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 강지건
동생들을 딱히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3살 아래의 여동생도 있고 7살 아래의 남동생도 있지만 생긴 것도 그렇고 성격 자체도 둘 다 애교와는 거리가 먼 녀석들이었다. 가끔 용돈을 핑계로 이런저런 귀여운 척을 할 때면 징그러워서 얼굴만 구겨질 뿐이었다.
살면서 사람을 귀엽다고 느껴본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아보라면 글쎄, 한 서너 손가락 정도는 접히려나. 동물까지 포함해 보라고 하면 당연히 그 이상이 될 테지만, 사람이 내 눈에 귀여워 보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라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희귀한 ‘귀여운 사람’ 목록에 들어있는 누군가와 링으로 이어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 * *
남동생 강지석에게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만나온 절친이 있다. 부모님이 일 때문에 해외에 계시다 보니 내가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예전부터 지석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주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중심엔 꼭 특정 친구가 있었다. 신난 얼굴로 열렬히 쏟아 내는 얘기만 들어도 둘이서 얼마나 잘 맞는 친한 친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껴있긴 해도 언제나 식사를 함께하고 매시간 질리지도 않고 찰싹 붙어 다닌다고 한다. 놀러 갈 때도 함께이고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도 옆자리엔 언제나 상대가 있다. 뭔가가 필요하면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먼저 알아채 주고, 대화를 하면 서로 쿵짝이 잘 맞아서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 있단다.
“부부냐?”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질문이었다. 이에 고딩 강지석이 발끈하지도 않고 ‘다들 자주 그렇게 물어봐’라고 시시덕거렸고, 그 친구처럼 마음 잘 맞는 여자가 있다면 벌써 고백했을 거라고 반쯤 농담 삼아 말했다.
링이라는 게 퍼졌을 때쯤 한국도 다른 세계들처럼 동성혼을 합헌으로 결정 내릴 만큼 인식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동성연애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뭐든 사람마다 좋고 싫음이 있는 것처럼 강지석 또한 연애 취향이 확고할 뿐. 물론 취향을 떠나서 친구를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을 녀석인 것쯤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친구에 관한 얘기만 들었을 땐 막연히 좋은 놈인 줄 알았다. 아니, 듣다 보면 가끔 호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에 찌든 내가 봤을 때, 강지석만 해도 사회생활 전에 교육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른 녀석이었다. 남이 부탁하면 거절도 못 하고, 이용당해도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바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듣다 보면 그 친구도 만만치 않았다. 강지석이 곤란해할 만한 일은 죄다 그 친구가 끼어들어 도와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과도할 만큼의 배려를 해준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이런 곳에 쓰이나 싶을 정도다.
그랬기에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일절 간섭하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겨대는 여동생 강지연과 달리, 남동생이자 막내인 강지석은 하도 자기 얘기를 줄줄 읊어대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하물며 그 이야기 안에 특정 인물이 항상 껴있다면 궁금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언제 한 번 집으로 데려와 봐’라는, 마치 사귀는 사람 있으면 봐줄 테니 데려와 보라는 듯한 말을 해버렸다.
얼마나 호구같이 생겼나 했더니.
‘생긴 건 귀엽네.’
지석이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했던 생각이었다.
둘이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벤치에 앉아서 지석이 그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무릎 위에 문제집으로 보이는 책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부나 숙제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장난스러운 지석과 달리 그는 얌전한 모범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석과 어울리고 다니는 친구이니 덩치가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다부진 동생에 비해 그는 다소 뼈대가 얇은 마른 체형이었다. 앉아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적당히 보기 좋은 비율의 키에 작고 하얀 얼굴을 가진 순한 이미지였다.
밝고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지석과 달리 그 친구는 얌전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가와 생기가 도는 입술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카메라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따뜻한 미소가 참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휴대폰의 셀프카메라 모드로 찍은 거라서 그 너머에 누가 있을 리는 없었지만.
“얘 이름이 뭐라고?”
액정 화면을 채운 친구를 향해 턱을 까딱이며 묻자 지석이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신우서.
처음 듣자마자 곧바로 이름을 외워버렸다.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산을 놓고 갔다는 지석의 울음 섞인 메시지를 받았다. 모처럼 일찍 귀가했더니만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불러대는 통에 다시금 차를 몰고 나가야 했다.
익숙한 고등학교 정문 앞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지석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가 더 도착했다.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준대. 안 와도 돼, 형.]
기껏 학교까지 데리러 왔더니만.
차를 몰면서 메시지를 보내기란 꽤 귀찮은 것이어서, 학교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전화를 걸었다.
“죽고 싶지, 강지석.”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나자마자 낮게 으르렁대니 지석이 벌써 왔냐며 멋쩍어했다.
“이미 정문이니까 빨리 튀어와서 타.”
-네, 형님!
일부러 각 잡힌 대답을 하더니 누군가와 뭐라 대화하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그게 신우서라는 친구라는 건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조금 지나니 지석과 우서가 정문을 통해 걸어 나왔다. 우서의 것으로 보이는 회색 우산을 함께 쓰고 있었는데, 남자 둘이서 쓰기엔 확실히 좁아 보였다. 그런데도 우산 바깥쪽에 있는 지석의 팔은 그다지 젖지 않았다. 반면 손잡이를 잡고 있는 우서는 그의 바깥쪽 팔이 송두리째 젖어버렸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교묘하게 어깨를 틀고 있어서 지석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차로 다가온 지석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우서는 그가 젖지 않게끔 끝까지 우산을 기울여주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미소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그때의 나는 이때껏 지석의 다른 친구들에겐 하지 않았던 말을 선뜻 내뱉었다.
“친구도 데려다줄 테니까 타라고 해.”
우서 쪽을 힐끔거리며 말하자, 지석이 환하게 웃으며 냉큼 문을 열었다. 하지만 우서는 제집과 방향이 반대라는 말만 고집하며 끝내 올라타지 않고 문을 닫았다. 조수석 쪽의 선팅된 창문 너머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는 우서를 뒤로한 채 그대로 차를 몰았다.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우서는 어딘가 이상했다. 비에 가려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이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친구끼리, 그것도 남자애들 사이인데 빗속에서 친구가 멀어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게 흔한가?
‘그럴 수도 있지.’
그땐 딱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느낌이 괜찮은 남동생의 친구라고만 여겼을 뿐.
이후로 신우서는 지석을 따라 우리 집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 그때쯤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창업 준비 중이던 터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동생과 달리 어른스럽고 얌전한 녀석이라 꽤 마음에 들었었다. 이따금 보기 좋게 웃을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딱히 벽이랄 것도 없이 친동생과 친형처럼 서로 가깝게 지냈다.
지석과 우서가 고3이 된 후로는 그들이 가려는 대학의 졸업생인 내가 과외선생이 되어 주었다. 거긴 꽤 커트라인이 높다 보니 우서는 괜찮았지만 지석이 문제였다. 어차피 창업 준비를 하는 동안 주로 집에 있곤 해서 흔쾌히 두 사람의 공부를 봐주기로 했는데, 우서는 아무리 거절해도 한사코 과외비를 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그동안은 우서에게 형이라는 호칭보다도 선생님이라고 더 많이 불렸던 것 같다.
과외를 해주는 동안 금세 가까워진 우리는 공부가 끝나면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영화를 보기도 하고, 컴퓨터와 노트북을 이용해서 셋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내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살펴보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고. 우서가 가족과 쇼핑을 가본 적이 까마득하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다 같이 백화점을 찾아가 한참 동안 돌아다녔던 때도 있었다.
사실 뭘 하든 나쁘지 않았다. 창업의 압박 때문에 그냥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해오던 그땐 그게 답답한 마음을 환기하는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우서는 제법 눈치도 있어서 그런지 어린애와 어울린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다.
신우서는 곁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행동하고 일정 선은 지키되 가끔은 사람이 놀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마음을 꿰뚫어 보듯 보기 좋은 미소를 걸었다. 티 나지 않게 남을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남동생 강지석에게 너무 과분한 친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막내의 쓸만한 친구. 똑똑한 학생. 눈치 좋은 어린애.
매일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자주 봐왔던 친동생 같은 신우서는 딱 그 정도였다.
아니, 그 정도였어야 했다.
그동안 쌓인 내 생각과 마음은 전혀 별개였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