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175)

 “그 사람, 대체 뭐였을까….”

 “되게, 독특하신 분이셨네요.”

 “그래도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던데? 꽤 규모가 큰 상단에서 볼 법한 인재였어.”

릴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덜미를 벅벅 긁자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의 말총 부분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모험가 겸 용병으로 온갖 몬스터와 의뢰를 해결한 그녀라지만 같은 여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건 처음이겠지.

손이 크고 두꺼우면 좋다느니, 딱딱한 게 취향이라는 등 온갖 음담패설을 알아듣지 못해 순진한 대답을 하는 아이린과 케이티. 물론 시청자들은 알아 듣다못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역시 미래시 1타 방송 한세아

-손이 크고 손가락이 두껍고 무언가가 딱딱하면 좋다, 메모

-메모 백날 해 봐야 써먹을 곳도 없는 쉑들이 ㅋㅋ

-음탕한이 있으면 음란한도 있을까? 딱 대라 왕국일주 간다

-퀘스트에 관심 있는 새끼가 없네

[그래서니가뭘할수있는데님 5,000원 기부!]

시청자 말고 NPC한테 성칭찬 받으니까 반격 수단이 없쥬?

 “아이 씨, 나도 살면서 가상 현실 게임 1위가 되어 게임을 하다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 NPC에게 어필 받을 줄 몰랐으니까 입 좀 다물지?”

음담패설은 둘째 치고 별이 달린 만큼 유능하긴 한지 금화를 받고 정보를 술술 넘겨주던 그녀. 그 덕에 한세아의 퀘스트 창이 갱신된 걸 확인하고 후다닥 상인 협회 건물에서 나와 마부를 고용해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거래가 끝나자마자 한세아에게 밤에 차를 마시러 오는 게 어떠냐고 추파를 던지던데, 한세아가 자신에게 불똥이 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지 어버버- 하다가 그대로 뛰쳐나왔거든. 그 덕에 게시판에는 성칭찬 당하는 방송인 따위의 제목을 달고 그녀의 클립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리스 백작령은 어떤 곳인가요?”

 “항구도시와 직접적인 무역을 하는 곳이라 해산물이 좀 많아. 물론 대부분이 염장한 생선이거나 건어물이지만. 그 덕에 돈 없는 용병들은 육포보다 싼 어포를 질겅질겅 씹거든? 입에서 비린내가 날 정도로 씹어댔지, 우리도.”

한세아가 퍼져버린 제 클립에 분노하고, 나는 홀로그램 인터넷 창으로 몰래 그걸 구경하며 속으로 낄낄 웃는 동안 릴리가 일행들에게 다음 목적지를 설명한다.

왕국 중앙과 서부를 이어주는 소도시 에르트타에 이어 우리가 갈 곳은 릴리의 파티원들이 목적지 삼은 모리스 백작령. 모험가 길드, 용병 길드, 마탑까지 골고루 갖춘 커다란 영지다.

상인들이 하도 많이 오가니 상인 길드와 용병 길드가 있고, 북쪽으로 가면 오크가 터 잡은 황무지가 있어 모험가 길드도 있다. 모험가들이 황무지를 탐색하며 오크를 사냥하니 그곳을 개척하고 연구하려는 마법사들이 모여 마탑 지부도 하나 있다고 하니 넘쳐난 마석을 팔러 가기엔 딱 좋은 장소네.

 “육포 대신 어포라… 그건 맛있을까?”

 “전혀. 돈 없는 놈들이 먹는 거라고 말했잖아. 육포도 싸구려 자투리 고기로 만든 게 있듯, 용병들이 먹는 어포도 질 나쁜 생선 살 대충 말려서 만든 거니까 비린내가 가득하지.”

 “말만 들어도 끔찍하네. 먹어본 적 없는 생선이 더욱 먹기 싫어질 정도로.”

 “그레이스 양은 생선을 먹어본 적 없나요?”

 “나야 산에서 나고 자란 사냥꾼 집안 딸내미니까. 고기는 질릴 정도로 먹었지만, 생선은 먹어본 적 없지. 어떤 상인이 생선을 가지고 화전민 마을까지 오겠어. 케이티는 귀족 집안이니 먹어봤으려나?”

 “나는 북부 출신이야. 부동항이 있다곤 해도 북부는 생선 유통이 그닥 활발하지 않아. 해산물은 서쪽 출신이 아니면 먹어본 사람이 드물걸?”

그러다가 수다를 떨며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긴 했지만, 아무튼 케이티가 우리 파티에 잘 녹아들었다는 증거겠지.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한층 성장한 북부잼민이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가슴이 웅장해질 무렵 마차가 천천히 멈추어 선다.

하루 만에 백작령에 도착한 건 아니고 중간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 모양. 문을 열기 전 마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게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아늑한 시골 마을처럼 느껴진다.

 “쉬어 갈 곳에 도착했습니다. 여관은 이 건물 하나뿐인 마을이니 방을 잡고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예.”

그래도 오가는 여행객을 위한 여관은 있는 모양. 하기야 여관이 있으니까 마부가 이쪽으로 경로를 잡았겠지. 마부는 이 동네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말을 몰고 여관의 마구간으로 향하고, 우리는 그 모습을 슬쩍 지켜본 뒤 여관 안으로 들어선다.

모험가의 도시나 소도시 에르트타의 여관보다 확연히 좁은 여관.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단출한 여관에는 우리 말고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어서오십쇼, 방은 몇 개 드릴까요?”

딱히 종업원도 없는지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있던 후덕한 아주머니가 느긋하게 질문을 던진다. 에르트타에서 모리스 백작령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라 그런지 평소에도 손님이 좀 없나 보네.

조금 더러운 테이블 중 그나마 먼지만 쌓여 있고 음식물 찌꺼기 따윈 없는 곳에 대충 주저앉아 방 세 개와 식사를 주문했다.

마도구가 있는 고급스러운 숙소는 게이머를 위해 현대의 비즈니스호텔 수준의 퀼리티를 자랑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오면 이게 마구간이랑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질이 떨어지니 원.

-여긴 머 청소를 하면 죽는 마을임?

-아아, 이건 걸레질이다. 오물을 닦아낼 수 있지

-걸레? 질? 넘모 야한데 저게 벤을 안 당하네

-애들이 마차 구경만 하다보니 다들 맛이 간 것 같은데

-누구는 마석좆뺑이치는데 여기는 마차여행중이네

다들 기지개를 켜거나 도시에서 한세아에게 맡겨 뒀던 주머니 따위를 돌려받는 와중, 여관 문이 부서질 정도로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뛰쳐 들어온다.

 “요, 용병들이 왔다믄서?!”

 “아이고, 어르신!”

 “촌장님, 잠시만요!”

지팡이를 짚고 달려온,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이.

누가 봐도 퀘스트를 줄 것처럼 생겼네.

여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주름진 노인과 그를 걱정하며 뒤따라 온 몇 명의 청년들. 갑작스러운 난입에 여관 주인이 화들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노인은 상관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달려든다.

정확하게는, 갑옷 차림의 내게.

 “아이고, 기, 기사 나리!”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많이 늙어서 그런지, 아니면 무언가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모험가를 찾으며 들어와서는 내게 기사님이냐며 달라붙는 노인.

지팡이를 짚었음에도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는 모습에 마을 청년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빙빙 맴돈다. 말리고 싶어 하지만 힘으로 붙들 순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모습.

이런 작은 마을의 촌장이라면 주민들 사이에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려나. 거기에 촌장의 얼굴을 보면 마을에 뭔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것 같기도 하고.

-연계 퀘스트냐 서브 퀘스트 추가냐?

-여기 마을 주변에도 그 울프라이더 있는거 아님?

-맨날 작은 마을만 오면 오크한테 위협받고있음 ㄹㅇㅋㅋ

-RPG에서 맨날 약초 캐오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거지 머

-흑흑 세상을 구원하실 용사님 뒷산에서 땔감좀 주워오세여

시청자들이 봐도 부탁이라는 이름의 퀘스트를 내어줄 것 같았는지 한 마디씩 퀘스트에 대해 온갖 의견이 올라오는 채팅창. 한세아도 같은 기대를 하는지 카메라가 마치 인터뷰를 하듯 자연스럽게 촌장의 얼굴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기세로 매달리려는 늙은 촌장과 부축을 하면서도 내게서 떼어내진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청년들, 반대로 내 뒤와 옆에 서서 촌장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일행들까지.

두 그룹의 기묘한 대치가 끝난 것은 촌장이 정말로 무릎을 꿇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시점이었다.

 “의뢰, 의뢰를 받아 주십쇼!”

 “어르신! 이분들은 그저 서쪽으로 가는 손님….”

 “그 입들 다물어!”

늙고 왜소한 몸집과 다르게 여관을 쩌렁쩌렁 울리는 노호성과 함께 자신을 만류하던 청년들을 밀쳐낸 촌장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내게 달라붙는다.

번득이는 눈동자와 외치며 거품을 문 입가. 무슨 광견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기괴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자 눈치도 빠르게 마을 청년들이 다시 우르르 달려들어 촌장을 억압하듯 데려간다.

마치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체포되듯 양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가면서도 절절하게 외치는 늙은 촌장.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도 우리가 모두 들으라는 듯 꺼억꺼억 고함을 지른다.

 “주민들, 청년들이 사라졌습니다! 이건 오크의 짓거리가 분명해요! 놈들이, 놈들이 다시 온다아악!”

 “어르신! 벤과 파울은 옆 마을로 물물교환을 하러 갔잖아요!”

 “하이고,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저런 분이 아니셨는데… 상행에 나선 아드님이 늦어서 그런지 많이 불안하신가 봐요.”

끌려나간 촌장 대신 고동색 더벅머리의 순박한 청년 하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해준다. 작은 마을인 만큼 촌장의 아들이 행상인이 되어 물자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니는데, 평소보다 훨씬 늦게 돌아온다며.

마을 주민들은 이 근방에 몬스터는커녕 맹수도 본 적 없으니 일이 많아 늦어지나, 대박을 터트려서 늦어지나- 하고 태평하게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촌장은 오래 산 만큼 황무지에서 뛰쳐나온 오크 약탈자들도, 마을을 노리는 산적 집단도, 우연히 마을 인근을 지나간 떠돌이 몬스터도 겪어본 적 있어 불안해하고 있고.

 “…한나,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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