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175)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를 몸소 체험중임?

-그 시발 ㅋㅋ 들어가지 말라는 맵 들어간 것 같이 생겼네요

-어차피 사람도 없으면 걍 인벤토리에 기름 챙겨와서 방화 ㄱ?

-토목공사에 이어 방화범까지 테크를 타는 건가

-빛나는 활약이 아니라 불타는 활약임?

한세아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레이스의 옆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한세아 또한 방송을 하며 다양한 게임을 접해 보았기 때문에, 이 빽빽한 밀림을 우격다짐으로 헤쳐나가는 게 맞나 의문이 생기겠지.

하지만, 온갖 의문이 들어도 통로를 뚫고 들어와 안전지대였던 곳까지 와버린 상황. 인제 와서 다시 내려가기엔 시간도 아깝고 한세아의 방송 적인 면에서도 안 좋겠지.

어째 점점 한세아의 방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지만 이건 어쩔 수 없지. 만의 하나의 확률이라도 그녀가 게임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벌어져선 안 되니까. 1위 방송이자 유명인으로서 등 따시고 배부른, 평온한 삶 속에서 게임을 끝까지 클리어해 줬으면 한다.

1% 이하의 확률을 가지고 개혜잔데~ 이러고 노는 건 게임일 때의 이야기지, 내 목숨과 인생을 건다면 1%가 아니라 소수점 몇 자리의 확률조차 용납하고 싶지 않으니까.

 “후우… 이래서야 끝이 없겠네. …어쩔 수 없지.”

 “왜 그래, 롤랑? 어쩌려구?”

 “너희들은 잠시 아래층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후퇴 선언에 일행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주변이 잿빛 나무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시도조차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물론 시도도 하지 않고 내빼겠다는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반대지.

어떻게든 결과를 뽑아내야 할 땐 단순무식한 방법이 최고고, 그 단순무식한 방법을 실행하는 건 내 주특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저기, 이 퀘스트를 이렇게 깨는 게 맞을까?”

-이제와서?

-이를 악물고 폭탄을 안만들더니 이유가 있었네

-6성 오우너의 품격은 다르다

-아니 저게 어떻게 첫 가챠 동료냐고 ㅋㅋㅋㅋ

-나도 지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긴 해

방송 창 너머로, 한세아가 질렸다는 듯 작게 중얼거린다. 통로 근처에 텐트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은 나를 걱정하는지 안색이 조금 어두운데, 한세아는 다른 의미로 안색이 좋지 못했다.

그야 내가 방송을 통해 한세아를 바라보듯, 한세아 또한 카메라를 통해 나를 보고 있으니까.

 ‘…어우, 시발. 앞이 안 보이네.’

일행들을 34층으로 내려보낸 뒤 주저 없이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미동도 없다가 무슨 동면에서 깨어난 좀비처럼 와르르 내게 몰려든 회백색 덩굴. 성역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몸소 느끼게 하려는 듯 온 세상이 덩굴에 휘감겼다.

물이 아니라 식물로 가득 채운 풀장에 들어온 기분이라 해야 할까, 우거진 관목 속에 실수로 대가리를 처박은 기분이라 해야 할까.

신성력으로 강화된 육체, 마나로 강화된 철퇴, 몰려드는 무수히 많은 적. 그 이후로 할 일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반복 행위. 어차피 앞이 보이지도 않으니 이를 악물고 주변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쾅-

콰앙-

마나를 머금은 철퇴가 허공을 두드리자 그 여파만으로 수백의 덩굴이 바스러지며 날아간다. 그런데도 내 육체의 신성력을 노리고 다가오는 덩굴은 아직도 무한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무한하지는 않겠지.

 “아니, 그… 고생은 롤랑이 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말 하면 진짜 나쁜 년 같은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명언이 있는데 사실 돌아가는 게 올바른 공략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홀로그램 창이 나와 함께한다는 것. 덩굴이 나를 완벽히 파묻어 버린 탓에 빛도 한 점 들어오지 않을 수준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덕에 한세아의 카메라도 저 위에서 꾸물거리는 덩굴만 촬영하고 있으니 마음껏 인터넷을 봐도 들키진 않겠네.

학창 시절 단풍잎 게임 사냥 노가다를 하기 위해 인터넷 방송을 켜 놓았던 기억을 되살려 홀로그램 창으로 눈 여겨뒀던 예능 프로를 재생시켰다. 오직 신성력만 빨아 먹고 증식하는 놈들이라면, 증식 속도보다 내가 때려 부수는 속도가 더 빠르겠지 뭐.

아무래도 후퇴를 하는 게 맞았나 봐. 후회하는 마음이 잠시 고개를 치켜들 정도로 기나긴 노가다.

 “……저, 롤랑? 괜찮아?”

 “아아, 걱정하지 마. 멀쩡해.”

예능 프로를 하나 보고, 한세아의 방송을 잠시 보았다가, 웹 예능 드라마 요약본을 보고, 인디 공포 게임과 똥겜 공략 방송을 보고― 그렇게 무아지경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넋 놓고 박살 낸 덩굴들.

끝없이 몰려오는 덩굴들이 슬슬 수가 줄어 시야가 트이기 시작할 즈음, 나는 알고리즘에 의해 중국군이 제7기동군단에 인해전술을 전개하면 벌어지는 군사 동영상까지 감상할 뻔했다.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냐면 한세아가 질린 표정으로 방송을 종료할 정도.

 “그, 롤랑?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음?”

 “이렇게까지, 음, 전부 박살 낸 이유가 뭐야?”

그 참혹한 파괴의 현장에 올라온 그레이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확실히 누가 봐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짓이기는 했어. 나조차도 우주의 신비나 심해의 공포 따위의 영상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후회를 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무식한 방법을 선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이린? 지난번처럼 신성력을 공중으로 띄워 올려줘.”

 “괜찮겠어요?”

내 말에 머뭇거리면서도 믿는다는 듯 신성력을 한가득 모아 위로 띄워 올리는 아이린. 새하얀 빛 덩어리가 몽실 떠오르는 모습에 일행들이 움찔거리며 무기에 손을 올린다.

 “반응하는 놈들이 주변에 전혀 없지?”

 “네, 그렇죠?”

 “이러면 추적이 가능하겠지. 다시 안전지대 쪽으로 돌아가서 신성력을 미끼 삼아 남아 있는 놈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살펴보자고.”

 “아…!”

그러나 긴장한 모습이 무색하리만치 주변은 고요했다. 그야 내가 사방팔방 무기를 휘둘러 지면을 다 뒤집어 엎어놨으니까.

뱀처럼 달려들던 덩굴들은 잿가루가 되어 흙먼지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덩굴을 칭칭 휘감고 있어야 할 잿빛 나무들도 내 난동질의 여파만으로 전부 뿌리가 뽑히고 박살이 난 채 흙바닥을 뒹굴고 있는 상황.

내 딴에는 힘 조절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넓은 범위가 휩쓸린 걸 보면, 이름 없는 신의 축복이 생각보다 강한 것 같네. 하긴, 그러니까 땅을 내리찍었다고 내가 하늘로 부웅 날아가 버렸겠지.

 “와, 세상에. 나무에 덩굴이 하나도 없어. 여기에 있던 덩굴들도 통로 근처에 있던 롤랑한테 기어 온 모양인데.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놈들이 식물이 맞아? 뱀이 아니라?”

그렇게 덩굴은 없고 나무만 남게 된 35층의 탐색을 시작했다. 철퇴를 휘두르는 동안 하루가 지났는지 아이린과 그레이스가 쉬었다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나를 걱정했지만… 쉬었다 갈 거였으면 이런 무식한 짓을 안 하고 그냥 마탑에 방문했지.

몸이 연약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지만, 다음부터는 머리를 조금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직 잿빛 나무만 가득한 35층의 살풍경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마치 몬스터가 생성되지 않은, 만들다 만 게임 맵처럼 느껴졌거든. 독 웅덩이, 진흙 늪, 잿빛 나무 이외에는 그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장소.

그런 황량한 땅을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시발, 진짜 지금 오는 게 아니었나?’

내가 생각해도 좀 무식한 게 아니었나, 하는.

수학적으로 머리가 빠릿빠릿 돌아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백 그루를 넘어 밀림을 이루는 나무 모두에 덩굴이 휘감겨 있었다면 대체 얼마나 많았는지는 대략 짐작이 되거든. 그리고 그걸 일일이 때려 부순다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도.

그래도 마탑의 연구 결과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결과물이 도출되었으니 상관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앞으로 나선 아이린의 곁으로 나아갔다. 이 정도로 황량하게 때려 부쉈으니 반응하는 덩굴이 있다면 그레이스가 먼저 알아차리겠지.

 “어때, 그레이스. 느껴지는 게 있어?”

 “아직은, 딱히. 놈들이 가만히 있을 땐 식물이라 그런지 기척이 하나도 안 느껴지거든. 그래서 그런지 시야 바깥에 덩굴이 잠들어 있는 건지, 아니면 다 박살 나서 없는 것인지는 좀 헷갈리네.”

 “그래? …그러면 눈으로 대충 봤을 때 좀 더 나무가 많아 보이는 쪽으로 움직일까.”

 “그러자. 덩굴이랑 저 기분 나쁜 나무랑 같이 늘어나는 것 같으니까. 무슨 둥지도 아니고.”

하도 오래 때려 부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띄워 올린 신성력이 내 육체를 강화한 신성력보다 양이 적어서 그런지 딱히 몰려올 기색이 없는 덩굴들. 때문에 우리는 나무가 딱 봐도 빽빽하게 나 있는 곳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안전지대를 기준 삼아 어느 한쪽이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촘촘하게 자라 있었거든. 이 회백색 덩굴이라는 놈은 무조건 잿빛 나무에 휘감겨 있었으니 나무가 많은 곳으로 가는 게 맞겠지.

이러면 내가 다시 앞장서야겠는데.

 “그나저나 롤랑,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꼬박 반나절 동안 마나를 사용해서 전부 때려 부순 건데 휴식을 취하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레이스. 그래도 마나는 잔뜩 남아 있고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알아. 예전에 대형종을 잡을 땐 사흘 밤낮으로 싸운 적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마나를 밖으로 뿜어내는 상급의 경지에 이르면 그 정도는 가능하거든.”

쿵쿵, 덩굴이 없다 해도 나무를 부수고 나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 마나를 담은 철퇴로 적당히 길을 열자 걱정이 되는지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꺼내는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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