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키스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기껏해야 포옹 정도를 생각한 내가 오히려 귀여울 정도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꾹 눌렀다.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 않으면 안 돼?”
질문을 던지니 또 되물어왔다. 형의 손이 힘없는 내 손을 대신해 관자놀이를 눌러 준다.
“난 내가 푹 잘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형은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지금은 헤어졌다던 애인이 남자였다는 거로 보아 강지석처럼 성별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닐 테지만, 동생의 친구가 상대인데 껄끄럽지는 않은 걸까. 무엇보다도 본인에게서 동생을 보고 있는 사람과 키스라니,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말없이 생각에 빠진 날 바라보던 형은 손을 떼고서 운전대를 잡았다.
“편하게 생각해. 지석이 상대로 하고 싶었던 거 다 해봐도 좋으니까 뭐든 요구해도 되고.”
형의 말이 그리 쉽게 납득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술기운으로 인해 제멋대로 들썩이기 시작한 감정은 이따금 날 충동적으로 만든다.
“할래요.”
뭔가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눈가에 힘이 들어가고 무릎 위에 차분히 올려 뒀던 두 손이 주먹 쥐어진다.
“키스… 해보고 싶어요.”
사실은 내가 이렇듯 확실하게 얘기하면 형도 놀라거나 곤란해할 줄 알았다. 취한 사람에게 농담 한마디 했을 뿐이라고, 뭘 그렇게 비장하게 여기냐며 고개를 돌리진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형은 비스듬히 있던 내 얼굴을 손으로 붙잡아 자신에게로 돌리고서 벌써 입술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키스해본 적은 있어?”
속삭이는 것처럼 작아진 형의 낮은 목소리가 너무도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서로의 숨결이 닿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내 뒷머리를 살포시 받쳐 당기는 또 하나의 손이 느껴졌다.
“있어요….”
형의 눈꼬리가 조금 못마땅한 듯 꿈틀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형의 부드러운 분위기 사이사이에 몇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 튀어나온 것만 같다.
“언제? 누구와?”
한층 무섭게 낮아진 목소리가 위협하듯 물었다.
“고등학생 때… 저한테 고백했던 남자애…와요.”
그때는 내가 강지석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직후쯤이었다. 내심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다른 남자애가 ‘오래전부터 봐 왔다’는 둥, 내가 너무 좋아서 밤을 새운 날이 많았다는 둥,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빛이 나더라는 둥, 옛 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별의별 유치찬란 말을 다 쏟아내며 고백을 했었다.
남자에게 고백받았다는 것 자체에 당황하기보다도, 어쩌면 내가 강지석이 아니라 남자를 좋아하는 건데 인식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으니 시험을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지만 그때의 난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면 키스해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말을 꺼낸 건 나였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입술이 뭉개지듯 닿고 치아가 부딪히는 통증을 느껴도 굳어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입술 사이로 들어온 게 뭔지 깨달음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들어 그 남자애를 반쯤 죽여 놓을 뻔했다.
내 인생의 키스란 딱 그때 한 번뿐이었다. 첫 키스이자 최악의 키스, 그리고 내가 남자가 아닌 강지석만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 키스였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머뭇거려진다. 강지석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인 형과 키스가 가능하긴 할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형에게 붙잡혀 약간 들어 올려진 턱 라인에 압박감이 찾아왔다.
“그건 좀 아쉽네. 응…, 아쉬워.”
형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고 차가워졌다. 섬뜩한 느낌까지 들려던 찰나, 형의 입술 끝이 내 입술에 닿았다. 순간 그 남자애와의 불쾌했던 경험이 떠올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뒷머리를 받친 형의 손이 워낙 단단해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느낌은 어땠어? 다른 놈들과도 해봤어?”
목소리는 다정해도 기저에 깔린 분위기가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다. 마주한 눈은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음에도 그 안에 품고 있는 검은 눈동자가 나와 상반될 정도로 차갑다는 걸 느꼈다.
“아뇨, 솔직히 느낌도 별…로…….”
“다행이네.”
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 아슬아슬 닿을 듯 말 듯하던 입술이 완전히 눌려 맞닿아버렸다.
“읍…!”
키스를 예상하고 있었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닿아버린 말캉한 입술은 아주 잠깐 첫 키스의 불쾌한 감촉을 가져왔지만 곧 그걸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선명한 부드러움을 체감시켜 주었다. 뒤이어 입술을 비비는 것뿐만 아니라 술 냄새가 밴 따뜻한 혀가 할짝거리는 느낌은 찌릿거리는 전율을 유발했다.
입술 라인을 따라 혀끝으로 그리듯 핥아주던 형은 다시금 입술을 비비다가 그 사이로 파고들려 했다. 긴장된 치아가 틈새를 꽉 막아버린 탓에 애꿎은 치열만 핥아준 형이 내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어 당겼다.
“입 벌려, 우서야.”
형의 낮은 목소리는 가끔 속이 간질거리다 못해 어딘가가 당기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특히나 오늘은 그게 심한 것 같아, 차마 입을 벌리지 못하고 거절하듯 눈가를 떨었다. 그러자 형의 눈매가 좀 더 움직여, 그야말로 강지석이 웃을 때와 똑같은 보기 좋은 라인을 만든다.
“기분 좋을 거니까, 입 벌려.”
지금도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저 간지럽고 조금 아릿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상한 느낌만 느껴지는데 입을 벌린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긴 할까.
의문과 달리 내 입술은 자연스레 벌어졌다. 마주한 눈동자가 강지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녀석과 입술을 맞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강지석과의 키스라면, 그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입술이 벌려지자 안을 파고든 혀가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치아 끝을 긁듯이 파고들어 둔한 내 혀를 휘감고는 마사지하듯 누르거나 잡아당겼다. 그때마다 혀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찌릿거리는 느낌이 찾아와, 원치 않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입 안을 파고든 살덩이는 내 혀를 감아 당기다가 옆의 속살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치아를 훑고 올라간 혀는 입천장을 안쪽에서 바깥으로 두세 번 긁다가 톡톡 노크하듯 두드렸다. 그때마다 입 안의 울림이 머리까지 전달되어, 안 그래도 몽롱한 머릿속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입천장 곳곳을 핥아준 혀끝은 치아 안쪽의 라인을 덧그리는 것처럼 꼼꼼히 누르며 지나갔고, 그러다 내 혓바닥을 긁으며 간지럽히듯 자극하길 반복했다. 어찌할 줄 모르고 둔한 혀를 이리저리 도망치듯 움직이기만 하던 나는 어느새 몸을 전혀 뺄 수 없을 정도로 뒷머리와 허리를 형에게 붙잡힌 채 속박되어 있었다.
“읍, 하…. 형, 잠깐만……!”
“형이 아니라 지석이야.”
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내가 부른 호칭을 정정했다. 타액이 묻어난 아랫입술이 부드럽게 핥아진다.
“넌 강지석과 키스하고 있는 거야.”
형의 말은 내게 묘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가까이 있으니 알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지건 형이라는 걸.
그와 동시에 가까이 있기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담긴 부드러운 눈매와 날 붙잡은 커다란 손이 강지석의 것처럼 느껴져서.
술의 힘일지도 모른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내가 키스하고 있는 상대를 절대 착각할 수가 없었고, 사람이 아무리 닮았어도 그를 대용품으로 삼으면서까지 강지석과의 키스 체험을 할 리 없다.
그래, 술이 웬수다.
그래서 나와 키스 중인 사람이 자꾸 강지석처럼 생각되는 거다.
강지석이었으면… 좋겠다.
긴장해 있던 몸이 나른하게 풀어지고, 어느새 둔하기만 하던 혀가 조금씩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방적이던 살덩이에 혀를 비비며 조금이라도 더 기분 좋은 자극을 받기 위해 입술을 아플 정도로 밀착했다.
과거에 겪었던 불쾌한 키스의 기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새로운 키스의 기분 좋은 감각은 내 입술을 통해 전신에 차곡차곡 채워졌고 뒤이어 머릿속을 눅진하게 망가뜨려 갔다. 들리는 것은 질척거리는 타액 섞인 소리와 내게서 흘러나오는 얕은 신음, 그리고 열기 담은 두 개의 숨소리였다.
술보다 더한 취기를 동반한 진한 키스를 나누는 동안, 나는 강지석을 연기하는 형의 눈동자에서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강지석을 떠올리며 나눈 키스는 굉장히 달콤하고 부드러웠으며, 그와 동시에 나쁜 짓을 벌인 어린아이의 것과 같은 저릿한 긴장을 가져다주었다. 머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말랑해진 내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기나긴 키스가 끝날 때쯤, 가빠진 숨으로 인해 눈앞이 너무 어지럽다 싶더니 형에게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내 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형이 언뜻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미처 그 말을 알아듣기도 전에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그때 기억나는 것은, 형이 흘리던 낮게 깔린 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