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175)

게임식 패치라 해야 하나, 이런 싸구려 여관의 소시지에도 향신료가 조금이나마 들어가 잡내를 잡아주니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여느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오줌 같은 미지근한 맥주와 고무 조각 같은 고기였다면 마도구고 나발이고 온 세상을 뒤집어엎으며 돌아갈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하며 차가운 에일로 입안의 기름기를 싸악 씻어내니 한세아가 방송에 퀘스트 창을 들이민다.

[술에 취한 용병의 불만을 들어보니 행상인 무리가 실종된 듯하다]

[귀금속, 액세서리, 그리고 마석을 취급하며 의뢰까지 걸어 둔 상인들]

[마석을 옮기던 그녀의 동료도 같은 곳에서 실종이 되었다는데…?]

 “어? 퀘스트 창 갱신된 것 같은데! 롤랑 쪽일까, 아니면 아이린 언니 쪽일까?”

-본인이 찾았을 가능성이 0%인건 잘 아시네요

-포브스 선정 주제파악을 잘 하는 게이머 1위

-롤랑 쪽 아님? 태생 6★에 도시 잘 아는 눈나 붙었으니 그 쪽이겠지

-포브스 선정 NPC 등골을 잘 빨아먹는 모기 1위

-솔찌 북부잼민이는 걍 구경다니고 마망은 그걸 케어하고 있을 것 같긴 해

시야 한구석에서 와악- 하고 난리를 피우는 한세아의 방송. 각자 흩어진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요란법석을 떠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퀘스트 창이 갱신된 걸 보니 적당히 배를 채우고 돌아가도 되겠네.

그렇게 슬쩍 눈알을 굴리니 맞은 편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던 릴리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왜, 롤랑? 저쪽 테이블에 있는 용병들 이야기도 듣게?”

 “음? 아냐, 궁금해서 엿들어 봤는데 딱히 관련은 없는 것 같네.”

역시 상급 모험가라 그런가, 정면에 앉아 있으니까 눈동자 굴러가는 것과 시야 흐트러지는 것까지 다 파악하네. 그래도 홀로그램 시스템 창과 방송에 대해 그녀가 알 리 없으니 방송은 끄고 여관으로 돌아가면 되겠네.

[오늘의 리빙 포인트님 10,000원 기부!]

소도시 에르트타의 녹슨 말발굽 여관 뒷골목에는 서비스 좋은 창녀가 있다.

그걸 듣고 있었냐.

 “야이 씨, 너는 진짜…. 롤랑, 어서 와! 뭐 이야기 들은 게 있어?”

소시지를 우걱우걱 먹어 치운 뒤 릴리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오자 이미 모여 있는 일행들. 한세아와 그레이스는 노점 쪽으로 가서 상인들에게, 아이린과 케이티는 신전 쪽으로 가서 사제들과 신도들에게 질문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런 세 가지 선택지 중 정답은 여관에서 술을 마시는 용병들인지 딱히 건진 건 없어 보이는 그녀들에게 여관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마석 따위를 들고 서쪽에서 오던 행상인들이, 호위 의뢰를 내걸어 놓고 연락이 끊겼다고 해. 아무래도 오크 녀석들이 덩치가 큰 상단은 무시하고 수가 적은 행상인과 여행자들을 노리는 것 같은데.”

오크가 아무리 무식하게 덤벼든다 해도 숫자 정도는 셀 수 있는 지능이다. 상대방의 강약을 고려하지 않고 머릿수만 많으면 일단 달려드는 놈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대규모 상단과 소규모 행상인들은 구분할 줄 아는 녀석들.

거기에 오베르뉴 숲에서 도망쳐 나올 줄 아는 녀석이 참모로 있다면 마석을 모으는 중일지도 모른다. 오크 따위가 마석을 어디에 사용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뢰주가 사라져 손가락을 빨게 생긴 용병의 이야기와 내일 행상인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상인 길드로 향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일행들. 네 사람은 딱히 관련 이야기를 듣지도 못한 것 같으니 별다른 반대 의견 따위는 없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 상인 길드로 향하면 되겠네.”

애초에 한세아의 퀘스트 창이 갱신된 키워드가 ‘용병’이니까 나도 한세아도 정답을 알고 있는 상황. 별다른 불만 따위는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 모두가 자연스럽게 침실이 있는 이 층으로 향한다.

혼자 남자인 나는 개인실, 그레이스와 한세아가 꿍꿍이를 가지고 2인실, 자애로운 아이린이 잼민이와 파티 외부인인 릴리를 데리고 3인실.

-눈나파자마차림 vs 마망파자마차림

-카메라를어디에둘지고민을많이해야할듯?

-나락가는거 한순간이야 처신 똑바로 하라고

-잼민이 뭐 하는지 궁금한데 3인실 보여줘

-잼민이잼민이 하니까 침대위에서 방방 뛰고있을거같냐 왜

 “응, 절대 안 보여줘. 방송 끄고 내일 퀘스트 진행할 때 다시 방송 시작할 거야~”

[이시대참된방송인갓세아님 10,000원 기부!]

선생님 평소 제가 당신을 흠모하고 있었노라 고백해도 될까요?

 “으악, 고백 공격이다! 돔황챠!”

띠익- 익살스럽게 소리친 한세아의 손짓에 방송 화면이 검게 물들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시청자들의 난동이 채팅창을 가득 채운다. 물론 그 원망을 들어야 할 사람은 이미 방송을 꺼버린지라 곧바로 시들해진 채팅창의 화력.

 “…언니, 그래서, 오늘….”

 “어, 롤랑… 옆….”

시청자들이 허공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내비치든 말든 한세아는 방송을 종료하자마자 제 음습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청결용 마도구는 갖춰져 있지만, 방음은 형편없네.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게 관리 된 널찍한 1인실. 서성이는 발자국이 만들어 둔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잔가시가 삐져나오거나 나무판자가 삐걱대는 일은 없었다. 바닥도 매끈히 다듬어 뒀고, 벽면도 천장도 오물 하나 없이 말끔히 관리된 안락한 숙소.

 “아이, 언니! 저기 3인실 숙소는 좀 떨어져 있어서 괜찮다니까요? 언니가 막, 어? 밤에 롤랑 이름만 부르지 않으면 다른 용병들인갑다- 하겠죠!”

 “모, 목소리 좀 줄여!”

 “에이, 롤랑이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이 정도로 속닥거리면 안 들릴걸요? 설마 여관에서 쉬는 중인데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했겠어요?”

문제가 있다면 초인의 육체에 비해 방음 능력이 형편없이 뒤떨어진다는 점이려나.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있음에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한세아와 그레이스의 목소리.

아무래도 1인실의 침대는 오른쪽에, 2인실의 침대는 왼쪽에 있어서 벽면 하나만 두고 가까이 붙어 있는 디자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벽이 없다고 치면 내 머리맡에 바로 한세아와 그레이스의 머리통이 있다는 뜻이지. 거리만 따지면 대충… 1m가 안 되지 않을까. 목소리를 아무리 죽이고 나무 벽 하나가 있다 해도 나의 초인적인 육체에는 목소리가 생생히 들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나.”

 “넹?”

그레이스를 내 방에 밀어 넣고 엿볼 생각에 잔뜩 들떴는지 콧소리가 낭랑한 한세아의 목소리.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그레이스의 질문에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너는 생각 없어?”

 “…무슨 생각이요?”

 “롤랑이랑 하는 거.”

내가 듣지 않고 있다고 판단을 해 버린 건지 곧바로 한세아에게 반격을 냅다 꽂아버리는 그레이스. 그레이스가 내 앞에 서면 수줍은 소녀가 되어버린다 해도 평소에는 능글맞은 언니 캐릭터라는 게 갑작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실전에 들어가기 전, 입으로만 말할 땐 허세가 아주 강해진다는 것 또한.

 “나보다 네가 더 좋아하는 거 보면, 쪼끔 수상해? 막 대리만족 느끼고 그럴 거면 너도 같이 갈래?”

 “아니! 그게, 뭐엇….”

 “에이, 소리를 지르진 말고. 그 정도면 옆방에서 자던 롤랑도 깨겠다.”

걸즈 토크라 해야 할 게 머리맡에서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니 듣는 재미가 있네. 툭탁거리던 두 사람이 이제는 옆방에 내가 있다는 걸 아예 잊어버렸는지 속닥거리던 목소리가 평범하게 커진다.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연애 상담까지 하더니 꽤 막역해진 모양. 언니로서 계속 등 떠밀릴 수만 없다는 듯 음담패설을 곁들인 공격에 한세아가 빼액- 소리를 지르더니 잠자리에 든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레이스가 할 줄 아는 음담패설은 나와의 경험담이라는 점.

 “응? 한나, 자니? …후후, 자는 척은.”

정확히는, 세이브 하고 로그 아웃을 해 버린 모양이다.

그레이스가 내 방에 찾아오는 일 없이 조용한 밤이 지났다. 한세아가 접속하고 여관 1층에 모여, 숙소는 괜찮은데 요리는 좀 그렇다는 걸 확인하게 된 아침.

 “어제 말한 대로 상인 길드를 찾아가 보자.”

 “좋아, 내가 의뢰를 몇 번 받아봐서 위치를 알아.”

아이린의 요리에 비교하면 뭔가 애매한 수프로 대충 허기만 달랜 일행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요리는 별로지만 샤워용 마도구가 있어 다들 뽀송뽀송한 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네. 식사의 질은 미묘했다지만 휴식은 제대로 할 수 있었던 일행들이 거리로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띠링- 한세아의 방송이 켜졌다

 “자, 안녕! 오늘 뱅송 시작은 상인 길드를 가서 정보를 얻는 부분부터 시작이야.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면 채팅창의 수다쟁이가 알아서 연계 퀘스트를 알려 주지 않을까? 아님 말고.”

-진짜 방송 시작 10초만에 꿀밤마렵네

-북부잼민이한테 옮은 방송잼민이

-반대로 방송잼민이한테 북부잼민이가 꼬인거 아님?

-고거 참 설득력 있는 부분이구요

-왜 우리눈나 잠옷차림 안보여줘?

 “왜 안 보여주냐고요? 좋은 건 나만 보려구요. 아무튼, 연계 퀘스트 진도 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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