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175)

우리 일행 중 알고 지내던 건 나뿐이라는 릴리 뎁에 말에 반격하지 못한 그레이스와 한세아 덕에 자연스럽게 팀이 나누어졌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과 돌아다니겠다는데, 고작 하루 이틀 본 사이에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렇게 두 명씩 짝을 지어 노을이 가라앉고 점점 어둑하게 변하는 시장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상인들의 도시랍시고 마력등은 제대로 구비 되어 있어서 해가 진다고 어둠이 찾아오지는 않는 밝은 야시장.

 “이쪽으로 가 보자, 롤랑!”

 “그래, 알겠어.”

내게 팔짱까지 낀 그녀였지만 제 동료들의 안위가 걸린 일인지라 진지하게 정보를 탐색할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 릴리 뎁.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세아는 무언가 작전을 세우는 것 같았다.

예비용 카메라가 내 머리 위에 떠 있었거든.

 “갑자기 서브 퀘스트가 사랑과 전쟁이 된 기분인데? 알고 지내던 편한 여사친 동료라니, 엄청나게 강한 라이벌이자너.”

-너는 눈나 연애전선에 왜 그리 진심인건데

-아니 서브퀘스트를 진행하시라구요 선생님

-그래도 정보 탐색보다는 롤랑 미행이 더 재미있으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무식한 쉑들 이게 뱅송각이라는거다 뱅송각

-뱅송각 아니라 야스각 아님?(진짜모름)

 “저기, 진짜 모름이라고 붙이는 게 무적의 치트키가 아니에요. AI에겐 잡히지 않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죄로 너는 한 30분만 머리 식히고 와라.”

그레이스와 팀을 짠 이유가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정보 탐색이 아닌 연애 상담을 시작하려는 모양새. 시야 한구석에 띄워 둔 그녀의 방송을 보니 웃음이 픽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시청자들은 아직 그레이스와 내가 선을 넘었다는 것까지는 모르니 무슨 웹 드라마 보듯 구경하는 모양. 하긴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미남 미녀 NPC의 연애 전선은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구조긴 하지.

 “롤랑? 여기가 용병들이 술을 자주 마시러 오는 곳이거든. 한번 들어가 보자.”

 “그래, 좋아.”

곁눈질로 방송을 보며 릴리를 따라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어느 허름한 여관 앞으로 나를 이끈 그녀. 우리가 방을 잡은 여관보다 명백히 허름하고 낡은 게 보이지만,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소음처럼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용병들이 많이 찾는 장소긴 한가 보네.

끼이익- 기름칠도 되지 않은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자 아주 잠시 우리 쪽을 향해 몰려드는 시선. 별을 부여받은 릴리가 눈에 띄는 미녀라 하지만 대놓고 무기를 차고 돌아다니니 시비를 걸거나 말을 거는 용병은 없었다.

아무래도 상인이 많은 도시니 사냥 의뢰나 전쟁 의뢰보다는 호위 의뢰가 많아 돈을 벌기 위해 성질을 좀 죽였나 보다.

 “주인장! 여기 맥주 세 잔, 더!”

 “으햐햣, 그래서 내가 골드를 턱 내니 그년이 헤벌쭉해선―”

 “이런 씹, 용병도 아니고 의뢰인이 사라지는 건 무슨…?”

 “후, 시발. 이번 의뢰는 제대로 물 먹었네.”

그렇게 왁자지껄한 각자의 푸념을 들으며 테이블에 앉으니 후다닥 뛰어오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

 “어서오십셔! 두 분, 뭘로 드릴까여?”

 “에일 두 잔, 소시지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만큼.”

 “예에~”

가족끼리 하는 여관인지 카운터에 있는 덩치 큰 남자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소년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에일 두 잔을 시키는 릴리.

딱히 메뉴가 중요한 건 아니니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주변 용병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집중했다. 이 도시에 익숙한 릴리와 파티 중 경험이 가장 풍부한 내가 한 팀이 되었으니 뭐라도 알아 가야 체면이 살지 않겠는가.

 “들었어? 서쪽 항구에서 북쪽 항구로 향한 배가 침몰했다던데.”

 “하, 요즘 통행세를 올리는 돼지 놈들이 너무 많아….”

 “뒤엥 상단이 덩치를 좀 불리려는 것 같은데, 같이 가 볼 생각 있냐?”

 “그 씨발, 언제쯤 은패를 만져볼 수 있는 거야? 의뢰를 몇 개나 했는데.”

 “녹슨 말발굽 여관 뒤쪽에 창녀들이 모이는 거리가 있는데―”

음식을 기다리며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느긋하게 늘어지자 들려오는 주변의 왁자지껄한 소음. 음담패설부터 시작해 술에 취해 불만을 토해내는 놈들부터 기쁨에 취한 놈들까지. 모험가들의 여관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물론 이렇게 해서 실종된 릴리의 파티원에 관한 완벽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

하나는 오크의 목격담이나 미지의 존재에게 습격을 당해 피해를 보고 투덜거리는 놈들이며, 두 번째는 적당히 싸돌아다니다 한세아의 퀘스트 트리거를 건드려 줄 누군가. 팀에 플레이어가 퀘스트 창을 켜고 있는데 그걸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롤랑, 저 의뢰인이 사라졌다는 놈들에게 말을 걸어볼까?”

 “흐음, 그나마 제일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하네.”

그래도 뭐, 적당히 단서는 찾아봐야겠지.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이 제 머리통만 한 잔을 들고 휘청휘청 다가오는 걸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진 테이블로 향했다.

낡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삼인조 용병단. 붉은 단발머리의 여자, 대머리에 턱수염 아저씨, 그리고 갈색 더벅머리 청년까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턱 앉은 세 사람이 허리춤의 무기에 손을 올리는 걸 보고 테이블 위에 따악- 소리가 나게 손바닥을 올렸다.

당연하게도, 내 손아귀 안에 들어 있던 건 금화 한 장.

 “어이쿠, 귀한 손님이시네.”

 “뭐야, 듣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는 거야?”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라온 영롱한 금화의 자태에 대머리 남자와 청년이 씨익 웃으며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무기에서 술잔으로 옮겨가는 손.

검술과 마력을 다루는 실력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기사단, 마나 컨트롤에 더해 마법적 연구 성과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마법사,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에 따라 계급이 바뀌는 모험가. 하지만 용병의 기준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돈’이다.

개인의 실력이든 규모를 늘리든 간에 의뢰를 처리하고 신뢰를 쌓아 큰돈을 만지면 등급이 오르는 게 용병. 다르게 말하자면 이렇게 금화부터 쥐여줄 때 가장 쉽게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처음 보는 놈이 테이블에 앉아도, 수상한 놈이 말을 걸어와도 노동 없이 금화를 쥘 수 있다면 기쁘게 고개 정도는 숙이는 게 용병이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이야, 돈 많은 형씨가 우리 같은 중급 용병에게?”

 “아까 하던 이야기, 의뢰주가 사라졌다면서? 어디에서 오다가 변이라도 당했는지 알고 싶은데.”

신뢰를 충분히 쌓지 못한 용병이 돈을 들고 튀는 건 자주 있는 이야기다. 돈과 신뢰로 등급을 사는 용병이다 보니, 초급 모험가가 방심해서 고블린에게 죽듯 동패 이하의 싸구려 용병들은 술값 벌었다고 생각하며 의뢰비만 받고 도시를 뜨는 경우가 꽤 있거든.

하지만 반대로 의뢰인이 의뢰하러 오다 말고 사라지는 건 거의 없는 이야기지. 돈을 주고 용병을 부릴 정도면 덩치가 꽤 있는 상단이거나 부유한 사람일 텐데 그 정도면 의뢰 취소 수수료라는 푼돈을 내고 신뢰를 유지하지, 용병 길드를 물 먹이려 들지 않을 테니까.

 “아, 그거? 좀 특이한 일이긴 했지.”

남 험담하는 일에 가까운 데다, 말만 하면 의뢰비보다 비싼 금화가 굴러들어오는 상황. 거기에 금화를 턱턱 내는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거짓말이 돈이 될 상황이 아니니까.

그 덕에 금화 앞에서 자신들이 겪은 일을 술술 부는 세 사람.

 “원래는 셋이서 서쪽으로 향하는 상단 행렬에 합류하려 했단 말이야. 서쪽으로 가는 길에 푼돈 좀 벌어보려고 대규모 상단이 아니라 시간 맞는 보부상 집단에게 의뢰를 받았거든.”

 “보부상 집단?”

 “그래. 상단은 아니고, 개개인들이 모여서 길드를 만든 놈들. 부피가 작은 마석이나 보석, 귀족 나으리들이나 부유한 평민들을 위한 장신구 따위는 마차로 옮길 필요가 없으니까 등짐 하나 매고 다 같이 돌아다니는 거야.”

말도 마차도 없이 걸어서 돌아다니다니, 미친놈들.

술에 취한 청년이 낄낄 웃으며 한마디 툭 던지는 동안 나와 릴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결국, 마석을 들고 돌아다니던 상인 놈들이 이유도 없이 실종되었다는 뜻 아닌가?

마치 릴리의 동료들처럼.

 “어디에서 오던 상인들이었지?”

 “서쪽, 그러니까 항구 도시에서 모리스 백작령 거쳐서 에르트타로 오는 놈들. 우리가 받은 의뢰는 에르트타에서 왕국 수도까지의 호위 임무였고.”

마석을 들고 실종된 보부상, 서쪽 항구 도시와 모리스 백작령. 이쯤 되면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대충 릴리의 파티가 자주 오는 단골집 같은 술집이라 왔는데 어째 정확히 저격에 성공했네.

심각해진 내 표정과 대번에 찌푸려진 릴리의 미간.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이 재빠르게 테이블 위의 금화를 챙겨 주머니에 쏙 집어넣는다.

 “헤헤, 그, 혹시 아는 분이 상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거, 크흠, 말을 그렇게 하려던 게 아닌데.”

아무래도 우리가 상인 이야기를 듣고 심각해지니 친인척이 실종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순식간에 쭈그러든 모양. 술에 취했다지만 금화를 턱 내놓은 큰손 앞에서 실종된 가족을 욕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보다는 인성이 괜찮아 보이는 세 사람의 모습에 괜찮다고 대충 손을 저어 보인 뒤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다. 발을 동동 구르던 꼬맹이가 화색을 띠며 자글자글 익어가는 소시지 그릇을 들고 후다닥 뛰어오는 걸 보니 에일만 마시고 튄 줄 알았나 보네.

 “롤랑, 어떻게 생각해?”

 “딱 봐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역시 그 오크 놈들이 그쪽에 자리를 잡았나.”

 “그러면 내일 상인 연합에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연락이 갑자기 끊긴 길드원이 있는지 알아보자고.”

역수로 단검 쥐듯 손에 쥔 포크로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뜨끈한 소시지를 그대로 찍어 으적으적 씹어 먹는 그녀. 허름한 가게임에도 사람이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듯 기분 좋은 고기 냄새가 훅 풍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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