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어, 나?!”
촌장의 이야기를 듣고, 우르르 떠난 청년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세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청자들의 채팅을 읽다 말고 갑작스럽게 던져진 내 질문에 화들짝 놀라는 그녀.
“그래, 우리 파티의 마법사님이자 리더로서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본 오크 놈들이 여기 근처에서 사람을 습격했을까, 아니면 늙은 촌장의 트라우마일 뿐일까.”
“어, 내가 생각하기엔….”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천재 마법사 한나 썰을 믿어서 질문을 던진 게 아니다. 촌장의 이야기를 듣고 진행 중이던 연계 퀘스트 창에 변화가 생겼는지 물어보는 거지.
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는 한세아. 생각하는 척 턱을 괴더니 턱에 괸 손가락이 꼼질꼼질 움직이며 홀로그램 창을 움직인다. 들키지 않는다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방송 창을 켜 둔 상태.
“퀘스트, 퀘스트 창이… 어, 원래 그 용병 이야기였던가?”
[에르트타에서 모리스 백작령으로 향하는 좁은 오솔길]
[외지인이 드문드문 방문하는 자그마한 마을에는 커다란 불행이 닥친 듯하다]
[놈들이 모험가와 행상인만 습격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니 퀘스트를 왜 우리한테 물어봐 ㅋㅋㅋ
-진짜 기억력이 많이 짠하네요
-행상인 무리 실종 장소가 릴리 동료 실종 장소랑 같다는 곳 까지 나왔었음
-퀘스트가 두배가 될 줄 알았는데 같은 퀘스트 라인인가보네
-변하긴 변했다 오크들이 이짝동네 돌아다니나벼
[진짜돈에무7련이라니까님 5,000원 기부!]
답답하게 만들어서 도네 뜯으려는 전략이니까 걸려 넘어가지 말, 앗차차
“…내 생각엔, 아무래도 저 촌장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상인 협회에서 이야기 듣기론 짐마차 행렬이 습격당한 일은 전혀 없다고 했잖아? 오크들이 소규모의 상인과 여행객만 노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퀘스트 창과 시청자 찬스를 이용하는 것에 성공한 한세아가 의견을 말하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크들이 머릿수가 적은 집단만 노리고 있다면 잘 가다듬어진 중심 무역로 대신 이런 작은 마을 쪽으로 올 가능성이 크니까.
음탕한 비올렛타가 릴리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건네준 정보에 따르면 습격받은 상행은 없지만, 거래를 위해 와야 할 소규모 행상인의 수는 평소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했지.
아무 생각이 없을 땐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우리 이야기를 들으니 이상할 정도로 거래 수수료 수익이 줄었다며 서류를 막 정리하더라.
“그렇게 말하니 한나 양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오크 놈들이 약하고 규모가 적은 사람만 노린다면, 도시보다는 이런 작은 마을의 주민들을 노리겠지. 떠돌이 몬스터들이 야생동물 대신 마을의 가축을 노리듯 손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건 놈들의 본능일 테니까.”
한세아의 설명에 동의한다는 듯한 마디씩 덧붙이는 아이린과 릴리. 말이 없는 그레이스와 케이티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살 주억거린다.
“저기이….”
“음?”
그런 우리를 슬그머니 부르는 건 아까부터 말없이 카운터에서 서성이던 여관 주인.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주춤거리며 다가와서는 염치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 오크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혹시, 마을 주변을 좀 둘러봐 주시면 안 될까요?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지만, 그 뭐냐, 내가 이 마을에서 식료품점도 같이 하거든요… 모험가용 건량 같은 게 있으니 돈이랑 그걸 드릴 테니까….”
아무래도 마을에서 사라진 건 촌장 아들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촌장의 아들은 마을의 유일한 마차를 끌고 나서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는 중이지만 평소보다 사흘 정도 늦은 상황이고, 마을의 유일한 여관이자 식료품점의 아들내미는 젊은 사냥꾼 친구와 에르트타로 향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오크한테 당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모양새에 슬쩍 일행들을 돌아보자 서로 눈치를 보는 와중, 아이린이 침을 꼴딱 삼키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선다.
“저, 저는 도와드리고 싶은데….”
그녀의 시선이 못 박혀 있는 곳은 여관 주인이 우리에게 다가오자 보이게 된 후덕한 덩치에 가려져 있던 자그마한 나무 조각상.
…그러니까, 여신상과 종교의 심볼이.
아무래도 이 후덕한 여관 주인은 꽤 신실한 신자인지 카운터 뒤편에 여신교의 심볼이 떡하니 걸려 있고, 자세히 보니 통통한 손목에도 로사리오 비슷한 게 휘감겨 있었다. 일반 시민의 고통도 외면하기 힘든 우리 예비 성녀님이 여관 주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있나.
“저, 정말 감사합니다, 수녀님!”
“저기, 제 의견이 그렇다 해도….”
“언니가 좋다면야, 그래요!”
그리고 감히 태생 5★ 힐러의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한세아가 용기 있는 것도 아니지.
※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 일은 딱히 힘든 것도 아니다. 그레이스의 마을 주변에서 사라진 소녀를 찾았던 것처럼 내가 그냥 존나 뛰어다니면 되거든. 더군다나 오늘은 나만큼은 아니지만, 발이 날랜 릴리 또한 합류한 상황.
고작 오크 수색에 상급 모험가 두 명이 나서는 호화로운 상황이니 능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한세아의 몰카에 뿔이 나 버린 나의 고약한 심보.
“그러면, 롤랑과 그레이스가….”
“아니, 일을 빨리 처리하려면 네 명이 전부 나서는 게 좋겠어. 나, 릴리, 그레이스, 케이티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흔적을 찾는다.”
“그래도 될까?”
“오크 놈들이 마을을 습격하지 않았다는 건, 머릿수가 적다는 뜻이겠지. 거기에 내가 수십 마리의 늑대를 죽였으니 여기는 비교적 안전할 거야.”
“그런가? …뭐, 롤랑이 그렇다면야.”
자연스럽게 나와 그레이스를 또 묶으려는 한세아의 의견을 부정하고 내 의견을 밀어붙인다.
3★에서 4★이 된 그레이스는 탐지 능력이 올랐으니 오크들이 눈치를 채기도 전에 먼저 감지하고 도망칠 수 있을 테고, 같은 4★이지만 탑에서 나와 함께 몇 년을 구른 릴리 또한 상급 모험가인 만큼 오크에게 당할 리 없다.
그나마 걱정이 되는 건 4★ 만큼의 재능은 있지만, 경험은 부족한 케이티인데, 이쪽에 아이린을 붙이면 되겠지.
“내가 가장 위험한 북쪽을, 릴리가 서쪽을, 그레이스가 동쪽을, 케이티와 아이린이 남쪽을 맡아서 탐색을 해 보자.”
“그레이스 언니는 궁수인데, 혼자서 괜찮나?”
“한나야? 언니가 이래 봬도 레인저의 기술을 배운 건 알고 있지? 그리고 동쪽은 우리가 온 방향이니 흔적 탐색을 한다고 딱히 위험할 것 같지는 않네.”
“아, 맞다.”
“아 맞다? 너, 요 녀석이 진짜.”
“아이, 언니. 미안해요. 나는 걱정이 돼서 그랬지, …그러면 나는?”
그레이스를 밀어주려다 무시하게 된 꼴이 되어 가볍게 꿀밤을 맞은 한세아. 업계 포상 따위의 채팅을 흘려넘기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묻는다.
“내가 데려간다. 북쪽에 흔적이 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니, 조금 멀리까지 다녀올 생각이거든. 주술사가 있다면 한나가 알아차릴 수 있겠지.”
“……어?”
물론 퀘스트 창과 미니맵 때문이지만… 짐짝처럼 들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릴 생각이다.
뺨을 붉히는 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긴 하지만, 그녀가 상상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겠지.
으극, 이익, 으기긱―
-한세아 걍 고장났는데?
-가상 현실 게임으로 사람을 고문할 수 있구나
-이게 얼마 전까지 섹시운동방송하던 여자방송인 목소리가 맞나?
-짐꾼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니 걍 짐이 되어버렸음 이제 휴대용 조명이네
-아무튼 한세아 고통받는거 보니 속이 시원하네
옆구리에 들고 있는 한세아의 입에서 요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옆구리에 들고 다니는 클러치백이나 더플백처럼 한세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은 채 야트막한 산을 세 개쯤 넘었더니 완전히 맛이 가 버린 모양.
처음 옆구리에 손을 올렸을 땐 공주님 안기 따위를 상상했지 그대로 한 손으로 들고 뛸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시청자들이 짓궂게 놀려 먹어도 축 늘어져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
물론 그녀가 따지고 든다면 약간의 핑계는 댈 수 있었다. 그녀를 붙잡고 뛴 것은 오른손이고, 내 왼손에는 당연하게도 방패가 들려 있었으니까. 소녀를 찾을 땐 그레이스를 양손으로 안아 들었지만, 지금은 몬스터를 찾는 중인데 어떻게 양손을 전부 무방비하게 두겠는가.
“어때, 한나. 마법으로 탐색 가능해?”
“으그윽- 여기, 머, 없써어….”
그래도 정신이 혼미한 덕에 따지고 든다기보다는 정신줄을 붙잡고 미니맵을 바라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 스킬을 시전하다 말고 취소하는 방식으로 지팡이 위에 마력을 응집시키는 눈속임조차 까먹은 채 웅얼거린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입가에 침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것도 게워낼 것 같아 바쁘게 움직이던 다리를 잠시 멈춘다. 골탕을 먹인다 해도 선은 지키면서 해야지, 속에 든 걸 전부 게워낼 정도로 흔들어 재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은데, 잠시 쉬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