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75)

꼬여버린 퀘스트 라인과 과도할 정도로 강력한 동료 NPC, 그리고 케이티가 가지고 있던 국가의 보물급 마도구의 희생. 우여곡절 끝에 처리한 30층의 보스 몬스터 덕분에 대충 스토리를 짜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포인트 때문에 의문을 표하며 난동을 부리는 시청자들 때문에 잠시 게임을 정지한 뒤 메모장을 열어 정리의 시간을 가져야겠네.

―30층 스토리 요약.txt

1. 마왕이 멸망시킨 이세계가 21~30층에 융합됨

2. 이세계 닝겐은 전멸, 안에 있던 골렘과 몬스터가 같이 넘어왔다

3. 왜? 아마 골렘은 생명체가 아니라서 마왕한테 안 당함, 몬스터는 몰?루

4. 자이언트 웜은 골렘이랑 같이 넘어온 일종의 중간보스(오크 주술사, 오크 전사 포지션)

5. 공동에 있던 죤나 큰 뱀은 진짜 보스 몬스터

6. 아마 자이언트 웜을 먹고 사는 포식자처럼 보임

7. 뱀보스 영양간식, 기사형 골렘 보조 배터리 = 웜

8. 웜을 먹는 보스가 배고파서 웜 마력을 찾아 마력탱크 깨물어 부숨

 “대충 이런 느낌? 이 정도로 정리했으면 롤랑도 이해하고 넘어가겠지?”

-그걸 우리한테 물어봐도 의미가 있나?

-내3년이사라졌는데 지금그게중요해? 포인트가 증발이 됐다고

-뱀이잖아시발련아 뱀이면 장님뱀인데 장님뱀아종이면 1번이정답이지시발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대충 그렇게 정리해도 될 듯? 롤랑센세가 막 꼬치꼬치 따지진 않자너

-나머진 마탑에 넘겨두고 그냥 말을 아끼는 게 낫지 않냐 아는척하다 개쪽당하지말구

보스가 뱀이라서 1번이 이긴 줄 알았지만, 퀘스트 설명상 미궁에서 웜과 함께 넘어온 존재니까 2번이 맞다고 해야겠지? 그 덕에 수긍을 못 하고 난동을 피우는 시청자가 꽤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선택지는 동굴 몬스터와 미궁 몬스터, 두 가지였는데.

 “아무튼, 말이 많이 나오던 30층 퀘스트 정리는 여기서 끝! 뭐, 세부 내용 틀린 게 있으면 다른 분 방송에서 알게 되겠지 뭐. 니들 성격에 나 지적하는 걸 꾹 참고 넘길 놈들이 아니잖아?”

뭔가 여전히 왁왁 시끄럽게 구는 시청자들이 많지만, 무시를 한 채 방송을 끝마친다.

전투가 끝난 뒷수습은 딱히 방송할 필요도 없고, 시청자 없이 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게임 밖에서 한바탕 정리를 끝내고 왔더니, 게임 내부에서도 한바탕 정리를 하게 생겼다.

 “호오, 이것이 그 탑승형 골렘이로군.”

 “관절부의 마감 솜씨가 아주 훌륭하군.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조수로 모셔오고 싶을 정도야!”

징글징글한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라지지 않은 커다란 뱀 보스 몬스터와 탑승형 골렘에 매달려 있었으니까.

지난번 아무 생각 없이 시청자들의 도네이션을 유도하기 위해 유료 질문 컨텐츠를 열었다가 그 후폭풍에 얼마나 매콤하게 당했던가. 평소에는 눈나마망 거리면서 이상성욕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주제에, 마법사 앞에 서니 온갖 전문 지식이 튀어나왔었지.

평소 터지는 금액인 오천 원, 만 원도 아니고 오만 원, 십만 원씩 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물리학 지식 따위를 들먹이는 질문들. 제대로 된 질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었다.

그 이후로 마법사들이 꿀통에 홀린 벌떼처럼 달려들었다는 것.

 “한나 양! 이번에도 대단한 발견을 했군!”

 “제가 발견한 게 아니라, 저희 일행이 발견한 거죠. 실제로 저 미지의 장치를 작동시킨 건 우리 수녀님이고, 통로를 발견하고 몬스터를 막아 세운 건 롤랑이니까요.”

지금도 대화를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며 일행들 뒤쪽에 서 있는데 굳이 다가와서 침을 튀기지 않나. 한평생 연구만 해서 그런지 여자의 표정에 둔감한 건지, 알아도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건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롤랑과 이야기를 끝마친 샤를롯이 중개인처럼 나섰다는 점. 이제 30층에 온 마법사들에 비해 30층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던 샤를롯이다 보니 중위 마법사임에도 늙고 노련한 마법사들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나 보다.

기사형 골렘은 북부에-

이 골렘은 어디 연구실에-

몬스터의 시체가 남았다면 게이트가-

자재 창고 중 빈 곳이-

롤랑 역시 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샤를롯과 그녀의 메이드에게 몇 마디 속삭이고 나서 후다닥 일행들 쪽으로 도망쳐 왔다.

저 지루한 뒤처리 장면은 시청자들 또한 원하지 않는 부분. 당연히 방송은 꺼진 지 오래고 카메라는 딱히 의미 없이 내 머리 위에 붕 떠 있었다. 방송은 꺼지고 모험은 쉼표가 찍혔으며 다들 전투의 흥분에 들떠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만들어지는 이 분위기.

어쩌면 이 시간이야말로 가상 현실 게임의 진짜 재미가 아닐까.

코끝을 찌르는 복합적인 냄새가 뇌리에 강렬히 새겨진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기름의 냄새, 잘 익힌 고기와 그 위에 얹힌 소스, 따끈하게 같이 내 오는 다양한 스튜와 수프, 코를 알싸하게 만드는 독한 술 향기와 옆 테이블에서 미묘하게 피어오르는 꿉꿉한 모험가의 땀 냄새까지.

 “자아! 30층의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우리의 모험을 위하여-!”

 “위하여!”

언제나처럼 운수 좋은 놈팽이에서의 뒤풀이. 뜨끈한 요리가 탁자 위에 올려지고 술잔과 술잔이 맞부딪치며 거품을 튀긴다. 현실의 식당이었다면 지저분해서 눈살이 찌푸려질 광경이었지만 여기서는 그저 흥을 돋우는 자그마한 해프닝일 뿐.

애초에 현실이었으면 이런 기름진 음식을 폭식하지도 못했겠지.

치킨에 독한 맥주, 버터가 자르르 흘러내리는 스테이크 덩어리에 양념에 푹 절인 촙스테이크. 규칙적인 운동과 식단 조절로 몸매를 관리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자면, 먹으면 일주일은 닭가슴살만 먹어야 할 식단이다. 아니, 이 정도로 먹으면 담백한 식단에 익숙해진 내장이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

 “한나! 우리 마법사님! 골렘도 막 찾아내고, 이상한 장치도 막 다루고!”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나 양!”

가상 현실 게임의 퀼리티에 놀라고, 비비게임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갖 음식을 씹어 넘기고 있으니 벌써 술에 잔뜩 취해버린 일행들. 다른 감각은 다 구현해 놓고 어째서 술에 취하는 기능은 만들지 않은 걸까.

취기가 오른다고 하지만 일행들과 비교하자면 그저 따땃하게 몸이 달궈진 정도. 술에 취해서 잔을 번쩍 들어 올리고 건배사를 반복하는 그레이스 언니와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기사형 골렘에 대한 찬양을 시작한 케이티에 비교하자면 물만 마신 수준이다.

그래, 술.

그레이스 언니는 잔뜩 취해서 롤랑의 팔뚝에 추욱 매달리기 시작했고, 태생 6★ 탱커는 술에도 취하지 않는지 맥주도 아니고 뭔가 독해 보이는 술을 벌컥 마신 롤랑은 멀쩡하게 그녀를 부축해서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린 언니, 그, 케이티 양은….”

 “네에, 지난번처럼 제가 데리고 가서 신전에서 재울게요. 아, 그러고 보니 케이든 씨가 아니라 케이티 양이니까 손님용 숙소를 조금 바꿔야겠네.”

그레이스 언니를 부축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롤랑.

케이티 양을 부축해 신전으로 향하는 아이린 언니.

내가 따라가야 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해진 상태였다.

자그마한 침대는 두 사람이 올라타기엔 명백하게 비좁아 보였다.

평소에는 쾌적한 롤랑의 숙소로 향하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레이스 언니의 숙소로 향했다. 그러니까, 롤랑이 잡아준 내 숙소 바로 옆 방으로 두 사람이 들어갔다는 이야기.

물론 두 사람을 훔쳐보는 건 카메라를 통하기 때문에 롤랑의 숙소든 그레이스 언니의 숙소든 별 상관은 없지만… 뭐랄까, 심리적인 게 있다. 이 얇은 벽 너머, 5m도 안 될 거리 너머에서 화면 속 이 두 사람이 뜨겁게 껴안고 있다는 게….

 “히히, 롤라앙~”

 “많이 취했네, 그레이스.”

애매하게 구현된 취기 때문인지 후끈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운 채 화면에 비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천천히 겉옷을 벗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몸은 속옷 모델이 절로 떠오를 정도.

그 누구보다 여성스럽게 잘록한 허리와 출렁이는 가슴, 풍만한 엉덩이. 그리고 그 여성스러운 몸을 우악스럽게 깔아뭉개는 커다란 근육질의 몸. 비좁은 침대 위에 나른하게 누운 여인은 도망칠 곳도 없고, 벗어날 의지도 없이 그대로 짓눌린다.

남자와 여자가 얽혔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수컷이 암컷을 찍어누르는 모양새에 가까운 음란한 광경. 20m짜리 거대한 뱀을 노끈 휘두르듯 잡아챈 우악스러운 손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그 커다란 가슴을 어루만진다.

 “오늘은 씻자고 말 안 하네?”

 “어, 어차피 안 들어줄 거면서….”

 “내가 언제? 그냥 같이 씻었을 뿐인데.”

그 가벼운 손길만으로도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는 커다랗고 뽀얀 가슴. 그 모습을 보게 되자 이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이게 된다. 얇은 셔츠 아래, 현실과 똑같은 체형과 감촉을 자랑하는 내 가슴을 향해서.

몸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이 열기는 구현이 되다 만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채 미소를 짓는 그레이스 언니의 얼굴 때문일까.

NPC라지만, 사람보다 더욱 사람 같은 지인이 화면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방송하며 봐 왔던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아름답고 잘생긴 미남 미녀가 끈적하게 얽히고 있었다.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두 손은 자연스럽게 가슴과 사타구니로 향한 모양새. 침대의 두껍고 부드러운 이불에 파묻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꿈질꿈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 두 남녀의 행동에 맞춰서.

 “흐으읏- 롤랑, 롤라앙…. 진짜, 애도 아니고 맨나알….”

 “남자가 어떻게 이 예쁜 가슴을 보고 참을 수 있겠어.”

 “또, 또 내 탓. 네가 변태인, 거면서엇-”

새하얀 가슴 끝자락, 발딱 일어난 분홍색 유두는 같은 여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그 점잖고 진중하던 롤랑이 짐승처럼 이를 드러낸 채 잘근잘근 깨물고 괴롭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매혹적인지는 증명이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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