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175)

 “내가 골렘 마석 구한다고 소문 쫙 나지 않았어?”

 “몰라, 인마. 그땐 나도 40층 위에 있었으니까 소식이 안 올라왔지. 그다음에는 저 모지리 구하러 서쪽으로 뛰었고.”

 “헤헤, 죄송함다.”

릴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잃어버린 마석을 충당하기 위해 용병 의뢰를 하나 해결하러 서쪽으로 향하고, 릴리 대신 레베카와 그녀의 부하 용병이 우리와 합류한 상황. 레베카가 구매한 커다란 마차 안에 편히 앉아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 해도 오크를 싹 밀어버린 상황이라 다시 에르트타를 거쳐 모험가의 도시로 돌아오는 길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몇몇 시청자들이야 다시 발정이 난 레베카가 나를 납치하듯 덮치는 걸 기대하는 것 같고, 한세아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크가 아니라 오크 부락의 시설물에 화를 전부 쏟아내서 그런지 좀 얌전해졌거든.

 “나 뛰쳐 나올 때 30층 게이트가 열렸네 마네 하던데, 애들 데리고 31층으로 갈 거냐?”

 “당연히 가야지. 어중간한 층에서 멈추려고 파티를 짠 게 아니거든.”

 “하기야 귀찮다고 탑 내려간 놈이 다시 올라올 정도면 뭐라도 있겠네.”

그렇게 모험가의 도시로 향하며 레베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탑 안에서 탑 밖으로 튀어나온 오크가 인간을 부려 먹은 상황 아니던가. 인간을 납치하고 인질로 써먹는 오크라니.

최상급 모험가로서도, 용병 단주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일단 남은 잔당은 기사단에 제보해 뒀어. 상인들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내 제보를 받자마자 뛰쳐나온 모양이던데. 그러니 탑 바깥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위로 올라가야지.”

 “하여간 무능한 깡통 새끼들, 애초에 놓치지를 말았어야지.”

용병 일을 하며 기사에게 쌓인 악감정을 투덜거리듯 내게 뱉어내는 레베카, 황무지를 종일 걸은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푹신한 마차 쿠션에 파묻혀 잠든 일행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 한세아까지.

서브 퀘스트 겸 연계 퀘스트를 끝마친 한세아였지만 뒤늦게 방송을 켠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특이한 오크를 향해 황무지를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레베카랑 마차에 타 있으니 이게 뭔 상황인가 싶겠지.

그 덕에 불평을 잔뜩 쏟아내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레베카와 이미 숙면 중인 일행들과 달리 한세아만큼은 바쁘게 입을 움직여야 했다.

-오크잡으러간다면서 이게먼데

-오크 하면 레베카가 나오는게 상식인데 이걸 모름?

-이번에 놓친 오크가 레베카눈나 한번더 털어먹을것같은데ㅋㅋㅋㅋㅋ

-오크랑 싸우면 방송킨다더니 방송 키자마자 퀘스트가 끝나있네

-퀘스트 클리어 부분 다시보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바지에 똥을싸겠다

 “대체 그걸로 날 어떻게 협박하려 드는 거야…. 설명은 이번이 마지막. 뒤늦게 들어온 사람 올 때마다 계속 반복해서 설명할 순 없잖아?”

[납치강제착정야노레베카단님 10,000원 기부!]

대충 이번엔 레베카가 롤랑 안 덮쳐서 아쉽다는 뜻

 “어허, 내가 너희들의 이상성욕에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 아무튼, 오크들이 레베카 담배 심부름 간 셔틀을 납치해서, 우리보다 먼저 달려든 레베카가 다 때려 부숴놨음. 그 덕에 우리는 전투도 안 하고 퀘스트 클리어 날로 먹었습니다. 요약 끝!”

-릴리 동료는 말하기도 귀찮아서 넘어가버리네 ㅋㅋㅋ

-마차 여행 내내 요약본 입으로 떠드니 귀찮은건 인정이지

-대충 돈 내고 질문하라는 뜻 ㅎ

-세아야 눈치가 있으면 레베카눈나랑 롤랑이랑 방 따로 잡아주자

-그래서 짠해좌 말대로 기사단 부름?

 “어, 기사단? 사실 롤랑한테 부탁하려 했는데… 내가 롤랑한테 말하기도 전에 롤랑이 알아서 부르던데. 전에 봤던 그 맨몸마라톤 기사, 누구냐? 제임스 그 사람한테 연락한 것 같더라.”

한세아 또한 내 반대편 창문을 바라보는 척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기에, 나 또한 풍경을 보는 척 마차 창밖에 고개를 두고 인터넷 창을 띄워 둔 상황. 맨몸으로 마차를 따라온 제임스 설리반이 좀 인상 깊었는지 맨몸마라톤 기사라는 별명에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운동하겠다며 맨 몸으로 마차를 따라잡거나, 기사 치고는 털털하고 투박해 평민 출신 모험가와도 편히 지내는 등 엉뚱한 면모가 있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일 처리는 확실한 편이지. 거기에 4★ 버프도 받았으니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까.

…왕국 기사단이 출정식까지 선포하고 서쪽 황무지로 달렸는데 그 오크 새끼가 살아남는다면 그건 그 오크 놈이 메인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다는 뜻일 테고.

 “어허, 커닝이라니. 짠해좌가 글을 올리기 전에 나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 말도 없는데 황무지를 뛰어다니느니 그냥 롤랑 인맥을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롤랑이 에르트타에서 먼저 연락을 해버린 거지.”

말은 잘한다며 투덜대는 시청자들과 너스레를 떨며 넘겨버리는 한세아.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의 방송을 곁눈질하는 동안 값비싼 고급 마차는 소음 하나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서쪽의 이름 없는 마을에서 에르트타로, 에르트타에서 다시 모험가의 도시를 향해 쉼 없이 달린 마차. 비싼 값 한다는 듯 소음도 덜컹거림도 없이 편안한 여정 끝에 다시 높게 솟은 탑 앞으로 되돌아왔다.

 “난 바로 들어갈 건데, 넌 어쩔거냐?”

 “하루 정도 정비를 한 다음 들어갈 것 같은데.”

 “그래? 위에서 기다릴 테니까 후딱 40층까지 와라. 오는 길에 40층 게이트도 뚫어주면 좋고.”

 “그게 우리 맘대로 되겠어?”

 “10층 20층 30층 세 개 뚫었으면, 시발 한 50층까지 뚫어달라고 이 게으름뱅이 녀석아.”

여느 때와 같이 낄낄 웃으며 내 등판을 퍽퍽 두드린 레베카가 마차 구석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 있던 제 부하 용병의 목덜미를 휙 낚아챈다. 미녀들 틈바구니에서 묘하게 움츠려있던 그를 맹수가 먹잇감 낚아채듯 질질 끌고 가는 그녀.

털털한 것인지 무례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오묘한 태도로 작별 인사를 하듯 우리 일행들의 어깨와 등허리도 대충 툭툭 건드린 그녀가 껑충 뛰어 담벼락을 넘어 사라진다.

 “…늘 느끼는 거지만, 참 바람 같은 분이셔요.”

 “바람 같다기보단…, 음, 아니다.”

사람을 짐짝처럼 메고 사라지는 모습에 작게 중얼거리는 아이린과 무언가 무례한 말을 참아내는 그레이스. 그래도 마법이 덕지덕지 발린, 값비싼 마차를 흔쾌히 구매해 태워줬으니 나쁜 말을 참아내는 게 참으로 기특했다.

내게 연애 감정을 지닌 상태에서, 나를 끌고 가 덮친 여자에게 나쁜 말이 마려운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면 된 거지. 마차에서 내려 저 멀리 사라진 레베카를 슬쩍 본 뒤, 옹기종기 모여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모험가 길드와 마탑에 방문한 뒤 31층으로 가 보자.”

 “31층은 어떤 곳이야?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어?”

 “전에 간단히 말했던 것처럼, 31층부터는 늪지대가 펼쳐져 있어. 사람이 발 디딜 수 있는 마른 땅은 극히 적고, 발목까지 잠긴 상태에서 싸우는 게 대부분이지. 깊은 물웅덩이부터 끈적한 타르 늪까지 있어 싸울 때 최대한 제자리에서 싸우는 게 좋아. 준비할 거라곤… 사람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밧줄 정도?”

31층부터 펼쳐지는 늪지대는 참으로 끔찍한 장소였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롤랑의 육체로도 좆 같아서 모험 때려치우고 탑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마른 흙길이 거의 30cm 폭으로 얇게 나 있고, 그 옆은 전부 물웅덩이다. 발목까지 오는 얕은 물웅덩이도 있고, 수심이 5m는 될 호수 같은 웅덩이도 있다.

거기에 더해 점토와 모래가 뒤섞인 바닥이나 타르 웅덩이 따위에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쑤욱 빠져들어 가는 일도 있지.

마른 땅에서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장소지만, 그 장소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이끼악어, 리자드맨, 덩굴뱀 같은 놈들이 모험가를 덮치기까지하니 얼마나 끔찍한가.

 “말만 들어도 끔찍한데?”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을 거다. 한나는 배울 수 있다면 지반을 견고하게 만드는 암석, 빙결계열 마법을 배우는 게 좋을거고.”

 “나? 그러네, 골렘을 판매한 보상으로 마법서를 좀 준다던데 31층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을 배워올게.”

내 설명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흩어진다.

한세아는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하기 위해 마탑으로 향하고, 그레이스는 화살을 보충하는 김에 밧줄 따위를 사러 시장으로 향한다. 신성력만 있으면 준비가 끝나니 에르트타에서 구매한 장난감을 챙겨 들고 신전으로 향하는 아이린과 마법 갑옷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연금술사의 공방 거리로 향하는 케이티까지.

이제 능숙한 모험가가 된 일행들은 딱히 내 도움 없이도 알아서 준비를 척척 끝마치는 그녀들. 해가 지고, 한세아가 게임을 종료하고, 해가 떠오르고, 그녀가 방송을 키는 것과 동시에 길드에 모인다.

게이트를 통해 모험가보다 마법사가 많은 30층으로 향해 31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몸을 맡겼다. 퀴퀴하고 눅눅한 공기 대신―

 “…롤랑, 늪지라고 하지 않았어?”

 “이게 뭐야, 시발.”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한 맹독 늪지를 향해.

뭐야 시발, 왜 갑자기 게임 난이도가 바뀌는 건데.

보글보글 기포 소리와 함께 늪지대의 끈적한 보라색 웅덩이 표면이 끓어오르더니 비눗방울 터지듯 퐁! 하고 터지는 거품. 그와 동시에 누가 봐도 유독 가스처럼 보이는 보라색 가스가 쉬이익- 소리를 내며 아지랑이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롤랑, 원래 이런 장소는 아니지?”

 “……당연하지.”

본디 늪지대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아마존 오지처럼 생겼었다. 물웅덩이는 발걸음을 불편하게 할 뿐 피부에 닿아도 상관없는 깨끗한 물이었고, 자라 있는 식물들 또한 울창한 나무일 뿐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내 기억 속 풍경과 전혀 다르다.

-그, 롤랑센세 여기가 늪지대가 맞습니까?

-나 이거 악마사냥겜에서 봤음

-리저드맨 대신 무리어미나 좀비같은 게 나올거 같은데요

-30층은 골렘이더니 31층부터는 대악마 사냥하러 가게 생겼네

-이게 판타지식 늪지대지 슈발 ㅋㅋ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