나 역시 기분이 좋아, 머뭇거리다가 형의 머리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었다. 서로의 체온이 금세 호흡을 맞춘다.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만약에 제가…….”
물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말끝을 흐렸다. 돌려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직설적으로 묻게 될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괜히 어색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든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형은 여전히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형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나 할까.
부드러운 형의 머리를 조심스레 쓸어주며 못다 한 뒷말을 이었다.
“제가 강지석을 선택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문장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또다시 몸이 확 돌아갔다.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으니 형의 손이 뒷머리를 받쳐준다.
형에게 깔려 소파에 누워버리자마자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차가운 눈동자가 시선을 붙잡았다.
“예시가 틀렸어.”
“틀렸…다뇨?”
형의 손끝이 내 가슴에 있는 검은 교표를 살포시 누른다.
“날 선택한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할 건지를 물어야지.”
가슴 한구석이 쿵, 울리는 것 같았다.
거절당하고,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가 멀어지다가 잊는 지경까지 가는 상상은 5년이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해왔다. 단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지금 이때까지도 부정적인 결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을 선택했을 때가 아닌, 형을 거절했을 때를 당사자에게 묻고 있다. 그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가늠이나마 하고 싶어서. 그걸 안다고 해봐야 마음만 무거워질 뿐인데.
형의 손가락이 내 넥타이 머리에 얹어진다. 힘을 주어 당기듯이 흔들자 점차 넥타이가 풀어진다. 셔츠의 첫 단추를 풀어줄 땐 답답하던 숨이 점차 유연하게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날 선택하고 링이 완전해지면…….”
셔츠에 가려져 있던 목울대에 서늘한 손끝이 닿았다.
“남김없이 전부 삼켜버리려고. 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목울대에 닿았던 손끝이 점차 옆으로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손이 내 목을 완전히 그러쥔다. 외사랑의 어렴풋한 나날이 감싸고 있던 숨을 완전히 덮어버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