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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리-11화 (11/99)

11화

놀란 나와 달리 지건 형은 너무도 태연했다.

“몰라. 일어나 보니까 이쪽 방이더라.”

“또 술 잔뜩 마셨어? 적당히 좀 마시지.”

놀리듯 혀를 찬 지석이 형 뒤에 반쯤 가려진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우서야, 나 밥.”

지석의 태평한 말에 긴장이 탁 풀렸다. 그런 나를 대신해 지건 형이 한소리 한다.

“우서한테 밥 맡겨놨냐? 아침이라고는 챙겨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나도 아침밥 먹을 줄 알거든? 그럼 형은 먹지 마.”

“예약 걸어둔 건 내가 먼저야.”

지석을 눈으로 흘긴 형이 제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의 방문을 향해 눈가를 치켜뜬 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헤실거리며 다가왔다.

“형이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신 건 오랜만인데, 취해서 방을 착각했나 봐.”

“그럴 수도 있지, 뭐.”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척 말하며 지석의 까치집이 된 머리를 손으로 빗겨주었다.

“넌 잠을 대체 어떻게 자기에 머리가 이렇게 돼? 완전 둥지네.”

“꿈에서 너 닮은 강아지가 내 머리 위에 앉는 꿈 꿨는데, 이건 명백히 네 탓……! 아야!”

“개꿈 꿔놓고 개소리를 아주 신랄하게 한다, 그치?”

머리를 빗겨주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겨 버렸다. 별로 아프게 당기지도 않았는데 엄살을 부린다.

그사이, 지석의 어깨너머로 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 나온 지건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곧 욕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셋이서 모여 앉아 아침을 먹은 후, 난 내 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검색창에 ‘링’이라는 한 글자를 치자마자 내가 검색했던 검색어들이 우르르 노출된다.

[링 불면증]

[링 수면]

[링 영향]

[링 해제]

언제나 그랬듯, 그중에서 ‘링 해제’를 검색해 본다. 익숙한 헤드라인과 내용들이 노출되고 대부분 내가 확인했었다는 걸 말해주듯, 진한 파란색 대신 보라색 글자로 바뀌어 있다.

눈으로 내용을 훑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내용을 읽어 봐도 내용은 다 똑같았다.

링이 연결되면 평생 링의 상대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링을 해제하고 싶다면… 상대를 죽이면 된다. 한쪽이 사망하면 그때 맞춰 링 역시 사라지기에.

그래서 그런지 검색한 내용 중 일부에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무서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링을 해제하기 위해 상대를 죽인 사례의 인터넷 기사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소문으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링의 해제에 대해 인터넷을 이 잡듯 뒤져도 같은 내용만 나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방법이 없나?’

지건 형이 불편하거나 싫다기보다, 생각지도 못하게 남과 억지로 얽혀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남들은 운명이네 뭐네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실상 그렇게 이어진 사람들이 다 행복하게 살고 서로를 사랑해 마지않는 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또 공부하냐? 나 헬스장 갔다 온다.]

강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마다 헬스장을 다닌다고 했던가.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현관문에서 도어 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공부 중인 줄 알고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나간 걸 테지만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같은 집에 살게 됐는데 직접 말하고 가지.’

아쉬운 마음에 메시지를 내려다보다가 잘 다녀오라는 답장을 남겼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내려 내 몸을 훑어보았다.

‘나도 같이 헬스장이나 다닐까.’

저번에 강지석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식스팩을 자랑하던 게 떠올랐다. 살이든 근육이든, 둘 다 잘 붙지 않는 체질이긴 했지만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다 보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강지석과 같이 다니는 거라면야…….

순간 운동 중인 강지석을 상상하다가 얼굴에 조금 열이 올라버렸다.

우웅-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놀라 머릿속의 강지석이 단숨에 지워졌다. 놀란 가슴을 쓸며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이번엔 지건 형이다.

[공부해?]

형제끼리 참 똑같다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

[아뇨.]

[그럼 10초 뒤에 문 좀 열어봐.]

형의 메시지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두 잔의 머그잔을 들고 문으로 다가오는 지건 형이 보였다. 정장 대신 편한 라운드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한 잔 받아.”

술잔을 건네는 것처럼 따끈한 아메리카노가 든 머그잔을 건넨 지건 형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지석이 없을 때 잠깐 얘기 좀 할까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얘기부터 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감상하듯 안을 둘러보던 지건 형의 눈에 내 노트북이 잡혔다. 뒤늦게 형의 시선이 노트북, 그것도 ‘링 해제’를 검색해 보고 있던 화면에 닿아있다는 걸 알아채고서 급히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다 들킨 느낌이 드는 건지 의아했다. 형도 링의 해제에 대해 검색해봤을 테고, 그렇다면 상대가 죽어야 해제된다는 내용 또한 봤을 텐데 왜 나 혼자 음습한 내용을 본 것 같지.

어쩌면 형이 링에 대해 한 번도 깊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도 링을 숨기고 형을 피했기 때문에 먼저 선뜻 뭔가를 얘기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링이 발현하자마자 찾아가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이라도 동동 굴러볼걸.

서로의 링을 확인한 후로는 만나더라도 금세 잠들기 바빴다. 서로 그동안 잠을 자지 못한 여파로 손을 잡자마자 거의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깨어나면 이미 새벽이라서 각자 갈 길 가기 바빴다. 링으로 연결된 사람 중에서도 이런 형태로 사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하니, 우리 역시 당장은 그런 방향으로 지내겠거니 했을 뿐이다.

노트북에서 눈을 뗀 지건 형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괜찮아. 나도 수없이 검색해 본 거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에게 일어난 일이니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하물며 친동생의 친구와 이어진 거니, 껄끄러워서라도 해제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었을 거다.

“너도 알겠지만, 링을 해제하는 방법 같은 건 없어.”

형의 입을 통해 들으니 뭔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같은 검색어를 아무리 찾아봐도 결국 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걸 납득하지 못한 채 오늘도 기계처럼 검색해봤지만, 형 말처럼 링을 해제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이제야 좀 더 실감이 난다.

지건 형과 같은 왼손 약지의 붉은 띠가 오늘따라 더 선명하게 보였다.

복잡한 마음에 말없이 깊은숨을 내쉬고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링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찬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니, 그 뜨끈한 쌉싸름함이 속을 태우듯 채워간다.

책상 쪽의 의자를 끌고 와 내 앞에 내려놓은 형이 너무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주 보며 앉았다. 벌려진 내 다리 사이에 형의 탄탄한 허벅지가 닿을락 말락 들어와 있다.

“링의 영향을 무시하고 살기엔 우리가 죽을 것 같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지 않겠어?”

형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버텨보자고 생각했다가 사람이 잠을 아예 못 자게 된다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 건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형과의 수면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손을 잡고 누워 있으면 그토록 원하던 잠이 기분 좋은 이슬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그 감각이란 그야말로 황홀함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았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차라리 나쁜 것만 가득하면 절망하기라도 할 텐데, 같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극상의 수면을 체험할 수 있게 되니 자꾸만 이걸 어떻게든 해제하고 싶다는 마음이 물러진다. 그래도 결국 없앨 수 있다면 꼭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찾아오지만, 아무리 알아봐도 해제할 방법이 없으니 점점 단념하게 된다.

애초에 난 강지석을 좋아하기 전이든 후이든, 다른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는 미래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일찍이 부부라는 틀만 유지한 채 일하기 바쁜 부모님의 영향 때문일지도.

똑같은 가치관까진 아니더라도 지건 형 역시 나와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 거다. 지금이야 급한 대로 이 집에 데려다 놓은 거겠지만.

머리를 쉼 없이 굴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데, 형이 불쑥 말로 끼어든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당장은 이렇게 같이 사는 게 최선인 것 같은데, 이후로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속에 뭔가가 얹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애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맞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려 하니, 형이 먼저 이어서 말을 꺼냈다.

“지석이를 좋아하는 중이니 당연히 없을 거고.”

“예, 그거야 그렇…지만…….”

대답하다가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알고… 계셨어요?”

형에겐 말한 적 없었는데. 아니, 애초에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던 형의 눈가가 지석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부드럽게 휘어졌다.

“알지. 그렇게나 티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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