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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리-10화 (10/99)

10화

순수하게 누워서 잠을 자자는 얘기일 텐데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이건 다 형의 목소리가 유혹하는 것처럼 야릇한 탓이다.

묵직한 무게감에 짓눌려 뒤로 두어 발자국 밀려나다가 침대에 털썩 앉았다. 눕지 않도록 허리에 힘을 가득 주면서 형을 어렵사리 밀어냈다.

“형, 잠깐…. 무거워요.”

끙끙대다가 아예 형을 붙잡아 몸을 홱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꿈쩍도 안 했을 사람이 침대에 털썩 누웠다. 형이 내 허리를 감은 채 놓지 않은 탓에 나도 같이 몸이 쏠렸다. 형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숨을 고르다가 올가미 같은 팔을 겨우겨우 벗어났다.

침대에 걸쳐져 누운 상태인 형의 다리를 들어 침대에 올리고서 틀어진 몸을 밀고 당겨서 바르게 눕혔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거칠어진다.

지건 형은 누운 채로 가만히 내가 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가까스로 형의 정장 재킷을 벗기고서 답답해 보이는 넥타이와 셔츠 단추를 풀어주고 있었다. 형의 팔이 또다시 내 허리를 감았다.

“자자….”

“알았으니까 주무세요. 지금 접촉해 있잖아요.”

신체접촉이라면 어디도 상관없다고 들었으니, 지금처럼 허리에 팔을 댄 상태로도 잘 수 있을 거다.

말이 없기에 잠들었나 보다 하고 두 번째 단추까지 풀어주고서 고개를 드는데, 마침 날 내려다보고 있던 형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 있던 눈꼬리가 보기 좋은 곡선을 만든다. 그러더니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솔직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스킨십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낯설었다. 언제나 일하기 바쁜 부모님은 아무리 성적을 좋게 받아와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는커녕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기분 좋다. 처음엔 낯설기도 하고 어린애 취급을 하는 건가 싶었고 상대가 날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 강지석을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그의 손길이 건네준 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석을 떠올리며 형제는 참 닮았다고 생각하던 중에 지건 형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게 보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흘러내려 귀를 건드리며 지나갔다. 움찔하는 사이에 바닥으로 떨어질 뻔해서 나도 모르게 그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그새 잠들어버린 지건 형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보고 나니 왜인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졸음.

침대는 이미 지건 형이 점령 중이다. 조금 밀어내면 옆에 끼어서 잘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좀… 그렇다. 손을 잡고 기대어 자는 것과는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다.

이전에 지건 형과 테스트해 본 거기도 한데, 신체접촉을 하지 않은 채 10분여가 지나면 금세 눈을 뜨게 된다. 술에 취해 있다고 해도 아마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고민 끝에 침대 아래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침대의 매트 옆면에 등을 딱 붙이고 앉아 지건 형의 늘어진 손을 내 볼에 대었다. 힘이 없긴 하지만 고개를 살짝 기울여 기대니 마치 형의 손이 내 볼 한쪽을 뒤에서 감싸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일단은 이것도 접촉은 접촉이니 잘 수 있지 않을까. 손을 잡으나 볼을 잡으나…….

역시나 곧 잠이 쏟아졌다.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잠의 유혹이 전신의 피로감을 마비시키고 눈꺼풀에 무게를 실었다.

* * *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은 채 정신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느껴지는 건 숙면이 주는 상쾌함과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평소에 지건 형과 만나 최소 숙면만 하며 지냈을 때보다 훨씬 더 개운한 느낌이 들어, 이대로 더 오래오래 자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알람도 안 맞추고 잤었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과 잘 때마다 알람을 맞추고 잤었는데, 안 그랬다가는 단잠에 완전히 취해서 정신도 못 차리고 오래도록 자버릴 것 같아서였다.

알람도 없이 오래 자버린 것도 그렇지만 앉아서 잠들었던 걸 깨닫고서 눈을 뜨는데, 시야가 옆으로 누워있다. 흐릿한 시야를 확실히 하기 위해 눈을 몇 번 깜빡여 보니 그제야 내가 누워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 베개까지 베고 있다.

‘침대에 올라온 기억이 없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베개뿐만 아니라 이불까지 덮고 있다. 시선을 더 내리다 보니 누군가의 팔이 허리를 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일어났어?”

뒤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보이는 건 내 쪽으로 몸을 돌린 채 팔꿈치까지 세워 손으로 옆머리를 괴고 있는 강지석이었다.

“강지석, 네가 왜…….”

“지석이가 아니라 형이야. 잠 깨.”

그제야 상대가 강지석이 아닌 지건 형이라는 걸 깨달았다. 둘이 얼굴이 워낙 닮은 데다가 평소에 반쯤 올리고 있던 앞머리가 강지석처럼 차분히 내려와 있는 탓에 착각할 만도 했다.

형이라는 걸 알자마자 벌떡 일어나려는데, 형이 예상이라도 한 듯 내 허리를 두르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도로 눕혀버렸다. 당황한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형이 빙글거리며 즐기듯 내려다본다.

형이 왜 내 침대에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전날의 일이 떠올랐다. 형을 내 침대에 재운 건 분명 내가 맞긴 한데, 왜 나까지 올라와서 같이 자고 있는지 모르겠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던 형이 내 머릿속의 의문에 알아서 답을 해주었다.

“너무 힘들게 자길래 내가 올렸어. 침대 놔두고 뭐해.”

“그러게요….”

형이 자다 깨서 날 올려놔 준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눈도 또렷하고 목소리가 잠겨있지도 않은 거로 보아, 잠에서 깬 지 좀 됐는데 나 때문에 허리에 손을 둘러준 채 가만히 있어 줬나 보다. 의도치 않게 침대에서 백 허그를 당하듯이 자게 된 상황이라서 형이 신경 써준 것에 고맙다기보다는 어색함이 먼저 들었다.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어제 술 많이 드신 것 같던데.”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마셔대도 잠을 못 자겠더라.”

팔을 치우고 나란히 침대에 앉은 형이 버릇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그 정도로 마시고 들어오는 일 없을 거야. 첫날부터 미안하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죠. 이해해요.”

“보기보다 늙은이 같구나, 너.”

“강지석도 가끔 그런 소리 하더라고요.”

피식 웃은 형이 침대에서 내려섰다. 잠결에 잔뜩 구겨진 셔츠를 내려다보던 형이 내가 벗겨둔 옷가지를 들고 문으로 향하다가 돌아선다.

“이따 점심 뭐 먹고 싶어? 배달시켜줄게.”

“왜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에요?”

“아침 챙겨서 먹어 본 적도 없고 배달은 점심 무렵부터나 되니까.”

“됐어요, 무슨 배달이야. 제가 요리하기로 했잖아요. 어제 강지석이랑 같이 장 봐뒀어요.”

당장 끓일 수 있는 것 중에 해장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드는데 시간이 오전 7시를 갓 넘긴 상태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링이 생긴 이후로 형과 잠들 때마다 느끼는 게 있는데, 신체접촉 상태에서는 잠든 시간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꿈도 안 꾸고 잠든다든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게 잤는데 오래 푹 잔 것처럼 개운하다든지.

시간상으로는 5시간 정도 잔 거였는데 머리가 맑고 개운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손만 잡고 잤을 때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씻고 나오시면 해장할 만한 거나 끓여드릴게요.”

형이 돌아보며 눈을 깜빡거린다. 질문 대신 눈빛을 보내는 그를 보며 저런 점도 강지석과 판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장하셔야죠. 토요일인데 설마 출근하시는 건 아니죠?”

“직접 만들어 주려고?”

고개를 끄덕이니 형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온다. 그가 가까이 오라는 것처럼 손을 까딱이기에 다가가니, 큼직한 손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다.

“뭐 해줄 건데?”

“콩나물국 맛있게 끓일 줄 알아요.”

“즉석밥 위치는 알아? 지석이가 알려줬나.”

“위치는 아는데 어제 쌀 사다가 밥 해뒀어요. 즉석밥보단 나을 거예요.”

머리를 쓰다듬는 손의 강도가 조금 더 세졌다. 다른 사람이 이러면 슬슬 기분이 나쁠 텐데, 형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다.

“씻고 나올 테니까 어디 실력 좀 보자. 지석이가 칭찬하던 게 진짠지.”

“먹고 더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해장용으로 딱 1인분만 끓일 거니까.”

“혼자 먹으라고? 외로운데.”

미간을 살짝 모으며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담는 지건 형이 너무도 어색했다. 누가 봐도 강지석 따라 하기인 걸 알겠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빨리 씻으러 가기나 하세요. 술 냄새 진동하거든요?”

지건 형의 넓은 등을 두 손으로 밀며 문 쪽으로 향했다. 얼굴을 부드럽게 푼 형이 금방 씻고 나오겠다며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형이 활짝 열린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마침 자기 방에서 걸어 나와 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대고 있던 강지석과 마주쳤다. 아직 졸린 듯 눈을 비비는 그를 보며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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