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6. 강지건
우서와 처음으로 키스한 날 새벽.
잠들어버린 우서를 데리고 호텔 방에 데리고 올라온 나는 술에 찌든 그의 옷을 벗기고서 함께 욕실로 향했다. 술기운도 충만했고 나와 접촉한 상태이니 아마도 푹 잠들어서 깨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역시나 함께 욕조까지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젖은 몸을 타월로 꼼꼼히 닦아주고 샤워가운을 입혀주었다. 그대로 안아 든 채 침대에 눕히자, 푹신한 매트와 시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 비비듯이 뒤척이다가 이불을 말아서 폭 끌어안는다. 마치 하얀 인형을 안고 자는 것 같아서 그런지 꽤 귀엽다.
다정하게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어 그의 볼을 쓸어보았다.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느껴지고 뒤이어 내 손끝이 미끄러지듯 내려와서 우서의 입술에 닿았다.
키스 경험이 거의 없는 건 맞는 것 같았다. 입 안 여기저기를 건드릴 때마다 퍼득거리고 움찔대는 것만 봐도 키스 자체가 그에게 얼마나 생경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첫 키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만족할 만했다.
우서와의 키스를 곱씹으며 그의 입술에 댄 검지와 중지를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살짝 밀어 넣어보았다. 고른 치아 사이로 파고들어 혀를 손톱으로 살짝 긁어주자 우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흐우….”
숨소리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더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의 깊은 안쪽을 건드리자, 또 한 번 소리가 샌다. 목구멍을 긁어줄 것처럼 깊이 넣어서 혓바닥을 살살 쓸다가 두 손가락으로 혀를 꽉 잡았을 땐 제법 분명한 신음이 터졌다.
“흐, 으응….”
꼭 내 손가락이 혀가 되어 우서의 입 안을 헤집는 것 같았다. 손가락에 묻어난 미끌한 타액도, 말랑한 혀의 감촉도, 우서의 것이라면 뭐든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고조되어 좀 더 대담하게 건드려볼까 하던 도중.
어디선가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우서의 재킷에 들어있던 휴대폰을 꺼내자, 몇 통인지 모를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다.
휴대폰 액정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다가 아예 전원을 꺼버리려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어, 다운로드 앱에서 쓸만한 앱 하나를 설치했다. 이 앱은 설치와 동시에 투명화가 되기 때문에 설치된 지정 위치를 직접 찾아내지 않는 한 겉으로 노출될 일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앱을 설치하고 몇 가지를 조작하고 나자,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온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액정을 노려보다가 아예 전원을 확 꺼버렸다.
잠잠해진 휴대폰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가 태연하게 충전기를 꽂아두고는 다시 우서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내 손가락을 빼내면서 아랫입술에 묻어난 약간의 타액이 보기 좋게 번들거렸다.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지는데, 이번엔 내 휴대폰이 울린다. 짧게 혀를 차며 휴대폰을 집어 들고서 발코니로 나갔다. 어차피 누가 전화를 걸고 있는지 알만해서, 아예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까지 들고 나갔다.
“지금 몇 시인 줄 알고 전화 거는 거야?”
[미안해. 급해서 그랬어.]
건너편에서 초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이자마자 강지석이 급하게 물었다.
[형, 혹시 우서랑 연락돼?]
“우서? 같이 술 먹고 있는 거 아니었어?”
둘이서 술 먹고 늦게 들어갈 거라고 통보하던 메시지를 토대로 모르는 척 되물었다.
[우서가 중간에 먼저 간 것 같은데 연락이 안 돼. 1시쯤까지는 메시지도 확인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아예 읽지도 않고 휴대폰도 꺼져 있어.]
“배터리라도 나간 거 아냐?”
[그런 거라면 차라리 좋겠는데…….]
“너희들 술 진탕 마시면 꼭 찜질방에서 잤다가 오잖아. 어디 찜질방이라도 가서 기절했나 보지. 우서도 성인인데 뭘 그렇게 걱정해. ”
[찜질방…. 음…, 몇 군데 좀 돌아봐야겠다. 고마워.]
끝내 직접 찾으러 다닐 생각인가 보다.
담배를 피우며 슬쩍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이쪽을 향해 돌아누워 있는 우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기왕 찾으러 갈 거면 한 번에 찾았으면 좋겠네.”
어차피 못 찾겠지만.
[그러게.]
씁쓸하게 대답한 지석이 이번엔 내 일정을 물어왔다.
[미팅하고 들어온다고 했지?]
“어. 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미팅하고 들어갈 것 같다.”
[알았어. 왔을 때 나 없으면 우서 찾으러 간 줄 알아.]
들으면 들을수록 묘했다. 이쯤 해서 확실하게 파고들어 볼 필요가 있는 듯했다.
“지석아. 누가 보면 네가 우서 애인인 줄 알겠어. 오해받겠다.”
내 말에 건너편에서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우서랑은 오해받아도 돼.]
이것 봐라?
“그 말은, 네가 게이처럼 보여도 된다는 거야? 여자 아니면 관심도 없다던 놈이?”
[상관없어. 내가 게이처럼 보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야, 사실이 다른데.]
“그럼 그 ‘사실’이라는 게 뭔데?”
지석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꽤 긴장됐다. 나도 모르게 길게 빨아들인 담배가 벌써 반 가까이 타버렸다.
[난 남자한테 관심도 없고 게이도 아니야. 근데 우서는 별개거든.]
“왜 별개야?”
왜? 우서도 남자니까 관심 좀 꺼주면 좋을 텐데, 대체 왜?
[걔는 내 카테고리 어디에도 들어가질 않더라고.]
눈가가 일그러졌다.
나와 강지석은 닮았다. 7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음에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많다. 생긴 것부터 특기, 취미, 심지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까지도.
그리고 신우서가 내 연애적 틀 어디에도 속하지 않듯, 강지석의 카테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둘이 서로를 좋아한다 해도 혹여 끈끈한 관계에 금이라도 갈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이상, 승기는 내게 있었다.
[그러니까 형……. 우서는 건들지 마.]
강지석이 위협하듯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다른 애인들 상처 주면서 쓰레기 버리듯이 버리는 건 상관 않는데, 우서는 안 된다고.]
협박할 것처럼 한껏 위협하던 강지석은 명심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착각하지 마, 지석아.’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자, 내가 곁에 없어서 눈을 떠버리고만 우서가 멍하니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우서는 이미 내 거야.’
왼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 링이 있는 한, 우서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오로지 나뿐이다.
* * *
“신우서!”
우서를 부르는 지석의 화난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윽! 야, 아파!”
“내가 얼마나 걱정했던 줄 알아?! 연락은 왜 안 되는데?!”
“배터리가 나가서……!”
“메시지 확인했던 거 다 알아! 확인했을 때 답장이라도 해줬으면 됐잖아!”
저렇게 화를 내고 몰아세우면 우서가 어떤 생각을 할지 뻔했다. 바보 같은 강지석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감정적이다.
우서를 먼저 올려보내고서 나중에 올라가는 척하며 다른 엘리베이터로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내렸다. 우리 집과 비상계단은 워낙 가까운 위치라서, 잘만 하면 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비상계단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우리 집 현관문 앞으로 향했다.
“내 생각은 안 해?! 밤새워서 너 기다리면서 내가 얼마나……!”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급했던 강지석은 아직도 우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문틈으로 보니, 거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떠는 우서가 보였다.
사실 대화만 듣고 한참 뒤에나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서가 어깨를 떨다가 강지석의 손마저 쳐내는 걸 보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강지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래려 드는 것조차 거부할 만큼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그 손 놔, 강지석.”
우서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은 강지석의 손을 억지로 떼어놓았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가 새겼을 게 분명한 붉은 자국이 보였다. 피부가 하얘서 더 붉게 보이는 자국이 내 이성마저 흔들어놓았다.
올라오려는 화를 삭이며 우서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여린 어깨를 감싸 안고 떨리는 몸을 기대게 한 채 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
강지석이 남긴 상처는 우서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해해주지 않는 강지석에 비해 뭐든 털어놓고 이해받을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우서에게 있어 든든한 버팀목과도 같았다.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뭐든 다 해. 네 얘기라면 뭐든 들어줄게.”
우서의 눈동자가 다양한 감정으로 요동쳤다. 그 안에서 내가 가장 먼저 잡아낸 감정은 편안함을 동반한 ‘안심’이었다.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게 나뿐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기댈 수 있는 것도 나뿐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 그로 인해 우서는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서라면 편안히 안도하게 된다.
신우서를 갖기 위해 내가 준비해둬야 할 밑밥은 오직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