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175)

 “언데드가 된 식물 몬스터라니. 아니, 뿌리가 있고 신성력을 먹으면 언데드는 아닌가?”

 “그러게요. 마탑의 형제님들에게 표본을 건네주었으니 뭔가 알아낼 수 있겠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35층으로 되돌아가서 위험에 빠져 있을 사람들을 돕고 싶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라 얌전히 텐트를 차지하고 정비를 시작하는 아이린. 어두운 안색의 그녀 곁으로 일행들이 모여들어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처음으로 만난 식물형 몬스터. 이쪽 세상의 몬스터 대부분은 동물을 조금 악랄하게 비틀어 둔 놈들이 대부분인지라 궁금한 것도 많아 보인다. 하긴, 나도 식물형 몬스터는 그렇게 많이 보질 못했을 정도니까.

…달래 주겠다고 몬스터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가만히 있다가 안 좋은 생각을 곱씹으며 점점 우울해지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롤랑? 식물형 몬스터들의 특징 같은 게 있어?”

 “특징이야 있지. 하지만 놈들은 식물형 몬스터라기 보단 언데드에 더 가까운 것 같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카메라와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와 질문을 던지는 한세아. 그런 그녀의 뒤에서 내게 시선을 보내는 일행들을 보니 마치 인터뷰를 하려는 모습 같네.

공략 1위의 방송답게 상급 모험가가 알려주는 몬스터 상식 따위를 기대한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35층의 몬스터들은 상식을 벗어난 놈들. 애초에 신성력만 빨아먹는 몬스터라니 마탑의 마법사들도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을걸.

식물형 몬스터라 하면 의태를 통해 가만히 숨어있다가 방심한 동물을 낚아채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저렇게 신성력을 느끼면 좀비 떼처럼 달려들지 않으니까.

 “식물형 몬스터들은 대부분 왕국의 최남단 쪽에서 발견되거든. 울창한 밀림에서 식물인 척 의태하고 가만히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동물을 낚아채서 사냥하지. 35층의 저것들처럼 군집 생활을 하는 놈들은 있어도 능동적으로 달려드는 놈들은 없어.”

 “그래? 으음… 역시 놈들이랑은 맞부딪쳐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려나.”

-으뜨케든 날로 먹으려고 ㅋㅋㅋ

-그야 니가 1위인데 몸으로 알아내야지

-근데 머 신성력만 안쓰면 반응도 없는데 잣밥들 아님?

-걍 존나 많은게 컨셉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트롤폭탄 어디감? 폭탄으로 날려버리면 될거같은데

기대감 가득했던 눈동자가 실망감으로 물들었지만 어쩌겠는가? 한세아가 1위 방송만 아니었어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는 척이라도 해 줄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1위로서 최초 목격을 한 상황인데.

그래도 놈들의 개별 전투력은 미약하다는 점과 신성력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일행들. 그 눈에 뻔히 보이는 노력에 결국 아이린이 작게 키득거리기 시작한다.

 “네에, 다들 고마워요. 저녁에는 스튜를 끓일 생각이니까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자는 게 좋겠어요.”

 “지금 인벤토리에서 재료를 꺼낼게요, 언니.”

그렇게 평소보다 재료가 더 들어가 걸쭉해진 스튜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곧바로 텐트에 몸을 뉘어 맞이한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미리 수프를 끓여둔 아이린 덕에 한세아가 재접속을 하자마자 배를 간단히 채우고 35층을 향해 떠났다.

멀찍이서 다가오는 트롤을 화살 한 발로 폭발시켜버린 뒤, 늪지에서 기어 올라오는 리저드맨 스켈레톤을 처리하고 마주하게 된 35층의 통로. 그 앞에는 대략 열 명 남짓한 모험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이건?”

 “이것 참, 불길하게 생겼군.”

35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회백색 덩굴이 휘감고 있었으니까.

통로는 기본적으로 허허벌판에 혼자 세워져 있는 석제 문틀 모양이다. 그런데 통로의 일렁이는 마력 안에서부터 자라난 회백색 덩굴이 문틀을 칭칭 휘감고 주변으로 조금씩 뻗어져 나오고 있으니 누가 봐도 통로 너머가 걱정될 수밖에.

무턱대고 넘어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다들 망설이고 있는 건가. 하기야 저기 서 있는 모든 모험가가 같은 파티일 리 없으니, 목숨 걸고 남 좋은 일 시켜주고 싶지는 않겠지.

 “어떻게 할까, 롤랑?”

 “이번에도 5분… 아니, 혹시 모르니까 10분 뒤에 넘어와. 아이린이 보호의 성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쉴드 마법 사용할 생각으로.”

 “알겠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일행들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는 모험가들을 뒤로한 채, 나는 통로에 몸을 맡겼다. 통로의 틀이 기분 나쁜 것들로 휘감겨 있을 뿐이지 가운데는 여전히 뻥 뚫려 있었기에 방해받는 일 따위 없이.

한세아가 귀신같이 붙인 카메라와 함께 넘어오게 된 35층. 곧바로 기생 덩굴들이 나를 덮치는 일은 없었기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무가 엄청나게 늘었네, 하루 만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탁 트여있던 시야를 답답할 정도로 가로막은 잿빛 나무와 회백색 덩굴들. 분명 통로 근처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고 안전지대 근처로 갈수록 많아졌던 거로 기억하는데 확실히 증식한 모양새다.

아무래도 휩쓸려 사라진 신전 기사들과 사제, 수녀들이 그대로 잡아먹힌 모양.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고 믿기 힘든 모습에 가장 가까이 있던 나무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뻐걱- 소리와 함께 맥없이 쓰러지는 잿빛 나무. 죽어서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때리는 기분과 함께 나무를 휘감고 있던 덩굴들도 저항 없이 바닥에 몸을 뉜다. 신성력만 사용하지 않으면 반항조차 하지 않는 건가?

 ‘대체 무슨 퀘스트일지 감도 안 잡히네. 그냥 무한 증식하는 놈들을 뿌리를 뽑는 타임 어택 퀘스트인가?’

나무를 박살 내고 덩굴을 짓이겨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놈들. 마음 같아서는 신성력을 끌어올려 반응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곧 일행들이 넘어올 테니 참아야겠지. 대신 내가 나온 통로를 휘감고 있는 덩굴을 잡아 뜯었다.

35층에서 34층으로 침식하듯 뻗어 나간 덩굴이니까, 35층에서 뜯어버리면 34층에 있는 놈들도 죽어버리지 않을까 해서. 그런 내 예상이 맞았는지 10분이 되기도 전에 하나둘 넘어오는 일행들.

 “뭐야, 벌써 넘어왔어?”

 “갑자기 통로를 휘감고 있던 덩굴들이 메말라서 죽어버리더라고. 롤랑이 주변을 정리했다고 생각해서 넘어왔지.”

 “우왓! 이놈들,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어?”

 “확실히, 엄청나게 늘어났네요.”

주저 없이 넘어오는 한세아를 필두로 하나씩 넘어온 일행들이 주변을 가득 채운 잿빛 나무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어제까지는 허허벌판이던 곳이 오늘은 숲으로 변해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하려나.

그렇게 넘어와서는 내가 박살 내놓은 나무들을 보고 검을 빼 드는 케이티. 마치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나뭇가지로 이것저것 찔러보듯 검으로 나무와 덩굴을 헤집기 시작한다.

 “나무는 그냥 평범한 나무네. 덩굴들은 나무에 휘감겨 있어도 딱히 뿌리가 안 보이고… 죽으면서 확 메말라버리니까 잔뿌리가 안 보이는 걸까?”

 “죽이지 말고 살살 뜯어보면 뿌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으려나?”

거기에 시청자들에게 뭐라도 정보를 주고 싶은 한세아까지 합류하자 순식간에 토막 나고 해체되는 덩굴들. 나무의 단면을 살펴보고, 말라비틀어진 덩굴을 손가락으로 으스러트려 보거나 하면서 요리조리 살펴보니 아이린과 그레이스도 동참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게 만지작거려봐야 알아낼 수 있는 정보 따위는 없었지만.

-갈 길이 바쁜데 언제까지 땅파고 놀거임?

-한세아 어린이 촉감놀이는 여기까지~

-잼민이랑 같이 다니더니 잼민이가 옮았네

-근데 생각해보면 이거 마탑한테 정보 듣고 오는 거 아님?

-아니 ㅋㅋ 만진다고 뭘 알어?

그렇게 한동안 진전 없이 주변의 나무를 때려 부수거나 덩굴을 끊어보는 모습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시청자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진짜 촉감 놀이라도 하듯 재미를 느꼈는지 한세아가 칫- 하고 작게 혀를 찬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봐야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보이네. 일단 안전지대 쪽으로 향한 다음, 덩굴이 어디에서 왔는지 역추적을 해 보는 게 어떨까?”

 “그게 좋겠어. 분명 어제는 안전지대에 나무가 많았으니까, 오늘 가 보면 뭐라도 있겠지.”

그렇게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시청자들에게 군소리를 몇 마디 던진 한세아가 일행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아쉬워하는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으음… 저게 재밌나?

마구잡이로 자라난 잿빛 나무 때문에 늪지대에서 밀림으로 변해버린 35층. 길조차 침범해버린 나무를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가자 일행들의 입에서 질렸다는 듯 한숨이 튀어나온다.

몬스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나무만 빼곡하게 자라나 있으니 시야가 막혀 답답함을 느낀 걸까. 철퇴를 휘둘러 길을 뚫는 와중 검을 빼 들고 나무 베는 일에 끼어든 케이티를 보면 갑갑함이 잔뜩 묻어 있기는 하네.

 “하루 만에 이렇게 자라났다면, 일주일 정도쯤 뒤에는 35층에 발도 못 디딜 정도로 빼곡히 자라나 있는 거 아니야?”

 “확실히 그럴 것 같네. 탑의 통로 너머로까지 자랐으니까 다른 층까지 꾸역꾸역 집어삼켰을지도 몰라.”

질렸다는 듯 이야기하는 일행들의 모습에 문득 채팅창에 올라온 한 의견이 떠오른다. 수만 많은 덩굴 놈들이니 마탑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트롤 부산물로 폭탄을 만들어서 싸그리 밀어버리는 게 정답 아니냐는 글.

딱히 근거는 없이 한세아를 폭탄마로 전직시키려는 채팅일 뿐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 채팅이 어째서인지 일리가 있게 느껴지는걸.

게임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빽빽하게 자란 식물형 몬스터가 있다면, 직접 전투를 하는 대신 무슨 제초제 같은 아이템을 뿌려서 처치하는 퀘스트가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그건 키보드와 마우스로 하는 RPG 게임의 경험담이긴 한데….

 “세상에, 공터를 가득 채워버렸는데?”

 “이제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하지? …그레이스 언니, 뭐 느껴지는 게 있어요?”

 “아니. 다들 식물형 몬스터에 움직임도 없어서 그런지 감지되는 게 하나도 없네.”

넓은 공터를 가득 채운 나무를 보고 반쯤 마음이 꺾인 일행들을 보니 그 가설에 점차 힘이 실린다. 사실 35층에 곧바로 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구출해서 밖으로 나간 다음 마탑에서 어떤 힌트를 얻어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대형종 몬스터와 싸우라 하면 망설임 없이 무기를 들고 나설 수 있고, 무수히 많은 오크의 군대가 나타난다 해도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수천 그루가 넘는 회색 나무들 사이에서 어딘가에 있을 기생형 식물의 뿌리나 퀘스트 갱신용 힌트를 찾을 자신은 없는걸. 이런 건 진짜 태생 6★ 궁수라도 데려와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아 씨, 진짜 막막하네. 이거 돌아다니라고 만든 맵이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마탑이랑 신전이랑 막 연합해서 넘어오는 걸 막고 시작하는 건가? 지금 올 게 아닌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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