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75)

내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트롤에 놀라 신성력을 이용한 반사 스킬까지 사용했듯이, 세 명의 모험가 파티 또한 갑작스럽게 등장한 트롤에 놀라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문제가 있다면 그 모든 것에 궁수가 가진 연금 화살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조금 특이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트롤이고 언데드로 변이했으니까 불화살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흐윽….”

 “자매님, 불화살에 맞은 트롤이 폭발이라도 한 겁니까?”

 “네에…. 약점이라고 생각해 머리를 뒤덮은 종양에 화염 마법이 각인된 화살촉을 쐈더니, 갑자기, 갑자기 크게 폭발해버려서는, 두 사람이 나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일행들에게 신호도 주지 않고 연금 화살촉을 사용했더니 땅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일격에 퍼엉! 터져버린 트롤.

트롤을 막아 세우기 위해 앞에서 방패로 밀어내고 있던 전사와 발목에 상처를 내서 기동력을 떨어트리기 위해 옆으로 우회하던 모험가가 그 폭발에 휘말린 것이다. 정면에서 폭발을 맞이한 탱커는 방패로 가리지 못한 얼굴이 녹아내렸고, 칼을 휘두르던 전사는 양팔과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거지.

그렇게 자신의 판단 미스 때문에 동료 두 명이 폭발에 휘말려 신체가 박살이 나버린 걸 궁수의 뛰어난 시력으로 똑똑히 봐 버린 여자 모험가가 넋이 나간 거고.

 “…그 가스가 그렇게 큰 폭발을 일으키다니.”

 “내, 내가 화염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솔직히 시체 더미를 치우기 위해 스파크 마법으로 불을 붙일까 고민했었는데.”

고해성사하듯 아이린의 품 안에서 사건을 전부 토해낸 모험가가 다시 아이린의 품 안에 고개를 처박자 주변 모험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일그러진다.

본디 트롤이라 하면 상처를 최대한 많이 내고, 그 상처를 불로 지져서 재생을 막아 사냥하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다. 그러니 마나를 밖으로 끄집어내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중급 모험가들이라면 트롤을 보고 이 여자 모험가처럼 화염을 이용할 확률이 99%에 가깝지.

신성력 또한 화염처럼 언데드 트롤의 약점으로 보이지만 신성력을 이용한 무기 강화는 신전 기사들의 전유물이니까.

 “이거 참, 자매님의 경험담을 어서 신전에 알려야겠군요.”

 “형제님들? 혹시 이곳에도 연락용 마도구가 있나요?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어서 알리는 게 좋겠어요.”

신전 기사와 아이린의 대화에 얼굴을 딱딱히 굳힌 모험가 몇 명이 텐트촌 내부로 후다닥 뛰쳐 가는 동안 한세아와 시청자들은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트롤이 고작해야 불화살 한 방에 중위급 공격 마법보다 더한 폭발을 일으키니 이 또한 써먹을 수 있는 기믹으로 분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데드들이 이동 속도가 느리니 트롤과 경로가 겹치게 유인을 해서 폭발을 유도하자는 게 가장 많이 나온 의견.

 “그러네, 저렇게 크게 터지는 자폭병이면 원래 써먹으라고 만든 거긴 하지. 이동 속도도 언데드 답게 엄청 느릴 테니까 접근만 허용하지 않으면 쓸만하겠는데? 문제는 잘못 터트렸다가 독 웅덩이의 독물이 사방팔방으로 막 쏟아지는 거?”

-물리팟이 잘못 터트리면 가스 세례 대신 똥물 세례냐? ㅋㅋㅋㅋ 환장한다 진짜

-그래도 일격에 보낼 기믹이 있는게 어디야

-근디 폭발로 죽은 트롤도 마석 주냐? 마석이 터지는거면 돈벌이 경험치벌이 개에반데

-나도마망의가슴팍에코박고싶어왜너만박아

-이게 밸런스 때문에 살 길을 열어주는 건지 좆되보라고 만든 기믹인지 모르것다잉

[폭☆8은예술이다님 5,000원 기부]

롤랑한테 트롤을 몬스터한테 던져보라고 시키는 건 어떰? 심지 꽂아서 던지면 네 마법보다 쎌 것 같은데

 “…거 좋은 의견 고맙다.”

그렇게 한세아가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묘한 표정으로 허리춤의 화살통을 어루만지던 그레이스가 내게 슬쩍 다가와서 질문을 던진다.

 “그, 롤랑? 나도 저 모험가가 사용하는 연금 화살이 있는데… 트롤한테 사용해야 할까?”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 가서, 마석이 남아 있는지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그레이스 또한 두 번째 트롤을 만나면 불화살을 쏠 생각이었나보다.

하마터면 나도 가스 세례가 아니라 폭발 세례를 견뎌야 할 뻔했네.

게이머에게 있어 폭발물이란 일종의 성물과도 마찬가지다.

잘못 사용한다면 본인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흉물이지만, 잘만 사용하면 피통이 높은 고난이도의 몬스터를 손쉽게 사냥할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이며 보스 레이드와 인성질과 글리치까지 온갖 곳에 사용할 수 있는 무안 단물 같은 존재니까.

당장 나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친구들과 즐긴 드래곤 사냥 게임에서 잠든 대형 몬스터의 머리에 화약통을 몇 개씩 설치하고 대검으로 기를 모아 쪼개버리는 플레이를 즐겨 하지 않았던가.

 “던지는 건 무리여도 유인은 가능할 것 같은데. 솔직히 폭발력이 중위급 마법보단 강한 것 같은데 마력 소모량 생각해보면 어스 컨트롤이나 내가 안 배운 염동력 쪽 마법으로 밀쳐내고 불화살로 터트리는 게 콤보려나?”

-솔직히 화기엄금인거 생각하면 근캐도 밀치고 유인까진 될 듯?

-화기엄금 ㅇㅈㄹ 짬밥냄새 오지네 ㅋㅋㅋㅋ

-종양이 터지는거면 팔다리 썰어서 투척 가능?

-안 터진 트롤 시체 채취하면 연금술로 폭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보스는 대형종일거 같은데 트롤루다가 펑 터트리라고

그만큼 한세아와 시청자들 또한 폭발에 진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끔찍한 상처를 입은 두 모험가가 사제들의 신성력 세례와 성역의 버프로 인해 새살이 솔솔 돋아나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오든, 폭발 트롤의 등장에 난리가 난 모험가들도 관심 밖에 둔 채.

그 와중에 사람 머릿수가 많아서 그런지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처럼 보이는 채팅이 많이 보여서 어처구니가 없네. 시체 더미가 남아 있으니 팔다리를 뜯어서 투척물로 활용하자니… 그건 좀 솔깃한데.

 “종양을 뜯어서 연금술… 너 좀 똑똑하다? 확실히 뿔늑대 만월 늑대가 10층에서 등장하니까 늑대 유인 향이 초급 연금술이었지. 그런 서브 콘텐츠도 나름 탑과 발맞춰서 디자인 했나 봐. 하긴 대장장이 같은 것도 생각해보면 탑에 맞춰서 장비를 뽑아낼 테니까 당연한가.”

그렇게 한세아가 시청자들과 함께 열기 띤 토론을 나누는 동안 아이린 또한 바쁘게 움직인다. 형제자매라 불리는 사제와 수녀, 신전 기사들이 바삐 움직이니 마음씨 고운 아이린이 가만히 구경할 수는 없었겠지.

치료를 위해 벗겨둔 팔목 보호대 따위를 주섬주섬 챙겨 들어 사제 옆으로 옮겨주고, 피고름과 오물을 닦아 내기 위해 물수건을 들고 온 수녀에게 빼앗듯 수건을 하나 챙겨 새 살이 돋아난 여성 모험가의 목덜미와 팔뚝을 살살 닦아 내는 자애롭고도 성스러운 모습.

사제와 수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손이 더럽혀지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부상자를 돌보는 마음. 인류애가 넘쳐나게 하는 그 광경에 구경꾼이던 모험가들도 뭔가를 느꼈는지 뭐라도 돕기 위해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날랜 발걸음으로 안전지대 바깥으로 향한 남자 모험가. 가벼운 가죽 갑옷 차림에, 허리춤에는 랜턴과 철 막대기 같은 도구 등 잡동사니가 주렁주렁 매달린 걸 보니 누가 봐도 도적인 것 같았다.

 “그, 사제님들? 아무래도 이게 그 모험가들 앞에서 폭발한 트롤의 마석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참으로 진실된 분. 여신님의 은총이 당신의 앞길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모험가들이 어색하게 피해자의 갑옷이나 무기를 주워들어 가볍게 손질해 주거나 으스러진 갑옷을 벗겨주는 등 쭈뼛거리며 돕는 동안 도적 하나가 폭심지로 날쌔게 다녀 왔다. 역시 모험가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이 거의 죽을 뻔했으니 챙겨야 할 이익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마인드.

그가 환자를 돌보는 사제에게 내민 것은 주먹 크기의 큼지막한 마석. 흠집도 없고 크기도 우리가 얻은 것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게, 트롤이 폭발한다 해도 마석이 사라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오, 폭발해도 마석은 남나 봐. 진짜 트롤 가지고 터트려서 사냥하라는 게 맞나 본데?”

-마석이 온전하다 = 게임사가 권장하는 공략방식

-권장 안하면 지들이 어쩔건데 ㅋㅋㅋ

-폭발 마법(물리, 화학 속성)

-짐꾼 한세아가 폭탄주머니 한세아로 진화할 때가 왔다

-진짜 트롤 종양 던지고 스파크로 지지면 그게 마법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한세아의 관심은 온전히 폭탄 트롤에 꽂혀 있었다. 히어로즈 크로니클을 플레이하기 전에 대체 무슨 게임을 어떻게 즐겨 왔기에 저렇게 폭탄에 집착하는 걸까.

신성력의 세례 덕분에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남녀와 아이린의 품 안에 안겨 있다가 일행에게 와락 달려드는 궁수. 새하얀 신성력과 자애로운 미소가 어우러져 참으로 성스러운 장면이지만 한세아는 관심조차 없어 카메라를 돌리지도 않는다.

언데드를 말살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가득 찬 아이린. 그녀의 열의에 발맞춰 우리 일행들은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탑 안에서 보냈다.

탑 내부에서 일주일 넘게 보내는 건 모험가들의 평범한 일상. 게이트 덕분에 3~4일마다 탑 바깥에 나가게 되었다지만, 이제는 오염된 필드와 언데드 때문이라도 오랜 시간을 탑 내부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게 있을까요, 형제님들?”

 “성역이 아직 36층까지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것들을 정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신다면, 신전 기사들과 발맞춰 가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네, 감사해요.”

신전 기사들과 대화를 나눌 땐 생글생글 미소를 짓다가도, 언데드들이 느릿하게 기어 나오면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아이린의 표정.

평소 그녀가 일행들을 얼마나 잘 챙겨 줬던가?

아침에 만나 탑에서 모험하고 텐트에서 잠들 때까지 받은 배려를 세어보라 하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 그런 아이린이 언데드 퇴치에 열을 올리며 탑에서 머무르려 드니 일행들 또한 군말 없이 탑을 돌파하기 시작한다.

32층에서 33층으로, 33층에서 34층으로―

 “이, 이봐! 마석을 몇 개 넘길 테니 중독을 좀 치료해 줄 수 있나?”

 “이쪽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트롤이 폭발하면서 길을 지워버렸거든. 내일쯤 복구되지 않을까?”

 “수상한 거? 펑펑 터지는 트롤 말고는 딱히 본 적 없는데.”

신전 기사들을 비롯한 수녀와 사제들이 층마다 머무르며 신성력의 기둥을 드높게 세웠기 때문일까. 만나는 모험가 중 서로를 경계하며 날을 세우는 녀석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세 시대인 만큼 칼밥 먹는 모험가들도 종교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긴 하지.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탑 내부에서 보내자 35층의 통로를 기록할 수 있게 된 우리 일행들. 34층에서 다시 30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거의 10일을 탑 내부에서 보낸 거네.

예전이었다면 30층까지 걸어 올라오는 데 10일이 넘게 걸렸겠지만, 플레이어인 한세아의 등장으로 게이트가 생겨난 지금은 탑에서 보내는 10일조차 길게 느껴지는 상황.

-독하다 독해 언제까지 탑에만 있게?

-아이린 마망 은근이 집착이 심한 여자였네… 그래서 더 좋아 헤으응

-아니 트롤 연금술 언제 배울건데

-슬슬 의뢰 정산하고 새 의뢰 받아와야 하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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