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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리-31화 (31/99)

31화

형의 말이 맞았다.

키스를 시작하자 머릿속에 남은 건 오로지 두 가지뿐이었다.

형의 적극적인 키스가 가져다주는 황홀감, 그리고 누군가 방에 들어와서 이 장면을 볼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스릴.

‘롤러코스터 같은 걸 좋아한 기억은 없는데…….’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위험한 놀이기구를 타는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스릴과 황홀이 맞물리면 그야말로 머릿속은 진흙탕보다 더한 상황이 된다.

혀가 입 안을 긁고 지나갈 때마다 몸이 오싹거리며 떨려왔고, 내 혀를 이리저리 쳐대다가 뽑을 듯이 강하게 붙잡아 당기면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온 열띤 신음이 민망할 정도로 흘러나왔다.

저번엔 술기운이라도 있었지, 이번엔 정신이 너무 멀쩡해서 문제였다. 머뭇거리던 혀가 이리저리 당겨지고 유린당하는 동안, 목구멍을 타고 삼켜내지 못한 타액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형은 그 타액마저 아까운 듯, 간간이 혀를 미끄러뜨려 핥아먹었다.

몸에 숨 가쁜 열기가 도는 동안에도 내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을 바라보려 했다. 보일 리 없는 문의 방향을 찾고, 질척한 타액이 비벼지는 마찰음 사이로 혹여나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지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

이젠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웃고 있을지 상상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들어찬 건 넋을 놓을 것 같은 황홀한 감각과 긴장 가득한 스릴 뿐이었다. 마치 번화한 대로변의 좁은 길모퉁이에서 몰래 나쁜 짓을 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키스에 잔뜩 취해 헐떡이고 있는데, 나와 똑같이 숨이 흐트러진 형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고개 안 돌려도 돼? 더 할 건데.”

형은 그렇게 묻고서 다시 입을 맞추지 않았다.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그의 숨과 내 숨을 바꿔 마실 뿐.

형에게 완전히 내리눌러진 상태로 키스를 아예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춰버린 인형처럼 가만히 형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취해버렸는데 어떻게 고개를 돌릴 수 있을까.

형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치켜 올라갔다.

“흐읍…!”

또다시 입술이 맞닿고 그 사이로 뜨거운 숨과 말캉한 혀가 오고 갔다. 그때쯤엔 키스 경험이 거의 없는 나조차 얌전히 있지 않았다. 형을 흉내 내듯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그의 입 안으로도 혀끝을 뻗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잡혀서 몇 번을 빨아 당겨진다.

한창 깊은 키스를 나누는데, 형이 갑자기 날 내리누르던 손을 떼고서 몸을 일으킨다. 헐떡이며 의문 섞인 눈으로 올려다보던 나는 갑자기 시야가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단숨에 옮겨졌다.

형은 날 안아서 들어다가 문 옆의 벽에 등을 붙여 세웠다. 다소 급하게 밀어 붙여진 나는 그 상태로 형의 두 팔 안에 갇혀 다시금 키스 당했다.

누워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창 키스에 취해 있을 때는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서 있을 수 있는지 잊기라도 한 것처럼 온 신경이 키스에 쏠려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형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단단한 허벅지를 내 다리 사이에 끼우고 한쪽 팔로 허리를 붙잡아 주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휘청거리며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그런 내 귓가에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등골이 오싹하고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눈을 크게 뜬 채 형을 바라보자, 왜인지 눈가가 가느다랗게 변하며 웃는 것처럼 호선을 그린다.

“…라니까? 그래서 그때 과대가 나한테…….”

“누나가 …라서 그런 거 아녜요? …에이, 설마요.”

주방에 있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하진 않지만,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웅얼거리는 소리 정도로만 들렸던 목소리가 이젠 제법 구분이 된다.

크게 뜬 눈을 덜덜 떨면서 곁눈질로 옆을 확인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틈새 너머로 주방의 불빛이 보였다. 여전히 입술을 내어준 채 가쁜 숨을 헐떡이며 그 틈새에 시선을 집중했다.

시선 끝에서 검은 그림자가 슥 지나가기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지금 보니 그건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싱크대로 이동하는 검은 후드티의 강지석이었다.

입술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딱딱히 굳어서는 눈을 부릅떴다.

“너무 소리 내면 다 들릴지도 몰라.”

형의 낮은 목소리가 악마의 야박한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턱을 붙잡혀 다시 고개가 정면으로 돌아간 나는 형에게 입술을 내어주며 몸을 떨었다. 공포에 가까운 자극이 전신을 연달아 훑었다면, 감각이 곤두선 내 입 안은 형의 기다란 혀가 단 한 곳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핥아주었다. 휘청이는 다리를 가까스로 세운 채 형에게 매달리듯 와이셔츠 앞섶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단정하던 셔츠가 볼품없이 구겨졌지만, 형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날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목구멍 앞까지 혀를 넣어 긁어댔다.

“흐읏, 읍…!”

방심한 사이, 잇새로 참아내지 못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 신음에 내가 놀라서 눈을 굴렸다. 얼마 보이지 않는 틈새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준비 다 됐으니까 슬슬 부르러 갈까?”

“제가 불러올게요.”

들뜬 목소리의 강지석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벽에 완전히 붙어있는 데다가 지건 형에게 가려서 지금의 틈새 정도로는 날 알아볼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열어달라는 듯 벌어진 틈새에 손을 넣고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면…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목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읍, 으읍!”

말이 되지 못한 작은 소리를 흘리며 형의 셔츠를 두어 번 잡아당겼다. 손에도 그다지 힘이 없어서 만족할 만큼 당기진 못했지만 형이 알아들은 것처럼 날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내 입 안을 파고든 혀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으읏! 읍!”

형의 혀를 밀어내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어느새 뒷머리를 받치듯 붙잡혀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형, 준비 다 했어. 와서 먹기만 하면 돼.”

지석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안 돼…!’

이 모습을 강지석이 본다면 나는……. 난……!

형언할 수 없는 공포는 극심한 자극이 되어 내 몸을 울렸다.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버팀목이나 다름없는 형의 허벅지를 필사적으로 꽉 조이며 벌벌 떨었다.

‘오지 마. 안 돼, 강지석…!’

어깨를 움츠리며 경련하듯 바들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강지석의 발소리가 문 앞에 거의 다다랐다.

“혀……!”

“지석아, 이것 좀-! 앗!”

“누나?!”

문으로 다가오던 강지석의 발소리는 민아 누나의 외침을 동반한 둔탁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순식간에 멀어졌다.

“괜찮아요, 누나? 다친 데는요?”

“다치진 않았어. 미안해, 내가 손에 힘이 없어서…….”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이건 무게가 좀 되니까 제가 옮길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자마자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그때쯤엔 집요하게 키스하던 형의 입술도 떨어지고 벽에 몰아세우듯 버팀목이 되어주던 다리도 떨어진 상태라,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형이 내 왼손을 붙잡고 있어 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죽을 듯이 헐떡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 넋을 놓은 채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는데,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가벼운 발소리가 있었다.

“강지건, 우서야, 준비 다 끝났어.”

좁은 틈새가 조금 더 벌어지는 게 보였다. 아까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어차피 키스 도중이 아니니 민아 누나에겐 보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슬슬 나와.”

좀 더 벌어진 틈새로 분명 날 봤을 텐데, 누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벌어진 틈새로 손을 뻗어서 형의 아랫입술에 묻어난 타액을 살짝 훔치듯이 닦아주고 갔을 뿐이다.

상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아 여전히 멍해 있는데, 형이 내 왼손을 들어 약지의 링 자리에 입술을 묻었다.

“지금은 무슨 생각이 들어? 아직도 강지석과 한민아만 생각나?”

형의 질문에 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강지석이 문을 열뻔했던 아까까지만 해도 형이 원망스럽고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저 절정에 다다른 사람처럼 기분 좋은 오싹거림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생각하지 마, 우서야.”

내 앞에 함께 주저앉은 형이 잔뜩 비벼진 내 아랫입술을 혀끝으로 간지럽게 할짝거렸다.

“넌 나만 생각해.”

이젠 형의 저 다정한 눈조차 그가 흉내 내는 강지석의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만큼 난 형에게서 강지석을 찾는 게 아니라, 어느새 그 자체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깊은 키스를 통해 형의 열기가 담긴 눈을 한참이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오는 거 같았다.

‘아무렴 어때.’

내가 키스한 상대는 어차피 강지석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뒤늦게 안 사실은, 이전의 키스와 달리 그에게 강지석을 흉내 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일말의 거부감조차 들지 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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